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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19]세르게이 예세닌의 고향 콘스탄티노보

2020-04-13 15:20

글·사진 : 이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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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팻말.JPG

세르게이 예세닌의 고향에 도착하다
세르게이 예세닌의 고향인 콘스탄티노보(Konstantinovo)는 랴잔에서 43km 정도 떨어져 있다. 버스로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콘스탄티노보로 가는 승강장 앞에 줄을 선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또 막막하지만 현장에서 방법을 찾기로 하고 버스에 오른다. 어느 곳에서 하차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으니 운전사에게 표를 보여주면서 부탁한다. 러시아 여행은 마치 원시인처럼 ‘몸짓’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런데 웬일. 버스 안에 있던, 한 중년 남자가 손짓을 한다. ‘넌 이곳에서 내려야 한다’는 제스처다. 그 남자에게 부탁을 한 적도 말 한마디 던진 적도 없다. 그런데 그는 얼굴이 다른 외국인을 배려하고 있는 것.

 

랴잔하고 비교 안되 게 작은 시골마을 앞이다. 다행이 마을 입구에 세르게이 세르게이의 그림 간판이 반긴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건물이 있고 ‘카사(kacca, 매표소)’라는 글자가 보인다. 일단 그 건물 쪽으로 다가선다. 안내판은 전부 러시아어이고 스태프 또한 러시아 말을 하지만 이제는 ‘눈치’로 안다. 박물관 전부를 볼 것이냐? 몇 개만 볼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이곳을 찾으려 멀고도 먼 길을 돌아 찾아왔는데 망설일 이유 없다. 전부다 볼 수 있는 티켓(300루블, 5300원 정도)을 구입한다. 감동이 밀려 온다. 살아생전에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예세닌(Sergey Aleksandrovich Yesenin, 1895~1925) 시인의 고향을 찾을 것이라는 생각을 어찌 했겠는가?

마을 뒤 오카강.JPG

 

마을 뒤 오카강 

오카 강변 언덕위에 자리한 러시아 시골마을
티켓을 받아 들고 밖으로 나오면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건물들이 보인다. 눈에 띄는 민가는 많지 않다(시인, 동료, 동급생, 동료 마을의 친척등 14개의 가옥). 그럼에도 생각보다 관광객들이 많다. 위치 안내판이 많고 러시아에서는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영어까지 표기되어 있다.

 

마을 민가.JPG

 

마을 민가 

콘스탄티노보의 기원은 약 400년 전인 1619년. 가장 조용한 지역이라고 알려진 이곳을 러시아 로마노프 2대 왕조의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1629~1676)가 영지로 삼았다. 그러다 1879년, 키예프 시장의 아파트 소유주이자 모스크바의 백만장자였던 "이반 페트로비치 쿨라코프가 이 지역의 부동산을 매입한다. 1911년, 쿨라코프의 딸인 리디아(1886~1937)가 결혼 후 상속 받게 된다. 그러다 소련 시절, 건물들은 기숙 학교, 의료 센터 및 심지어 호스텔로 사용되어야 했다.

 

마을 아이들.JPG

 

마을 아이들 

1917년부터 마을에는 새로운 개혁 바람이 분다. 특히 1925년, 세르게이가 사망한 직후 시인 추종자들이 이 마을을 찾아들기 시작한다. 러시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이에 부응해 1965년 10월 2일, 세르게이의 기념 박물관이 개관하게 된다. 이후 이 마을은 수년에 걸쳐 큰 박물관 단지(약 4만2000평)를 조성한다. 1984년에는 대대적으로 정비해 마을 전역이 역사 박물관이 되었다. 

 

초등학교 모습.JPG

 

초등학교 모습 

시인이 다닌 젬스키 초등학교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넓은 터의 중심부에 있는 젬스키 학교 박물관이다. 부유한 상인 쿨라코프가 20세기 초에 만든 작은 목조건물은 러시아 전형적인 시골 학교다.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복원된 곳으로 당시 4년제 초등 학교. 학교 내부는 두 개의 반으로 나뉘어져 있고 검은색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교단에는 키릴 글자 판이 걸려 있고 세계지도, 러시아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1868~1918)와 황후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1894~1918)의 사진도 걸려 있다. 뒷 게시판에는 이 학교의 교장이나 교사 등으로 짐작되는 인물 사진과 졸업장, 교과서, 노트 등의 소소한 자료들이 걸려 있다.

 

학교 내부.JPG

 

학교 내부 

 세르게이의 교육 문서 사본 등도 있다. 세르게이는 1904년(9세), 이 학교에 입학해 1909년(14세)에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스파스 클레피키(Spas-Klepiki, 랴잔에서는 64km)의 중등학교에서 공부하게 된다. 1910년(15세)부터 그는 체계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약 30편을 썼다. 그는 지도교사의 조언에 따라 시작(詩作)에 몰두하기 위해 1912년, 5월(17세), 교사 졸업장을 받고 모스크바로 떠난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 고향을 찾아왔고 잠시 머물기도 했다.

 

집 내부.JPG

 

세르게이 생가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예배당을 거쳐 세르게이가 태어난 집으로 간다. 나무 울타리가 쳐진 이곳은 1965년에 만들어진 최초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생가가 있다. 생가 우측에는 바바리를 휘날리고 있는 세르게이의 거대한 청동상(1924년 여름에 개막)이다. 그 안쪽으로는 공방, 헛간, 창고 등으로 이용되는 건축물들과 채마밭이 있다.

 

일단 생가 안쪽으로 들어선다. 목조 가옥인 생가 내부는 비좁다. 가난이 느껴지지만 훈훈한 기운이 드는 러시아 가정집. 시인의 생가는 1871년, 그의 할아버지가 만들었다. 그가 태어나던 시대의 시골 마을은 중노동과 빈곤이라는 참담한 현실이 있었다. 토지는 작은 크기로 세분되어 있었고 비옥하지도 않았다. 마을 농민들은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도시에 나가 부업을 찾아야 했다.

 

세르게이의 집도 마찬가지. 할아버지가 남긴 집과 농지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 아버지 알렉산더(1873~1931)는 세르게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모스크바의 정육점에서 일했다. 그의 어머니 타치야나 표도로브나 예세니나(1875~1955)는 부유한 집안이었다. 어머니의 친정집에서는 가난한 남자와의 결혼을 반대했다. 부모들은 그녀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 세르게이는 둘 사이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난다. 세르게이의 동생은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죽은 아들을 자기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것을 빌미로 어머니와 별거를 시작한다. 아버지는 가정에 더 이상 생활비를 보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세르게이의 어머니는 랴잔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다. 결국 세르게이는 두 살 때부터 인근 마을 마토보(Matovo)의 외조부모 밑에서 성장한다. 외할아버지 덕에 아주 어린 5세에 글 읽기를 배울 수 있었다. 이 즈음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와 함께 살았고 9세가 되면서 부모가 합치면서 2명의 딸을 낳는다.

 

주교의 집.JPG

 

주교의 집 

요한 스미르노브 주교의 집
생가 근처에는 매력이 넘치는 요한 스미르노프(John Ivan Smirnov) 주교의 집이 있다. 주교의 집에는 오래된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콘 모서리 근처에는 부활절 달걀 등 흥미로운 컬렉션을 볼 수 있다. 당시에 이용했던 악기와 전통 의상도 전시되어 있다. 주교의 사진, 딸과 세르게이의 동생이 함께 찍은 사진, 클라우디우스의 사진 등을 비롯해 세르게이가 보낸 엽서 등 볼거리가 많다.

 

주교의 집 놀이기구.JPG

 

주교의 집 놀이기구 

요한은 아내를 일찍 잃고 딸 캐피톨리나와 조카 클라우디우스(죽은 형의 아들)와 함께 왔다. 요한 주교는 세심하고 현명한 사람이었고, 훌륭한 재판관이었다. 이 마을에서 40년간 봉사했다. 세르게이와 형제들은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특히 소년 세르게이에게 주교는 정신적 스승이었다. 세르게이를 스파스 클레피키 학교에 진학시키라고 권한 이도 이 주교다. 주교는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카운티 학교(Smirnovs House)’를 조직했다.

 

학생들은 농촌 지식인들. 세르게이는 이곳에서 음악, 기타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함께 노래했다. 특히 클라우디우스는 매우 친한 친구였다. 사춘기 시절, 세르게이는 첫사랑에 빠진다. 주교의 친척인 안나 사르다노프스키(Anna Sardanovsky)였다.

 

카잔 교회
주교의 집을 나와 찾은 곳은 마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인 카잔 교회(Church of Our Lady of Kazan)다. 카잔 교회는 이 마을이 형성되던 1619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곳. 당시에는 마을에서 가장 작았고 가장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세워졌다. 18세기 말까지 그랬다. 목재 건물이라서 종종 화재가 났고 또 재건되었다.

 

알렉산더 골릿신(Alexander Golitsyn) 왕자 때 석조 교회(1779년)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세르게이 부모가 결혼했고 아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교회 뒤쪽으로 가면 오카 강 변으로 길이 이어진다.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 펼쳐지는 곳에 작은 예배당과 카잔교회의 뒷 모습이 한데 어우러진다. 그림처럼 멋진 전원 풍치는 분명히 평생 세르게이에게 시적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가 어린 시절 분명히 뛰어 놀던 자연 놀이터였을 그곳이 웬지 허무하다.

 

안나 스네기나 시 박물관
교회에서 서쪽 방면으로 가면  "애나 스네기나(Anna Snegina)"의 시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세르게이 사후 115주년 기념으로 개관했고 시인이 죽기 전에 쓴 자전적인 작품인 애나 스네기나(1925년)의 이름을 붙였다. 박물관 지구에서는 가장 큰 저택이다. 19세기에 지어진 2층 건물과 앞 마당의 정원과 저 멀리 오카 강이 한데 잘 어우러지는 입지다.

 

첫 번째 전시관에서는 당시의 상류층 가정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이닝 룸에는 침대, 피아노, 축음기까지 갖추고 있다. 3층에는 세르게이가 쓴 작품, 원고, 삽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시인의 개인 소지품인 잉크 병, 문진, 재떨이, 수첩 표지 등도 볼 수 있다. 

 

이 박물관은 원래 "이반 페트로비치 쿨라코프"의 저택으로 딸 리디아가 상속 받았다. 리디아는 고등 교육을 받았고 여러 나라 언어를 구사하며 음악을 연주할 줄 아는 귀족여성. 이 집에는 교수, 예술가, 작가들이 많이 찾아 들었는데 그중 빈번하게 찾아온 손님이 세르게이다. 리디아는 활발했고 선친이 했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자선 활동을 했다.

 

그녀는 세르게이가 모스크바로 떠날 때도 경제적인 도움을 줬다. 이 박물관에 세르게이가 쓴 시 제목(애나 스네기나)을 붙인 데는 시 내용과 연계된다. “런던으로 피신한 애나 스네기나로부터 편지를 받고 그녀에 대한 사랑을 회상한다. 스네기나와 사랑에 빠진 열 여섯 살의 세르게이는 "아니오"라고 말한다. 스네기나는 그 때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시와 실제는 좀 다르다. 모두가 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야기들. 세르게이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 자꾸만 서글퍼진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스토리 때문일 것이다?(계속)

Data
찾아가는 방법:모스크바 카잔역에서 랴잔역까지 기차 이동/랴잔 중앙 버스 터미널에서 콘스탄틴노바(랴잔-리보네(Rybnoe)-콘스탄틴노바(Konstantinovo)-바키노(Vakino)/6:10, 9:40, 13:40, 18:35(매일)

세르게이 세르게이 박물관:주소:House 101, Konstantinovo/전화:+7 491 373-32-57
박물관 운영시간:월요일~일요일:10시~18시까지/매표소:월요일 휴관:10시~17까지

웹사이트:http://www.museum-esenin.ru/

 

*참고:모스크바 남부 항구에서는 3일간의 강 크루즈 여행 코스가 있다. 아침에 콘스탄틴노보에 도착해 박물관을 관람하고 저녁에 떠난다.


글, 사진:이신화(on the camino의 저자, 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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