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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 10]톨스토이의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

2020-02-13 23:45

글·사진 : 이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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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초상화.JPG


*영어 주소를 읽지 못하는 택시 기사
툴라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19세기의 러시아 대 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의 ‘영지(estate)’를 찾기 위함이다. 툴라에서 남쪽 방향으로 12km 정도 떨어져 있는 야스나야 폴랴나(Yasnaya Polyana, ‘밝은 숲의 빈터’라는 뜻)다. 숙소를 벗어나 찻길 앞에서 얀덱스 앱으로 부른 택시를 기다린다. 몸 근육이 다 드러나 보이는 짧은 소매 옷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운전사의 인상이 곱지 않다. 그러나 운전사까지 선택할 수는 없다. 기사에게 ‘톨스토이 박물관’을 가자면서 핸드폰에 표기된 주소를 보여준다. 기사는 목적지에 다 왔다고 차를 세웠지만 택시에서 하차하지 않는다. 툴라에서 외곽으로 나가야 한다는 정보를 알고 있는데 5분도 안돼서 도착했으니 말이다. 우락부락한 인상에 다혈질의 기사가 무서웠지만 택시비를 이중으로 치르고 싶지 않다. 다행이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기사가 잘못 안내했기에 택시비를 깎아 보려 했지만 그건 순전히 한국식 해석일 뿐. 쭈빗대는 필자에게 기사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도를 취한다. 그의 태도가 무서워서 고스란히 돈을 다 주고 만다. 여행객은 늘 감수해야 할 일이지만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물리학자 세르게이.JPG


*톨스토이의 영지에서 만난 세르게이
톨스토이 영지 입구에는 두어 개의 노포가 있다. 어김없이 지역 특산품인 당밀 과자를 팔고 있다. 나름 관광지라고 물 값이 시내의 두 배 이상이다. 물은 포기하고 그냥 매표소로 간다. 영지의 모든 곳을 다 볼 수 있는 티켓을 구입한다. 이곳까지 와서 톨스토이 하우스 관람을 포기할 수 없다. 가이드와 함께 관람해야 한다. 한국어 도슨트가 따로 없으니 러시아 언어로 들어야 하는 상황. 잠시 벤치에 앉아 아름다운 연못을 바라본다. 톨스토이가 살던 때, 이 영지에는 4~5개의 연못이 있었는데 그는 여름철에는 수영을 하고 겨울에는 빙상을 즐겼다는 곳이다. 그때 노년의 세르게이(72세)가 영어로 말을 붙인다. 모스크바에 사는 세르게이는 부인과 조카가 동행인이다. 러시아는 젊은 층은 물론이고 나이든 사람 대부분이 단 한마디 영어를 구사할 수 없는 나라다. 그런데 세르게이는 나이도 많은데 영어를 잘한다. 물리학자인 그는 벨기에, 영국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을 하면서 영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영어는 못하지만 한 눈에도 성격이 밝고 유머러스한 부인 타냐. 그리고 조카 표토르. 낯선 그들과 함께 톨스토이 영지 투어를 시작한다. 
 

톨스토이 하우스를 안내하는 가이드와 여행객.JPG


*러시아 언어로 가이드 동반 영지 투어
젊은 여성 가이드의 뒤를 따라 영지 안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관광객의 수는 5명 정도로 많지 않다. 세르게이는 러시아 어를 이해 못하는 필자에게 설명해주려 애를 쓴다. 입구에는 자작나무 숲이 일직선으로 이어지고 왼쪽으로는 사과 농장이다. 톨스토이가 농노들을 위해 직접 심은 사과 농장이 아직도 그대로다. 과수원에는 말을 키우는 마굿간 건물이 있다. 삼 갈래로 길이 나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는 볼콘스키(1810)의 멋진 집이 보인다. 곧추 직진하면 톨스토이가 집필하던 작은 집. 이 집을 ‘톨스토이 하우스’라고 명명한다. 레프 톨스토이가 20여 년간 머무르며 집필했던 곳. 집 안으로 들어서려면 비닐 신은 필수다. 나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오르면 본격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집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라서 많이 아쉽다. 그러나 레프의 젊은 사진, 소품 등. 그의 80평생의 인생을 훑어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특히 박물관을 소중하게 지키는 것은 물론 소장품들의 인테리어가 얼마나 디테일한지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톨스토이가 입던 옷, 밥을 먹던 식탁, 집필하던 서재 등. 그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독하게 꼼꼼한 이 나라 사람들의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박물관 투어다. 
 

톨스토이 영지 입구의 호수.JPG


*톨스토이 외가인 볼콘스키 공작 가문의 영지
이 영지는 톨스토이 외할아버지인 니콜라이 세르게예비치 볼콘스키(1753~1821) 공작의 소유였다. 외할아버지는 예카테리나 2세시절 고관을 지냈다가 좌천되어 이 영지에 정착했다. 그는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볼콘스카야(Maria Nikolaevna, 1790~1830)를 낳았다. 그러나 딸이 두 살 되던 해에 아내가 사망했고 공작은 평생 재혼하지 않고 딸 하나만을 열심히 길렀다. 마리야는 공작이 죽은 후 이 영지를 물려 받았다. 1년 후, 니콜라이 일리치 톨스토이(1794~1837) 백작과 결혼하게 된다. 니콜라이 톨스토이는 집안의 파산을 막기 위해 4살 연상의 마리야와 일종의 정략결혼을 한 것. 이 영지는 마리야의 결혼 지참금이었다. 결혼 후 이 곳에서 다섯 남매(4남1녀)를 낳았다. 니콜라이, 세르게이, 드미트리, 레프 그리고 딸 마리아. 레프 톨스토이는 4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레프 두 살 때 어머니는 막내 여동생이 태어난 지 몇 달 후 죽게 된다. 어린 시절 레프는 숙모 등 친척집에서 컸고 청년 때는 도박을 하는 등 방황도 했으며 군입대도 했다.
 

톨스토이 영지 볼론스키 가옥.JPG


*영지를 떠나 죽고 영지로 돌아오다
그러다 1862년(34세), 레프는 지인의 딸인 18세의 소피야 안드레예브나 이슬레네프(1862~1910)와 결혼하면서 영지로 돌아온다. 16살이 어린 그녀는 이곳에서 남편을 대신해 영지를 관리하고 원고를 정리하는 등 내조에 힘을 쏟았다. 둘 사이에서 13명(9남 4녀)의 자녀들이 탄생한다. 다섯 명(4남 1녀)은 어린 시절에 사망했고 총 8명(5남3녀)이 생존했다. 레프는 1881년(53세)에 아이들 교육을 위애 모스크바에 집을 사 들여 겨울을 보냈다. 겨울만 보내고 그는 빨리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그는 거의 평생 이곳에서 살았다고 해야 한다. 레프는 영지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다. 당시 이 영지는 약 5백만 평(1,600헥타르)에 이르렀다. 영지 윗 부분에는 고밀도의 원시림과 4개 연못, 약 350명의 소작농이 살았으며 농민의 집이 네 군데 있었다. 할아버지의 사과 과수원을 넓혔다. 원래의 정원의 면적은 4배나 늘어났고 총 5개의 정원이 있었다. 레프는 오전 7시에 기상 후 공원을 걷는 등 운동을 했고 이 후 시간에 글쓰기를 했다. 곡물 수확기에는 농부들과 함께 밭에서 일했다. 그는 농부 자녀를 위한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 영지에는 많은 문화 및 예술가들이 찾아왔다. 안톤 체홉, 투르게네프, 막심 고르키, 화가 발렌틴 세로브, 일리야 레핀 등. 톨스토이는 생전에 당대의 누구보다도 더 영향력 있고 존경 받은 인물이었다. 톨스토이는 1862년~1869년까지 “전쟁과 평화”를 썼고, 1873년~1877년 사이에 안나 카레리나를 집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레프는 이 영지에서 죽음을 맞지 못했다. 그의 1910년(82세) 11월 7일, 부인에게 인세를 넘겨주지 않으려고 10일간 기차 타고 부인 곁을 떠났다가 모스크바 남부의 톨스토이 역(옛 아스타포보 역)에서 7일 만에 죽음을 맞이했다. 시신은 야스나야 폴랴나로 운구되어 묻혔다.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2009년 작)을 보면 말년의 생을 들여다볼 수 있다.
*톨스토이 사후 영지의 역사레프 사후, 미망인 소피아는 정부에 이곳을 국가가 관리해 줄 것을 차르 니콜라이 2세에게 청원했으나, 거절당한다. 그러자 레프 사후 1년 뒤인 1911년, 소피야는 곧바로 작가의 서재와 침실 등 2개의 방을 일반 방문객들에게 개방한다. 1917년, 볼셰비키가 집권한 후 바로 이곳을 사적지로 지정하고 국가가 관리했다. 맏딸 타티야나가 박물관의 첫 관장이 된다.  1919년 소피아가 75세로 세상을 떠나자 막내딸 알렉산드라에게 맡겼는데, 그녀는 공산 정부가 싫어서 이후 미국으로 귀화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자손이 많았으므로 다른 자손들 중 한 명씩을 골라서 관리하도록 했다. 1921년에는 주립으로 정식 개관하게 된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 때는 독일군에게 점령 당한다. 자택은 독일군의 야전병원으로, 그가 남긴 원고들은 독일군의 땔감이 되는 굴욕을 당한다. 거기에 레프 톨스토이 묘지 옆에 줄줄히 전사한 독일 병사들의 무덤을 썼다. 당시 박물관의 전시물들은 모스크바와 톰스크(Tomsk)로 대피시켰다. 이후 독소전쟁 후에 모두 원상복귀 되었다. 현재 박물관의 디렉터는 톨스토이의 증손인 블라디미르 톨스토이(1962~). 1994년, 톨스토이 영지 박물관 관장이 되어 이 영지를 멋진 문화센터로 변모시켰다. 현재 문학 작품들을 포함해 모두 약 4만 점 정도가 전시돼 있다. 레프의 개인적 유품 6천 점도 포함된다. 톨스토이의 2만 2천권의 책이 있는 도서관이 있다. 
 

톨스토이 영지의 자작나무 숲.JPG


*세르게이 가족의 친절에 감동받다
레프 톨스토이 하우스를 둘러 보고 세르게이 가족과 잠시 헤어지고 이곳저곳을 혼자 돌아다닌다. 그러다 또다시 조우하면서 레프의 무덤(Green Wand)도 보고 농민의 집들을 둘러보고 문밖까지 동행한다. 세르게이는 박물관 앞에 있는 노포로 다가갔고 ‘툴라의 당밀과자는 이곳 밖에는 구입할 수 없다’면서 생판 처음 만난 한국 여행객에서 선물로 안긴다. 또 조카 표토르는 기념품을 선물한다. 거기에 툴라까지 차를 태워주었고 오늘 길목에서는 기꺼이 차를 세우고 시원한 물까지 사준다. 관광지 앞이라 물 값이 비싸다고 했던 필자의 말을 기억한 것. 이유 없이 선물을 받은 필자가 한 일은 고작 찍은 사진을 보내준 것 뿐. 필자가 한국에 여행 오면 외국인들에게 이런 따사로운 애정을 베풀 수 있을까? 분명코 톨스토이 영지를 떠오를 때면 “세르게이” 가족이 필자에게 베풀어준 친절을 더 기억할 것이다. (계속)

*Data
가는 방법:툴라에서 버스로는 40분. 택시로는 20분 소요.
영지 개방시간:여름:오전 9시~오후 8시
휴관일:월, 화요일. 매월 마지막 수요일 휴관
입장료:250루블
박물관 홈페이지:https://ypmuseum.ru/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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