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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따라 잇는 소백산 단풍길

하늘과 바람과 단풍과 시

2019-10-13 01:00

취재 : 장가현 기자  |  사진(제공) : 조지철, 조선일보DB, 옥천군청,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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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하늘은 높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억새가 자라나는 가을엔 산에서도 파도가 친다. 10월의 단풍은 책갈피에 끼워두고 오래 간직하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옥천 둔주봉에 오르면 광활한 산맥과 유유히 흐르는 금강 사이 한반도 모습을 닮은 지형이 눈에 띈다.
가을에는 여러 가지가 수식어가 있다. 선선하다, 무르익다 같은 가을 자체를 표현하는 말부터 울긋불긋한 단풍, 높은 하늘처럼 가을의 특성을 뜻하는 말까지 다양하다. 가을을 뜻하는 모든 말을 포함할 수 있는 단어로 ‘평온함’이 있다. 그래서인지 가을이 되면 바쁘게 종종거리던 마음에도 선선한 바람이 분다. 늘 바쁘게 오가던 길에 물든 빨간 단풍도 눈에 띄고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도 눈에 들어온다. 하늘 높이 솟았던 해가 지평선에 걸리면 붉은 노을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그 평온함 때문일까. 가을만 되면 유독 길을 떠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가는 곳마다 그림이고 낭만이 넘치는 이 계절에 감수성을 자극하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충북 옥천이다. 옥천은 <향수>를 쓴 시인 정지용의 고향이다. 그가 나고 자랐던 옥천의 구읍에서는 정지용이 문학 감수성을 기른 초가집을 중심으로 옥천향교, 사마소, 육영수 생가 등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대청호반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계관광지, 옥천을 둘러싼 소백산맥의 그림 같은 경치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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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산세와 깨끗한 금천계곡이 흐르는 옥천 장령산 자연휴양림은 용암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아름답다. 울창한 산속을 걷기만 해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충북 옥천, 소백산맥과 붉은 단풍

옥천으로 여행을 가던 9월의 어느 날, 가을을 알리는 보슬비가 내렸다. 옥천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둘러싼 산에 물기가 어렸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산중턱에서 안개가 되어 산허리를 감쌌다. 인간 세상에서 천년 동안 수련을 쌓은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할 법한 광경에 절로 감탄사가 터졌다.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가면 옥천까지 약 세 시간이 걸린다. 국토 가운데 자리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어디서 출발하든 세 시간 내외다. 창밖 풍경에 취하다 잠깐 졸았더니 옥천톨게이트를 지나고 있었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을 병풍으로 두른 옥천은 산 안에 안겨 있는 곳이다. 비가 내린 옥천 시가지에도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옥천에서는 높은 건물을 찾기 어렵다. 시야를 가리지 않고 탁 트인 풍경을 보니 묵은 체기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금강을 따라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여름내 초록빛 싱그러움을 뿜어내던 나무에 붉은 가을이 묻었다. 막 붉은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나무, 아직 초록색 이파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나무, 노란 은행나무까지 제각각이다. 멀리서 보면 초록과 빨강이 섞여 노랗게 보인다. 강을 호위하듯 둘러싼 산을 따라 오르다 보면 한반도지형전망대가 있는 둔주봉전망대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전망대로 가려면 좁은 오솔길을 지나야 한다. 비가 온 터라 길은 고요했다. 저만치 앞에 빨간 우산을 쓴 남녀 한 쌍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산길을 걷고 있었다.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속도를 늦추고 걸었다. 천천히 걸으니 산의 구석구석이 보였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핀 코스모스와 빽빽하게 들어선 소나무 사이로 어디선가 산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공기가 촉촉해서 그런지 새소리에도 물기가 어려 있었다.

그렇게 20분 정도 걸으니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옥천 한반도 지형의 특징은 좌우가 뒤집어졌다는 점이다. 서해해안선이 있어야 할 곳에 동해해안선이 있다. 좌우가 반전된 한반도 지형에 굽이치는 금강과 산맥이 말 그대로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옥천 오는 길에 봤던 비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모습은 신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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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청호가 만든 기경, 대청호 호반을 향해 가늘게 뻗어 나간 절벽을 부소담악(赴召潭岳)이라 한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만든 풍경이다.
2) 좌우가 반전된 한반도 지형에 굽이치는 금강과 산맥이 말 그대로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옥천 오는 길에 봤던 비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모습은 신비로웠다.
3) 아름다운 대청호반이 한눈에 보이는 장계관광지에서도 정지용의 시를 만날 수 있다. 강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에는 평온함이 깃들어 있다.
4) 자전거 라이더가 옥천에 있는 ‘향수100리 자전거길’을 혼자 달리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호수와 산과 한적한 논밭이 펼쳐진 시골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반도지형을 보고 나서 다시 대청호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청호는 대전, 청주, 보은, 옥천까지 걸쳐 있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인공호수다. 10월 말이면 대열을 맞춘 철새가 날아든다. 대청호의 경치가 잘 보이는 산중턱에 멈춰 섰다. 근처에 사는 주민이 오가며 만든 길옆으로 수풀이 무성했다. 풀잎 사이로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것 같은 새끼 도롱뇽이 모습을 보였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대청호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산길을 좀 더 걸었다. 잘 여문 밤송이가 무심하게 떨어져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밤송이 안에 밤이 없다. 누가 주워 갔나 싶었는데 저 멀리 양 볼에 식량을 가득 문 다람쥐가 지나갔다.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을 실컷 즐기는 것 같은 모습을 보니 괜히 흐뭇했다.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 사이로 대청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쭉한 타원형으로 보이는 대청호 뒤로는 차곡차곡 정렬된 산봉우리가 보였다. 애국가에 나올 법한 웅장한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조금씩 옅어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대청호 인근에 부소담악이 있다. 추소리 부소무늬마을 앞 호수에 떠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우암 송시열이 병풍처럼 펼쳐진 절경이 금강산을 축소해놓은 것 같다며 소금강이라는 별칭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송시열도 극찬한 소금강에 있던 마을은 1980년대 대청댐이 생기면서 물속으로 사라졌고 부소담악이라는 이름만 흔적으로 남았다. 부소담악을 홀로 지키고 있는 추소정에 오르면 옥천에 있는 소금강의 모습을 감상하기 좋다.

부소담악에서 내려와 이제 구읍으로 향한다. 구읍은 옛 시가지를 칭하는 말이다. 오랜 옛날부터 경부선 철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옥천의 중심지였다. 오래된 중심지인 만큼 옥천을 대표하는 문화재가 골목마다 모여 있어 산책하기 좋다. 다시 톨게이트를 지나 정지용 시인의 생가까지는 차로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옥천에 들어와 잠깐 차를 타고 지나갔을 뿐인데 ‘향수’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을 많이 만났다. 식당, 술, 카페 할 것 없이 모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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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영수 생가로 알려진 교동집은 조선시대 사대부가 살던 대표적인 전통가옥이다. 1600년대부터 김정승, 송정승, 민정승이 차례로 살다가 1918년 육영수의 부친 육종관이 집을 매입했다.
2) 집 안채에는 육영수의 부친이 쓰던 물건들과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의 사진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3) 야트막한 초가집인 정지용 생가 앞에는 <향수>에 나오는 구절처럼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정겹다.
4) 우리나라 최대 묘목생산지인 이원면에 있는 이원양조장은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4대째 이어져오고 있다.
5) 양조장에 들어서면 그 옛날 막걸리를 양조장에 직접 받아 먹던 시절 쓰였던 플라스틱통이 차곡차곡 정렬되어 있다.

향수 속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로 불린다. 이상과 함께 청록파로 잘 알려졌다. 하지만 6·25전쟁 때 납북되면서 생사를 알 수 없게 됐다. 막연히 그가 <향수>를 읊으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다 세상을 떴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2차선 좁은 도로를 지나 이제 차가 좀 달려보나 싶으면 도착할 만큼 가깝다. 밑동이 널찍한 아름드리나무가 마을의 시작을 알린다. 이곳은 정지용의 생가가 있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챌 만큼 곳곳에서 정지용의 흔적이 보인다. 근처 집집마다 정지용의 시 구절을 적어놓은 벽화가 마을을 화사하게 밝혔다. 알록달록한 벽화들 사이로 작은 다리를 건너면 정지용의 생가가 있다. 실개천이 휘돌아나가는 조용한 마을의 낮은 초가집. 이곳이 정지용이 노래했던 그곳이다.

집 안에는 아직 덜 익은 대추가 잔뜩 달린 대추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소박한 초가집, 돌을 쌓아 만든 우물과 키를 맞춰 나란히 선 장독대가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1974년 허물어져 다른 사람이 집을 짓고 살다가 1996년 복원됐다. 집 옆에는 정지용 동상이, 뒤편에는 정지용 문학관이 있다. 문학관에서는 정지용의 일대기부터 문학작품 등 정지용에 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정지용 생가에서 나와 5분 정도 걷다 보면 옥주사마소가 나온다. 걷다 보니 구읍에 있는 집집마다 대추나무가 한 그루씩 자라고 있다. 이제 파란 열매를 맺기 시작한 사과대추의 아삭하고 상큼한 맛을 떠올리니 침이 고인다. 사마소는 조선시대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유학을 가르치고 정치를 논하던 곳이다. 사마소라는 이름은 생원과 진사를 뽑는 사마시라는 시험에서 따왔다. 사마시 합격자가 50명 이상 되는 고을에 설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암 송시열이 쓴 <의창중수기>를 보면 옥주사마소의 유래에 대해 간략하게 나오는데, 원래 어려운 백성을 위해 곡식을 저장하던 의창건물이었다가 효종 때 다시 뜯어서 지었다고 기술돼 있다.

정지용 생가 근처에는 육영수 생가도 있다. 육영수 생가는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에 나올 법한 넓은 기와집이다. 교동집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1600년대부터 김정승, 송정승, 민정승이 차례대로 살다가 1918년 육영수의 부친인 육종관이 집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집 안에는 육영수의 초상이 있는 사랑채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방문했을 당시 썼던 집무실 등 으리으리한 정승집 가옥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집 안에 남아 있는 뒤주는 웬만한 성인 남자의 키보다 높아, 살림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컸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뒤편 정자로 향하는 쪽문을 지나니 대나무 산책로가 보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댓잎 부딪히는 소리가 청량했다.

육영수 생가 앞에서는 내년에 개관을 앞둔 전통문화체험관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현장 뒤편 경관작물조성지에는 커다란 연잎이 저수지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다. 더운 여름 은은한 즐거움을 안겼을 연꽃은 지고 없지만 연잎의 푸르름은 아직 남았다.

청록파 시인의 마음처럼 푸르른 연꽃단지까지 봤으니 이제 목을 축일 차례다. 옥천에는 100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온 게 또 있다. 오랜 시간 서민들과 동고동락한 이원양조장이다. 양조장 마당에 들어서면 쿰쿰한 누룩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코를 킁킁대며 주변을 둘러보니 옛날에 막걸리를 받을 때 썼던 플라스틱 통으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워놓은 게 눈에 띈다.

이원양조장은 강현준 대표의 증조부 고 강재선 씨가 1930년에 창업했다. 벌써 4대째 장인의 손길이 이어진 이원양조장은 1950년대부터 사용했던 양조시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현재 시음장으로 쓰는 건물은 예전에 원료 창고로 쓰였던 곳이다. 적정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천장에 두껍게 깔린 왕겨도 그대로다. 이원양조장은 옥천에 오기 전 미리 홈페이지에 체험 신청을 하면 양조장 투어부터 막걸리 체험까지 할 수 있다. 당연히 시원한 막걸리도 맛볼 수 있다. 양조장 시설을 둘러보고 난 뒤 강 대표가 뿌연 막걸리가 담긴 잔을 건넸다. 한 잔 쭉 들이켜니 공장에서 나온 막걸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한 맛이 미뢰를 깨웠다. 강 대표가 쌀 찌꺼기를 먹고 자란 자두와 직접 만든 순대를 안주로 건넸다. 다시 막걸리로 입술을 적셨다.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온 막걸리의 깊은 맛처럼 물안개가 피는 가을도 그렇게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문학이 운치를 더하는 가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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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 정남진&천관산
산, 들, 바다가 어우러진 장흥은 지역 곳곳이 문학작품의 현장이라 문학관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 이청준의 <눈길>, <축제>, <선학동 나그네>, 이승우의 <샘섬>, 송기숙의 <녹두장군> 등 다양한 문학작품의 배경이다. 장흥에는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속하는 천관산이 있다. 가을에 보는 천관산은 단풍도 아름답지만 바람의 방향을 따라 춤추는 억새밭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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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군 섬진강 문학마을
옥정호 국사봉 전망대가 있는 전북 임실에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문학학교가 있는 문학마을이 자리한다. 문학마을에는 임실과 순창 지역을 가르는 서정 넘치는 문학마을길이 있다. 또한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비롯한 많은 드라마의 촬영지인 구담마을과 기묘하게 움푹 팬 바위들이 일품인 장구목도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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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 오대산&봉평 메밀밭
가을로 물든 평창은 언제 가도 아름답다. 10월 중순이면 평창에 있는 오대산에 붉게 물든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 오대산 월정사, 상원사로 이어진 선재길도 단풍명소다. 오대산 단풍과 함께 봉평 메밀꽃도 가을 평창의 명물로 꼽힌다. 가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메밀꽃밭 근처에는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이효석의 생가와 그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는 이효석 문학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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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 지리산 뱀사골 계곡
단풍여행에 지리산이 빠지면 섭섭하다. 전북 남원 일대에 있는 지리산 뱀사골에서는 매해 10월이면 뱀사골 단풍축제를 연다. 뱀사골에 있는 신선길은 완만한 나무데크로 산책로를 조성해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천천히 걷기 좋다. 남원 서도리는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이다. 근처에 있는 혼불 문학관에는 작가의 빛바랜 원고와 몽블랑 만년필 등이 있는 집필실, 작품세계를 재현한 전시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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