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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말고 ‘갬성’, 담양 여행

2019-06-22 11:04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조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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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살짝 굴려 발음하면 ‘갬성’. 발음 한 끗 차이인데 어감 차는 크다. “네가 그냥 커피면 얜 ○○○야”라는 원빈의 한마디처럼, 감성이 보편적 정서라면 갬성은 보다 짙은, 특화된 느낌이다. 거닐기조차 숨 가쁜 더위가 찾아오기 직전인 이맘때 갬성을 찾아 떠난다. 담양으로.
# 7090 거리 한눈에, 레트로 갬성

서울을 출발해서 4시간여 고속도로를 내달린 끝에 ‘담양 추억의 골목’(이하 ‘골목’)에 도착했다. 멀리서 얼핏 보곤 “에계!”라고 탄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와!” 하고 말았다. 이름답게 그때 그 시절을 그대로 옮긴 공간이 나타나서다. 출입구 하나를 경계로 2019년과 1970~90년대를 넘나드는 기분이 아주 짜릿하다.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왼편에 일렬로 내걸린 옛 교복들이 과거 느낌을 한껏 돋운다. ‘대체 이걸 다 어디서 어떻게 구했을까!’ 싶은 아이템들이 골목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중년 배우 강석우, 금보라가 젊었을 적 촬영한 광고 포스터부터 검은색 카세트 라디오, 일찍이 단종된 음료의 유리병 등. 작은 방 한구석에 놓인 텔레비전에서는 20여 년 전 방영된 광고가 재생되고 있어 들리는 소리마저 예스럽다.

곧게 이어진 골목을 따라 들어가자 오래된 간판과 영화 포스터가 붙은 건물이 보인다. 언젠가 시대극 드라마에서 본 듯한 모습이다. ‘외관만 꾸몄겠거니’ 생각하는 찰나, 관리 직원이 “건물 안에 볼 게 많다”며 들어가길 권했다.

“때를 잘 맞춰서 오셨네요. 2층 전시관은 얼마 전에 열었거든요. 2층까지 꼭 보셔야 해요. 재밌을 겁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1층부터 흥이 났다. 번쩍이는 조명과 함께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오는 옛 고고장과 흡사하게 꾸려놨다. 둘러싼 벽마다 붙은 간판 모형도 오래전 정서를 풍긴다. ‘음악다방’ ‘여인숙’ ‘전당포’ 이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구경 중이던 50대 남성이 ‘말표 신발’이라고 적힌 간판을 가리키며 유난히 반가워한다.

“이야! 이걸 여기서 보네. 태화 알아요? 옛날에 끝내줬지….”

바닥에 붙은 화살표 방향을 따라 2층에 오르자 박물관에 온 기분이다. 박물관 유물마냥 과거 흔적을 설명하는 소품이 한 가득이다. 그 시절 사람들이 입었을 옷, 먹었을 빵, 살았을 단칸방. 그리움과 반가움이 공존하는 곳이다. 누군가에겐 향수를, 누군가에겐 경험하지 못한 과거를 전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레트로’라고 해서 복고를 지향하는 요즘 사람이라면 들르길 권한다. 이미, 여기 교복을 입고 낡은 벽 앞에서 찍은 사진에 ‘#담양’ ‘#복고’ ‘#추억여행’ 등을 덧붙여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람도 여럿이다.

담양 추억의 골목은 꽤 크고 넓다. 요즘 이른 더위가 찾아와 사방으로 뻗은 길 중 하나만 걸어도 땀이 살짝 맺힌다. 잠시 쉴 곳이 필요하다면 골목 초입 작은 매점을 추천한다. 잔막걸리와 아이스크림, 생수는 물론이거니와 추억의 먹거리 ‘달고나’ 만들기도 경험할 수 있다. 달고나 전용 국자에 설탕을 덜고 녹이기까진 성공했으나 소다 투입량 조절에 세 번이나 실패하자, 보다 못한 관리인이 나와 거든다.

“에이! 처음 해보셔? 줘봐. 추억의 골목에 왔으면 제대로 된 뽑기 하난 먹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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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초록빛 갬성

담양은 곧 초록이다. 추억의 골목에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 이동하는 내내 비친 풍경은 초록빛으로 귀결된다. 굳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까지 가야 하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가자. 아니, 가야 한다. 차창 밖 초록빛은 보이는 데 그치지만 가로수길 초록빛은 보고 들이켤 수 있으니까.

메타세쿼이아는 그 흔한 꽃 없이 위로만 뻗어 오르는 나무다. 식재 초기인 1970년대 특별할 것 없는 나무로 여겨진 건 이 때문일 터. 그러나 50여 년이 흐른 오늘날, 훌쩍 커버린 메타세쿼이아가 만든 초록 터널은 담양의 명물이 됐다. 틈 없이 메워진 초록 잎 사이를 비집고 내리쬐는 한낮 햇살은 가히 장관이다.

여기서 3㎞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초록빛 명소가 부상하고 있으니 바로 ‘관방제림’이다. 조선 철종 당시 담양군수 성이성이 장마철마다 담양천이 넘쳐 백성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 제방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심은 것에서 시작됐다. 초여름 담양에서 한가로이 거닐 길을 찾는다면 이곳만한 곳이 있을까. 담양천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간간이 놓인 벤치에서 쉬어 가는 여유로움이 더없이 좋다.

담양의 초록빛에서 댓잎을 빼놓을 순 없다. 관방제림에서 곧장 죽녹원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저곳이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다. 죽녹원은 거대한 대숲이 연출하는 풍광 덕에 각종 영화, 광고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10년 전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에 등장한 이후 연간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관광 명소다. 댓잎이 바람을 타고 부딪치며 내는 사각사각 소리,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댓잎 향은 한번 경험하면 잊기 힘들다.

사계절 아름다운 죽녹원이라지만, 여름철 죽녹원이 가장 청명하다. 완연한 여름 직전이어서인지 초록빛과 연갈색이 섞여 있다. 죽피를 벗지 않은 죽순이 더한 색이다.

죽녹원에 갈 계획이라면 8가지 관람 코스를 익혀두는 것도 괜찮다. 대숲 사이를 걸으면 운이 트인다는 ‘운수대통길’, 연인이 함께 걸으면 좋다는 ‘사랑이 변치 않는 길’, 깊은 생각에 빠지며 걸을 수 있는 ‘철학자의 길’과 ‘사색의 길’, 선비를 상상하며 걷는 ‘선비의 길’ 등. 모든 코스를 돌기는 버거울 수 있으니, 의미를 살펴보고 원하는 길을 걷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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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잎 맛(?) 갬성

누가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 아니랄까 봐 “댓잎을 넣었다”는 길거리 음식이 수두룩하다. 댓잎 송편, 댓잎 아이스크림, 댓잎 꽈배기, 댓잎 국수, 댓잎 막걸리. 걷느라 주린 배를 서둘러 채울 수 있는 국수부터 맛봤다. 죽녹원으로 이동할 때 지나친 국수거리가 궁금하기도 했다.

국수거리는 관방제림과 죽녹원 초입, 담양천을 따라 100여m 남짓 국숫집들이 늘어선 길이다. 댓잎 국수로 유명한 가게에서 맛볼 참이었으나 정기 휴일이란다. 대신 국수거리 입구 첫 집에서 멸치국물국수, 비빔국수, 삶은 계란을 주문했다. 대단할 것 없는 ‘다 아는 맛’이지만 가로수 아래 야외 테이블에 앉아 먹는 맛으론 나름 별미다. 가수 장범준이 최근 육아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족들과 다녀간 가게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을 따라 다닌 단골식당”이라던 그의 말마따나 이 국숫집은 한자리에서 60년을 보냈다.

한 주민은 “원래 국수가 서민 음식 아니냐. 저렴하게 많이 먹을 수 있는 데다 주변 공기까지 좋으니 사람들이 자주 오가더라. 원래 이 집을 포함해 국숫집이 몇 개 안 됐는데 어느 순간 확 늘었다”고 일렀다.

‘대나무 맛이 나지 않을까’ 싶어 댓잎 주전부리를 먹고자 한다면, 기대감은 살짝 내려둘 것을 조언한다. 댓잎 특유의 향이 아주 옅게 느껴지지만 딱 거기까지다. 하지만 포인트는 ‘갬성’ 아닌가. 은은히 풍기는 댓잎 향이야말로 갬성이다.
 
 


갬성 샷은 여기서!
순간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사진이다. “느낌 있네”라고 들을 법한, 소위 ‘갬성 샷’을 찍을 수 있는 ‘명당’을 엄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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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산 뷰파인더
죽녹원 길을 걷다 보면 풍경 그림 혹은 사진으로 추정되는 네모난 조형물이 나온다. 자세히 보면, 뻥 뚫린 대나무 틀 뒤로 보이는 추월산이다. 전남 5대 명산 중 하나인 추월산은 부처나 하느님이 누운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와불산 또는 에덴동산이라고도 부른다. 풍경을 액자 속에 담은 듯한 뷰파인더 앞에서 근사한 피사체가 되어보자.

담빛예술창고
붉은 벽돌로 메운 옛 창고 같지만 카페다. 본래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였지만 쓸모가 다해 10년간 방치됐다가 2015년 문예 카페와 작품 전시관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카페 한편엔 국내 유일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이 위용을 뽐낸다. 천장에 거의 닿을 듯한 높이, 성인 남성이 두 팔을 벌려도 부족한 넓이의 거대한 오르간이다. 오르간을 배경으로 한 컷, 담빛예술창고 건물을 배경으로 또 한 컷. 사진으로 남길 곳이 많은 장소다.

메타프로방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근처에 있는 유럽 테마 관광지다. 개성 강한 인테리어의 펜션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작은 공방과 카페, 식당들이 골목 구석구석에 자리한다. 좁은 계단을 두고 양 옆으로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여행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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