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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앙과 다녀온 충주 재래시장

2019-05-10 09:36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조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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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하면 괜스레 정겹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이 반갑고,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유난히 ‘정’이 오가는 5월 언저리에 꼭 맞는 곳을 찾자면 재래시장이 아닐까. 방송인 파비앙과 충주 재래시장에 다녀왔다.
대학 시절 여행지로 들른 한국은 단점 하나 없는 나라였다. 한국살이를 결정한 이유다. 파비앙은 한국에서 11년째 거주하고 있다. 단어 선택이며 발음이며, 프랑스인이라고 하기엔 완벽하다. “살고 있는 집에 누수가 있다”며 대화를 이어가는 그를 보고 있자니 ‘한국인 다 됐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파비앙은 경복궁역 인근 빌라에 산다. 한옥에 자리 잡고 싶었지만 가격 때문에 포기했다. 대신 경북궁을 따라 북촌한옥마을을 자주 다닌다.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곳곳에 깃든 한국 특유의 정서가 매번 새롭다. 한옥마을과 더불어 그가 자주 들르는 곳은 통인시장이다. 단골 만두 가게가 있을 정도다. 통인시장의 어떤 점이 좋으냐는 질문에 막힘없이 쏟아낸다.

“당연히 먹거리죠. 만두를 제일 좋아해요. 김치왕만두 잘하는 집이 있거든요. 우리 집에 친구들이 온다고 하면 시장에서 이것저것 포장해서 준비해요. 시장음식 진짜 맛있지 않아요? 무엇보다 싸잖아요. 마트도 가는데 과일이나 야채류는 시장에서 사는 편이에요. 외국인이어서인지 시장 어른들이 더 챙겨주시기도 하고. 제가 뭐하는 사람인 줄은 모르세요. 그냥 ‘동네 파비앙’으로 통해요.(웃음)”

그는 빡빡한 도시보다 정서가 오가는 곳을 선호한다고 했다. 충주 재래시장 동행 제안에 선뜻 고개를 끄덕인 것도 그래서다.

“거기 가면 호떡 팔아요? 시장호떡 되게 좋아하는데. 아, 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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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 시장 한데 모인 재래시장

거닐기 딱 좋은 날씨다. 충주시장으로 향하는 도로 옆으로 벚꽃과 개나리꽃이 만개해 설레는 마음을 부추긴다.

“충주는 두 번째예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전국을 돌면서 잠깐 머물렀는데 기억은 잘 안나요. 시장엔 안 갔어요. 큰가요? 뭐가 유명하대요? 여기서 얼마나 걸려요?”

멀리 차까지 타고 가는 시장이 궁금한지 연신 묻는다. 그러더니 프랑스 시장 이야기를 꺼낸다.

“프랑스 사람들은 마트보다 시장을 가요. 조금 불편해도 인간미 넘치고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프랑스인은 처음 만나도 쉽게 말을 걸어요. ‘토마토가 싱싱하네요’라고 시작한 대화가 보통 한 시간은 이어질걸요. 한국에 비하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

프랑스도 한국처럼 시장이 마트보다 저렴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다.

“한국 시장엔 어르신이 많잖아요. 프랑스 시장엔 젊은 사람이 더 많아요. 집안 대대로 점포를 물려받는 경우가 흔해서 20대 초반 상인도 있어요. 대부분 가게 주인이 직접 수확한 걸 팔아요. 예를 들어 고구마 가게라면 그집 고구마는 주인이 캐온 거예요.”

프랑스 시장 얘기를 하며 두 시간 정도 지나자 충주시장에 다다랐다. 충주시장은 충주천을 따라 한데 모인 자유시장, 무학시장, 공설시장, 충의시장, 풍물시장을 아우른다. 규모로만 보면 웬만한 동네 못지않다. 온라인 지도상에서 검색하면 다섯 곳이 떨어져 위치한 듯 보이지만, 여러 길목으로 연결돼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자유시장을 거닐다 보면 무학시장, 그대로 또 걷다 보면 공설시장, 또 걸으면 충의시장 이런 식이다.

자유시장 초입에 들어서자 약재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길 한가운데 약재상들이 일렬로 늘어서 이곳이 시장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길바닥에 좌판을 깔고 나물을 다듬는 사람, 김을 굽는 사람, 팥죽을 휘휘 저으며 먹고 가라고 손짓하는 사람, 수수부꾸미를 구워내는 사람 등 자유시장은 활력이 넘쳤다. 때마침 5일장이 열리는 15일이기 때문이다. 한 상인은 “5일장이 서는 날이 아니고선 보기 힘든 풍경”이라며 “평소엔 조용하고 사람이 덜한 곳”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자유시장은 의류, 주단, 포목을 취급하는 상점이 많은 편이다. 상인이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과거에는 고추, 마늘, 쌀을 파는 가게도 많았지만 90년대 중반 충주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이전하면서 예전 같은 모습을 찾긴 어렵다.

5일장이 서는 덕분에 파비앙도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한껏 들떴다. 그는 시장 입구 한편에 놓인 사과 더미를 보곤 “이건 사야 한다!”고 외쳤다.

“확실히 한국 사과가 커요. 프랑스에서 이런 크기는 보기 힘들어요. 이렇게 큰데 8개에 5000원? 와! 이거 삽시다.”

사과를 한 보따리 사 든 파비앙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 나물 좌판으로 향했다. 초록빛을 좋아하는 터라 파, 배추 등 초록색 채소를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좌판을 따라 걷던 그가 수수부꾸미 가게 앞에 섰다. 수수부꾸미를 처음 맛본단다. 담백한 맛이 낯선지 “맹맹한 맛? 뭐지 이거?”라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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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꼽히는 먹거리
시래기순댓국, 감자만두

자유시장에서 무학시장과 공설시장으로 이어지는 골목 사이에 손꼽히는 명소가 있다. 순대만두골목. 이름처럼 순대와 만두만 파는 가게가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같은 메뉴의 가게들이 밀집한 곳이면 으레 있을 법한 호객행위가 이곳엔 없다. 편한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는 점이 묘미라면 묘미다.

순대와 만두는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메뉴라지만 특히 이 골목을 권하는 이유는 감자만두 때문이다. 감자전분으로 만두피를 만들어 식감이 아주 쫄깃하다. 단점이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일반 만두보다 피가 빨리 굳어 딱딱할 수 있다. 가게 주인은 “감자만두는 주문하면 그때 쪄야지, 안 그러면 맛이 덜하다”며 갓 쪄낸 만두를 내밀었다.

파비앙이 만두를 씹다 급하게 물을 찾는다. 소가 매운 감자만두였다.

“윽! 너무 매워요. 근데 먹기 싫은 매운맛이 아니에요. 당기는 매운맛이라 하나요. 맛있어요.”

시장 인심 어디 안 간다. 주인은 파비앙을 바라보더니 김치만두, 고기만두를 하나씩 건넸다. “이것도 먹어봐. 맛있어? 아이고, 잘 먹어서 예쁘네. 한국말은 왜 그렇게 잘해. 예뻐라.”

골목의 또 다른 대표 메뉴는 시래기순댓국이다. 푹 끓인 시래기의 구수함이 돼지고기 잡내를 덮어 순댓국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시래기를 순대에 감아서 먹어봐!” 순댓국에 소주를 곁들이고 있는 중년 남성이 그만의 노하우를 권한다.

파비앙에게 순대는 무리였다. 웬만한 한국음식에 적응했어도 순대, 족발, 돼지껍데기는 여전히 먹기 힘들다고 한다.

“순대는 좀…. 프랑스에도 순대 비슷한 ‘부당’이라는 음식은 있어요. 피로 만든 소시지 느낌.”

무학시장은 주로 반찬이나 채소, 생선 등 식재료를 다루고 있어 인근 주민이 자주 찾는다. 소분 포장된 반찬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은근 쏠쏠하다. 반찬 세 팩에 만원도 채 되지 않는, 그야말로 ‘착한 가격’이다. 할머니들은 옹기종기 앉아 나물을 늘어놓는다. 우리나라 시장에선 흔한 광경을 파비앙은 살짝 다르게 느꼈다.

“이렇게 나이 드신 분들이 앉아서 장사하는 거 보면 마음이 안 좋아요. 허리도 굽고. 그래서 저는 시장에 가면 절대 흥정 안 해요. 젊은 친구 예쁘다면서 더 주시는 할머니도 계신데 제가 막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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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파비앙은 어르신들과도 유쾌한 담소를 이어갔다. 친구처럼, 손주처럼 대하는 모습이 무척 정겹다.

자유, 무학, 충의 등 시장마다 간판은 있지만 딱히 구별되지는 않는다.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해 걷다 보면 어느새 다른 시장에 들어와 있고, 또 다른 시장에 들어와 있다. 무학시장에서 이어진 충의시장은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물다. 제수용품점, 옹기점, 방앗간 등이 주로 있고 규모가 작은 편이다.

이날 사람이 가장 붐빈 곳은 매달 5, 10, 15, 20, 25, 30일에 문을 여는 풍물시장이다. ‘전통시장’ 하면 흔히 떠오르는 장면이 여기에 다 있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강냉이를 쏟아내는 기계, 트로트 멜로디에 맞춰 몸을 흔드는 몇몇 어르신, 너른 구이판에서 각종 전을 부쳐내는 상인들, 어린아이에게 전통 과자 하나씩 쥐어주며 먹어보라는 할머니.

한편에 길게 선 행렬을 따라가니 호떡, 찹쌀 도넛을 파는 작은 포장마차 앞이다. 현지 사람들이 “제일 맛있는 호떡집”이라고 입을 모은다. 파비앙도 하나 집어 들었다.

“이거 찾고 있었는데! 근데 이 집 호떡은 살짝 짠맛이 나요. 더 달게 느끼라고 소금을 넣었나. 맛있어요, 맛있어.”

파비앙을 알아본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사진촬영을 요청하는 사람도 많다. 그는 꽤 뿌듯해하는 눈치다.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어요. 알아보시니까 기분 좋아요.”

시장 전체를 돌고 나자 그의 손엔 검은 봉투 여럿이 들려 있다. 만두, 호떡, 꽈배기, 사과, 엄마에게 주고 싶다며 구매한 홍삼파스까지.

“이래서 시장에 와야 한다니까요. 딱 봐도 많이들 넣어주셨어. 이거 전부 산 돈으로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면 얼마나 살 수 있겠어요. 오늘 이 시장에서 우리가 가장 젊은 사람 같아서 아쉬워요. 어린 친구들이 모르니까 안 오잖아요. 한번 와보면 다시 오고 싶을 텐데…. 이제 어느 시장을 가보면 될까요.(웃음)”
 
 


꼭 들러보세요!

‘시장사랑방’ 자유카페
자유시장 골목 끝자락에 있는 평범해 보이는 건물이다. 그러나 문을 열면 안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자유카페는 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자유시장 상인회에서 만든 카페다. 쾌적한 분위기는 물론이거니와 음료 가격이 2000원을 넘지 않아 주민들도 자주 찾는 사랑방이다. 한쪽에 마련된 DJ 부스에선 전문 라디오 방송 못지않은 생방송이 흘러나온다. 걷느라 지친 몸을 쉬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세월의 흔적’ 삼화대장간
과거, 충주시장 주변에 모여 있던 대장간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삼화대장간만이 6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외관은 현대화됐지만 내부는 과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여전히 대장장이가 매일같이 담금질, 망치질로 연장을 만들어낸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호미, 부엌칼 등은 충주시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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