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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 소리 없이 봄이 오나 봄

2019-04-04 09:44

취재 : 장가현 기자  |  사진(제공) : 조선DB,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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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늘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따뜻한 날씨, 가벼운 옷차림도 봄을 기다리는 이유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는 설렘 때문이다. 매년 봄이면 꽃을 찾으러 다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게 봄을 맞이하기로 했다. 고즈넉한 사찰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봄은 꽃의 다른 말이기도 하지만 시작을 상징하기도 한다.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때는 저마다 나름대로 방법을 갖고 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다가올 시간을 맞이하기 위한 의식,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봄맞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 봄이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도 아니고, 한철인데 그냥 보내기는 섭섭하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산사로 떠나기로 한다. 전국에 무수히 많은 사찰 가운데 ‘봄 마곡, 가을 갑사’로 유명한 충남 공주 마곡사로 발길을 옮긴다.

서울에서 마곡사로 가는 길, 한강변에 노란 산수유 꽃이 피었다. 온 세상이 미세먼지에 갇힌 와중에도 꽃은 스스로 때를 알고 피었다. 기특한 꽃에 감탄하는 순간, 수원광명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두 시간 반가량 달렸을까. 마곡사가 자리한 공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주에 들어선 순간 창문을 여니 서울에서 스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봄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바람에 담긴 온기는 여행객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길가에 핀 자줏빛 철쭉이 손을 흔든다. 봄기운에 취해 산속으로 들어갔다. 구불구불한 길에 실려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니 어느새 마곡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마곡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7대 산사 중 하나다. 언제 누가 세웠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백제 의자왕 때 신라에서 온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하지만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절 이름도 누가 지었는지 모른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할 당시 스승인 마곡 보철화상을 기렸다는 설과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이 절을 재건할 때 구경 온 사람의 모습이 삼이 선 것 같아서 지었다는 설도 있다.

누가 세웠든지 간에 마곡사를 일으킨 건 보조국사다. 그가 큰 절로 재건한 다음 절이 알려지면서 번창하기 시작했다. 고려 후기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티베트의 영향을 받은 오층석탑이 세워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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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반기는 마곡사의 봄

마곡사는 역사 속 인물들의 흔적이 남은 사찰로도 유명하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백범 김구 선생의 일화다. 마곡사는 백범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를 죽이고 은거한 곳이다. 그는 이곳에 머물면서 소나무 숲길을 즐겨 산책했다. 그 길이 ‘백범 명상길’로 남아 많은 사람이 찾는 산책로가 됐다. 백범은 광복을 맞은 후 마곡사를 다시 찾아 향나무를 심었다. 백범당 앞에는 그때 심은 향나무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계유정난 주인공 세조도 마곡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김시습이 조카를 폐위하고 왕이 된 세조에게 실망해 낙향했다. 마곡사에서 스님 생활을 하는 김시습을 만나러 세조가 어진을 이끌고 찾아왔다. 하지만 김시습은 세조가 온다는 소식을 먼저 듣고 부여 무량사로 떠났다. 마곡사에 도착한 세조는 부끄럽고 허탈한 마음에 타고 온 연(輦·임금의 가마)을 버리고 갔다는 기록이 있다.

마곡사 주차장에서 마곡사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산속에 있는 절이니 당연히 오르막이다. 마곡사가 자리한 태화산의 산세를 둘러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 힘든 줄 모르고 도착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 걷는 게 싫다면 마곡사 앞 주차장까지 차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차로 이동하면 편하지만 걷는 것을 추천한다. 봄이 내린 태화산 전경을 차 안에 앉아서 보기에는 아까워서다. 왜 ‘봄 마곡’이라 하는지 이유를 알기 위해서라도 걸어야 한다.

마곡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두 영역으로 나뉜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영산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개울을 가로지르는 극락교 뒤에는 우리가 아는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해탈문에 들어서서 사찰을 지키는 수문신장인 금강역사상에 합장을 했다. 해탈문을 지나면 번뇌와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뜻이 있다. 금강역사상의 부리부리한 눈을 보고는 같이 문에 들어선 아이가 겁을 먹는다. 놀란 아이를 달래며 부모는 “너 엄마 말 안 들으면 저 무시무시한 사람이 잡아간다”며 아이를 놀렸다.

해탈문을 지나면 사천왕문이 나타난다. 사천왕문부터 본격적으로 절의 영역에 들어선다. 사천왕문에는 동방지국천왕, 서방광목천왕, 남방증장천왕, 북방다문천왕 등 네 천왕이 자리하고 있다. 천왕들의 위풍당당한 얼굴을 지나 발을 보면 악귀들이 깔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성스러운 공간을 지키는 네 천왕에게도 한 번씩 합장하고 그들이 지키는 절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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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건너에 극락정토

사천왕문을 지나자 극락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절을 둘러싸고 커다란 에스자 모양 개울이 절을 휘감고 흐른다. 벚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치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다. 극락이란 이름이 일리 있는 게 극락교 위에는 정말 극락에서나 볼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서다. 다리 주변에 있는 벚나무 가지에 마치 원래 있는 것마냥 연등이 달려 있다. 하얗게 핀 벚꽃과 진분홍색 연등은 원래 한몸인 것처럼 조화롭다. 그 순간 몽글몽글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뺨을 스친 바람이 이내 벚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벚꽃 잎이 떨어진다. 기대하지 않은 꽃비가 개울 위로 떨어진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극락교 앞에서 셔터를 누른다. 꽃비가 만든 꽃 같은 순간이다.

극락교를 건너 대웅보전이 있는 북원에 들어섰다. 티베트 양식으로 지었다는 오층석탑이 너른 마당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마곡사의 오층석탑은 석탑계의 모델 같은 느낌이다. 다른 절에서 본 탑보다 호리호리한데 더 길쭉하다. 높이가 8.7m쯤 된다. 탑의 꼭대기에 얹은 청동 장식에서 이국적인 풍취가 느껴진다. 오층석탑 뒤에는 마곡사 중심 공간인 대광보전이 있다. 그 오른편에는 템플스테이를 하러 온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있다. 회색 옷을 입고 고무신을 신은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에 들어섰다. 비로자나불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일반 사람 눈으로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라고 한다. 처음 이 자리에 있던 비로나자불은 목불상인데 조선시대 전란으로 불에 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비로자나불을 그린 후불탱화가 대신하고 있다.

대광보전 오른편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대웅보전이 나타난다. 대웅보전에는 가운데 석가모니, 왼쪽에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인 아미타여래, 오른쪽에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가 자리하고 있다. 대웅보전 한켠에 자리를 잡고 절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백팔배도 하겠지만 삼배만 한다. 오랜만에 합장을 하고 불상 앞에 서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진다. 한 배 한 배 천천히 절을 하면서 무엇을 빌까 고민했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중 하나를 골라 빌었다. 한 번 절하면서 빌고, 또 절하면서 빌고. 세 번을 빌고 나서 대웅보전을 나섰다. 대웅보전에 앉아 있는 부처에게 소원을 빌었으니 이제 그 소원을 어떻게 이룰지 방법을 생각해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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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이 걷던 길을 따라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인근 솔바람길을 찾았다. 마곡사 솔바람길은 총 세 개 코스가 있다. 1코스 백범길, 2코스 명상산책길, 3코스 등산로다. 오늘 산책로는 한 시간 정도 걷기 좋은 백범길이다. 백범길은 소나무 숲이 울창한 코스다. 소나무 사이사이 핀 짙은 분홍빛 철쭉이 기다리고 있다. ‘봄 마곡’이라는 명성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천천히 길을 걷는 동안 복잡하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가 고요한 숲을 깨운다. 나무 사이로 좁게 난 길을 따라 걸으니 100여 년 전 백범이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이 숲에서 백범은 자신의 짐을 지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떠난 자리를 많은 이들이 저마다 이고 있는 문제를 풀 열쇠를 찾으러 찾아온다. 마곡사에 모신 석가모니가 중생들에게 답을 줬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답을 찾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산사는 고즈넉함과 휴식을 선물한 것임에 분명하다.
 

봄철 산책하기 좋은 사찰 5

순천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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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

송광사는 원래 인근에 위치한 태안사의 말사였다. 고려 중기 독립한 이후 독립 사찰로 자리 잡았다. 송광사는 입구부터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입구까지 길게 편백나무가 늘어서 있어 기분 좋은 상쾌함이 발끝까지 퍼진다. 송광사 인근에 있는 벚꽃 로드도 인기다.
 

강진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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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련사

다산 정약용이 기거한 것으로 유명한 백련사도 봄이 아름다운 사찰 중 하나다. 백련사는 사찰 자체보다 동백나무 숲과 다산의 일화로 더 유명하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 가는 길은 1km 정도다.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은 꽃비가 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아름답다.
 

밀양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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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표충사

통일신라시대 창건한 절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를 기리기 위한 표충사당이 있다. 표충사 입구에는 사찰과 오랜 세월을 함께한 노송 산책로가 있다. 사찰 보수공사가 한창이라 조금 어수선하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사찰의 아름다움을 해치지는 않는다.
 

고흥 금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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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금탑사

멋진 상록수림이 자리한 비자나무 숲길이 유명하다. 굳이 제주도에 가지 않아도 비자나무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빽빽하게 솟은 3200여 그루 비자나무는 금탑사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다. 3월 말에서 4월 초에 방문하면 절 뒤에 있는 동백나무 숲에서 수줍게 핀 동백꽃도 볼 수 있다.
 

부산 범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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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어사

영남지방 3대 사찰 중 하나로,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범어사는 숨어 있는 벚꽃 명소. 사찰 주변에 심은 벚꽃나무가 마치 절을 끌어안은 것 같은 모습이다. 범어사 인근 범리단길에는 아기자기한 예쁜 카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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