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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함께 떠나는 체험 여행

2019-01-04 16:06

글 : 이창희 프리랜서  |  사진(제공) : 각 지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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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역사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목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건 역사를 단지 학교에서 교과서로만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당신이 여행을 통해 직접 눈으로 바라보고 몸으로 체험한다면, 스며들 듯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면, 비로소 역사는 끔찍한 ‘암기 과목’의 오명을 벗어던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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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장리
 
석기시대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나 공주 석장리

역사 교과서를 펼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시기는 구석기 시대다. 한반도에는 구석기 시대 유적지가 몇 군데 남아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곳이 충남 공주 석장리다. 공주에서 대전으로 가는 길 금강 근처에 위치해 있다.

석장리 유적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대규모 선사문화 유적으로, 1964년부터 1992년까지 총 13차례에 걸쳐 발굴과 조사가 이뤄졌다. 선사시대 전기부터 중기 및 후기까지 다양한 문화층이 형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서는 사람과 짐승의 털, 불에 탄 곡식 등 주거 흔적을 비롯해 긁개·찌르개·자르개·주먹도끼·주먹대패 같은 석기 3000여 점이 발견됐다.

현재는 지난 2006년 건립된 박물관에서 관람은 물론 다양한 문화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매년 봄이면 세계 구석기 축제를 개최하고 있어 가족과 함께 방문하기 좋다. 삼국시대 백제의 수도였던 만큼 당시 유적도 많이 남아 있다. 인근에서는 공주 특산품인 알밤을 비롯해 알밤 막걸리, 알밤 맥주 등 가공품을 맛볼 수 있다.

주소 충남 공주시 금벽로 990
문의 041-840-8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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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산리 고분

백제 마지막 왕의 기구한 무덤 부여 능산리 고분

삼천궁녀를 거느렸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방탕한 왕으로 알려진 백제 의자왕. 하지만 알고 보면 그도 꽤 기구한 말년을 보냈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곳이 충남 부여에 위치한 능산리 고분이다.

의자왕은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패배한 뒤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끌려갔고, 결국 낙양 북망산 기슭에 묻혔다. 훗날 부여군에서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애썼지만 이미 심한 도굴로 훼손된 바람에 2000년 부여에 가묘(假墓)를 만들었다.

이 가묘가 있는 능산리 고분은 총 7개 고분으로 이뤄져 있으며, 시기별로 차이가 뚜렷한 백제 문화를 더듬어볼 수 있다. 내부는 석실로 만들어져 있고,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 등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만큼 다양한 유적지가 존재한다. 능산리 고분 외에도 정림사지,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 백제역사민속박물관, 규암리 등을 둘러보는 ‘유적지 순환 코스’가 마련돼 있으며, 경사가 없어 자전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주소 충남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
문의 041-830-2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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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임진왜란의 뼈아픈 패착 충주 탄금대

병법 중에 ‘배수진’이라는 전술이 있다. 물을 등지고 적과 맞서는 것으로, 병사들로 하여금 죽기를 각오하고 전투에 임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시기 조선의 배수진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 현장이 바로 탄금대다.

1592년 4월 14일,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해 불과 보름 만에 경북 문경까지 내달았다. 당시 조선의 양대 명장 중 한 사람인 신립은 충주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참모들과 작전회의 끝에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전투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군사들의 결기도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의 엄청난 화력을 극복하지 못했고, 신립은 전멸하는 부대를 바라보며 남한강에 몸을 날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탄금대에 가면 위의 이야기가 담긴 기념비를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잘 정비된 남한강 자전거길에 위치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서울에서도 자전거로 방문할 수 있다. 충주호에서 연결된 남한강과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천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풍광도 뛰어나다.

인근에서는 조용한 목계솔밭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고, 무학시장에 들러 갖가지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시장에는 ‘충주전통순대만두골목’이 조성돼 있어 들러볼 만하다.

주소 충북 충주시 탄금대안길 105
문의 043-848-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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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울돌목

명량대첩의 추억 전남 진도

주변국의 침략에 시달려온 한반도 역사에서 그나마 통쾌함을 선사한 이는 단연코 이순신 장군이다. 육지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한 임진왜란 당시 해상에서의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전쟁을 종식하는 데 거의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그 결정적 장면은 우리가 영화로도 잘 알고 있는 명량대첩이다. 명량은 전남 진도군과 해남군 사이 수로로, ‘울돌목’이란 별칭을 가진 이곳은 시간에 따라 조류의 흐름이 급격하고 빠르게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를 이용해 단 13척의 배로 엄청난 수의 왜군을 격퇴했다.

진도는 섬이지만 진도대교와 제2진도대교의 개통으로 사실상 육지와 같은 접근성을 가졌다. 다만 버스편이 충분치 않아 자가 차량을 이용해 여행하는 편을 권한다. 명량대첩 격전지 외에도 고려말 삼별초의 본거지인 용장성, 물때에 맞춰 길이 열리는 신비의 바닷길 등을 둘러보면 좋다. 특산품인 질 좋은 울금을 구할 수 있으며, 복어의 일종인 졸복으로 끓인 탕이 유명하다.

주소 전남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문의 061-544-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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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다시없을 굴욕의 역사 남한산성

통일신라부터 한반도에서 단일 국가가 형성된 이래 임금이 외침으로 인해 피난을 간 사례는 꽤 많다. 하지만 도망조차 가지 못하고 적군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경우는 단 한 차례다. 우리가 영화로도 잘 알고 있는, 남한산성의 삼배구고두례다.

임진왜란 여파가 가시기도 전인 17세기 초, 중국 대륙에서 급격히 강성해진 후금은 조선을 침략한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군한 터라 조선 인조는 천혜 요새인 강화도로 갈 타이밍을 놓치고 급한 대로 남한산성에 몸을 숨긴다.

하지만 50일이 넘도록 적군은 물러가지 않았고, 한겨울을 나며 버틸 힘이 떨어진 조선은 결국 항전을 포기한다. 이때 인조는 신하의 옷을 입고 후금의 황제 앞으로 나아가 땅바닥에 이마를 세 번 찧는 것으로 항복 의사를 표시했다. 한반도 역사상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운 굴욕적인 장면이었다.

경기도 광주·성남·하남에 걸쳐 위치한 남한산성은 현재 등산객과 행락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4개 성문이 모두 보존돼 있어 성곽길을 따라 천천히 돌아보면 좋다. 특히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수어장대에 오르면 서울과 경기 남부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조 임금이 기거했던 행궁도 잘 보존돼 있으며, 바로 옆에는 만해 한용운 기념관이 있어 둘러볼 수 있다. 산성을 내려가는 길에는 산채비빔밥부터 백숙, 두부요리 등 맛집이 늘어서 있으니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우면 된다.

주소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문의 031-743-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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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조선의 과학이 여기에 수원 화성

농사짓고 살기 바쁜 것으로만 알았던 조선 시대에도 과학의 발전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정조 임금 시대에 만들어진 수원 화성이다.

지리적 이점 없이 평지에 세워진 탓에 자체 기능만으로 방어력을 높여야 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한 기술력이 집약됐다. 경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구멍은 성 안에서 밖은 보여도 밖에서는 내부를 전혀 가늠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또한 작은 간이 출입구가 멀리서는 잘 눈에 띄지 않게끔 만들어졌다. 포탄이 떨어지더라도 쉽게 붕괴되지 않도록 성벽 안쪽에 흙벽을 쌓은 것도 눈에 띈다. 수원 화성은 이를 바탕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화성을 찾는다면 성의 아름다움과 함께 이 같은 과학적 장치들을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화서문·장안문·화홍문·방화수류정·활터에 이르는 성벽길은 평소에도 좋지만 조명이 잘 설치돼 있는 야간에 걸으면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인근에서는 수원 치킨골목에 들러 치맥을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갈비와 만두 역시 수원의 유명한 음식 중 하나다.

주소 경기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190
문의 031-29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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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천주교 박해의 슬픈 기억 해미성지&읍성

18세기 조선에는 천주교가 유입됐다. 지금은 동네마다 성당이 세워져 있지만 당시에는 외국 귀신을 믿는다 해서 박해를 받았고, 그 결과 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다. 충남 서산에 있는 해미성지는 그들의 피가 서린 곳이다.

수천 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고문을 받고 처형당한 현장이 보존돼 있으며, 순교자들의 유해도 상당수 묻혀 있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격 방문해 유명세를 탔고, 신자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해미읍성은 고창읍성·낙안읍성과 함께 현재 가장 잘 보존돼 있는 읍성으로, 낮은 성벽과 아기자기한 규모로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올해로 17회째 ‘해미읍성축제’가 열리고 있다. 인근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청벚꽃이 피는 사찰인 개심사가 있으며, 서산동부시장과 삼길포항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주소 충남 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 143
문의 041-660-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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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사

한반도 냉전의 상징 철원 노동당사

해방 이후 한국전쟁 직전까지 한반도 38도선은 지금과 조금 달랐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던 것은 맞지만 분계선과 양측이 점하고 있는 지역이 현재와는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다.

강원도 철원군은 현재 군사분계선 아래에 위치하고 있지만 1946년에는 북측 영역이었다. 당시 강원도 도청 소재지였던 철원에는 조선노동당사가 세워졌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주요 격전지가 됐고, 지금까지도 교전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당사 뒤뜰에서는 정치범으로 끌려간 이들의 유해가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다.

벽돌과 콘크리트로만 만들어진 당사 건물은 전쟁 과정에서 외벽이 상당수 소실됐으며 현재는 보강공사를 통해 보존되고 있다. 붕괴 위험이 있어 내부에 들어가진 못하지만 상당히 근거리에서 건물을 둘러볼 수 있다.

노동당사뿐만 아니라 군사분계선이 가까운 철원에서는 다양한 안보 관광 코스가 마련돼 있다. 백마고지와 땅굴, 월정리역, 통일전망대 등을 둘러보면 한반도의 굴곡진 현대사를 체감할 수 있다.

주소 강원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3-2
문의 033-450-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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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

이제 평화의 시대로 공동경비구역 JSA

JSA는 휴전 상태인 남북 군인이 얼굴을 마주보며 대치하고 있는 곳이자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비무장지대(DMZ)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구역으로,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하여 북한 측 판문각과 유엔 측 자유의 집 등 10여 개 동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간 다양한 교류 및 협상 장소로 사용해왔으며, 때로는 왕래를 위한 길목으로 이용한 적도 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북한의 도끼 만행사건과 총격 사건 등 치열한 냉전의 공간이기도 했다.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해빙무드가 형성되면서 양측 논의에 따라 상호 감시초소를 차례로 철수해 실질적 비무장화가 추진 중이다. 경비 인력의 비무장화와 지뢰 제거 등도 이뤄지고 있어 조만간 민간인의 JSA 내 남북지역 자유왕래가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TV나 영화로만 보던 공동경비구역을 둘러보고 남북 정상이 함께 걸었던 도보다리까지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주소 경기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문의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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