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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선 기자의 더 늦기 전에 떠나는 세계여행 09]우리가 알던 이슬람을 넘어! 세비야·코르도바·그라나다

2017-08-04 09:58

취재 : 김보선 기자  |  사진(제공) : 김보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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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코스타 델 솔’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충분히 만끽했다면 이제 그들이 남겨놓은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할 차례다. 성당 문화가 중심인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슬람 문화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이다.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가 대표적인데 스페인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는 곳들이다.
이슬람이 지배하던 시절 최고의 영광을 누리던 코르도바는 그에 걸맞게 스페인 최대의 모스크 메스키타를 세웠다.
이슬람 하면 요즘에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테러 집단 ‘IS(이슬람 국가)’일 것이다. 하지만 세계 3대 종교로서 이슬람을 이해하는 데 ‘IS’만을 떠올린다면 너무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여행하기 위험한 중동지역을 찾아갈 수는 없는 일. 이슬람의 성지 메카는 이슬람교도가 아니면 여행 자체를 할 수 없는 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다른 지역 역시 정식 초청 비자가 없으면 개별 여행은 불가능하다. 유럽 국가인 스페인에서 이슬람 문화를 만난다는 것은 그래서 이색적이다. 더구나 이슬람과 가톨릭 문화가 융합된 흔적들이라 더욱 흥미롭다.
 
이슬람과 가톨릭의 융합을 찾아 떠난다는 것은 실제로는 로마 크리스트교와 무어인의 이슬람을 거쳐 다시 에스파냐 가톨릭의 지배로 이어지는 시대의 흐름을 경험해본다는 뜻이다. 그 중심에는 스페인 남부의 중심 도시 세비야가 있다.
 
 
세비야,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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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키다 옆 골목에는 유대인지구도 관광객이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다. 하얀 회벽 칠을 한 집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좁은 골목 양쪽으로 화분을 걸어 놓아 소박하면서도 화려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세비야(Sevilla) 여행의 중심은 세비야 대성당이다. 안달루시아 중심부인 세비야는 로마시대를 거쳐 서(西)고트족(5~8세기)과 무어인(8~13세기)의 지배를 받았다. 아랍 계통인 무어인의 지배를 받던 12세기에 이슬람 문화의 정수를 모은 알카사르 궁전, 히랄다 탑 등이 세워졌다. 이후 13세기 페르난도 3세에 의해 다시 에스파냐에 속했고 15세기 말에는 신대륙무역의 기지로서 전성기를 맞는다. 이때 스페인 최대의 성당인 세비야 대성당이 세워졌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르네상스 양식), 영국의 세인트 폴 성당(네오르네상스 양식)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인 이곳은 원래 이슬람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고딕양식으로 세워졌다. 당시 성당을 세우는 회의에서 “다른 어떤 성당보다 아름답고 크게 지어 성당이 완공되면 사람들이 우리를 미쳤다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고 발언한 기록이 있을 만큼 공을 들였다. 세비야 대성당은 12세기에 지어진 이슬람 모스크를 허물고 그 자리에 짓기 시작한 지 105년 만인 1506년 완성됐다. 이후 여러 차례 중축을 하는 과정에서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추가되면서 여러 양식이 혼재하는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모스크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흔적은 남아 있다. 성당과 붙어 있는 별채 형식의 히랄다 탑이 그것이다. 주로 단체여행객들이 입장하는 성당의 동쪽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위치한 히랄다 탑은 성당뿐만 아니라 세비야의 랜드마크이다. ‘히랄다’는 풍향계라는 의미로 원래는 이슬람 모스크의 미나레트(첨탑)였다. 이슬람 지배 시기에 만들어진 모스크를 가톨릭 세력이 지배하면서 이슬람 돔을 떼어내고 28개의 종루를 달아 성당의 종탑으로 개조했다. 지금의 풍향계 역할을 하는 것은 한 손에 방패를, 다른 손에는 종려나무 잎을 들고 있는 청동 여인상 ‘엘 히랄디요(El Giraldillo)’이다. 바람이 불면 회전하는 ‘바람개비’를 뜻하는 엘 히랄디요는 가톨릭 신앙의 상직적인 동상으로 승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미나레트가 엘 히랄디요로 바뀐다는 것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탑 꼭대기의 이 여인상을 가까이 보기 원한다면 성당 남쪽 문 입구에 커다랗게 세워진 또 다른 엘 히랄디요 청동상을 찾으면 된다.
 
히랄다 탑의 의미가 어떻든 간에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오르는 이유는 탑 꼭대기의 전망대에서 세비야 시내를 조망할 수 있어서이다. 히랄다 탑에는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도 있지만 직접 걸어 올라야 제맛이다. 계단은 없다. 대신 나선형의 경사로를 타고 올라야 한다. 그 옛날 이슬람 사람들은 이 탑의 미나레트를 오를 때 당나귀를 타고 올랐다고 한다. 계단 대신 나선형 경사로로 만든 이유다. 올라가는 내내 숫자 표시판이 있어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다. 총 32번까지 이어진 오르막길을 오르면 높이 93m의 시내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종탑에 이른다. 28개의 종이 매시간 울리지만 지금은 직접 종을 치는 것이 아니라 스피커로 소리를 낸다.
 
세비야 대성당은 그 규모만큼이나 내부도 화려하고 볼 것도 많다. 그중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콜럼버스의 관 그리고 황금제단이다. 성당 안 중앙에 안내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성당에 관한 자세한 한국어 설명서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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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어디에서든 히랄다탑을 볼 수 있지만 대성당 내 이슬람식 오렌지 나무 뜰에서 바로 보는 것이 일품이다. 안달루시아 곳곳의 정원에는 커다란 오렌지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오렌지 나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콜럼버스의 관은 대성당 남문 쪽에 있다. 그의 관은 당시 스페인을 다스리던 네 왕국의 왕인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 국왕의 조각상이 어깨에 멘 채 번쩍 들어 올리고 있어 공중에 떠 있는 모양새다. 자신의 항해를 지원했던 이사벨라 여왕이 죽자 스페인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콜럼버스는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그는 남미 도미니카의 산토도밍고에 매장되었다가 쿠바 아바나를 거쳐 결국 세비야 대성당으로 돌아와 잠든다. 스페인은 콜럼버스의 공을 뒤늦게 인정해 유해를 가져왔다. 그의 유언에 따라 당시 스페인을 지배했던 네 명의 왕에 의해 들려 있는 모양으로 관을 안치했다. 그런데 네 왕의 표정이 재미있다. 콜럼버스를 따랐던 왕들은 앞쪽에서 어깨를 편 당당한 모습이고, 반면 그렇지 못했던 왕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또한 앞쪽 두 왕의 발 부분은 매끈매끈 닳아 있다. 오른쪽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이와 세비야를 다시 찾게 되고, 왼쪽 발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 때문이다. 호기심에 지켜보니 확실히 젊은이들은 왼쪽 발, 나이 든 단체여행객들은 오른쪽 발을 만졌다. 물론 두 발을 모두 만지는 이들도 많았다. 콜럼버스의 관이 여기 있는 이유는 그가 항해를 떠날 때 이곳에서 축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비야는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항구의 이미지가 많이 퇴색됐으나 스페인 대항해시대에는 중심 무역항이었다. 세비야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가에 높이 솟은 ‘칼라오라 탑’이 지금은 대항해시대를 보여주는 간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 선박의 출입을 감시하는 요새로 쓰인 것도 세비야가 한때 번성했던 무역항임을 증명하는 흔적 중 하나다.
 
세비야 성당의 수많은 호화로운 유물과 장식 중에서도 절로 감탄이 나오는 게 바로 황금제단이다. 평소에는 철창으로 접근을 못 하도록 막아놓지만, 철창 사이로 정면의 제단을 보면 그 화려함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세계 최대 규모로 80년 동안에 걸쳐 목재로 만든 이 제단은 그 섬세함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랍다. 예수의 일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각했는데, 특히 하단 중앙부에 위치한 성모마리아의 품에 안긴 예수상은 신대륙에서 가져온 1.5톤의 황금으로 만들어 화려함이 극에 달한다. 하지만 황금빛 중앙제단이 남미 식민지의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노동력의 대가로 지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냥 감탄할 만한 일은 아닌 듯하다. 예수님도 그리 좋아하시진 않았을 것이다.
 
대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만나는 오렌지 나무들의 정원도 눈여겨볼 만하다. 안달루시아 곳곳의 정원에서는 커다란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린 오렌지 나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대성당 앞의 오렌지 정원은 히랄다 탑과 함께 이슬람 사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정원 중앙의 분수대는 당시 이슬람교도들이 예배를 드리기 전 손과 발을 씻던 곳으로, 이곳에서 오렌지 나무들 사이로 히랄다 종탑을 올려다보면 그 풍경이 일품이다.
 
성당에 입장하려면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하고 들어가도 되지만 성수기에는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서야 하고 일찍 마감되어 입장을 못 할 수도 있다. 예약 입구 줄과 현장 구매 입구 줄이 다르니 미리 확인한다.
 
세비야의 현대 건축물을 보고 싶다면 메트로폴 파라솔을 추천한다. 전체적인 모습이 버섯 모양의 우주선처럼 보이는 이곳은 마차를 타고 달리는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세비야에서 현대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벌집 모양의 구조물 사이로 난 길을 거닐며 세비야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보기엔 철제 구조물로 보이지만 3천 개가 넘는 목재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목재 건물로 알려졌다. 지하로 내려가면 땅속 유물을 복원해 건축한 것을 알 수 있다.
 
 
코르도바, “바그다드보다 더한 최고를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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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 전용 다리인 로마교는 해질 무렵에 가장 붐빈다. 로마교를 건너면 바로 마주하는 칼라오라 탑의 옥상에 오르면 메스키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안달루시아의 이슬람 문화를 좀 더 만날 수 있는 곳이 중세 유럽 이슬람 최대의 도시였던 코르도바(Cordoba)이다. 세비야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인 코르도바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유적이라 할 수 있다. 코르도바는 대항해시대 무역항이었던 세비야로 중심지가 이동하기 전까지 스페인 남부 최대 도시였다.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던 10세기쯤에는 인구가 5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코르도바 중심부에 위치한 역사지구는 당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역사지구의 옛 골목길들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만큼 미로처럼 좁은 길들이 이어져 있다. 도시의 골목골목이 유적이지만 코르도바 역사지구에서 최고의 명소는 역시 메스키타(Mezquita)이다. 이슬람이 지배하던 시절 최고의 영광이 누리던 코르도바에는 그 명성에 걸맞은 스페인 최대의 모스크 메스키타가 자리하고 있다.
 
메스키타는 스페인어로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의미한다. 아브드 알라흐만 1세가 바그다드의 이슬람 사원에 뒤지지 않는 규모의 사원을 건설할 목적으로 785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후 코르도바의 발전과 함께 확장하여 2만5천여 명의 신자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완성됐다. 가톨릭 세력이 코르도바를 점령한 뒤로는 메스키타의 일부를 허물고 르네상스 양식의 예배당을 사원 중앙에 세워 가톨릭과 이슬람이 한 곳에 동거하는 사원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메스키타는 원래 로마신전이 있던 자리에 가톨릭교회, 이슬람 모스크, 이어 다시 성당을 세운 것이다. 현재 정식 명칭은 코르도바 산타마리아 성당이다.
 
이슬람 사원의 구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입구의 사원을 상징하는 종탑(미나레트)과 몸과 마음을 씻는 정원, 그리고 기도를 드리는 기도소이다. 메스키타 역시 입구의 알미나르(Alminar; 탑)를 지나면 오렌지 나무의 정원과 분수대가 있고 지금은 성당이 된 건물로 들어서는 구조이다.
 
메스키타는 세비야 대성당과 함께 이슬람 사원을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한 대표적인 곳이지만 그 정도는 다르다. 세비야 대성당은 히랄다 탑을 제외하면 성당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반면 메스키타는 이슬람 사원의 원형이 대부분 남아 있다. 실제 내부에 들어가면 이슬람 모스크 외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데 반해, 중심부에는 가톨릭 예배당이 있어 이게 모스크인지 성당인지 헷갈린다. 남북 180m, 동서 130m의 23,000㎡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 내부에는 적색과 백색의 벽돌을 교대로 짜 맞춘 8백56개의 둥근 기둥이 아치를 이루며 천장을 받치고 서 있다. 또한 곳곳에 이슬람의 정교하고 부드러우면서 화려한 문양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모스크 내부는 기둥 주위의 기름등잔을 이용한 조명으로 약간은 어둡다.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아치 기둥 사이를 걷다 보면 마치 영원한 미로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든다. 이슬람 사원에서 보기 드문, 고대 로마의 수로를 모델로 했다는 말발굽 모양의 이층 아치 구조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자이크 중 하나로 알려진 천장의 정교한 모자이크 역시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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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통하는 스페인광장은 김태희가 플라멩고를 추던 CF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성당에서 도보로 20분 이상 걸어야하는 곳으로 여기저기 말들이 지나다니며 똥을 싸놓기도 한다.

코르도바에는 로마인의 흔적도 깊게 남아 있다. 안달루시아 지방을 관통하는 과달키비르 강이 메스키타 근처에 흐르고 있는데, 메스키타와 강 건너편의 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가 바로 로마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로마인의 다리’이다.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이 다리는 230m에 이르고 16개의 고풍스러운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 2천 년의 세월을 꿋꿋하게 견뎌낸 다리는 지금도 여느 다리보다 튼튼해 보인다. 다리 중간에 코르도바의 수호성인이라 불리는 대천사 라파엘 석상이 세워져 있고 다리 건너에는 ‘칼라오라 탑’이 마주하고 있다. 이 탑은 원래 요새로 지어졌으나 현재는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며, 이곳 옥상에 오르면 메스키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코르도바는 또한 오페라 <카르멘>을 낳은 곳이기도 하다. 오페라의 원작소설 <카르멘>의 작가 메리메는 ‘로마교를 건너는 섹시하고 매력적인 집시 여인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다리 옆 곳곳의 기념품 가게에서는 오페라 <카르멘>과 관련된 기념품들을 판매한다.
 
코르도바에 들렀다면 메스키타 인근에 자리한 유대인 지구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이 지구에 숨어 있는 ‘꽃 골목’은 여행객들로 미어터질 정도이다. 두 사람이 지나치면 어깨가 닿을 만큼 좁은 골목에 늘어선 집들에는 창문이든 벽이든 화분들이 줄줄이 달려 있다. 이곳은 파티오로도 유명하다. 파티오는 건물로 둘러싸인 안마당을 꽃과 식물로 채운 스페인 특유의 실내정원이다. 특히 매년 5월 파티오 축제가 열리면 코르도바 역사지구는 온전한 ‘꽃의 도시’가 된다.
 
 
그라나다, “차마 파괴할 수 없는 이슬람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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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궁전 맞은편 알바이신 지구의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 오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이 일품이다. 그라나다를 상징하는 알함브라 궁전은 전 세계 이슬람 문화권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스페인에 남아 있는 이슬람 문화의 정수는 최종적으로 그라나다(Granad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알람브라 궁전(Alhambra Palace)이 바로 그것. 그라나다는 이베리아 반도의 남부, 안달루시아에서도 남부 해안선 근처에 가까운 대도시이다. 코르도바에서 출발해 끝없이 펼쳐진 구릉지를 한 시간 반 정도 달리다 보면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그라나다 평원을 만날 수 있다. 그라나다는 8세기 초반부터 이슬람 왕조의 지배 아래 크게 번영을 누렸으며 1492년 가톨릭 세력에 점령되기까지 이슬람교도의 마지막 거점 도시였다. 그 때문인지 서유럽에서 이슬람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알람브라 궁전과 이슬람풍의 구시가지 거리는 다른 유럽 도시에서 만나기 어려운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실제로 알바이신 지구의 아랍 골목은 이곳이 유럽이 아니라 아랍의 한 도시라고 착각하게 한다.
 
알람브라 궁전은 이슬람의 최후 거점 도시이자 800년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던 그라나다의 상징을 넘어 전 세계 이슬람 문화권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만큼 스페인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기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라나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발 740m 아싸비카 언덕(Assabica Hill)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은 에스파냐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의 무하마다 1세 알 갈리브가 13세기 후반에 착수하기 시작해 14세기에 이르러서야 완공됐다. 알람브라 궁전은 크게 카를로스(찰스) 궁전과 나스르 궁전, 왕의 여름 별궁인 헤네랄리페와 요새였던 알카사바 성채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백미는 나스르 궁전이다. 왕의 집무실이자 생활공간인 나스르 궁전은 기하학적인 글자와 문양으로 이슬람 미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건물의 대칭, 수로, 호수에 비치도록 한 설계 등 모든 것이 압권이다. 유럽의 세계적인 성당들이 그 규모나 예술성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와는 또 다르다. 유럽의 성당들이 하늘을 향한 뾰쪽하고 날카로운 직선미를 떠올리게 한다면, 이곳은 부드러운 곡선미와 기하학적 신비로움이 앞선다. 변화가 많은 아치, 섬세한 기둥, 벽면 장식 등 모두가 정교하고 치밀하여 그 예술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 궁전은 가톨릭 세력이 다시 빼앗은 뒤에도 정중하게 보존되었다. 현재 알람브라 궁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알람브라 관람을 위해서는 사전 예약(www.ticketmaster.es)이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른 새벽부터 긴 줄을 선다고 하더라도 표를 구하지 못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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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세계 최대 규모로 80년 동안에 걸쳐 목제로 만든 황금제단은 그 섬세함이 믿기 어려울 정도다. 예수의 일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각했는데 특히 하단 중앙부의 성모마리아 품에 안긴 예수상은 신대륙에서 가져온 1.5톤의 황금으로 만들어 화려함이 극에 달한다. (우) 콜럼버스의 관은 당시 스페인을 다스렸던 네 왕국의 왕들이 어깨에 멘 채 번쩍 들어 올려져있다.

알람브라 궁전의 외관 전체를 보고 싶다면 맞은편 알바이신 지구의 산 니콜라스 전망대(Mirador de San Nicolas)가 있는 언덕에 오르면 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알람브라 궁전은 멀리 뒤쪽의 높은 산맥을 타고 넘는 구름 배경까지 더해져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해 질 무렵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 오르면 붉게 물들어가는 알람브라 궁전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이곳이 연일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이유도 이 풍경을 보기 위해서이다. 산 니콜라스 언덕에서 시내 중심부로 향하는 아래로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보면 좁은 미로 같은 골목에 다다른다. 이곳이 바로 아랍 골목이다. 어깨를 부딪칠 만한 좁은 카페에서 물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의 이국적인 모습과 상점마다 진열되어 있는 아랍 문화의 기념품들, 저렴한 가죽 제품들이 관광객들에겐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그라나다 주요 관광지를 가장 단시간 내에 보려면 길게 꼬리를 이은 관광열차를 타고 도는 것을 추천한다. 도심의 시티버스처럼 그라나다 곳곳의 주요 관광 포인트들을 마치 곡예 운전하듯이 오르내리며 순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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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혐오  ( 2017-08-06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0   반대 : 1
이슬람은 종교의 공산주의 사상이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듯 이슬람에
반대해야 한다.
이슬람은 타 종교,타 문화,
타 정치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며
세계를 이슬람화 하기 위해서
비교도나 이교도에 대해서
살인,강간,테러,전쟁을 하도록
가르키고 있다.
자생적 테러가 일어나는 이유이다.
대부분의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들의 주장에
50∼60%가 동의한다고 한다.
이슬람은 이단이고, 음란, 사탄,악마의 종교이다.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가 침해되는 것은 물론
여성의 참정권, 외출제한, 여성의 구타와
명예살인의 허용등
우리 문화와 현 가치체계를 송두리채
뒤흔들 것이다.
다문화정책을 폐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