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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삼촌 '말잇못English' 과외하기 1]1984년 중딩조카 사부, 2019년 스타강사조카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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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3 15:53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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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대학 입학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댁 큰누이의 호출을 받았다. 막 중학교에 진학한 큰딸의 영어공부를 책임지라는 지령이었다. 교육열이 만만치 않던 누님은 아직 어린 사촌동생을 겁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여장부 같기도 칼 같이 날카로운 여자 같기도 했던 그때 그 누님은 나의 사촌누나다. 
 
강 건너 동네 그 집을 한 달 한두 주씩 드나들며 조카 과외하기를 시작했다. 적정한 용돈을 '알바비'조로 받아가며 선생님 노릇을 하는데, 삼남매인 조카들의 팬심에 무척 흥분하고 고무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주 대상인 과묵한 성격의 큰딸아이(왕조카)는 삼촌의 '문법영어'를 역시 과묵하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유쾌상쾌 패기발랄하기 이를 데 없는 둘째딸은 매번 지 엄마에게, 삼촌인 내게도, 투정을 부리곤 했다. 왜 삼촌은 언니만 영어 티칭 하냐는 볼멘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아들놈인 초딩 막내조카는 삼촌이 집을 드나들 때마다 바깥에 나가 먼지구덩이에서 뛰어놀곤 했다. 아마도 놈 역시 못마땅한 구석이 많았을 거였다. 함께 나가서 공차기 놀이를 해주는 삼촌을 기대했건만, 만날 큰누나 공부만 봐주는 형 같은 아저씨가 못내 못마땅했을 듯하다.
 
학기 중엔 한달에 한두 번, 방학 중엔 내내 그 집을 드나들었다. 아이의 영어 기초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손에 든 책은 당시 누구나 그랬듯 성문종합영어였다. 입 한 번 뻥긋 못하는 이른 바 '문법영어'였다. 그 한계를 그때는 몰랐다.
 
본문이미지
고딩 1학년 조카와 함께 대구 팔공산에서. 그게 몇 년도였는지는 우리 서로 귀찮아서 계산을 안 하고 있다.

1년여의 과외하기가 왕조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을지 나는 잘 모른다. 어쨌거나 착하고 음전한 왕조카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무난히 졸업하고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졸업 후 랭귀지스쿨에서 영어교수법을 강의하고 언어를 가르쳤다. 귀국 후엔 줄곧 EBS, 어학원, 사이버대학 등에서 영어를 강의해오고 있다.
 
알량한 '문법영어'를 받아먹던 아이가 영어교육 전문가가 됐다. 내 덕이 지대했다 말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제 노년에 접어든 큰누님이나 함께 나이들어가는 조카가 '니 덕이다'라고 말해준다면 굳이 손사래를 치진 않겠다.^^ 그러나 언제나 한 번 그리 말해주려냐 기대하건만, 가망은 없다. 이제 '내 영어'는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쓰질 않으니 가물가물하다. 이미 오래 전에 버려진 영어였을지 모른다. 입과 귀가 열리는 영어가 아니고서는 알량한 내 영어는 무용지물이요 참을 수 없이 고리타분한 폐기물에 가깝다.
 
유튜브를 하기로 작정한 후 무려 30분의 장고(?) 끝에 왕조카를 불러냈다. 입과 귀가 열리는 영어, 살아 숨쉬는 영어를 소환하기 위해서다. 35년 전의 왕좌는 물 건너간 지 오래. 이제 잘 자란(?) 조카의 문하생이 되는데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는 이 작업이 즐겁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같은 로맨스는 없지만 우리의 과외하기 레트로엔 아주 별나게 뭉클한 감동이 있다.
 
현이야~ 이제 네가 날 사람 만들어봐라. 영어 잘 말하는 사람.
꼰대삼촌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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