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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 박물관부터 폐쇄된 지하역, 광장까지 카셀 도큐멘타

2017-09-03 10:10

글·사진 : 김진녕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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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0만 명의 작은 독일 도시 카셀. 그림 형제의 고향이자 활동무대가 바로 카셀이었고 최근에는 세계적인 현대미술 축제로 인정받는 카셀 도큐멘타로 이름을 얻고 있다.
카셀의 상징물 중의 하나인 헤라클레스상. 카셀에서 제일 높은 산에서 카셀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1955년 시작된 카셀 도큐멘타는 5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행사로 2007년 75만 명, 2012년 90만 명, 올해 축제에는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는 그리스 아테네(4월 8일~7월 16일)와 독일 카셀(6월 10일~9월 17일)에서 동시에 대회를 개최하며 규모를 더 키워 명실상부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 이벤트가 됐다. 심지어 그리스 아테네의 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핵심에 해당하는 2백여 점을 카셀로 공수해 카셀 도큐멘타의 주 전시관인 프리데리치아눔을 가득 채웠다. 아테네에서 카셀 도큐멘타를 열고 아테네 현대미술관 소장품을 통째로 빌려올 수 있었던 것은 이번 도큐멘타의 슬로건이 ‘아테네에서 배우기(Learning From Athens)’이기 때문이다. 폴란드 출신의 큐레이터로 이번 대회 예술감독을 맡은 아담 심칙은 아테네에 47곳의 전시장을 열었고, 카셀에 35곳의 전시장을 만들었다. 3백 팀이 넘는 작가와 80곳이 넘는 전시장에 1천여 점이 넘는 작품, 그리고 이를 위해 집행된 4백억원이 넘는 예산. 이런 대형 시각예술 이벤트를 명쾌히 정리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찬찬히 보면 의외로 핵심 주제는 주 전시장 주변에 뿌려져 있었다.

프리데리치아눔을 채운
‘아테네에서 배우기’

카셀시의 중심가에 자리 잡은 프리드리히 광장은 카셀 도큐멘타의 중심지이다. 이 광장 한 켠에 위치한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은 18세기 말에 지어진 유럽 최초의 미술관으로 카셀 도큐멘타의 주 전시장소이다.

프리데리치아눔을 채운 것은 아테네 현대미술관의 소장품 2백여 점. ‘아테네에서 배우기’라는 주제에 걸맞은 배치였다. 프리데리치아눔 앞의 광장에는 스틸 프레임으로 실물대의 파르테논 신전이 등장했다.

아르헨티나 작가 마르타 미누힌의 대형 설치작품 <책으로 만든 파르테논(The Parthenon of Books)>. 이 스틸 파르테논 신전의 외피는 ‘금서(禁書)’다. 카셀 시민들의 열성적인 금서 모으기를 통해 이 작품을 완성시켰다. 사회적·정치적 억압의 대표적 수단인 금서를 가지고 서구 문명의 시원으로 불리는 그리스 문명의 상징물 파르테논을 재현한 것이다. 금서로 덮어씌운 2017년의 파르테논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프리데리치아눔을 쳐다보면, 이오니아식 열주가 서 있는 미술관 현관 위에 ‘Museum Fridericianum’이라고 명패가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BEINGSAFEISSCARY’라는 글자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글자는 문장이다. “BEING SAFE IS SCARY(안전한 게 무서워).” 이 역설적인 제목은 현학적인 말놀음이 아니다.

터키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출신으로 대학을 나온 뒤 화학자로 일하다가 저항언론인의 길에 들어서, 결국은 게릴라가 된 여전사 구르베텔리 에르소즈의 일기에는 나오는 구절이다. 에르소즈는 폭사했다. 사후 그의 일기가 출판됐는데 터키 작가 바누 세네토글루가 게릴라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소수민족 출신 전문직 여성의 비극을 드라마틱하게 드러내고 있다.

유럽의 변경인 터키와 시리아, 이라크 접경지역에 흩어져 사는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탄압은 현재진행형의 비극이다.

프리드리히 광장 건너편 도큐멘타홀 앞에는 이라크 출신 쿠르드족 히와 케이(Hiwa K.)의 설치작품이 놓여 있다. 그는 하수도용 시멘트관을 쌓아놓고 각각의 시멘트관마다 사람의 이름을 붙여 1인용 피난처로 꾸민 작품을 내놨다. 히와 케이가 쿠르드족의 현실을 반영해 아테네에 설치한 작품이나 그간 발표한 사진 및 영상 작품은 현실이라는 점에서 큰 비극이다.

도큐멘타홀에는 멕시코 작가 길레르모 갈린도가 시리아 난민 소년이 빠져 죽은 레스보스섬에서 가져온 두 동강 난 나무배와 노로 만든 설치작품이 걸려 있다. 미국 국경을 넘는 멕시코 불법이민자의 비극을 잘 알고 있는 멕시코 작가가 지중해의 비극을 재현한 것이다. 이에서 보듯 이번 카셀 도큐멘타에서는 최근 유럽 대륙의 가장 큰 화두인 난민 사태와 박해받는 소수민족 문제를 가장 자주,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었다.
 

한국 작가 김수의 ‘보따리’,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산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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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쾨니히 광장에 세워진 이 오벨리스크형 작품 역시 난민 이슈를 다루고 있다. “I Was A Stranger And You Took Me In”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Monument For Strangers And Refugees).
2 쿠르드족 출신 히와 케이의 콘크리트관을 이용한 설치작품.
3 마르타 미누힌 <금서로 만든 파르테논>
4 폐쇄된 지하 철도역에 설치된 인도 작가의 작품.
5 프리데리치아눔 2층에 설치된 김수자의 보따리와 멕시코 불법이민 희생자를 기린 미국 작가 안드레아 바워스의 작품.

프리데리치아눔에 등장한 한국 작가 김수자의 보따리 작업도 이런 맥락에서 전시된 것이다.

김수자의 보따리 작품은 아테네 현대미술관 소장품 자격으로 이번 카셀 도큐멘타에 초청됐다. 그의 작품은 1층에 다섯 점, 2층에 한 점이 놓였다. 특히 2층에 놓인 김수자의 보따리는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다 죽은 불법이민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미국 작가 안드레아 바워스의 작품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 보따리 옆에는 예루살렘 서안 출신의 팔레스타인 작가 에밀리 자키리가 설치한 난민 텐트가 설치돼 있다. 에밀리 자키르는 1948년 이스라엘군에 의해 파괴된 4백18개에 달하는 팔레스티안 마을의 이름을 텐트에 새겼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굶주림에 지쳐서 나라를 잃고서, 하와이로 쿠바로 만주로 카자흐스탄으로 유랑걸식에 나서야 했던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산증인인 ‘보따리’가 이렇게 팔레스타인과 멕시칸의 비극을 더욱 선명하게 되살리는 데 쓰이고 있다.

저위도의 저개발국가에서 고위도의 산업국가로 합법·불법의 노동 이민을 시도하는 현상은 21세기 들어 전 세계적이다. 멕시코에서 북미로, 동남아나 서남아에서 동북아나 북유럽으로, 남유럽이나 북아프리카에서 북유럽으로 좀 더 나은 생활을 기대한 노동이민 또는 난민 대열은 물밀듯이 북상 중이다.

그러고 보면 북상하는 난민이 가장 선호하는 북유럽의 주인 게르만족도 실상 ‘난민 1세대’였다는 점은 아이로니컬하다. 좀 더 나은 생존을 위해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온 게르만족은 세계 최강대국이던 로마 제국의 북쪽 국경선을 흔들었고 급기야는 서기 476년 게르만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제국의 황제를 내쫓고 로마제국을 끝장냈다. 대규모 ‘난민’이 유럽의 질서를 바꾼 첫 번째 역사 기록이다.

이후 훈족이나 투르크족을 포함한 대규모 난민(이민)의 유럽 유입은 계속됐고 그때마다 전쟁이 벌어지고 국경선이 새로 그어졌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힘의 균형이 깨지는 것은 유럽 대륙에게 있어 전쟁을 의미했고 이는 대규모 학살을 동반했다는 것이다. 20세기 중반의 아우슈비츠와 20세기 말의 코소보의 대학살이 그런 흐름 속에 있다.

2차 대전 이후 노동력 수입을 통해 경제부흥을 달성한 독일은 그 후유증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독일 인구 8천만 명 중 이민자가 1천9백만 명이 넘고 이중 터키 출신이 4백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독일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독일 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카셀 도큐멘타가 독일 이민자 이슈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 국경 없이 유랑하는 삶이나 소수민족, 인종분쟁 등을 다루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원주민인 사미(Sami)족의 삶이나 쿠르드 난민, 호주 원주민, 콜롬비아의 원주민 나무 박사, 세계무역에 희생당하는 가나 노동자 등 세계 도처의 소수민족 출신 아티스트를 발탁해 그들의 삶과 예술, 그리고 그 배경이 되는 각 지역의 현실을 예술이라는 필터를 통해 전시장에 올려놨다. 난민 이슈 외에도 전쟁으로 인한 희생, 특히 홀로코스트 관련 이슈도 이번 도큐멘타의 주요 메뉴 중 하나였다.

노이에 갤러리에 전시된 히틀러를 위시한 수십 명의 진짜 나치 장교 사진으로 만든 폴란드 출신 작가 피오트르 우클란스키의 <Real Nazis>는 독일 관람객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 전시장 옆 칸에는 2차 대전 중 나치에 의해 약탈된 유태인 소유의 예술품 반환 이슈와 관련된 작품이 걸렸다. 유태계 독일 화가인 막스 리베르만의 <해변의 두 기수>. 이 작품은 유태인이 소유했던 작품 중 재판을 통해 원주인의 후손에게 돌아간 거의 유일한 케이스이다.

전쟁 중 약탈된 미술품의 원주인 반환 문제는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가져간 작품으로 박물관 전시대를 채우고 있는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 식민경영을 경험한 국가에서는 큰 이슈다. ‘문화유산을 뺏겼다’고 주장하는 이집트나 그리스가 국제사회에 꾸준히 반환을 요청하고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번 도큐멘타의 예술감독인 아담 심칙의 의도대로 약탈한 유태인 소유 작품으로 의심받는 작품 1천여 점이 모두 전시됐다면 미술계를 넘어 국제외교의 핫이슈로 부상했을 것이다.

아테네에서 카셀 도큐멘타가 먼저 문을 열던 4월 9일 아크로폴리스에서 특별한 이벤트가 열렸다. 그리스 토종말 아라바니(Aravani)를 포함한 기마 대열이 카셀을 향해 출발한 것. 유럽 문명의 시원인 그리스 문명이 로마를 거쳐 북진했던 것처럼 이 기마 대열도 문명이 갔던 길을 따라 카셀로 북상했다. 문명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지역을 거치며 섞이고 혼혈하며 더 강하게 발전한다. 문명의 교류(혼혈)를 찬양한 것이다. 시각예술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오늘의 유럽을 해부한 카셀 도큐멘타는 불안에 떠는 유럽인에게 이렇게 낙관적인 출구 하나를 열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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