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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소설]리마인드 웨딩

2017-06-10 11:29

글 : 이주혜 소설가. 2016 창비 신인 소설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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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고른 드레스는 은은한 제비꽃 색깔이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민망해했다. 아내는 50년 전 결혼 때도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지 못했다. 복사꽃색 저고리와 남색 치마를 입고 읍내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은 게 고작이었다. 하얀 웨딩드레스는 한번 입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딸의 재촉에도 아내는 고집을 부렸다. 곽은 얼룩말 문양이 선명한 화려한 턱시도를 골랐다. 흑백의 강렬한 대비가 곽의 은발과도 잘 어울렸다. 우리 아버지, 그러고 계시니까 한 마리 야생마 같으네. 딸아이가 너스레를 떨었다. 까르르 웃는 딸의 턱살이 두 겹으로 접혔다. 딸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아침 일찍 딸이 예약해두었다는 미용실에 갔을 때, 곽은 꼭 포마드를 발라 머리를 넘겨달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완성한 곽의 은발은 고전영화 속 남자 배우처럼 중량감이 있었다. 곽은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거기 깡촌에서 맨손으로 상경해 갖은 고생 끝에 일가를 이룬 장한 사내가 있었다. 곽은 흡족했다.
 
곽은 스튜디오 직원이 내어준 암체어에 앉아 준비 중인 아내를 쳐다보았다. 젊었을 적보다 허리도 굵어지고 어깨와 등도 굽었지만, 아내는 여전히 고왔다. 태생이 선이 가는 여자였다. 한껏 부풀린 머리에 작은 화관을 씌우고 곱게 화장한 얼굴에 은은한 제비꽃 색깔 드레스까지 입혀놓으니 아내는 나이가 무색하게 사랑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난 날에도 아내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제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해 봄에 당숙이 주선한 맞선 자리였다. 아내가 보라색을 좋아했던가? 그보다는 오래전 기억을 색깔까지 선명하게 떠올리는 자신의 총기가 마음에 들었다. 읍내 다방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레지가 날라 왔던 육각 사기잔의 캐러멜 색깔 무늬, 그 안에 담겨 모락모락 김을 내뿜던 보리차와 잔 안쪽에 가라앉아 있던 까만 보리 알갱이까지 내처 떠올랐다. 맞은편 비로드 소파에 앉은 아내는 꽃무늬가 잔잔히 수놓아진 손수건을 꺼내 연방 입술을 훔쳤더랬지. 곽은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수굿하게 내려앉은 아내의 긴 속눈썹을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아내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수줍은 그 자태가 맘에 쏙 들어 곽은 반드시 이 여자와 결혼해 서울로 가리라, 다짐했었다. 마침내 곽이 탁자 너머로 아내의 손을 덥석 잡아 쥐었을 때 당황한 아내의 눈망울은 금세 그렁그렁해졌다.
 
촬영 준비를 마친 아내가 사뿐사뿐 걸어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을 통해 아내와 곽의 눈이 마주쳤다. 곽은 요즘 애들처럼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아내가 배시시 웃었다. 곽은 아내를 처음 만난 날처럼 자신감과 행복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진한 커피를 여러 잔 마신 밤처럼 심장이 벌떡거렸다. 곽은 암체어에서 몸을 일으켜 아내에게 다가갔다. 벽 하나를 거의 차지한 전신 거울에 성장한 노부부의 모습이 담겼다. 올해는 곽과 아내의 결혼 50주년이었다.
 
 
왜 하필 보라색 드레스를 골랐을까?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몰라보게 화사해진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던 길애는 어깨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감싸며 차르르 떨어지는 드레스 자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늙은이가 젊은 애들처럼 순백색 드레스를 입기 민망해 색깔이 들어간 드레스를 고르자는 마음이었지만, 그게 왜 하필이면 또 보라색이어야 했을까. 푸른 멍이 옅어지기 시작할 때의 빛깔. 처음 통증과 경악이 서서히 잦아들며 그 자리를 채웠던 지독한 모멸감과 자괴감의 색.
 
남편을 처음 만난 맞선 자리에 입고 나간 원피스 색깔도 보라색이었다. 남편은 길애를 보자마자 하얀 잇바디를 드러내며 만족스럽게 웃었고 다방 안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소리로 자기 이름을 말했다. 남편의 자신감은 넘쳐흐르다 못해 상대방을 질식시킬 수도 있을 만큼 끈적거렸다. 호탕하게 자기소개를 하던 남편의 입에서 굵은 침방울이 튀어 정확히 길애의 입술 오른쪽에 떨어졌다. 길애는 티 나지 않게 조용히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는 척하며 입가의 침을 닦아냈다. 그때부터 불쾌해진 속은 맞선 보는 내내 가시지 않았고, 그 기색을 감추느라 기진맥진해 정작 맞은편에 앉은 남편의 말은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다. 또 침방울을 맞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남편이 길애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손목에서 시작된 통증이 금세 팔꿈치를 지나 어깨까지 찌릿하게 올라왔다. 길애 씨, 저와 함께 서울로 갑시다. 척박한 그 땅에서 우리 함께 일가를 이룹시다. 길애는 화들짝 놀라 붙들린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남편의 아귀힘은 지독하게 셌다. 너무 아파 눈물이 쏙 나왔다.
 
결혼 50주년이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요즘은 한 집 건너 이혼이라는데 50년을 해로하셨다니, 장합니다. 장해요. 길애는 사진사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기껏해야 막내 조카뻘밖에 안 되어 보이는 게 어른에게 장하다니, 요즘 것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본데없이 자란 티를 너무 낸다. 길애는 빨리 사진 촬영을 마치고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싶었다. 모양을 내겠다고 머릿속에 수십 개는 족히 박아놓은 머리핀도 몽땅 뽑아내고 스프레이로 딱딱하게 고정한 머리카락도 바락바락 비누칠을 해 씻어내고 싶었다. 리마인드 웨딩이라니. 딸애에게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길애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뭐 행복한 기억이라고 늙은 몸으로 결혼식을 다시 한단 말인가. 딸애는 길애의 반대를 예의상 한번 사양해보는 소리로 해석했고 애초에 결혼식을 올린 적도 없다는 말을 리마인드 웨딩을 강행할 더없는 근거로 삼았다. 제딴에는 큰 효도라고 믿고 있겠지. 남편도 자식도 평생 길애를 오해했다. 우리 엄마, 웨딩드레스는 한번 입어보고 가셔야지. 딸아이의 그렁그렁해진 눈망울을 보고 길애의 마음 어딘가에서 툭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눈 질끈 감고 마지막으로 꼭두각시 노릇 한번 해주자. 50년을 남의 뜻에 휘둘리며 살았는데, 하루 더 못 할까? 그깟 하루. 길애는 사진사가 시키는 대로 남편과 손을 잡고 카메라 앞에 섰다. 남편의 뽀뽀를 받고 수줍은 듯 웃었고, 남편의 어깨에 살포시 고개를 기대고 앙증맞게 웃었다. 속이 불편해져 왔지만, 하루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에너지가 넘쳐흘러 성질도 급한 남편이 어느 순간부터 힘들어하더니 급기야 사진사에게 버럭 화를 냈다. 거 적당히 좀 합시다. 일어났다 앉았다 하려니 무릎이 아팠을 테지. 잠귀가 옅은 남편은 한밤중에 아기가 깨어 울면 짜증을 참지 못하고 아기를 이불 위로 던져버렸다. 잇몸이 약해 밥이 되거나 고기가 질기면 왈칵 밥상을 엎어버렸다. 외출한 길애가 조금이라도 늦게 귀가하면 배고픔을 느끼는 강도만큼 집에 들어서는 길애에게 주먹부터 날렸다.
 
남편이 벌컥 화를 내자 딸애가 재빨리 사진사에게 뭐라 뭐라 귓속말을 했다. 사진사가 떨떠름한 얼굴로 각자 독사진을 찍자 했다. 길애는 잠시 남편이 아픈 무릎을 쉴 수 있도록 먼저 독사진용 의자에 앉았다. 늙은이들 독사진 촬영이 무엇을 뜻하는지 길애는 잘 알았다. 남편은 구석자리 소파로 가 끙 하며 몸을 구부렸고 길애는 의자에 앉아 사진사의 주문대로 고개를 이쪽으로 저쪽으로 미세하게 움직이며 표정을 잡았다. 오른쪽으로 살짝만요, 예 좋습니다, 어머님. 턱을 조금만 당겨주시고요, 예예, 잘하십니다. 웃으셔야죠, 어머님. 좋은 날인데, 웃어보세요. 첫날밤 아버님이 저고리 고름 풀 때를 생각해보세요, 하하. 싫어요. 길애의 단호한 한마디에 사진사가 놀랐다. 옆에서 살짝 눈물을 훔치던 딸애도 놀라 얼굴이 굳었다. 건너편 소파에 앉아 손부채를 부치던 남편도 얼어붙었다. 그 짧은 한마디가 뭐라고 다들 놀라나 싶어 길애도 내심 놀랐다. 웃기 싫습니다. 영정 사진은 내 맘대로 찍게 해줘요. 높낮이 없이 단호한 길애의 말에 사진사는 한껏 주눅이 든 얼굴로 카메라를 만졌다. 그럼 찍습니다. 여길 보세요. 하나. 5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 들며 길애의 뱃속 깊은 곳이 간질간질했다. 둘. 입가가 씰룩거렸다. 셋.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 길애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환하게 웃어버렸다. 오늘은 길애의 독립기념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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