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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소설이다

올가을 불현듯 다가온 소설 바람

2016-10-04 10:07

글 :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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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특히 올해 5월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으면서 대대적인 한국소설 붐이 일었고, 이어 정유정과 조정래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신작이 연달아 발표되며 그 열기가 지속됐다. 더구나 5분이면 한 회를 읽을 수 있다는 장점 덕에 독자들의 자투리 시간을 점령한 웹소설의 성장세도 심상치 않다.
올가을, 다시 돌아온 독서의 계절을 맞아 최근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 3인을 만나 그들의 새 작품 이야기를 듣고 소설 트렌드도 진단해봤다. 또 웹소설 작가와 웹소설 플랫폼 대표를 통해 온라인 소설의 세계도 들여다봤다.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소설가 지망생을 위한 등단 팁도 소개한다.
PART 1.
 
다시 부는 소설 바람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특히 올가을은 더 그렇다. 여름부터 몇몇 호재의 여파로 소설 바람이 불고 있다. 아무래도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이 크게 한몫했다. 이후 정유정, 은희경, 조정래 등 국내 대표 작가들의 연이은 신간 출간이 여세를 몰았다. 개봉 영화의 원작인 <덕혜옹주>, 인기 드라마를 소설로 옮긴 <디어 마이 프렌즈> 등 스크린셀러와 미디어셀러의 부각도 한국소설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교보문고에 따르면 7월 22일부터 8월 10일까지 20일간 한국소설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전년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국소설 판매량의 증가로 같은 기간 소설 전체 판매량도 21.6% 증가했다. 다시 소설을 집어 드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소설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탄실> 김별아
잊힌 인물을 세상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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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한 세상이다. 타인의 삶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 바쁜 사람들은 다들 자기 얘기만 한다. 소설은 한 번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말한다. 잊힌 인물을 다시금 끄집어내기도 하면서.
김별아 작가는 최근 <탄실>을 통해 비운의 여인 ‘김명순’을 재조명했다. 근대 최초 여성소설가의 삶과 사랑을 담은 얘기다. 김 작가는 “소설적인 욕심보다 김명순이라는 잊힌 사람을 복원하는 게 중요했다”고 했다.
“상상력은 최대한 배제했습니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김명순의 누락된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그의 자전적 소설과 그간의 연구 성과, 신문 기록 등을 참조해서 사실에 입각해 그려냈죠. 문학사에서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줘야 하지 않나 하는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김명순(1896)은 1917년 소설 공모로 등단했다. 단편소설인 <의심의 소녀>를 통해서다. 당시 심사위원이던 춘원 이광수는 “조선 문단에서 교훈적이라는 구투를 완전히 탈각한 소설은 내 <무정>과 진순성 군의 <주르지짐>과 이 <의심의 소녀>뿐”이라고 상찬했다. 국내 여성작가 중 처음으로 소설집을 냈고, 문예지 <창조>의 첫 여성 동인이기도 했다. <매일신보>에서 기자생활도 했다. 그렇게 등장한 김명순은 100편에 가까운 시와 20여 편의 소설, 에세이, 신문 칼럼, 번역물, 희곡까지 두루 남겼다. 시대의 주목을 받을 법하던 그였으나 제대로 피지 못하고 졌다. 후대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문학전집이 2009년에야 처음 나올 정도였다. 그는 왜 잊혔을까.

“기생첩의 딸이라는 것, 도쿄 유학시절 성폭행을 당한 것, 화가 김찬영과 임노월과의 연애 등을 가지고 세상은 그를 ‘문란한 신여성’으로 낙인찍었습니다. 거기에, 김동인과 김기진 등 좌·우파를 망라한 남성작가들의 인신공격적 비난으로 문단에서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벼랑 끝으로 내몬 거죠.”

김 작가는 “근대 여성 트로이카(김명순·나혜석·김원주) 가운데 아버지나 남편, 아들과 같은 방패가 없는 김명순의 삶이 가장 처절했더라”라면서 “식민지시대의 또 다른 식민지였던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편견과 왜곡에 희생된 안타까운 여성문인이었다”고 했다.

김명순은 1950년대 초반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상의 따돌림을 당한 김명순은 이병도의 집에서 책 교열과 교정을 하며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문학적 저항으로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고 고아 소년을 입양해 가족을 일구기도 했지만 경제적, 사회적으로 일어서지 못했다. 끝내 50년대 중후반께 일본 도쿄의 닭장 안에서 죽음을 맞았다.

“시인이고 소설가이기 이전에 여자, 그것도 별종의 여자이기 때문에 주목했습니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관심은 폭력이거니와 그로부터 빚어진 오해, 그릇된 해석, 잘못된 이해가 그녀의 짧은 생애 전부를 집어삼켰습니다. 여성작가 최초의 선배이기도 한 그의 삶이 너무 불쌍해서 이 소설을 집필하는 내내 기분이 남달랐어요.”

김별아 작가는 1993년 <실천문학>의 <닫힌 문 밖의 바람 소리>로 등단했다. 2005년 장편소설 <미실>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제가 23년 차 작가인데, 제가 데뷔할 때만 해도 문단이 남성 중심적이었어요. 성희롱이 일상이었고, 남성 중심적이면서 폭력적인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때도 있었죠. 아마 여성작가의 작품이 팔리면서 지위가 바뀌지 않았나 싶습니다.”

등단 이후 <채홍>, <논개>, <백범>, <열애>, <가미가제 독고다이> 등 여러 장편을 냈다. 전작에서도 그는 미실, 논개, 정순왕후, 김구, 독립운동가 박열과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 등 실존 인물을 사실적으로 되살려왔다.

그는 앞으로도 잊힌 인물들에게 주목할 계획이라고 했다.
“저는 역사 속 한 자리가 비어 있으면 왜 그 자리가 비어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단종이나 수양대군의 이야기가 나올 때 그 옆에 있던 여자들 얘기는 왜 없는 걸까, 전 그런 게 궁금해요. 이름을 찾지 못한, 이름이 있었음에도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인물이 있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랄까요.”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을 특별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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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없는 일상이다. 밥 먹고, 버스 타고, 일하고, 수다 떨고. 심심하리만치 별일 아닌 것들이지만 활자화가 되면 특별함이 된다. 읽고 나서 이내 깨닫는다. 내 일상도 본래 특별했음을. 소설을 봐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김금희 작가도 그중 하나다. 책을 통해 일상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묘한 울림이 있다.
“글이란 게 작가의 몸으로 들어가 한 번 거쳐서 나오니까요. 평범한 풍경일지라도 새롭고 낯설게 느껴지는 거겠죠.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는 주인공 양희와 필용이 종로의 학원 근처에서 햄버거를 자주 먹는데, 이 또한 굉장히 일상적이지만 그걸 문학으로 가져오니 새로워진 것 같아요.”

지난 5월 출간한 <너무 한낮의 연애>는 20대 때 사랑의 감정을 주고받은 필용과 양희가 16년 만에 재회하고 다시 헤어지는 이야기다. 이 작품으로 그는 2016년 제7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런 소설을 읽기 위해 내가 나이를 먹어온 게 아닐까”라고 했다. 팔리기도 잘 팔린다. 9월 9일을 기준으로 6쇄(1만2천 부)까지 찍었다. 일상이 가진 날 선 감정들을 그만의 문체로 잘 살렸다는 평이다.

“독자들이 필용과 양희라는 캐릭터에 애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1999년도가 배경이니, 70년대 중반에 태어나 90년대 학번을 보낸 사람들의 얘기죠. 그러다 시점이 16년 후로 옮겨와요. 지금 70년대 중반에 태어난 이들이 기성세대로 편입하고 있는 시기잖아요. 실제에서의 시간 흐름이 책 속에서도 일어나는 거라 이입이 잘됐는지도 몰라요. 똑같지만, 왠지 다른 감각으로 느낀 거죠.”

<너무 한낮의 연애>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사랑을 확인하는 필용에게 양희가 “사랑하죠. 오늘도”라고 답하는 부분이다.

“‘사랑하죠. 오늘도’라고 할 때, ‘오늘도’에는 운동성이 있어요. 살아 있다는 거죠. 그리고 오늘이라는 시간적 한계, 순간을 뜻하기도 하고요. 순간이라고 무가치한 건 아니거든요. 당장의 순간에 충실하고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의 첫 소설집은 <센티멘털로 하루 이틀>이다. 2014년에 펴냈다. 단편 <세실리아>, <아이들>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그는 소설을 쓸 때 “직접 겪은 사건이 아니더라도 경험한 일에서 감정을 가져오곤 한다”면서 “마음을 두드리지 않는 것에 대해선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

“저는 주로 주변의 이야기,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뤄요. 제 또래, 제가 살던 동네, 지금 벌어지는 일 같은 얘기들이죠. 주변에 있는 인물 얘기를 가져오다 보니까 자연스레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많이 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의 소설에는 완전한 악인이나 완전한 선인이 없다.
“왜냐하면 일상에서 아직까지 그런 인물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제가 체감한 수준을 벗어난 캐릭터는 그리지 않아요. 단순히 ‘이야기’를 위해서 등장인물을 하나의 기능, 역할로만 남겨두고 싶지 않거든요. 앞으로 제 작품에 완전한 악인이 나온다면, 제가 살면서 그런 사람을 본 거예요.”(웃음)
김 작가는 국문학을 전공하던 당시부터 소설을 썼다. 이후 출판사에서 5년 정도 일을 하다가 지난 2009년 등단했다. 앞으로도 소설은 계속 쓸 생각이다.
“소설을 안 쓰려면 다시 태어나야 할걸요.(웃음)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고, 저는 이를 강화하는 쪽으로 살아왔으니까요. 제 속에는 늘 드러내고 싶은 세계가 고여 있어요. 그걸 드러내지 않으면 병들어요.(웃음) 글을 쓰면서 내 안에 있던 맺힘 같은 게 풀리고요, 안 쓰면 아파요.”
 

<참담한 빛> 백수린
타인의 아픔에 잠깐 머무는 여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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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나도 아프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웃을 일만은 아니다. 남의 아픔에 귀 기울일 여유가 어디 있나. 나도 아픈데. 백수린 작가는 이 점에 주목했다.
“세상에 고통이 있다는 걸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제 방식으로 그려서 보여주는 것이 작가로서 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뜨겁던 올여름. 백수린 작가는 두 번째 소설집 <참담한 빛>을 펴냈다.
“<참담한 빛>은 정호라는 영화잡지 기자와 영화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서로 인터뷰를 하다가 서로의 고통을 떠올리는 내용입니다. 둘은 눈이 굉장히 부실 정도로 밝은 대낮에 인터뷰를 하는데, 빛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건만 삶은 괴로운 거예요. 빛이라는 게 밝을수록 참담하게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요. 고통스럽고 참담한 빛인 거죠.”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을 포함해 총 열 편의 작품을 실었다.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등장인물의 아픈 과거를 다룬다는 점이다. 겉보기에는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지만, 인생의 어느 시점에 치유되기 어려운 고통을 겪은 이들은 어느 낯선 곳에 갔다가 혹은 어느 낯선 사람을 만나 어쩔 수 없이 그 고통을 끄집어낸다.

백 작가는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다. 첫 소설집 <폴링 인 폴>(2014)을 냈고, 지난해에는 단편 <여름의 정오>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첫 소설집에서도 그는 ‘아픔’이라는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공통분모가 있지만 조금은 달라요. <참담한 빛>에서는 고통을 좀 더 연장선상에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소설집이 인간 내면에 있는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두 번째 소설집에서는 내면의 고통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상호의 고통을 공유하고 나아가 시대적 고통도 함께 녹였거든요.”

고통이라고 해서 굳이 자극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담담하다. 백 작가는 “고통이 더 잘 드러나는 방식은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것보다 잔잔하게 그리는 거라 믿는다”면서 “가능한 한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그리려고 했다”고 했다. 이에 혹자는 “소설을 읽으며 윤리라는 게 태도가 아니라,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평했다. 황종연 작가는 “소설에 자주 나오는 빛의 이미지에 응답해 말하건대, 한국소설의 찬연히 빛나는 신생의 약속이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가 소설을 통해 종국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담담하고, 잔잔하다.
“시대가 그래요. 모든 고민과 소통이 즉각적이에요. 무언가를 좀 더 오래 들여다보고, 그걸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볼 기회가 잘 없어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지금 사람들의 마음이 굉장히 닫혀 있잖아요. 아주아주 크고 견고한 그 세계에, 제가 작은 바늘구멍만 한 균열을 만들 수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종이 소설을 쓴다는 건 굉장히 느린 작업이에요. 천천히 가더라도, 그게 바늘구멍만 할지라도요.”

이 시대를 사는 젊은 작가로서 일종의 사명감도 보탰다.
“이전 소설가 집단은 여론을 이끈다거나 사회적 발언을 하면서 ‘중후한 지식인’으로 역할을 해왔던 것 같아요. 지금은 매체들이 워낙 많이 생겨나면서 소설가의 몫이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다른 이의 삶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이는 여유를 제공하면서 잊힌 감수성을 회복하는 일, 그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튜닝의 끝은 순정!
우리는 소설을 왜 읽을까. 정보를 얻기 위해? 재미로? 이 둘은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요소겠지만, 본질은 아마도 이거다. ‘내면의 확장을 위해.’ 수많은 인물이, 그들의 고통이, 그 삶이 보는 이를 좀 더 유연하고 촉촉하게 만들잖나. 늘 그래왔던 것 같지만, 사실 소설도 조금씩 변화해왔다고 몇몇 작가들은 말한다. 말하자면, 소설에도 트렌드가 있다는 것.
한때 잠깐 소설계에 ‘실험’의 바람이 분 적이 있다. 몇몇 실험주의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차츰 퍼져 나갔고, 새로움에 매료된 사람들이 책을 집어 들긴 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소설은 소설다워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그 결과 지금의 소설계는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본문이미지김금희 작가는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느냐가 핵심이다”라면서 “그런데 3~4년 전만 해도 뭔가를 해체하고, 형식을 탈피하고자 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국적이 불분명한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야기를 만들고, 그로써 메시지를 전하는 게 소설이잖아요. 그런데 여러 역사, 미술, 영화 이야기를 조합하는 데서 그치는 작업들이 많이 보였어요. 그저 작가의 예술적인 충동을 해결하는 데서 그친 것 같은.”
그는 “소설에서 감동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촌스럽다고 느끼던 실험적인 몇몇 작가들이 있었다”면서 “지금은 (그들도) 소설 본연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림으로 치자면 모더니즘에서 다시 리얼리즘으로 가는 셈.
 
백수린본문이미지 작가 또한 ‘전통 소설로 돌아가려는 경향’에 동의했다.
“원래 문인들이 사회적인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죠. 이를 작품에 많이 드러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 바로 윗세대 같은 경우 사회적인 관심이나 소설 특유의 이야기보다는 미학적인 부분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는 “물론 계속 실험을 하는 젊은 작가들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아니다”라면서 “큰 흐름으로 봤을 때 작가든, 독자든 본연의 소설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편 김 작가는 요즘 젊은 작가들이 쓰는 소설의 공통된 특징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최근 젊은 작가들의 소재에는 대부분 공통적으로 ‘비애감’이 들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현재 젊은 작가 세대들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타인과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한 채로 살았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새마을운동처럼, 억지스럽지만 으으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저희 같은 경우엔 통합이 무너진 세대를 살았잖아요. 성공 서사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거죠. 이런 데서 비애감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물론 이전 소설에도 이런 요소가 있지만, 현 세대 이야기는 조금 달라요. ‘너와 나, 우리는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이 있구나’ 하는 선까지 확인하고 만다는 점에서 이전 소설과 다른 것 같아요.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는 데에서 그치는 거죠. 예전에는 그 거리감을 없애고, 말하자면 ‘다 같이 잘 살아보자’라고 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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