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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완성은 계약?

2019-04-25 13:58

취재 : 장가현 기자  |  사진(제공) : 셔터스톡, 엄경천, MBC Every 1  |  도움말 :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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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만큼 변덕스러운 것도 없다.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다고 비유할 만큼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잡으려 ‘계약’이라는 방법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결혼 전에 하는 혼전계약서, 부모와 자식이 쓰는 효도계약서, 동거를 앞둔 연인끼리 쓰는 동거계약서 같은 것들이다. 드라마 이야기냐고? 드라마 같지만 현실이다.
A씨는 2년간 사귄 여자 친구가 있다. 둘 다 나이도 있고 서로 통하는 구석도 많아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A씨 부모가 펄쩍 뛰며 반대했다. 양쪽 집안의 경제적 차이가 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A씨는 부모가 물려준 수백억 자산이 있지만 여자 친구의 집안은 평범했다. A씨는 부모를 설득한 끝에 어렵사리 결혼 허락을 받아냈다. 단, 결혼 전 재산 문제를 확실하게 하는 ‘계약서’를 쓰는 조건이었다.

A씨처럼 결혼 전 계약서를 쓰는 일이 흔할까? 가사 전문 변호사들은 “실제로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오는 예비부부는 많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혼전계약서에 대한 관심은 이전에 비해 확실히 높아지고 있다. 엄경천 변호사는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혼전계약서에 대해 문의하는 사람은 늘고 있다”고 말한다.

혼전계약서는 말 그대로 결혼 전 쌍방이 합의한 내용을 명시해놓은 문서를 말한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계약서를 작성하면 300만~500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 혼전계약서를 쓰는 커플은 대부분 변호사 사무실을 찾거나 공증을 하는 게 아니라 부동산 계약을 하듯 두 사람이 합의한 사항에 도장을 찍는 정도다. 내용도 ‘귀여운’ 수준이다. ‘절대 각방 쓰지 않기’ ‘집안일은 5대 5로 분담하기’ 같은 생활 규칙에 관한 내용도 있지만 A씨처럼 이혼할 경우 재산분할 조건을 명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혼전계약서는 법적 효력이 있을까? 엄 변호사는 “재산문제, 재산을 제외한 두 사람 사이에 합의한 내용인지에 따라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고 답했다.
 

반려동물 2시간 산책 조항 어긴다면?

초혼인 커플은 계약서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지만 재혼인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재혼하는 커플들 사이에서는 혼전계약서를 작성하는 게 불문율이다. 많은 가사 전문 변호사들이 재혼을 앞둔 예비부부의 계약서를 작성한 경험이 있을 만큼 흔하다. 재혼 커플의 혼전계약서는 재산에 대한 조항을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서로 자녀가 있는 경우는 재산분할 문제에 민감해 온 가족이 계약서 내용을 간섭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해 전 강남 일대에서 알아주는 자산가인 남성이 재혼을 앞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어렵게 재혼 결심을 했는데 자녀들이 자꾸 반대하는 게 문제였다. 재혼할 여성이 아버지 재산을 받지 않는 조건이라면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했단다. 이 남성은 자녀들 바람대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 경우에는 법으로 강제할 수 없다. 혼인신고 전에 재산을 미리 포기하는 조항은 효력이 발생하기 어렵다.

이제 계약서를 살펴보자. 2016년 결혼한 B커플이 작성한 혼전계약서다. 두 사람은 계약서에 각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쓰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지키기로 한 내용 15가지를 썼다.

1 서로에게 상처 되는 말은 하지 않는다. 2 폭력은 절대 금물이며 대화로 해결한다. 3 절대 각방을 쓰지 않는다. 4 임신은 부부간에 상의 후 결정한다. 5 자녀는 2명 이상 낳을 것이며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 6 아이가 태어난 경우 부부가 번갈아 육아휴직을 한다. 7 부부간 잠자리는 최소 월 3회 이상 한다. 8 각자 아이·반려동물과 하루 2시간 이상을 보낸다. 9 토요일에는 반드시 부부의 시간을 보낸다. 10 청소 빨래 설거지를 비롯한 집안일은 5대 5로 분담한다. 11 추가적인 수입이 생기면 상대방에 알린다. 12 1회 10만원 이상 지출할 시 상대방에 알린다. 13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 이직을 원하면 상의 후 결정한다. 14 이혼할 경우 재산의 50%를 상대방에게 준다. 15 계약은 합의하에 5년마다 갱신한다.

B부부의 계약 내용을 살펴보면 부부의 생활 수칙에 대한 내용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 변호사는 “재산문제를 제외한 일반적인 생활 수칙은 법적 효력이 생긴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생활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부가 계약 내용을 여러 번 어겼다면 이혼 사유가 된다. 차관보끼리 하는 합의와 국가원수 간에 하는 합의의 무게가 다르듯 구두계약과 문서로 작성하는 계약도 차이가 있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내용을 문서로 만들었다면 부부가 내용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부부간에 합의한 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이 내용을 바탕으로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 법리에 어긋나는 내용도 법적 효력이 없다. 민법이 규정한 부부간 동거의무, 부양의무, 협조의무, 정조의무 등을 다하지 않는 내용은 서로가 약정했다고 해도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외도를 해도 탓하지 않는다’거나 ‘부부싸움 중 폭행을 당해도 신고하지 않는다’처럼 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내용은 법적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위의 계약서 7, 8, 9번 조항처럼 행동할 자유를 제한하는 조항도 법의 보호를 받기 힘들다. 이런 조항은 부부싸움만 부추길 뿐 실제로 얻는 이익은 없다고 봐야 한다.

부부가 계약으로 정한 생활 수칙을 법으로 보호받을 방법이 없진 않다. 민법이 정한 선량한 풍속에 위배되지 않은 선에서 규칙을 정하되, 어길 시 손해배상액을 정해놓으면 법원에서 인정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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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쓴 재산포기각서 지켜야 하나

14번처럼 재산문제를 언급한 조항은 어떨까? 재산과 관련한 계약은 공증이나 등기처럼 제3자가 공시하는 절차를 거쳐야 효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모든 계약에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혼전계약서에 ‘외도한 배우자는 전 재산을 포기한다’는 조항이 있다고 치자. 불행히도 배우자가 외도를 했고 상대방이 이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무조건 전 재산을 양도해야 할 것 같지만 법은 ‘노’라고 말한다. 재산을 미리 포기하는 것은 효력이 없어서다. 이 조항은 재산분할에 영향을 주기는 힘들지만 배우자가 외도했다는 증거가 된다.

재혼 커플이든 초혼 커플이든 이혼 소송에서 재산분할을 받으려면 재산 형성 기여도를 살펴본다. 결혼 전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은 부부 한쪽의 재산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물려받은 재산을 상대방이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면 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편이 결혼 전 부모님에게 20억짜리 빌딩을 받았다고 치자. 남편은 부모님의 재산을 믿고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반면, 아내는 빌딩을 관리하거나 직장에 다니면서 경제활동을 했다면 재산 유지에 기여했다고 본다. 전업주부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내 역시 가정생활에 소홀했다면 재산 유지에 기여했다고 보기 힘들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남편이 부모님에게 결혼 후 살 아파트를 물려받았다. 이 아파트를 두고 부부가 결혼 전 계약서에 ‘아파트가 한 사람의 명의로 되어 있지만 동의 없이 집을 팔지 못한다’고 쓰고 공증을 받았다. 그런데 명의자인 남편이 아내의 동의 없이 아파트를 팔았다. 이 경우 아내는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대로 계약이 무효임을 주장할 수 있다.

결혼식은 올렸지만 재산문제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살았는데 이혼하게 된 경우 재산분할 대상이 될까? 민법은 사실혼의 경우 혼인한 것과 똑같이 보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라도 사실혼 기간 중 재산 형성에 기여한 점이 인정되면 재산을 분할할 수 있다.

동거계약은 법적 효력이 있을까? 동거는 두 사람의 생활 형태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느슨한 형태의 혼인으로 간주한다. 동거 역시 사실혼으로 보고 위자료나 재산분할 소송에서 혼인의 효력을 인정받을 여지가 있다. 하지만 동성 커플간 동거는 혼인으로 볼 수 없다. 우리 민법에는 이성간의 결합만 혼인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 커플이 계약서를 작성한 후 동거하다가 헤어진 경우를 예로 살펴보자. 이들은 법이 인정하는 형태의 혼인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서에 위자료나 위약금을 써놨다면 소송으로 상대방에서 청구할 수 있다.

결혼생활 후 따로 사는 ‘졸혼’을 계약조항으로 썼다면 인정받을 수 있을까? 졸혼은 ‘선량한 풍속 위반’으로 간주돼 인정받기 힘들다. 부부간 동거의무를 저버린 계약으로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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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계약은 어떨까

부모자식 간의 계약인 효도계약도 살펴보자. 몇 달 전 배우 신동욱의 할아버지가 효도사기를 당했다며 손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취하한 해프닝이 있었다. 효도계약은 부담부증여계약으로 본다. 부모가 자녀에게 부동산 등 재산뿐 아니라 채무를 인수하는 것으로 보고 증여계약을 맺을 수 있다. 자식이 계약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부모는 증여를 취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들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조건으로 아파트를 물려주기로 했다고 하자. 아들이 계약대로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다면 부모는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 효도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되도록 재산과 조건을 명확하게 쓰는 게 좋다. 재산은 어떤 것이 있는지, 부양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등을 밝혀야 한다.

혼전계약서에 효도계약서라니 가족끼리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전문가들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밝히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엄 변호사는 “우리 사회는 가족 간 계약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다”며 “계약서를 쓰는 목적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당사자 간에 지켜야 할 원칙을 세우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가족 간 계약의 필요성을 당사자가 충분히 인지하면 그때부터 협의를 하는 것이 좋다”고.

밭을 일구려면 호미나 괭이 같은 도구가 필요하다. 도구를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것은 이것을 손에 쥔 사람이다. 호미는 밭을 갈 때 써야지 흉기로 써서는 안 된다. 계약서도 마찬가지다. 그 도구로 어떤 밭을 일굴지는 쓰는 사람이 판단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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