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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소은 아버지 이규천의 교육 철학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2019-01-17 09:51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수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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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란 아이의 성장 이야기를 들으면 절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아이 부모는 어떤 사람이고, 아이를 어떻게 키웠을까? 가수 이소은의 아버지 이규천 씨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엮어 근사한 교육서를 한 권 펴냈다.
16세에 EBS 창작가요제 참가를 계기로 대중가수가 된 이소은은 실력파 선배 가수들이 먼저 그 끼와 가능성을 알아봤다. 윤상, 이승환, 김동률 등과 함께 작업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가수로서 탄탄대로를 달릴 것 같던 그가 어느 날 홀연히 미국 로스쿨에 입학해 국제 변호사로 인생을 전환했다. 연예계 활동을 접고 공부에만 매진한 그녀는 지금 파리에 본사를 둔 ICC라는 국제중재법원의 뉴욕지부 부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의 인생 스토리는 많은 사람에게 영감과 자극을 줬다.

그녀의 언니는 피아니스트 이소연 씨다. 줄리어드 음대에서 8년간 전액 장학금으로 수학했고, 여러 콩쿠르 수상 경력이 있다. 뉴욕 시립대 대학원에서 음악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금은 동양인 최초로 신시내티 음대에서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소은, 이소연 자매는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서 각자 자신들의 삶을 선택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데는 아버지의 존재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항상 두 딸을 존중하고 민주적으로 대한 아버지의 교육 철학이 본인들이 어떤 결정을 하든 자신감이 되어 돌아오게 했고, 실패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힘을 키웠다고 한다.
 

두 딸 이야기 잘 들어주는 아버지

두 딸을 키워낸 교육 비법을 듣기 위해 이규천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약속 시간보다 여유 있게 도착한 그는 동갑내기 아내와 동행했다.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수오서재)의 저자는 이규천 씨지만, 두 딸을 함께 키운 건 두 사람인지라 인터뷰는 부부가 함께 진행했다.

먼저, 책을 내게 된 계기는 SBS <영재발굴단>이다. ‘아빠의 비밀’이라는 주제에 출연해 두 아이를 키워낸 이야기가 방송됐다. 당시 그는 ‘방목’이라는 키워드를 들려줬고,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잊어버려”라는 말로 위로했다는 것을 비법으로 공개했다. 책에는 그때 소개된 내용을 포함, 아버지로서 가져온 교육관과 가족을 화목하게 꾸린 이야기를 일기 쓰듯 담담하게 풀어냈다.

“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쓰려니 발가벗은 기분이 들었어요. 자녀 교육은 누구에게나 해답이 있고, 누구에게도 해답이 없는 문제잖아요. 그저 평소에 품었던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내려고 했습니다.”

아버지 얘기를 듣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어떤 아버지인지를 알아야 했다. 두 딸이 말하는 이규천 씨를 짧게 소개한다.

먼저 큰딸 이소연 씨에게 그는 강요나 비난의 말을 한 번도 하지 않는 아버지다. 명령어나 지시어를 사용하지 않는 그는, 늘 감탄하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동생과 잘 논다고, 첫아이를 가졌다고, 피아노를 치면서 강의도 한다고 칭찬한다. 이소연 씨가 가진 자신감은 딸을 향한 아버지의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딸 이소은 씨에게 아버지는 당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한 적이 없는 현명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딸들의 의견을 묻고 존중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결정이 아닌 조언만 해주는 민주적인 사람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이기도 하다. 시험을 망쳐서 좌절해 있을 때 “잊어버려”라고 말해주는 아버지가 있어 실패를 성공으로 만드는 힘을 갖게 됐다.

“두 딸이 고민이 있을 때나 힘들 때, 기쁠 때 제일 먼저 아버지를 찾아주면 고맙죠. 저도 모르는 게 많지만, 아이들이 ‘역시 우리 아빠가 최고’라는 말을 해주면 굉장히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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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은·이소연 자매

‘방목 교육’의 출발은 소유하지 않겠다는 마음

두 딸의 이야기가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그렇게 키울 수 있었는지 비결을 묻는 사람이 많다. 그런 질문을 하도 많이 받다 보니 이규천 씨는 혼자 곰곰 생각해보게 되더란다. 그리고 떠오른 단어가 ‘방목’이다.

“부모 역할이라는 것이 경험을 더 많이 한 사람이 경험치가 낮은 아이 입장에 맞춰서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권위를 없애야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을 주눅 들게 만들면 안 된다는 의미예요. 권위를 가지고 있되 탈권위를 해야 한다는 거죠.”

이 씨는 이 생각에 대한 근거로 소유라는 개념을 들었다. 본인이 낳았다고 해서 자식이 ‘내 것’ 혹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곁에서 듣던 아내도 이 말에 공감한다며 거들었다.

“종교적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자식은 하늘에서 키우라고 위임한 거라고 생각해요. 부모가 함부로 할 수 없어요. 아이들이 본인의 공간에서 스스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부모 역할인 것 같아요. 뭐든지 부모가 다 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부모 덕분에 두 딸은 어린 시절부터 30대 중반인 지금까지 부모와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어른이 된 지금도 “아빠, 카페 가서 얘기할까?”라며 데이트 신청을 한다.

“아이들과 대화하는 건 제게도 배움의 과정이에요.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인정해주는 과정이 좋아요. 제가 꼭 지키는 원칙은 제가 아는 건 최선을 다해 대답해주되, 모르는 건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하는 태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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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덕분에 내가 아빠가 됐다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는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지침서가 아니다. 이규천 씨의 치열했던 30대와 40대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 속에서 문득문득 드러나는 아버지로서 태도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

2013년 은퇴한 이규천 씨는 정치학 박사다. 현역에서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농림부문 R&D 전문관리기관장을 역임했다. 은퇴 후 2017년 여름까지 대학 석좌교수와 강사를 역임했다.

그의 인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교수직에서 파면되기도 했고, 적지 않은 나이에 두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가난한 유학생활을 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부담감과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무게로 힘든 시간이었다. 어린 자녀를 둔 그 나이대 아버지라면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야기는 젊은 아버지들이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다.

“그 지점에서는 집사람에게 고마워요. 돈 이야기를 안 해서 주눅이 덜 들었거든요. 책임감의 무게에 눌렸으면 이런 아버지 역할을 못 했을 수 있어요. 아버지를 책임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이규천 씨는 책을 쓰면서 본인도 인생을 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더러는 엉망으로 살았구나 싶은 부분도 있고,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서 박수를 쳐주고 싶은 부분도 있다.

“책을 내면서 온 가족이 추억 여행을 했어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 딸에 대한 기억이 저마다 다르더라고요. 서로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기억 속에 묻힌 시간도 떠오르고, 괜찮은 경험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아이를 키운 게 아니고, 아이들이 제가 아버지가 되게끔 만들어준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참아야 할 때도 있고 잊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런 과정이 절 인간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아직도 아버지가 되어가는 중이라는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아내가 이런 말을 해줬어요. ‘좋은 아빠란 매일 면도하는 것과 같다. 오늘 아무리 깨끗하게 면도해도 내일 다시 해야 하듯이 매일 관리해야 한다’고요. 미국의 어떤 교육학자가 한 말이라는데,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아요. 3일 정도 수염을 안 깎고 있으면 아프거든요. 적당한 시기에 깎아야 해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적당한 시기에 적절하게 돌봐야 해요. 깎아야 하는 시기나 방법에 대한 판단은 각자 나름대로 상황에 맞춰야겠죠. 아이의 결에 따라 맞춰 가는 노력은 부모가 꾸준히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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