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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라, 나답게 살기

김난도 ‘여자어른’에게 고함

2013-03-08 18:31

그가 말하면 현실이 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청춘필독서를 낸 김난도 교수는 차기작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에서 ‘가사노동에도 급여통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말에 응답해 한 은행에서 ‘주부 급여 통장’ 상품을 내놓았다. 청춘을 넘어 어른아이, 학생 멘토에서 국민 멘토로 성장한 그가 이번엔 오직 여자들에게만 하고픈 말이 있다고 한다.

지난 20일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베어홀, ‘란도샘’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행복과 여유가 느껴졌다. ‘북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 참석자들의 설렘과 들뜬 기운이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눈에 띄는 건 ‘엄마와 딸’. 오붓하게 손을 잡고 다정스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이들 모두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일까? 마치 동지처럼 단결한 느낌이다. 이날은 특별히 여성을 위해 란도샘이 강연을 열었다. 이름하여 ‘대한민국에서 여자어른으로 산다는 것’.

김난도 교수는 1997년부터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교수님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하는 그를 학생들은 ‘란도샘’이라 부른다. 2010년 말 출간한 에세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한국출판 역사상 최단기간 밀리언셀러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 책으로 그는 강단을 넘어 ‘국민 멘토’로 거듭났다. 최근 두 번째 에세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를 출간하고 다시 ‘란도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제 누군가 필요할 때 학생들은 ‘란도샘’을 찾고, 국민들은 ‘멘토 김난도’를 찾는다. 



어른, 얼우다

어른이라는 단어는 ‘얼우다’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 말은 ‘혼인하다’ 혹은 ‘성교하다’는 의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섹스, 결혼과 관계가 깊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집에 살면서 살림을 시작한다는 것, 그것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다. 강연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김 교수가 묻는다. 여성에게 결혼이란 무엇이냐고. 그리고 답한다. 여성에게 결혼이란 ‘왕국이면서 동시에 감옥이기도 하다’고. 

“여자 제자들이 저를 찾아와서 결혼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전 엄마같이 살지 않을 겁니다’라는 얘기예요. 그 얘기를 들은 엄마들도 답하기를 ‘그래 절대로 나처럼은 살지 말아라’입니다. 지난날 우리 사회의 여성들에게 결혼이란 매우 가혹했기 때문이죠. 물론 앞으로도 갈 길이 멀지만요.”(웃음)

남성이나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은 결혼하고 나서도 미혼이었을 때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배우자로서의 역할이 더해진다. 사회생활이라는 ‘삶의 절반’이 남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업주부들은 미혼기의 생활과 적지 않은 단절이 생긴다. 만나는 사람, 추구하는 가치, 관심 두는 대상이 크게 달라진다. ‘삶 전체’가 바뀌는 것이다. 

“제 아내만 해도 그랬죠. 학교 졸업하고 잘 다니던 직장을 결혼하면서 그만뒀고, 얼마 후에는 내 유학길을 따라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살림을 시작했어요. 함께 공부하기로 했지만 이내 큰 아이를 갖는 바람에 그나마 그만둬야 했죠. 결혼을 계기로 처녀 때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도 맞닥뜨려야 했어요.” 

주부에게 가정은 하나의 섬이다. 자기만의 왕국이 될 수도 있고, 창살 없는 감옥이 될 수도 있다. 더불어 안정과 고립을 함께 경험한다. 김 교수는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이 결혼과 동시에 ‘정체성’을 잃고 있다고 얘기했다.

“누구 아내, 누구 엄마, 어디 댁으로 불리다 보니, 어느 한 여성이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간호사가 자기 이름을 계속 부르는데 ‘저 사람은 왜 안 나타날까?’ 하고 혼자 생각했다는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플레이보이들이 주부를 유혹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라고 하더군요.”(웃음)

그만큼 이름이 불린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결혼해서 전업주부가 되어 ‘정체성’을 잃는 것 못지않게 살아가기 힘든 경우가 바로 워킹맘이다. 가정의 문제는 오롯이 여성이라고 얘기하는 대한민국 남편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느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워킹맘의 64%는 전업주부가 되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업주부의 88%는 워킹맘이 되기를 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워킹맘이건, 전업주부건 각자의 위치에서 정체성의 혼돈을 겪으며 서로의 삶을 동경한다. 이러나저러나 대한민국 여성에게 결혼이란 결국, 혼돈의 연속이라는 얘기다. 

당당하게 가사노동의 대가를 요구하세요 

전업주부가 취업주부보다 보람 있는 것은 회사에 가지 않아서 더 한가할 때가 아니다. 여느 여성 직장인들보다 더 바쁘고 부지런하게 나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시간을 들이고 있다는 긍지를 ‘스스로’ 가질 때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업주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까? 강연을 통해 김 교수는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고 했다. 자기 책상, 자기 시간, 그리고 급여 통장. 

“가구 소득의 일정 부분을 가사노동의 대가로 떳떳하게 이체 받을 자신의 통장이 있어야 해요. 늘 빡빡한 가계부의 수지를 맞추느라 후순위로 밀렸던 자신에 대한 투자를 좀 더 당당하게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설령 그 돈을 살림에 보태거나 시댁과 친정에 보낸다 할지라도 그것은 생활비에서 빼낸 것이 아니라 ‘내 돈’을 보내는 것이라고. 아울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사 역시 가치 있는 노동의 한 형태이므로 스스로에게 물질적으로 보상해 줘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러자 김 교수에게 한 여성이 울었다. 교수님은 부인에게 급여 통장을 만들어주셨냐고. 김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처음에는 웬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고 타박을 들었단다. 하지만 이제는 통장을 볼 때마다 아내가 무척이나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남편들이여, 아내의 내조에 감사한다면 말로만 하지 말고 통장으로 증명해보이세요! 이땅의 전업주부들이여, 그리고 나의 아내여 자부심을 가지세요. 당신을 가장 사랑하고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손길 아래 먹고 입고 자며 살아가고 있어요.” 

얼마 전 김 교수가 강조한 전업주부의 가치가 실제 우리사회에 반영되기도 했다. 지난해 말 은행에서 이와 같은 상품이 마련돼 큰 화제를 모은 것. 그뿐만 아니라 주부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그리고 화장대가 아니라 책상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거기서만큼은 커피를 마시든, 책을 읽든, 라디오를 듣든, 자신의 외모가 아니라 내면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독립된 ‘공간의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제 공간이 마련됐다면 다음은 ‘자기 시간’이에요. 가사노동을 하다 피곤해지면 소파에 잠깐 앉아서 TV를 보는 식의 시간은 자기 시간이라고 할 수 없어요. 나를 나답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일, 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일을 위해 하루 50분만이라도 자기 시간을 가지세요.” 

 

대한민국 ‘워킹맘’에게 고함

가사노동이 주부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 우리나라 가정문화에서는, 직장에 다닌다고 해서 주부의 의무가 경감되진 않는다. 또한 직장에서도 돌봐야 할 가정이 있다는 이유로 업무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주지 않는다. 사회에서는 가정에 충실하면서 회사에서도 승승장구 승진을 거듭하는 여성 임원들을 치켜세우며 평범한 여직원들을 무능력자 취급한다. 워킹맘들은 가장 듣기 싫은 “엄마 오늘 또 늦어?”와 “역시 여자는 이래서 곤란해”라는 말 사이에서 방황하다 길을 잃고 만다. 우리나라에서 워킹맘들은 늘 ‘시간’에 쫓긴다. 대한민국 남편들은 아내를 잘 돕지 않는다. 김 교수는 아직까지도 이 사회에는 가사의 몫이 여성의 몫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죽하면 워킹맘들은 퇴근 후 다시 가정으로 출근한다는 소리들을 하겠어요. 다른 모든 일과 달리 육아는 노동이 아니고 양육자의 영혼으로 이뤄지는 것이잖아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교육경쟁이 시작되고요. 워킹맘들은 그때부터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더욱 커지기 마련이죠.” 

전업주부인 엄마들은 학교와 학원을 중심으로 강력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정보를 교환한다. 거기에 직장 다니는 엄마가 끼어들 틈은 별로 없다. 아이의 학업성취도가 전적으로 엄마의 책임으로 치부되는 분위기 속에서, 워킹맘들은 ‘나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피곤하다. 피곤해도 너무 피곤하다. 해야 할 일의 절대량이 너무 많아 육체적 피로가 떠나지 않는다. 그 많은 일을 척척 다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감정적 피로가 늘 붙어다닌다. 

“어느 취업주부에게 언제 정체성의 위기를 느끼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데 정체성을 운운하는 것은 사치라는 거예요. 이쯤 되면 더 이상 여성들 개개인의 분투와 죄책감에만 떠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업무시간 이외의 초과근무가 당연시되는 직장문화, 아이 성적은 엄마가 할 나름이라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 등 보육과 학교 현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언론에서는 꾸준히 캠페인을 펼치고, 교육제도를 개선해나가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단다. 

“우선 대한민국 워킹맘들이 마음의 부담을 덜어야 해요. 자신에 대한 여러 가지 요구가 버거울수록,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포기하는 연습을 해야죠. 교수로서 교육현장에서 오래 일했고, 내 아이들을 직접 가르쳐보기도 했지만, 학생의 학업성취에 대한 엄마의 기여도는 예상보다 훨씬 적거든요.” 

김 교수는 아이들은 제 공부를 제가 한다며, 아무리 엄마가 닦달하고 동동거려도 어떨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니 워킹맘들은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에만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한다. 

지금 시작하라 가장 ‘나답게 되기’를!

김 교수는 전업주부든, 워킹맘이든 대한민국에서 기혼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잃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이름을 찾고, 정체성을 찾아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언제 가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며 모든 판단의 기준은 ‘자신’에게 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다. 

“성장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예요. 원초적인 기쁨이거든요. 우리가 동물팡 게임을 하면서 끊임없이 하트를 보내는 것은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에요. 게임 속 성장을 알림으로써 스스로 쾌감을 느끼는 거죠. <파워레인저>, <포켓몬> 등의 만화를 아이들이 왜 좋아하는지 아세요? 바로 변신하고 성장하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인간에게 성장은 중요한 문제죠.” 

그렇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하지 않았는가. 그 말인즉, 배움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알고, 그것으로 성장하라는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기혼 여성들이여, 당신은 지금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전업주부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신없는 워킹맘이라고 해서 자책하며 자신의 가치를 낮출 필요도 없다. 그대들은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더 낫게 만들 수 있도록 살아가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여자사람이다. 

“내가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어제보다 나은 ‘나’로 한 뼘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자신이 될 수 있는 최선의 자기가 되도록 노력하세요. 비록 세상을 뒤집어놓을 큰 변화를 만들어내진 못하더라도, 조금씩 더 새로운 ‘나’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다면, 남들의 인정은 필요한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연봉이나 직위, 혹은 자식이나 배우자의 성공이 아니라 내가 조금씩 배우고 성장하면서 더 풍요로운 존재가 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의 평판이 아니라, 나라는 이름의 초인에 끊임없이 다가가려는 시도들이 나의 가치를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시도하는 그 무엇이다. 그 시도는 항상 ‘조금씩’ 이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매일’ 조금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간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은 가치 있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을 수 있는, 당신은 가치 있다. 여성들이야말로 담대한 꿈을 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꿈을 향해 조금씩 흔들렸으면 좋겠고요. 그렇게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되거든요.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부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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