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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엄마 김민숙의 꼴찌 탈출기

2013-02-18 15:06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 영어 몰입 교육이 시작되고, 한 달 사교육비가 천만 원을 웃도는 요즘. 한글도 못 떼고 초등학교에 입학해 4학년 때까지 책 한번 펴본 일 없는 아이가 중·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 기적의 비결은 다름 아닌, ‘엄마표 공부법’이었다.

나는 사교육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교육을 시킬 수 없어서, 아이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길을 택한 엄마다. 남편의 갑작스런 사업 실패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한창 엄마의 관심이 필요한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들 재웅이를 돌봐주지 못했다. 재웅이는 한글도 깨치지 못한 채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글을 몰라서 알림장을 쓸 때 선생님이 쓴 글씨를 그림 그리듯 따라 알림장을 정도다. 매일 새벽까지 일해야 했던 나는, 재웅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렸다. 하지만 당장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는 게 급했다. 재웅이는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가고나면 혼자 동네 고양이를 쫓아다니며 노는 아이가 됐다. 감사한 건 그럼에도 우리 모자가 긍정의 마음을 잃지 않았다는 거다. 힘들다고 하면 더 힘들어질 뿐일 테니, 미래의 희망을 말하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했다. 집 안에 차압 딱지가 붙어 집이 압류될 때도, 월세를 내지 못해 집을 비워줘야 할 때도 나는 낙심하지 않았다. 

아이의 교과서, 펴본 적 있으세요?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과외를 시킬 형편이 못됐다. 성적이 형편없는 재웅이를 맡아줄 선생님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출퇴근길, 아이의 교과서와 전과를 싸들고 다니며 모든 과목을 10번 이상 반복적으로 학습했다. 엄마인 내가 재웅이를 맡아서 가르칠 생각이었다. 기왕에 가르치려면 공부할 내용을 미리 완벽하게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엄마가 아닌 선생님으로서 믿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르치는 나부터 재미있게 공부하면 이 마음이 재웅이에게 전해지리라 생각했다.  

재웅아. 이리 와봐. 오늘부터 엄마랑 같이 공부하자. 엄마가 낮에는 바쁘니까 저녁에 집에 와서 같이 공부하는 거야. 알았지?”

첫날은 교과서를 펼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엄마, 나 진짜로 (공부하기) 싫은데.”

“아냐, 재웅아, 공부 정말 재미있어. 엄마가 해보니까 정말로 재미있어. 너는 듣기만 해. 엄마가 읽어줄게. 잘 들어보자, 응?”

나는 바로 국어 교과서를 덮었다. 그러고는 교과서 속 내용을 이야기 들려주듯 말하기 시작했다. 교과서를 읽을 때는 신경도 안 쓰더니 이야기를 들려주듯 말하기 시작하자, 재웅이는 미세하게나마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나는 딴청 피우는 아이를 곁에 앉혀두고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는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아이를 혼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 1학기를 다 보내버렸고, 본격적인 공부는 그 다음부터였다. 우선 계획을 세웠다. 공부 시간은 하루 2시간, 퇴근 후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였다. 재웅이는 밥 달라, 물 달라, 딴청을 계속 피웠지만 나름대로 잘 따라와주었다. 

돈이 있어야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는 무리하지 않았다. 조급해하지도 않았다. 계획대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그리고 천천히 공부해나갔다. 반복 학습 위주였는데, 단원의 개념을 모르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고, 몇 날 며칠이고 다시 했다. 나와 공부를 시작한 뒤, 재웅이는 처음으로 학교에서 커닝을 의심 받았다. 갑자기 아이가 문제를 풀고 점수가 오르자 아이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행인 건 재웅이가 커닝 자체가 뭔지를 몰랐다는 거다. 점수가 안 좋다고 혼낸 적이 없으니 재웅이는 그동안 커닝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재웅이를 향한 나의 변함없는 믿음이 재웅이를 커닝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커닝하지 않고 점수 올리는 기쁨을 자연스레 배우게 해주었다. 

힘들게 공부를 하고 나면 그만큼 보상이 따른다는 사실은 재웅이를 자극했다. 이제 재웅이는 공부하는 자세부터 달라졌다. 약속한 공부 시간이 되면 먼저 책을 펴고 앉아 있다. 학교에서도 달라졌다. 새로운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반에서 1·2등 하는 아이들이 시험지를 가지고 와서 재웅이에게 말을 걸고 서로 점수를 비교하면서 자연스레 친해졌다. 그동안 ‘어리바리’, ‘바보’라고 놀림을 받던 재웅이는 5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치른 뒤 우등생이 되어 있었다. 나도 아이를 가르치며 달라졌다. 그동안 나는 빨리 돈을 벌어 아이들을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재웅이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새삼 깨달음을 얻었다. 공부는 꼭 돈이 있어야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이들의 소중한 시간은 내가 돈을 다 벌 때까지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아이들은 약해요. 특히 칭찬에 약해요
아이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묘안을 생각해 냈다. 바로 ‘칭찬 릴레이’였다. 당장 주위 사람들에게 “재웅이가 예전에는 공부를 못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은 공부를 무척 잘하게 되었으니, 지나가다 재웅이를 보면 칭찬 한마디를 꼭 해달라”고 부탁했다. 많은 분들이 길에서 재웅이를 만나면 진심으로 기뻐하며 “훌륭하다”, “대단하다” 격려해주셨다. 이 사실은 물론 재웅이가 모르게 했다. 주위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받은 재웅이는 스스로 공부에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스스로 알게 된 것이다. 

재웅이는 중학생이 되자 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많은 아이들이 선행 학습을 하고 중학교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그 차이를 좁히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처럼 엄마랑 함께 공부하기를 원했다. 재웅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빨리 들어와. 공부해야지.”

꼴등만 하다 공부를 잘하게 되니 주변에서 재웅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그런 시선 속에서 재웅이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꼈다. 아이는 “공부하지 말라”는 소리를 제일 무서워하게 됐다. 부모로부터 방치되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재웅이는 방학이 되자 동네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방학 기간이라 늦게 가면 자리가 없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도서관 앞에 줄을 서서 표를 받고는 집에 돌아와 책들을 챙겨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다시 갔다. 재웅이는 하루 종일 공부하고 저녁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개학 후 내가 가르치는 것에 한계를 느낄 즈음 재웅이도 그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재웅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동네 독서실에 다녔다. 독서실이 끝나는 새벽 2시까지 꼬박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는 물러서서 아이를 믿고 지지해줄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 이거 모르겠지? 이제 내가 설명해줄게. 수학 선생님이 내가 문제 푸는 걸 보고 창의성 수학을 아주 잘한다며 여기에 있는 게 아깝다고 하셨어.”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칭찬에 약한 재웅이는 그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수학 과목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보다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선생님이 공부에 더 큰 도움이 되었다. 

어느 날 방에 들어가 보니 재웅이가 의자에 올라서서 천장에 뭔가 열심히 붙이고 있었다. 올려다보니 ‘기말고사 전교 1등 한다’는 글귀가 적힌 종이였다. 재웅이는 한 과목당 10번씩 읽으면서 모든 시험 범위를 다 외우는 듯했다. 

중학교 때 일이다. 재웅이가 학교 시험에서 전 과목 100점을 받았다. 그동안 함께 공부했던 순간, 힘들게 공부하며 울고 웃었던 순간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재웅이는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성적이 떨어져본 적이 없다. 밑에서부터 시작해 가야 할 길이 멀었기에 항상 많은 노력을 했고, 그래서 항상 성적이 오르기만 했다. 그게 아이에게 ‘하면 된다’는 믿음을 주었다. 

“엄마, 내가 바닥도 쳐보고 최고도 되어보니까 역시 최고가 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 앞으로 존재감 있는 사람으로 살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좋겠어요.” 

꼴찌라고 슬퍼하지 마라. 꼴찌의 강점은 이제 오를 일만 남았다는 거다. 사교육을 안 받아서, 돈이 없어서 성적이 안 나오는 게 아니다. 아이의 교과서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칭찬한 게 언제인지 되짚어보라. 늘 그렇듯이 잃어버린 동전은 주머니에 있고, 등잔 밑이 가장 어둡다. 

 ‘엄마와의 공부’로 사교육 이기는 법
1 내 아이를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가르치는 것이다.
2 아이가 엄마에게 모르는 것을 질문했을 때 버벅거리거나 당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모든 문제를 막힘 없이 풀 정도로 교과 내용을 집중해 공부해야 한다.
3 공부계획표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세우고 함께 관리하라. 공부는 습관이다. 엄마가 바쁘다고 내일로 미루면 리듬이 깨진다.
4 백 번 참고도 한 번 화내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아이를 가르치면서 화가 난다는 것은 지나치게 욕심이 앞서 있다는 것이다.
5 100%를 달성하려면 120%의 목표가 필요하다. 나는 재웅이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 목표부터 설정했다.

과목별 공부법
국어 - 국어 시험을 치를 때마다 해당 교과서를 10번 이상 읽는다. 본격적인 단원 공부에 들어가기 전 교과서에서 읽은 내용을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들려준다.
수학 - 수학은 논리적인 학문이다. 문제가 있으면 풀이방법이 있고, 그 방법을 익혀 풀어가다 보면 정답이 나온다. 재미를 느낄수록 성취감이 높아진다. 나는 재웅이에게 문구점에 다녀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며 거스름돈으로 계산법을 가르쳤다.
역사 - 사극 드라마를 활용하라. 드라마에서는 왕의 이름이나 시대, 사건 등이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펼쳐진다. TV 옆에 한눈에 볼 수 있는 연대표를 붙여두고 세계지도도 벽면에 나란히 붙여둔다.
과학 - 과학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실험을 직접 해보았다.



엄마 김민숙은…
한 달 사교육비 천만 원 시대,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 꼴등하던 아이를 전교 1등으로 만든 김민숙표 교육법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낼 형편이 되지 않아, 일을 마치고 붙들고 앉혀 함께 공부한 게 지금은 ‘모두가 궁금해하는 비법’이 됐다. 그녀의 교육법은 EBS <공부의 왕도>, <교육 화제의 인물> 등 TV 방송과 일간지 등 각종 언론을 소개됐다. 한겨레신문에 교육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 KBS 제1라디오 <교육을 말합시다> 프로그램에서  ‘별난 엄마의 엄마표 교육법’ 코너를 진행하고 있으며, 인천시 교육청 학부모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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