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벤트
  • 동영상
  • 카드뉴스
  • 조선뉴스프레스멤버십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LIVING
  1. HOME
  2. LIVING
  3. money

중산층의 기준

eye; society

2014-07-22 14:09

얼마 전에 현대경제연구원에서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표했다. ‘중산층이란 어떤 사람들인가’라는 설문조사에서 ‘한 달에 515만 원을 벌고, 35평 아파트에 살면서 6억 원의 자산을 가진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515만 원을 버는 사람은 몇 %나 될까? 6억 원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또 몇 %나 될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의 젊은 감독 양야조우(楊亞洲)의 영화 가운데 <미꾸라지도 물고기다>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비록 더러운 진흙 속에 살지만 미꾸라지도 엄연히 맑은 물에서 사는 송어나 먼 바다로 나갔다가 목숨을 걸고 태어난 곳으로 돌아온다는 연어와 같은 물고기이다. 그렇지만 흔히 사람들은 미꾸라지도 물고기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정작 미꾸라지 자신은 과연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일자리를 찾아서 무작정 도시로 온 농민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농촌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중국의 다른 점은, 중국에는 호구라는 제도가 있어서 농촌에서 도시로 거주지를 옮기려면 반드시 행정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농민공이란 정부의 허가 즉, 도시에서 살 수 있는 호구 없이 불법으로 도시에 와서 사는 농민들을 말한다. 하지만 기술도 경력도 호구도 없는 농민공들은 막상 도시에 와도 번듯한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 영화의 주인공도 도시에 와서 힘겨운 생활을 견디다 못해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들과도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은 이렇게 독백한다. “내가 원한 것은 아주 소박한 꿈이었어. 가족들이 살 수 있는 집과 직장, 약간의 돈 그리고 차도 한 대 있으면 더 좋겠지. 그런데 내게는 아무것도 없어.” 

주인공은 왜 그렇게 소박한 꿈마저도 이룰 수 없었을까?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꿈이다. 중국 농민공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이 보장된 노후를 꿈꾸는 부모들,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을 피해 정년까지만이라도 일하고 싶은 장년층들, 보수가 얼마든 정규직 일자리를 꿈꾸는 청년들, 이 모두에게 꿈은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꿈인 것이다. 

중산층, 당신은 과연 누구인가?
지금 내가 주변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 또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산층으로 살다가 중산층으로 죽고 싶다’이다. 그런데 도대체 중산층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과연 어떻게 살면 중산층일까? 

학술적으로는 중위 소득자, 즉 우리 사회의 구성원을 모두 100명이라고 가정할 때 50번째 사람의 소득을 기준으로 50~150%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중산층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중산층의 비율이 전체 국민의 70%에 이르는, 꽤 중산층이 두터운 나라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이 사람들 가운데 정작 자기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내가 나를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정부에서는 자꾸만 나더러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중산층에 대한 보고서에는 중산층이란 ‘한 달에 515만 원을 벌고, 35평 아파트에 살면서 6억 원의 자산을 가진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응답자들의 대답을 평균으로 계산한 결과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515만 원을 버는 사람은 몇 %나 될까? 6억 원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또 몇 %나 될까? 월 소득이 500만 원 이상이면 중위 소득자의 50~150%가 아니라, 최상위 15% 수준이다. 말하자면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뜻이다. 우리 국민들이 지나치게 욕심이 많아서일까? 우리 국민들이 행복의 기준을 오직 돈에만 두기 때문일까? 물론 이도 저도 아니다.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이 높은 이유는, 설령 지금은 내가 중산층에 속할지라도 앞으로 중산층에서 몰락할 위험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보면 폐지나 재활용품을 모으며 다니는 노인들이 과거에 비해 부쩍 늘어난 것을 보게 된다. 무상급식이나 노인연금 같은 복지정책들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굳이 어느 편을 들고 말고 할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복지 수준도 과거에 비해 많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선진국보다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국가와 사회가 나의 노후를 보장해주지 못하고, 예기치 못한 사고나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하니 스스로 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나의 노후를 스스로 책임지려 해도 늘어나는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인 데다가, 정리해고니 명예퇴직이니 해서 고용의 불안정성은 높아만지니 책임질 도리가 없다. 이런 불안감이 현재의 중산층 생활뿐 아니라 미래의 중산층 생활까지도 가능해야만 진정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적어도 6억 원 정도의 자산을 미리 준비해둬야만 노후에 폐지는 줍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는 기대 수명 100세 시대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그다지 기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인생의 절반을 소득 없이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소득의 2.5%를 기부하고 1년에 3.5회 정도는 자원봉사 활동을 해야 중산층이라는 응답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보통 사람들이 그런 정도의 사회적 의무는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의미지만,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부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내 미래가 불안하니 그럴 여유가 없는 것이다.

중산층의 몰락, 그다음은 무엇일까?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이 너무 높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많은 국민들이 자신을 중산층이 아니거나 중산층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중산층의 붕괴가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중산층이야말로 그 사회가 무너지지 않게 버텨주는 버팀목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언제나 모두 사람이 똑같이 평등하고 똑같이 풍요로운 사회를 꿈꾸어왔다. 물론 꿈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빈곤과 불평등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현실이 불평등하다 하더라도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에서는 빈곤층도 중산층으로 상승할 수 있는 희망이 크고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빈곤층도 자신이 속한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중산층으로 상승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상류층도 뜻하지 않게 지위가 하락하더라도 빈곤층으로 바로 떨어지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불안감을 덜 느낀다. 이런 사회에서는 당연히 사회구성원들의 소속감이 높고 구성원들 간에 예의와 존중이 넘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중산층이 몰락해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빈곤층이 상류층으로 상승할 기회나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희망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류층 역시 자칫하면 곧바로 빈곤층으로 떨어지고 말기 때문에 언제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당연히 구성원들 간에 불신과 갈등이 쌓이고, 없는 자에 대한 경멸과 있는 자에 대한 분노가 작은 빌미만 있으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의 복지 국가들에서는 국민들 상호간의 신뢰지수가 0.7이 넘는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신뢰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보다 낮은 0.3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17%에 이른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를 늘리는 데 쓰여야 할 소중한 자원들이 빈부 갈등, 노사 갈등, 이념 갈등 때문에 헛되이 사라지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개미귀신이 곤충들을 잡아먹는 장면이 나온다. 개미귀신이란 명주잠자리 애벌레의 다른 이름이다. 개미귀신은 모래밭에 절구 모양의 둥지인 개미지옥을 만들고 그 밑의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미끄러져서 떨어지는 개미 등의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모래지옥에 빠진 곤충들은 당연히 온 힘을 다해 빠져나가려고 애써보지만, 흘러내리는 모래에 미끄러져 다시 떨어지고 만다. 결국 지쳐 더 이상 아무 힘도 남지 않으면 그때 개미귀신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빈곤과 양극화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쳐보았을 터이다. 그러나 자꾸 무너져 내리는 개미지옥처럼 우리 사회의 현실은 그들의 몸부림을 헛되이 만들고 있다. 중산층이 서로 돕지 않으면, 누구도 혼자의 힘만으로는 이 개미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조준현 교수는  
부산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이자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이다. <중산층이라는 착각>(위즈덤하우스), <사람은 왜 대충 합리적인가>(을유문화사), <고전으로 읽는 자본주의>(다시봄), <19금 경제학>(인물과사상사) 등 경제 관련 서적을 펴냈다.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글쓴이 :      비밀번호 :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