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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의 앤티크 스타일 24]식탁 위의 품격, 스털링

2018-10-11 16:41

글 : 백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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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리스털 위에 스털링을 조각한 화병(빅토리안)
2) 스털링을 조각한 디캔터(아르누보)
3) 에칭 디너 접시와 수프볼(빅토리안)
4) 티파니 스털링 커트러리 세트(1905년)
5) 스털링 오버레이 와인잔(빅토리안)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가을임을 실감하게 한다. 가을 하면 생각나는 많은 것 중에 은은한 향이 배어나오는 따뜻한 차 한 잔이 떠오른다. 그리고 차를 담아내는 예쁜 차 세트가 있는 티 테이블을 떠올릴 수 있다. 차와 관련한 테이블 세팅에서는 도자기 제품을 주로 사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유럽에서는 은으로 된 제품이 더 격조 있는 테이블웨어로 인정받았다. 은은 금속 중에서 열전도율이 가장 높기로 유명하다. 손잡이 부분에 열을 차단하는 다른 재질을 쓰지 않고서는 차를 우려낼 때 손잡이를 직접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통 우리가 접하는 은 티포트 손잡이는 최상품인 경우 상아로 되어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고급 재질의 장미목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은의 특성인 높은 열전도율은 찻잎을 순간적으로 확 퍼지게 함으로써 다른 재질의 어떤 포트로 끓인 것보다 홍차를 더 맛있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고대부터 왕족이나 귀족들은 비싼 찻잎을 중국에서 수입해 귀하디귀한 은 포트에 우려내서 마셨다. 차와 관련된 아이템뿐만 아니라 은은 오랫동안 귀족의 생활을 빛내주는 신분의 아이콘이었고, 산업혁명으로 중산층이 늘어나기 시작한 19세기부터는 스푼, 나이프, 포크 등 수많은 커트러리가 식탁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이렇듯 화려하기만 한 순은이지만 일상용품으로 손쉽게 쓰기에는 다소 불편한 점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즉, 그릇이나 커트러리로 쓰기에는 강도가 약하고 색이 쉽게 변한다는 점이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구리를 넣은 합금 형태인 스털링을 만들어 썼다. 마치 조선시대 우리 조상이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 유기로 밥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을 만들어 썼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당시 은에 구리를 넣어 만든 스털링의 은 함유율은 은본위제도라는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국가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 지금의 금과 같이 은이 곧 경제의 근간이었던 유럽에서 은의 성분 표시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1300년경부터 영국에서 국가가 은 함량을 보증해주는 ‘홀마크’ 제도가 생긴 이유다. 소비자의 눈으로 어떤 금속을 얼마 비율로 썼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국가가 보증해주자는 취지였다. 국가에서도 엄격하게 품질보증과 유통에 직접 관여할 정도로 은은 귀한 것이었기에 귀족 가문의 은제품 관리 역시 엄격했다. 귀족 가문의 남녀 고용인을 통틀어 가장 높은 집사가 와인 셀러와 함께 은식기의 총괄 관리를 맡았다. 은식기를 닦고 보관하는 일을 했으며 일일이 수량과 보존 상태를 점검했다. 은식기는 잠금 장치가 있는 특별한 장에 보관했고, 귀족 부부가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경우에는 은행 금고에 보관하기도 했다.

홀마크 제도는 유럽 각 나라에서 여전히 시행하며 소비자로 하여금 은의 비율에 대한 보증을 해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의 모든 은 제품은 은 100%가 아닌 은과 구리의 합금이지만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순은과 스털링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각 나라의 스털링의 합금 비율은 어떻게 될까? 먼저 영국은 95% 은에 5% 구리를 섞어 스털링을 만들었으며 이것을 표시하는 홀마크와 함께 제작년도와 제작자를 표시하는 마크를 제품에 나란히 표시했다. 프랑스도 비슷하게 97.5% 은에 2.5% 구리를 섞었으며 2개 홀마크로 합금 비율과 제품을 보증했다. 그 외에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등 중유럽에서는 80% 은에 20% 구리를 합금했다. 이런 비율로 만든 유럽 각국의 스털링은 아직까지 남아 아름다운 테이블 세팅을 연출하는 데 큰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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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털링 오버레이 화병(아르누보)
2) 스털링 트리밍의 크리스털 디너 접시(아르데코)
3) 마더 오브 펄 손잡이의 프렌치 스털링 커트러리 세트(19세기 초)
4) 앰버색 크리스털 와인잔(아르누보)
5) 스털링 케이크 서버(19세기,티파니)
6) 스털링 샌드위치 서버(빅토리안)
7) 스털링 샌드위치 서버(빅토리안)
8) 스털링 마카로니 서버(19세기)
9) 스털링 포도 가위(빅토리안)
10) 스털링 머스터드 스푼(19세기, 티파니)
11) 스털링 멜론 스푼 (빅토리안)
12) 프렌치 푸아그라 서버(19세기 초)
13) 상아 손잡이의 오리지널 케이스에 수납된 프렌치 스털링 커트러리 세트(19세기 초)
14) 148pc 프렌치 커트러리 세트와 손잡이가 상아로 마감된 오리지널 가죽 케이스(19세기 초)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때 아닌 숟가락 논쟁이 뜨겁다. 은수저, 금수저, 흙수저 등으로 계층을 나누며 그와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다. 흔히 부유한 가정 출신의 사람을 말할 때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말을 오랫동안 써왔다. 이 말은 예부터 귀족 자식들이 아니고서는 값비싼 은식기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나온 말이다. 요즘에도 백화점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진열되어 있는 스털링 제품의 가격은 여전히 고가여서 선뜻 손이 안 가니 은식기는 예나 지금이나 귀한 몸인 것은 사실이다. 산업혁명이 무르익었던 빅토리아 시대에는 자수성가한 중산층이 오랜 기간 귀족의 특권이었던 집에서 하는 파티를 따라 즐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상류사회 생활을 과시하기 위해 오랜 열망이었던 은으로 된 커트러리 구입에 적극 나섰으며, 빅토리안 시대를 커트러리의 천국으로 이끌었다. 부드러운 과일의 과육을 먹을 수 있도록 디자인한 끝이 뾰족한 스푼과 음료를 젓는 기능과 스트로 기능이 함께 있는 스털링 빨대, 앙증맞은 크기의 머스터드 스푼, 얼음 집게, 샌드위치 서버 등 모두 스털링으로 만든 그 시대 풍요의 상징들이다.

손님 초대에 필수 용품이던 커트러리 세트는 점점 그 사치스러움을 더해갔다. 심지어 한 세트에 1000pc가 넘는 스털링 커트러리 세트가 고급스러운 상아 손잡이로 장식되어 만들어졌고, 이것으로 화려하게 꾸민 테이블은 식탁 문화의 절정을 이루었다. 이렇듯 화려했던 식탁 문화가 19세기 산업 부흥기에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접대하는 가정에서의 파티 문화가 있었다. 남편 사업상 인맥관리는 모두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곳에서 성과를 맺었다. 안주인은 한 달 전부터 초대할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냈고, 정성껏 마련한 음식은 격조 있는 스털링 테이블웨어에 담겨 빛을 발했다. 아내는 이렇듯 가족을 위해 바깥세상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는 남편을 도와 가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자수성가한 신흥 중산층 남편과 아내들은 ‘바깥사람’과 ‘안사람’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각자 역할에 충실했다. 열심히 살며 가정을 일구었던 19세기 유럽 부부들의 삶의 형태가 요즘 우리 생활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때보다 훨씬 복잡해진 우리 일과가 이제는 손님 초대는커녕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끼 식사에서 가족의 행복이 시작될 수 있다는 소박한 지혜를 안다면 ‘안사람’이 먼저 내 마음에 쏙 드는 멋진 식탁을 꾸며 행복한 스위트 홈을 가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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