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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의 앤티크 스타일 23]꽃과 화병 그리고 가을바람

2018-09-14 15:18

글 : 백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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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발트블루 줄무늬 저그 겸 화병(아르누보)
2) 마름모 무늬의 선이 아름다운 화병(이느누보)
3) 핸드 블론 코발트블루 저그(아르누보)
4) 백일홍 가지가 코발트블루와 아름답게 어울리는 저그 겸 화병(아르누보)
5) 백일홍 꽃과 가지 그리고 심플한 라인이 멋진 저그 겸 화병(빈티지)

몹시 더웠던 여름을 뒤로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슬며시 가을꽃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엄마는 정원에 꽃을 정성으로 가꾸셨다. 철마다 예쁜 꽃이 끊이지 않았고 나비와 벌도 자연스레 찾아와 어우러졌다. 모든 꽃이 저마다 피어나는 5월에는 찔레도 흐드러지게 피어나 은은한 자태와 향기로 우리를 취하게 만들었다. 찔레가 지고 나면 빨간 덩굴장미가 자리를 바꾸었고, 정원 곳곳에서 꽃의 향연이 이어졌다. 채송화·붓꽃·나팔꽃·다알리아·칸나 그리고 백일홍…. 이 꽃들의 향연은 엄마가 마당에 핀 꽃으로 완성한 꽃꽂이를 통해 집 안으로 이어져 집을 언제나 화사하게 만들었다. 거실 반닫이 위에는 철마다 다른 꽃이 놓여 들고 나는 우리를 마중하고 배웅했다. 생각해보면 엄마의 꽃꽂이는 일본식 꽃꽂이였고 나름 정해진 형식이 있어 간결한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엄마의 정성이 가득했던 정원, 꽃이 있는 거실과 식탁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토닥토닥 어루만지며 ‘이제 네가 어른 노릇할 차례다’라고 격려한다. 그리고 꽃과 함께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 추억이 이제는 훈훈한 삶의 온기로 남아 어느덧 연로해지신 엄마 아버지를 기꺼운 마음으로 따뜻이 보살피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격식을 강조한 엄마의 일본식 꽃꽂이와는 달리 나는 선이 자연스러운 꽃꽂이를 좋아한다. 꽃집에서 만날 수 있는 화려한 꽃보다는 정원의 소박한 야생화 몇 송이가 더 마음에 든다. 수반도 침봉도 필요 없이 다만 물을 담아 꽃을 품을 수 있는 용기면 무엇이든 화기로 사용한다. 때로는 그것이 소박한 찻잔일 수도 있고, 아르누보 시대의 선이 고운 화병일 수도 있다. 꽃을 꺾어 생화로 집 안을 장식하는 것은 서양 문화라 할 수 있다. 꽃과 관련된 우리 조상들의 문화는 꽃을 꺾기보다는 정원의 꽃을 있는 그대로 자연과 함께 즐기는 방식이었다. 한옥 문살과 어울리는 난 화분 하나를 문갑 위에 살짝 올려놓고 무심한 듯 한두 번 눈길을 주는 정도였다. 이에 비해 서양 귀족이 집 안과 식탁을 생화로 꾸미는 것은 그들만의 오랜 전통이었고, 특권이기도 했다. 1년 중 음습한 기후가 대부분인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사시사철 생화로 실내를 꾸미는 것은 사치스럽고도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게다가 꽃을 꽂기 위한 화병은 물이 새지 않는 도자기이거나 유리 제품이어야 했다. 공교롭게도 유리와 도자기 모두 근대 이전까지 값비싼 몸값을 지닌 것들이었다. 오랜 기간 대다수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에서 해방되지 못했던 인류에게 장식이라는 개념은 큰 사치였고, 그래서 그것은 늘 특권층만의 관심사였다. 서양 역사에서 일반 평민에게까지 세끼의 풍성한 식사와 무언가를 감상하고 즐기는 여가라는 특권이 주어진 것은 긴 인류의 여정과 비교해보면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콜럼버스가 새 항로를 개척해 유럽이 타 대륙의 자원과 문화를 가져오기 시작한 16세기 이후 300년이 넘게 흐른 뒤에야 귀족이 아닌 평민도 여가와 여행을 즐기고, 스위트홈을 꿈꿀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산업혁명이 무르익었던 19세기 초를 지나 1850년 즈음이 되어서야 유리, 기차, 자동차, 명품 브랜드 등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신문명이 인류 곁으로 다가왔다. 아름다운 꽃을 담았던 화병인 유리 또한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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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털링이 정교하게 조각된 저그 겸 화병(빅토리안)
2) 카키색 줄무늬가 세련된 저그 겸 화병(아르데코)
3) 가을 야생화 쑥부쟁이와 꽃범 꼬리가 꽃꽂이된 스털링 베이스의 크리스털 화기(아르누보)
4 5) 크리스털 화병(빈티지 바카라)
6) 벽돌색과의 조화가 아름다운 오렌지 톤 화병(아르누보)

이즈음에는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농업을 기반으로 한 신분제도가 무너지면서 일반 평민도 저마다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더 나은 삶을 추구했다. 예전보다 형편이 나아진 사람들이 맨 처음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집의 규모와 집에서의 손님 초대 여부가 신분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던 19세기에 중산층으로의 신분 상승을 이룩한 사람들의 첫 행보는 집 꾸미기였다. 손님 초대를 위한 멋진 식탁이 놓인 다이닝룸은 잘 차려입은 가족들의 초상화와 아름다운 화병에 담긴 생화로 장식되었다. 이 시기는 자연의 선을 모티프로 한 아르누보에 앞서 일본 문화에 오리진을 둔 자포니즘이 유럽을 강타하던 시기였다. 이때 활약했던 마네, 모네, 고흐와 같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상주의 화가들 또한 자포니즘의 깊은 영향 속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렇다면 먼 극동의 작은 나라인 일본 문화가 어떻게 서양 문화에 그토록 깊이 관여하게 되었을까? 발단은 도자기의 종주국인 중국에서 비롯되었고, 시기는 로코코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자기와 차의 수입으로 시작된 동양 문화에의 동경은 시누아즈리라는 중국풍 문화를 서양의 상류층 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게 했다. 시누아즈리에 이어 중산층이 새로운 계층으로 부상한 19세기 중반에는 일본의 공예품에 매료되어 자포니즘이라는 일본풍 문화가 서양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새로운 예술을 표방하는 아르누보가 뒤를 이어 피어났다. 흔히 아르누보를 유리공예의 예술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이 시대 유행했던 집 안 꾸미기 문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갈레와 랄리크, 돔 등 유명 예술가들은 그들의 주 고객인 부유층이 집 안 장식과 손님 접대를 위해 주문한 유리로 된 화병과 샐러드볼, 센터피스 등의 예술작품을 앞다투어 만들어냈다. 아르누보의 걸출한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크리스털 샐러드볼, 화병 등은 당시를 풍미했던 새로운 예술 풍조인 인상주의 화풍 그림과 더불어 19세기의 저택을 아름답게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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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소반 위 스털링이 조각된 아름다운 한 쌍의 화병과 저그(아르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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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선이 아름다운 백일홍 가지가 꽂혀 있는 스털링 베이스의 크리스털 화병(아르데코)
8) 히어리 가지가 아름다운 스털링 오버레이 화병(아르누보)

요즘은 생화 같은 조화도 많아서 진짜 생화인 줄 알고 살짝 만져보다가 플라스틱 꽃임을 알고 놀라고 실망할 때가 종종 있다. 영원히 시들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 귀찮은 부산물을 떨구지도 않는, 그래서 애써 버리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는 플라스틱 꽃은 편리하고 때로는 너무도 생화와 똑같아서 기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얄팍한 편리성을 향기 있는 생화가 주는 생동감과 어찌 바꾸랴. 중년이 되어서도 생각나는 먹고 싶은 것 목록 1위는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이다. 지금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소 짓게 하는 엄마의 정원과 꽃꽂이는 이제 어른이 된 나에게 든든한 문화가 되어 내 곁에 함께하고 있다. 좋은 집, 좋은 가풍, 내 아이의 좋은 추억은 오늘 이 순간 식구를 위한 따뜻한 나의 준비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아침저녁으로 가을바람이 싱그럽다. 무덥고 힘들었던 여름은 잊어버리고 이제 우리 모두 남은 2018년의 시간들을 아름답게 채워나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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