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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의 앤티크 스타일 15]따뜻한 소통의 공간, 식탁

새해맞이 테이블 세팅

2018-01-20 12:14

글 : 백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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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소회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즈음에는 누구나 예외 없이 다가오는 한 해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다짐한다. 그 다짐에는 개인적 소망도 있겠지만 가족이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소통에 대한 소망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렇게 우리가 간절하게 바라는 가족 간 우애는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애착과 관계를 형성하려는 노력에서 생길 수 있고, 대화와 소통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 기회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자리가 바로 식탁이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엄마가 정성스럽게 차려준 음식에 감탄하며 하루 일을 얘기로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가족 행복의 출발점이다.

식탁은 역사적으로 사회적 소통 공간의 의미를 지닌다. 로마인들이 즐긴 연회는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식사 이상의 의미 있는 사회적 행사였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정찬 파티는 소통 공간이자 신분의 상징으로서 상류층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했다. 지배계급들은 자신의 권력과 부를 과시하고자 희귀한 재료를 사용하며 자신들만이 공유하고 누릴 수 있는 고급스러운 식탁 모임을 발전시키려 부단히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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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털링 오버레이 저그(아르누보)
2 와인잔 물잔 샴페인잔(아르누보)
3 스털링 오버레이 수프볼(아르누보)
4 스털링 트리밍의 디너접시(아르데코)
5 스털링에 24K 도금된 퓨포켓 커틀러리(아르데코)
6 앤티크 약절구에 데커레이션한 크리스마스 리스


프랑스혁명으로 신분사회가 무너지자 기득권을 누리던 귀족사회 구성원들은 다시 ‘식탁 매너’라는 까다로운 규칙을 만들어 더 높은 사회로 진입하고자 하는 신흥부자들과 간격을 두고자 했다. 이 시기에는 포크와 나이프 유리잔과 냅킨들이 빳빳하게 풀을 먹인 하얀 식탁보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바야흐로 커틀러리의 천국이 도래한 19세기에 삼구 촛대로 불을 밝힌 식탁에서 상류층은 다시금 그들만의 계급을 차별화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정치를 비롯한 경제, 문화, 사회 분야의 주역으로 등장한 신흥 부르주아들은 오랜 기간 그들의 열망이던 귀족들을 롤 모델로 삼았다. 늘 그러하듯 상류층은 복고풍 취향이었기에 신흥 부르주아들 또한 집안을 역사성 있는 앤티크나 앤티크 복제품으로 꾸몄다.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방문하는 것이 인맥관리의 기본이던 시절이었기에 중산층은 귀족들의 집을 모방하여 집을 장식한 뒤에 지인들을 초대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살롱이 집안의 중심 공간이었으나, 이즈음에는 식탁이 놓인 식당이 집안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살롱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은 살롱 옆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의 장을 이어나갔다. 비로소 식탁이 모두의 소통 공간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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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카이블루 컬러가 아름다운 크리스털 화병(아르누보)
2 스털링 오버레이 화병(아르누보)
3 스털링 받침의 크리스털 에칭 케이크 스탠드(아르누보)
4 스털링 케이크 서버(빅토리안)
5 살굿빛 바탕에 금박 트리밍된 세브르 디너접시(빅토리안)
6 크리스털 와인잔(아르누보)
7 스털링 오버레이 크리스털 보석함(아르누보)


그러면 우리 선조들의 식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유교의 영향으로 3대 이상이 거주하는 대가족 제도가 정착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생활공간이 사랑채와 안채로 분리되었다. 식사 공간의 분리와 함께 부엌에서 각 방으로 이동 거리도 길어졌다. 이런 이유로 소반이라는 작은 상이 널리 사용되었고, 이 소반에 바깥주인 안주인이 모두 독상으로 식사를 했다. 예외가 있었는데 부자지간이나 조부 손자가 겸상하는 경우였다. 유교를 숭상하며 효를 최고 가치로 여기던 시대이니 그러한 식사자리가 아랫사람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자리였을지 상상해볼 수 있다. 우리 어린 시절도 생각해보면 식탁에서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보다는 금기사항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음식을 입에 물고 말하지 않기, 소리 내어 음식 먹지 않기 등 참으로 많은 식탁 예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예닐곱 살이면 손위 언니 오빠가 그랬던 것처럼 젓가락 쥐는 법을 며칠이고 연습해서 부모님께 합격 판정을 받아야만 어엿한 학생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금기사항이 많았던 어린 시절 식탁에서는 그럼에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엄마 아버지의 당부 말씀도 주로 식탁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가끔 식당에서 어린아이들이 요란스럽게 떠들고 그것을 방관하는 부모를 보며 지인들과 자녀교육에 대해 걱정하는 얘기를 나눌 때가 있다. 우리 선조나 외국 명문가 그리고 유대인의 하브루타 교육에서 말하는 밥상머리 교육의 지혜가 새삼 생각나는 대목이다. 어른들이 숟가락을 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에서 절제를 배우게 하고, 같이 나누어 먹는 태도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르쳤다는 유성룡 가문의 밥상머리 교육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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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리스마스 리스를 데커레이션한 루비레드 샐러드볼(아르누보)
2 연화소반(조선)
3 금박이 아름다운 브렉퍼스트 잔(19세기 말)
4 장미목 손잡이의 스털링 티포트와 커피포트(아르누보)


우리 시대 식탁은 어떤 의미일까? 아파트 생활이 보편적인 우리에게 식탁은 거실의 한켠을 차지하는 집안의 중심 가구다. 그곳에서 우리는 때로는 바쁘게 커피 한잔과 토스트로 아침을 먹기도 하고, 남편이나 자녀들과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자녀가 해주기를 바라는 희망사항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잘못된 점을 훈계하기도 한다. 어쩌면 집안에서 식탁을 제외하고는 다른 공간 어디에서도 가족 간의 진중한 소통을 한 기억은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우리는 저녁을 외식으로 때우고 늦게 귀가해서 대화 없이 각자 방으로 들어가 피곤한 하루를 마감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은 저녁식사를 함께하게 되면 완전히 바뀐다. 함께 식탁을 차리며 눈을 마주칠 수 있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소소하게 이야기 나눌 수도 있다. 때로는 계절음식으로 근사하게 식탁을 차려 식구들의 마음과 입에 웃음꽃이 피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집안의 안주인이 한 끼 더 집밥을 차려낼수록 가족 간의 소통은 늘어나는 셈이다. 실제로 외국 명문가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거의 예외 없이 식사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했다. 케네디의 어머니가 그러했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오바마 대통령의 성공에는 새벽 4시 반에 아침을 차려주며 과제를 살피고 출근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자녀교육이 있었다. 새해에 다짐하는 것 중에 ‘가족끼리 집밥 먹는 시간 늘리기’를 넣어보는 것은 어떨까? 식탁에 둘러앉아 소통하는 사이 부부와 부모자식 간 오해는 멀어지고 이해는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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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cmaca  ( 2018-01-21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0   반대 : 0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 44조 제2항 및 제 71조 제 3호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세계사의 正史 개념으로 보면, 제자백가이후,漢나라때 국교로 성립된 유교는,이후 동아시아의 주요이념으로 세계종교화.

http://blog.daum.net/macmaca/2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