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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의 앤티크 스타일 11]18세기 잔으로 꾸민 가을 티 테이블

2017-09-16 13:46

글 : 백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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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길목에서 18세기 티잔으로 꾸민 티 테이블

1 빅토리안시대 스털링 이단 디저트 트레이와 마이센 접시.
2 꽃과 나무, 새가 각 잔마다 다르게 핸드페인팅된 18세기 세브르 티잔. 세브르 도자기 특유의 황금색과 녹색의 조화가 아름답다.
3 화려한 문양을 새긴 티 캐디(빅토리안).
4 위스키 디캔터를 화병으로 이용해서 꽂은 남천이 가을을 기다리게 한다. 계절에 맞는 꽃꽂이는 음식이나 차의 풍미를 한층 돋워준다.
5 아르누보시대의 크리스털 그린 칵테일 잔.
6 신고전주의 양식의 고급스러운 손잡이와 골드 페인팅이 화려한 19세기 말 티잔.
7 빅토리안시대 티 스트레이너와 티 캐디 스푼.
8 섬세한 상아로 만든 장식이 돋보이는 아르누보시대의 스털링 티포트.
 

그토록 힘들던 여름 무더위도 거짓말처럼 누그러져 어느 날 아침부터 선선한 바람으로 바뀌었다. 이즈음에는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좋지만, 향과 함께 따뜻하게 마시는 커피가 제격인 듯하다. 대로변은 물론이고 동네 골목에도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 커피집이 한 집 걸러 눈에 띈다. 바야흐로 카페의 범람이고 커피의 천국이다. 커피와 카페가 너무나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있어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카페도 시작된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커피가 새로운 음료로 폭넓게 확산된 것은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 ‘솔리만’이라는 터키 대사가 부임한 1669년 이후였다. 당시 사람들은 초콜릿의 씁쓰레한 맛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고 차 또한 접하고 있었던 터라 커피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짙은 아로마 향을 지닌 검은 음료는 곧 사교계의 총아가 되었다. 17세기는 이국적인 것들이 유럽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기였다. 특히 3가지 음료인 커피, 초콜릿, 차가 그들의 미각을 매혹시켰다. 유럽 중에서도 영국은 그들의 열악했던 식수환경의 영향으로 3가지 새로운 음료에 더욱 열광했다. 그리고 영국의 귀족들은 집에서만 커피를 마시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커피하우스’라는 독특한 장소를 만들어냈다.

영국에서 처음 생겨난 커피하우스는 실제로는 커피보다 차의 유행을 더 선도하였다. 1689년 명예혁명 후 영국은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 부처가 즉위하게 된다. 네덜란드 총감이기도 했던 윌리엄 3세의 고국인 네덜란드에서 높은 도수의 진이 수입되었고, 저렴하고 독한 진으로 인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알코올 중독자가 만연했다. 이에 국가는 주류를 규제하였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커피하우스가 생겨나 성행하게 되었다. 이에 건강을 돕는 약의 이미지가 강했던 차는 더욱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커피하우스에서는 커피뿐만 아니라 차, 초콜릿, 셔벗 등의 음료는 물론 찻잎과 설탕 등도 허가를 받아 판매하였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아메리카에서 수입된 새로운 기호품인 담배도 즐겼는데, 먼 나라로부터 온 새로운 음료나 기호품에 둘러싸여 이국적인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커피하우스였다. 커피하우스에 차가 선보인 지 5년 뒤인 1662년, 포르투갈의 캐서린 브라간자 공주가 영국의 찰스 2세에게 시집을 온다. 그때부터 ‘동양으로부터의 선물’인 차는 영국 왕실음료가 된다. 남편인 찰스 2세는 궁중에서 다른 여인들과 유흥을 즐기고, 외로운 왕비는 달콤한 한잔의 홍차에서 위안을 얻었다. 왕비는 왕실 티파티에 귀부인들을 초대했으며, 그렇게 홍차는 왕실의 주요 문화로 자리를 잡아갔다. 왕실의 풍속을 따라 하는 귀족들, 귀족들의 풍속을 따라 하는 시민들에 의해서 영국인들만의 사치스러운 홍차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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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분으로 신고전주의 양식의 리스를 꽃무늬와 함께 아름답게 장식한 디너 접시(빅토리안).
2 오닉스에 스털링을 조각해 강렬한 색대비를 준 센터피스(아르데코).
3 은분으로 가장자리를 핸드페인팅한 아르데코시대의 디너 접시. 반복되는 기하학 무늬가 심플한 느낌을 준다.
4 차 마시는 사람의 시선에 초점을 맞춰 컵의 안쪽을 화려하게 장식한 티컵(빅토리안).
 
 
1630년대에 중국의 차가 영국에 소개된 이래 대중에게 처음으로 찻잎과 차를 판매한 곳은 커피하우스인 개러웨이다. 토마스 개러웨이는 스튜어트 왕가에 차를 납품하고 있었다. 1650년 옥스퍼드에 처음 문을 연 커피하우스는 커피와 담배를 주로 팔았다. 그러다가 신상품인 차와 코코아도 팔기 시작한다. 17세기 호황을 거듭하면서 런던은 세계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커피하우스는 12년 동안 80개 이상으로 늘어나 17세기 말에는 5백여 개에 이르렀다. 귀족과 지성인들이 몰려들고 해외 무역상들이 이곳에서 정보를 교환했다. 1페니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기에 커피하우스는 ‘1페니 대학’이라고도 불렸다. 왕립과학원, 런던의 로이드 보험회사, 주식거래소, 최초의 잡지인 <태틀러>와 같은 유수한 기관들이 1페니 대학이었던 커피하우스에서 탄생했다.

1700년경에는 런던에만 수천 개의 커피하우스가 개점할 정도로 급속히 유행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이곳은 모든 계층의 남자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곳으로 자유롭게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가 되었다. 당시 런던 사람들은 하루에 한 번 이상 이곳에 들러서 커피를 마시며 뉴스를 교환했고, 신분이나 경제력 차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모인 사람들끼리 비판과 토론에도 열심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커피하우스는 당시 영국의 언론과 문학, 정치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커피하우스가 정치토론의 장이 되자 위협을 느낀 영국 정부는 1675년 커피하우스 폐쇄 법령을 발표했으나,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게 되고 이후 커피하우스는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커피하우스는 저마다 특징이 있어서 각자 기호에 맞는 곳에서 모임을 가졌다. 예를 들어 상인들은 로이드나 게러웨이에 모였고, 작가나 문예 애호가는 윌이나 바튼 등의 커피하우스에서 주로 모임을 가졌다. 추구하는 것에 따라 만남의 장소가 달랐던 커피하우스는 근대문화를 여는 새로운 장소가 되었다.

커피하우스 열풍은 파리에서 더 거세었다. 1650년 영국이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오픈한 데 이어 1686년에는 이탈리아 출신 프란시스코에 의해 프랑스 파리에도 커피하우스 ‘르 프로코프’가 생겨나게 되었다. ‘코메디 프랑세즈’ 극장 맞은편에 생긴 이 커피하우스는 화려한 실내장식을 자랑했다. 벽에는 커다란 거울들이 붙여지고, 천장은 샹들리에로 테이블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었다. 계몽시대를 이끌었던 루소, 몽테스키외, 볼테르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그곳을 찾았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1723년에는 파리에만 3백80곳의 커피하우스가 생겨나, 파리는 카페의 천국이 되었다. 사람들이 카페에 앉아 정담을 나누며 체스를 즐기는 모습은 18세기의 흔한 풍경이었다. 계몽주의가 풍미했던 18세기 말, 커피하우스와 예술 그리고 정치는 떼어놓을 수 없는 짝이 되었다. 1792년 프랑스혁명 당시 극진파와 온건공화파가 유명한 정치적 결연을 맺은 곳도 커피하우스였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산업화의 영향으로 노동시간이 길어지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다. 어느덧 카페는 지방으로도 조금씩 퍼져 나갔다. 일상의 리듬이 바뀌게 되어 마을 축제가 드물어진 시골 광장에도 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노동자와 농부들은 일을 마치면 둥그런 야외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이웃과 함께 밤을 즐기는 것은 새로운 생활의 낙이 되었다. 일상의 여유를 누리는 공간으로서의 현대적 카페의 모습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카페는 늘 사람들로 붐볐고 그곳에는 늘 즐거움과 새로운 소식이 있었다. 성당 옆에도 학교 옆에도 카페가 들어서고 긴 이별의 의식 또한 카페에서 치러졌다. 시골의 허름한 카페와 대조적으로 파리의 카페들은 귀족적인 취향으로 꾸며져 19세기에는 더욱 커다란 호황을 누리며 황금기를 맞았다. 화려한 카페들이 대로를 장식했고 벨벳, 황금 장식, 대리석 그리고 아름다운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졌다. 카페용 정원수라 불렸던 측백나무가 출입문 좌우를 위풍당당하게 꾸몄다. 따가운 햇살로부터 상점을 보호하기 위해 고급스러운 차양이 설치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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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핸드페인팅의 진수를 보여주는 화려한 꽃무늬의 KPM 티잔 트리오(빅토리안).
2 빅토리안시대 스털링 티 캐디.
3 섬세한 조각, 스털링과 흑단 손잡이의 색의 조화가 아름다운 티포트(빅토리안).
 
 
19세기 말은 우아한 아르누보시대였다. 카페 주인들은 실내를 꾸미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부드러운 선과 동양적인 분위기를 함께 뽐내는 아르누보의 흐름에 맞춰 실내장식을 뜯어고쳤다. 이러한 파리의 카페는 아무나 드나들 수 없었는데 정장과 모자, 지팡이의 말쑥한 옷차림이 기본적인 입장 자격이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인기 있는 예술가나 가난한 예술가나 모두 카페를 드나들었다. 예술가들은 카페를 작업실로 삼거나 혹은 모델로 삼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들은 비좁은 작업실 대신에 역동적인 삶이 있는 카페에서 영감을 받았다. 예술의 세계는 가시밭길이었고 생활은 늘 궁핍했기에 음침한 작업실이 아닌 화려한 카페에서의 만남은 그들에게 일상의 탈출구 역할을 해주었다. 몽마르트르를 주된 무대로 삼았던 인상주의파 화가들은 카페 ‘게르부아’에 주로 모였다.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거주지가 카페였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들의 일상 속에 카페가 깊이 관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에드가 드가, 폴 고갱, 에두아르 마네 등 많은 작가들이 카페와 관련된 작품을 남겼다.

이제 우리들에게도 카페에 가는 것은 일상의 습관이 되어, 식사 후에 익숙한 의식을 치르듯 커피 한잔을 손에 쥐게 된다. 무더웠던 여름과 늦더위도 지나가 싱그러운 바람이 부는 계절이 다가왔다. 이 좋은 계절이라면 따뜻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커피전문점이 아닌 집에서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카페가 처음 유행했던 그 시절과 달리, 이제 집은 더 이상 세상과 단절되어 있지 않고 편안한 소파나 의자가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올가을 카페 하면 떠오르는 소곤거리는 대화와 눈 맞춤을 우리 집 거실의 예쁜 테이블에서 커피 한잔과 함께 시작해보자.
 
 


가을 티 테이블 세팅 팁

1 가을빛이 깃든 꽃이나 나뭇잎으로 테이블을 장식하자. 화기는 꼭 꽃병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집에서 쓰고 있는 머그잔, 저그 등 어떤 것이라도 좋다. 단, 생화를 고집해보자.
2 손님을 많이 초대하는 티파티가 아니라면 티파티의 심벌마크인 삼단 트레이 대신 이단 트레이로 분위기를 가볍게 해보자. 높지 않아서 경쾌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앤티크가 아니어도 시중에서 가성비 좋은 다양한 디저트 트레이를 찾을 수 있다.
3 티 테이블의 전체 톤을 정한 다음 메인 색상을 2개 정도로 정하자. 가령 살구색과 아이보리라든지, 그린과 골드, 핑크와 실버 등의 매치를 생각해보자.
4 티푸드는 시중에 바로 살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지만 하나 정도는 집에서 만든 것을 내는 것으로 주인의 정성을 보여주자. 출출한 때의 티파티라면 달콤한 것 외에도 제철인 고구마, 옥수수 등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5 여름의 더위가 가시기 시작하는 초가을, 차로는 다즐링, 기문차 등의 우아한 스트레이트 차를 준비해보자.
6 티 테이블 톤에 맞는 간단한 티 냅킨을 준비하는 센스를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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