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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의 앤티크 스타일 03]송년파티의 보석 유리와 크리스털

식탁을 꾸미는 조연들, 리빙 아이템

2016-12-15 10:24

글 : 백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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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아르누보 스털링 오버레이 글래스 촛대, 빅토리안 센터피스, 아르데코 루비레드 크리스털 화병, 스털링 홀더 아르누보 크리스털 화병.
 

새해를 맞으며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한데 어느덧 2016년의 마지막 달이다. 연말이면 우리 모두 한 해를 마감하며 이런저런 모임을 갖게 되는데, 그러한 모임이 곧 식사모임이니 식탁과 그릇은 늘 우리 삶과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식탁을 꾸미는 주역은 무엇일까? 도자기, 유리와 크리스털, 포크와 나이프 등의 커트러리, 그리고 냅킨, 컵받침과 같은 테이블클로스가 떠오른다. 식탁을 꾸미는 많은 요소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눈에 띄는가를 묻는 질문에 섣불리 대답하긴 어렵지만, 아마 유리와 크리스털이라는 것에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테이블 위의 꽃 장식처럼 유리와 크리스털은 가녀린 몸매의 우아한 여인 같은 자태를 풍기며 우리를 매혹시킨다. 그런 까닭에 유리는 예로부터 상류층의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우리 식탁에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해왔다.
 
고대 페니키아 상인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전해지는 유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귀한 것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왕족들의 무덤에서 종종 발굴되는 유리구슬의 역사는 약 6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러 기원전 2000년쯤 되어서야 투명한 유리가 제조될 수 있었다. 최근 중국 안후이성에서 발굴된 귀족 무덤에서는 고대 로마에서 만들어져 중국으로 유입된 것으로 여겨지는 약 1700년 전의 유리잔이 나왔다. 4세기경에 블로잉 기법으로 만들어진 로만글라스가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 귀족들에게까지 건네어진 것을 보면, 인류는 오래전부터 유리에 매혹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유리는 항상 그 시대 최고 수준의 기술과 연관된 예술문화를 낳았다. 기원전 18세기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에도 유리의 제조법과 발색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는 유리그릇과 향수병이 화려하게 제작되었다. 4세기경 로만글라스 시대에 창안된 카메오 글라스 기법은 색유리 위에 유백색의 글라스를 덧입혀 문양을 조각해내는 것이었다. 이 기법은 19세기 말을 아름답게 장식한 유리공예의 전성시대인 아르누보 사조에 큰 역할을 했다. 7세기경 중동지방에서는 색유리를 창이나 천장에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우리가 유럽을 방문할 때 교회 건축물에서 자주 보게 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시작이다. 이러한 기술은 11세기 서구에 전해졌고, 12세기 이후에는 교회당의 건축에 사용되기 시작하여 예술로 발전하게 된다. 이로써 유리는 귀족의 생활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삶에까지 기여하게 되었다. 문맹이었던 일반 대중은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신앙에 대한 경외심을 키우고 성경 속 이야기를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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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버가 오버레이된 레드 클리스털 샐러드볼.
2 루비레드 크리스털 센터피스.
 

한때 부유층의 상징, 유리
유리가 사람들의 실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된 가장 큰 계기는 아마도 유리로 된 거울의 등장일 것이다. 12세기에서 13세기 무렵 보급되기 시작한 유리거울은 15세기 르네상스시대에 베네치아가 부를 축척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베네치아의 유리거울은 유리 뒤편에 주석판을 붙이는 방법으로 생산되었고, 이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이전의 희미한 금속거울과는 차원이 다른 평면거울로 만들어진 베네치아산 거울의 매력에 유럽 귀족들은 흠뻑 빠져들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촛불 아래에서 펼쳐지는 식사와 파티는 유리거울에 반사된 은은한 빛에 비쳐 고귀함을 더해갔다. 엄청나게 비싼 유리거울의 가격에 힘입어 거울은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다. 당시 유리거울의 가치는 당대의 거장인 라파엘로의 그림보다 세 배나 비싼 가격이었다고 하니 베네치아의 유리거울이 얼마나 높은 가격으로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는지 알 수 있다.
당시 베네치아는 거울 이외에도 다양한 유리기술을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베네치아의 지배층은 이러한 유리기술의 유출을 우려해 장인들을 ‘무라노’ 섬에 유폐했다. 우리가 베네치아를 여행할 때 많이 접하게 되는 무라노 글라스는 이런 역사적 숨은 이야기 속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한편 프랑스의 루이14세는 이탈리아의 유리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거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프랑스에서 생산한 유리로 자신의 궁전을 장식하고자 거울의 제조법 탐색과 대형 유리판 제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루이14세의 이러한 열정의 결과로 마침내 프랑스에서 대형거울이 생산되었다. 유리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장인들을 무라노 섬에 유폐했던 베네치아의 혹독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거울이 드디어 질과 양 모든 면에서 베네치아를 압도하게 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유럽의 많은 궁궐에서 실내장식으로 내벽에 거울을 붙이는 것이 크게 유행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베르사유 궁전 안 거울의 방에 있는 유리거울 또한 바로크시대 유리의 귀한 몸값에 연유한 상류층의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베네치아산이 아닌 프랑스산이다. 당시 4㎡ 크기의 유리 가격은 유리기술자 한 사람의 4만 시간 임금과 같은 가치였다고 하니 얼마나 엄청난 몸값을 자랑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유리는 바로크시대를 거쳐 로코코시대 장식미술 발달에 힘입어 가구로서 재인식되었고 이후 실내공간에서 더욱 가까이 머물게 된다.
 
 
유리의 아름다운 진화, 크리스털
이러한 유리의 인기는 18세기 후반 영국의 조지 레벤스크로프트에 의해 만들어진 크리스털의 등장으로 더욱 높아지게 된다. 유리에 24%의 산화납을 첨가하여 만드는 크리스털은 일반 유리에 비해 투명도가 높고 더 정교한 조각과 아름다운 울림을 가능케 했다. 우리가 유럽의 궁전을 관람할 때 보게 되는 화려한 샹들리에와 촛불의 아름다운 조화는 크리스털의 탄생으로 더욱 완벽함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크리스털은 유리와 함께 식탁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산업혁명으로 유럽인들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던 19세기 중반, 유리의 역사에도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이즈음에 판유리 제조공정에 커다란 발전이 있었고 이로 인해 고가를 자랑하던 판유리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판유리의 가격이 낮아졌으며 지금의 특별소비세 격으로 유리에 부과되었던 유리세가 1845년 폐지되었다. 이로써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유리를 끼운 찬장이 중산층에도 보급되었다.
유리가 끼워진 찬장의 대중적 보급은 이미 상류층에서 열병에 가깝게 퍼져 있던 도자기 수집을 중산층에도 퍼뜨렸다. 각 가정의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찬장이 놓였고 그 안을 찻잔과 접시가 장식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들의 어린 시절 거실에는 예외 없이 장식장이라 불리던 유리장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김없이 엄마가 아끼는 찻잔과 유리잔이 자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러한 가구의 배치는 지금 생각해보면 19세기 중엽에 유리 가격 인하로 생겨났던 유럽의 생활방식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그리고 유리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사건은 바로 1851년 런던박람회 전시관으로 세워진 수정궁의 건설이었다. 온실건축가 조셉 팩스턴에 의해 건설된 수정궁은 유리가 건축의 부속물이 아닌 주인공으로 등장한 첫 번째 사례였으며, 이는 판유리의 대량생산과 규격화에 힘입은 결과였다.
 
실생활에 들어온 유리
사람들의 생활과 더 가까워진 유리는 1890년대부터 나타난 아르누보라는 예술사조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유리공예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50년대부터 유럽을 강타한 일본풍(자포니즘)에 영향을 받은 에밀 갈레는 낭시파를 이끌며 유리공예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그는 특유의 상감 유리 기법을 통해 여러 겹으로 농담을 달리한 유리를 가지고 다양한 유리공예품을 만들었다. 갈레의 작품 중에는 화병이나 샐러드 볼 등이 특히 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19세기 말엽 상류층의 생활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당시 생화와 채소를 사계절 내내 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상류층은 판유리를 이용한 온실을 정원에 설치해 이를 해결하였다. 꽃을 실내에 사시사철 장식한다는 것은 온실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의미했고 이는 곧 부유함의 상징이었다.
부의 상징인 생화는 귀한 몸이었으며 그 꽃을 담는 화병 또한 상류층에서 수요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주요 고객이 부유층이었던 갈레 역시 많은 화병과 샐러드 볼을 만들었고 그 작품들이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수정궁을 건설한 조셉 팩스턴이 당시 부유층에서 수요가 많던 온실건축가였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와 문화가 유산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오늘날의 실내를 여전히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연말을 앞두고 너나없이 분주한 마음이다. 그리고 저마다 송년회라고 불리는 연말모임을 적어도 두세 개 정도는 앞두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모임 대부분은 십중팔구 집 밖에서 이뤄질 것이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는 다짐을 함께하는 연말모임. 그중에서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인 우리 가족들만의 송년모임을 계획해보자. 가족을 위해 레드와 그린 글라스로 한껏 화려하게 폼을 낸 테이블을 꾸미고, 일 년 내내 열심히 일하며 일상에 찌들고 고되었던 내 가족의 심신을 위로해보자. 눈이라도 내려주는 연말의 어느 밤 크리스털 잔에 향기로운 와인을 양껏 담아 올해와의 멋진 이별파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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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 장식이 화려한 빈티지 무라노 글라스 와인잔. 2 19세기 말 에밀 갈레의 카메오 샐러드 볼. 3 아르누보시대의 스털링홀더 크리스털 화병. 4 볼과 스템의 색의 조화가 화려한 아르누보 시대의 와인잔. 5 아르데코시대의 스털링홀더 루비레드 센터피스. 6 실버가 크리스털에 정교하게 조각된 아르누보시대 저그.
 

크리스마스 테이블 세팅 Tip
 
연말 테이블 세팅은 다양한 컬러로 연출할 때 더욱 화려해진다. 가령 레드, 그린, 블랙 컬러에 실버 톤을 매치하거나 골드와 레드 톤을 식탁에 활용해보자. 2 실버 톤의 커트러리와 유리, 크리스털 그리고 도자기 그릇을 적절한 조화와 높낮이로 식탁에 배치해보자. 3 연말 테이블 세팅에는 그 어느 때보다 테이블클로스의 활용이 중요하다. 행복한 느낌을 주는 다양한 냅킨을 적극 사용한다. 4 장식용 양초나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카드를 함께 준비하여 한 해 동안 열심히 살아온 서로를 격려하자. 5 행복한 크리스마스 테이블 세팅을 위해 시즌을 알리는 생화 꽃꽂이를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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