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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의 앤티크 스타일 02]일상과의 따뜻한 만남, 앤티크 컬렉션

앤티크를 활용한 인테리어와 수납 Tip

2016-11-22 09:27

글 : 백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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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의 앰버빛 와인잔과 빅토리안 시대의 스털링 오버레이 저그, 아르누보 시대의 에칭 와인잔들이 조선시대 침상 위에 놓여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준다.

 
앤티크. 우리말로 골동품이라는 말을 접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래된 것, 비싼 것, 산뜻함과 대조되는 이미지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애정을 가지고 보면 앤티크 안에는 유구한 역사를 거치며 가지게 된 정감 있는 이야기가 들어 있고 오랜 경험치를 바탕으로 한 우아함과 느긋함이 있다.
나의 앤티크 사랑은 어린 시절 엄마가 거실에 테이블 대용으로 가져다 놓은 옛날 물건과 현관을 열면 늘 우리를 맞이해주던 조선시대 반닫이를 접하면서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테이블 대용으로 쓰였던 물건은 제주도 지방의 연자방아를 활용한 것이었다. 집 안에는 늘 생화 꽃꽂이가 있었고, 때로는 조선시대 유기그릇이 화기로 등장하곤 했다. 가을을 알리는 소국이 유기그릇과 어우러져 참 보기에 좋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앤티크는 소소하게나마 어린 시절을 함께했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부모님께 용돈을 타서 쓰던 대학시절 인사동을 기웃거렸으나 구입은 엄두를 못 냈고 구경만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좋은 물건이 넘쳐났고 가격도 지금에 비하면 엄청나게 좋았다. 결혼한 후 구입할 여력이 생기면서 직접 앤티크를 소유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서른 중반부터 집 안에 하나둘 들어온 조선시대 앤티크는 소유하는 그 순간, 아니 갖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리고 그 설렘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앤티크’의 기준은 100년, 왜?
문화는 보고 듣고 만지고 직접 써보는 형식으로 향유될 수 있는데, 앤티크라는 오래된 문화를 즐기려면 직접 소유해서 그것이 주는 느낌을 여유롭게 공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앤티크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보통 100년을 기준으로 ‘앤티크’라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는 100년이 넘는 앤티크에 대해서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에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30년, 60년도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딱 100년 이전의 물건을 앤티크라고 정하고 관세를 부과하지 않게 된 유래는 무엇일까?
이러한 기준의 유래는 19세기 유럽에서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건너간 많은 유럽인들의 이주 이삿짐과 관련이 있다. 1840년대 감자병으로 인한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아일랜드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때부터 향후 200년간 유럽에서 5천만 명이 신대륙으로 이주했다. 당시 신대륙 이주민의 90% 이상이 절대 빈곤층이었기에 이들이 가지고 가는 이삿짐에 대한 관세가 문제시 되었다. 가난한 처지로 고국을 떠나는 마당에 조상 때부터 쓰던 이삿짐에까지 세금을 내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이주민들은 관세 면제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리하여 신대륙 이주민들의 이삿짐 관세의 면제기준이 60년에서 70년 이상 된 물건으로 정해졌다. 그러다가 1930년에 이르러 만들어진 지 100년 이상 된 물건을 앤티크로 분류하고 관세를 면제하기로 결정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30년에 앤티크의 기준을 100년 된 물건으로 정한 것은 1830년대까지를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이전의 시기로 보았던 것도 한몫을 했다.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제작된 도자기와 은제품, 가구 등에 세월과 예술적 가치를 인정해서 면세혜택이 주어진 것이다.
100년이 안 됐지만 보존하고 수집할 가치가 있는 것을 빈티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빈티지’ 역시 중고물건 내지는 고물(古物)로 부르는 것과는 구별이 필요하다. 쓰던 것, 낡은 것, 더러운 것, 값싼 것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중고물건이다. 한편 빈티지의 어원이 ‘포도가 숙성하다’인 것에서 알 수 있듯 빈티지는 시간이 경과하여 완숙되고 성숙된 물건을 가리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영국에는 신혼부부가 ‘가구를 구입했다’라고 말하면 평민 출신이고 ‘가구를 물려받았다’라고 말하면 귀족 출신이라는 표현이 있다. 또 ‘벼락부자의 집에는 앤티크가 없다’라는 말도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앤티크의 성격을 말해줄 수 있는 것이다. 앤티크 컬렉터의 내면에는 남들이 소유하지 않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을 가지고 싶은 차별성과 구별성에 대한 애착이 함께하고 있다. 또한 쉽게 구해지고 반짝거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니 앤티크 컬렉션은 예술적 안목과 문화적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 도달하는 종착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부유해도 문화적 자본이 축적되어 있지 않은 집에는 앤티크가 있을 리 없다. 백화점의 화려한 쇼윈도에서 빛을 발하며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명품들에 비해 앤티크는 낡고 손때 묻은 것이지만, 옛것 하나를 집에 들여놓는 순간 마음이 평안해지고 어수선한 많은 것들이 정돈된다. 바쁜 일상과 피할 수 없는 많은 만남 속에서의 공허한 웃음과 말들도 옛것이 주는 분위기에 정화되어 나만의 고요한 세계로 나를 이끌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앞서 살았던 선인들이 느끼고 추구했던 미감이 시대를 초월해 공감되기도 하고, 또 거기에서 우리가 잃어버렸지만 다시 살려낼 수 있는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런 연유로 우리가 접하는 현대의 많은 명품들은 고전에서 그 오리진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많이 닮아 있다. 실제로 180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바카라사의 앤티크 디캔터는 2000년대 만들어진 같은 회사의 디캔터와 기법과 모양에 있어서 너무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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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출시된 바카라사의 에칭 디캔터와 1800년대 후반의 앤티크 바카라 에칭 디캔터. 두 아이템이 너무나도 닮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안은 현대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고 앤티크 제품은 새로 전학 온 시골 학생처럼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백화점에서 구입한 반짝거리는 신제품만으로는 무엇인가 이야기가 부족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같은 이유로 나의 서양 앤티크 테이블웨어 컬렉션이 시작되었다. 우아한 한국 앤티크와 어울리는 서양 앤티크로 자연스레 관심이 옮겨갔고 그래서 시작한 것이 서양 앤티크 공부였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많아져 컬렉션 수가 늘어갔다. 우리나라 전통식기인 유기와 백자는 특별한 날 쓰이기는 해도 실생활에 쓰기에는 불편함이 있어서, 서양 앤티크 테이블웨어를 컬렉션하는 것은 커다란 흥미와 재미를 주었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아짐에 따라 손님 초대가 잦아졌다. 작게는 가족 친구들의 모임부터 크게는 남편이 속한 크고 작은 단체들의 지인들을 초대해서 나의 컬렉션인 서양 앤티크 테이블웨어를 사용해 식사를 대접했다. 조선시대 교자상에 펼쳐진 서양 앤티크 테이블웨어는 휼륭한 컬래버레이션이 되어 그 어느 집에도 없는 격조 있는 식사 테이블을 만들었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손님을 집에 초대하는 일이 매우 드물어졌다. 때문에 이런 품격 있는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을 대접받는 손님들은 정성 어린 응대에 감동한다. 빅토리안 시대에 만들어진 디너 접시와 아르누보의 유리 글라스는 조선시대 교자상 위에서 놀랍게도 빛을 발하며 아름답게 조우했다.
 
동서양 앤티크의 하모니
식탁에서 이룬 두 문화의 이러한 조화는 실내장식에서도 빛을 발한다. 바로 한국 목가구와 서양 은식기 또는 크리스털 제품의 조화이다. 우리가 요즘 접하고 있는 조선 목가구는 장인의 기술과 주문자의 미감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조선시대 집을 건축했던 장인을 대목장이라 부르고 가구를 만들었던 장인을 소목장이라 칭할 만큼 목가구에는 장인의 숨결이 담겨 있다. 현재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조선 목가구의 대부분은 주로 양반가에서 쓰였던 것으로, 이런 물건들은 만들어질 때부터 좋은 재료로 잘 만들어져 귀중하게 보관되다 오늘에 이른 것이다. 조선시대 목가구는 작은 한옥방에 놓이다 보니 크기가 모두 작은 편이고 그래서 우리 집 안 모퉁이를 정성껏 꾸미기에 안성맞춤이다. 짙은 갈색을 띠고 있는 조선시대 함이나 서탁 위에서, 비슷한 시기에 먼 이국땅에서 태어난 서양 앤티크 디캔터나 은제품은 천생연분처럼 잘 어울린다. 다소 화려한 느낌의 서양 앤티크 촛대나 센터피스 등도 조선시대 목가구에 놓이면 우아한 기품으로 인테리어를 완성시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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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짙은 색 조선시대 소반 위에 화려하지만 자그마한 스털링 소금·후추 세트를 놓았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옛 됫박으로 만든 틀에 조선시대 수베개를 넣어 벽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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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현관문을 열면 처음으로 보게 되는 중정 복도에 빅토리안 시대의 티캐디 스푼을 수납한 조선시대 목판을 두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부엌에서 쓰이던 수저통을 화기로 사용해 코스모스를 꽂고 그 위에 올려두었다.
 
 
앤티크를 활용한 인테리어와 수납 Tip
1 인테리어의 기본은 사전 정리정돈이다. 2 청소와 정리정돈은 별개이다. 청소 후에 정리정돈이 없으면 여전히 집은 어지러운 그대로다. 3 수납의 기본은 분류와 처분이다. 물건을 용도별, 계절별, 가족별로 분류하고 안 쓰는 물건은 과감하게 처분하자. 4 가구와 소품을 배치할 때 큰 것과 작은 것의 조화를 잘 활용하자. 큰 가구 위에 작은 조선시대 함이나 서양 앤티크 소품을 두어 대소의 묘미를 즐기자. 5 시선이 머무는 끝 지점인 집 안의 모퉁이에 정성을 들이자. 그곳에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소품이 놓여 있을 때 우리 집 인테리어는 활력을 얻게 된다.
 

얼마 전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중산층 기준이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오직 물질적인 기준만 제시한 우리나라 기준에 비해, 프랑스 기준에는 ‘근사하게 대접할 수 있는 요리 실력’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우리의 홈 문화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많은 사람들이 뮤지컬에 열광하고 오페라를 테마로 한 해외여행을 떠나는 문화지향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들의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우리가 누리는 홈 문화의 내면은 초라한 감이 없지 않다. 어쩌면 우리 모두 너무 외향적인 삶에 치중하다 보니 집은 남에게 보여주기 힘든 성역 아닌 성역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집은 밖에서 지친 나와 내 가족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소중한 공간임을 알 수 있으며 아울러 ‘하우스’가 아닌 ‘홈’이어야 함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따뜻한 가정에 대한 생각만 있고 수납도 꾸밈도 없는 어수선한 집 안에서 가족이 안락함을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다. 집 안 꾸미기의 기본은 정리정돈이 우선이고 그다음에 정성스러운 손길이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서양의 앤티크를 컬렉션하면서 지키는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애써 모은 컬렉션들을 되도록이면 실생활에서 직접 사용한다는 것이다. 100년을 훌쩍 뛰어넘어 유구한 세월을 견디고 내 앞에 오게 된 앤티크 그릇에 음식을 담아 사용해보는 것은 정말 황홀한 시간여행이 될 것이다. 수납용으로 만들어진 조선시대 관복장이나 벼루함을 이용해 앤티크 커트러리나 그릇을 수납함으로써 그 물건들은 더욱 빛나고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유럽의 많은 나라의 문화는 아름다운 식탁 문화에서 생겨나고 퍼져 나갔다. 이와 같이 우리도 근사하게 차린 식탁에서 일주일에 몇 번만이라도 가족과 함께 정성이 담긴 식사를 즐겨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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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열면 제일 먼저 접하게 되는 중정에 김종학 화백의 소품 그림을 걸고, 밝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조선시대 지장을 배치하여 기품이 있으면서도 밝은 첫인상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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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앤티크인 서안과 머릿장, 해주소반에 밝은 느낌을 주는 김덕기 화백의 그림과 이동엽 화백의 단색화를 배치해 밝고 통일감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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