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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빈의 시간들

2019-03-04 13:01

진행 : 전영미 기자  |  사진(제공) : 신채영 신채영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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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수목드라마 <왜 그래 풍상씨>에서 차가운 매력과 깊이 있는 내면 연기로 호평을 받고 있는 전혜빈. 봄날 햇살처럼 더욱 화사하고 우아해진 그녀가 들려주는 지난 시간 그리고 지금.

스타일리스트 박희경
헤어 이민(꾸민 02-544-1339)
메이크업 이난희(꾸민)
아이보리 컬러 트렌치코트는 H&M. 니트 터틀넥은 베니토. 골드 이어링은 고이우.
<왜 그래 풍상씨>에서 맡은 배역이 ‘이정상’이에요. 이름처럼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정상’ 캐릭터인데요.(웃음) 드라마이지만 대책 없는 가족들 때문에 화가 많이 나겠어요. 문영남 선생님이 워낙 캐릭터마다 개성과 컬러를 잘 입혀주셔서 모든 인물이 다 살아 있어요. 저는 대책 없이 착한 오빠와 ‘등골 브레이커’인 동생과 엄마 사이에서 유일하게 ‘정상’인, 묵직한 콘트라베이스 같은 역할이에요. 연기이긴 하지만 불쑥불쑥 화가 나죠.(웃음) 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카타르시스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답답하고 대책 없지만 끈끈한 정을 가진 가족들을 보면서 연민도 느끼고, 동질감도 느끼고요.

가족 드라마의 대가인 문영남 작가의 작품답게 드라마를 보면서 가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던데요. 저도 많이 공감해요. 누구나 아픔이 있잖아요. 가족에게 받은 상처나 트라우마 같은 거요. 그런 건 특히 안 씻긴대요. 죽기 직전까지 생각나는 게 처음 겪은 트라우마라고 하더라고요. 누구나 그런 상처를 안고 살아가잖아요. 극 중 엄마 역인 이보희 선생님에게 대학등록금 달라고 갔을 때 이보희 선생님이 젊은 남자 눈치를 보면서 저를 차갑게 내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 일로 엄마에게 복수하고 싶어 자살할 생각까지 했다는 장면이었는데, 나중에 홍은희 언니한테 전화가 왔어요. 드라마 잘 보고 있다고. 드라마와 100% 똑같은 건 아니지만 비슷한 순간이 있어서 너무 공감한다고요. 다른 분들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하세요. 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정상이가 있고, 화상이, 진상이가 있는 거죠. 가족은 참 소중하면서도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예요. 연기하면서도 가족이라는 게 뭘까 두 번 세 번 생각하게 돼요.

혜빈 씨 연기가 안정적이라는 얘기도 많던데요.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서 연기가 좀 나아지는 게 아닐까요.(웃음) 연기력 얘기는 늘 조심스럽고 부끄러워요. 그래도 그런 얘기 들으면 언제나 기분 좋죠. 제가 가수 출신 배우인지라 오랫동안 꼬리표가 붙어 있었거든요. 그런 칭찬 들으면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돼요.

어느새 데뷔 18년 차예요. 연기 경력도 그렇고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한다는 건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연기뿐 아니라 어떤 분야든 한 가지 일을 오래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어려워요. 18년쯤 했으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말이에요. 매일매일 더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스스로 대견할 때도 있어요. 열심히 살아왔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그전에는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일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이도 있고 하니까 허투루 하면 안 되겠다, 가벼운 이미지로 어필할 나이는 지났다 싶고요. 좀 더 묵직한 배우가, 성숙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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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리 컬러 더블 브레스트 재킷과 와이드 팬츠는 로맨시크. 골드 이어링은 제이미앤벨. 슈즈는 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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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멀 컬러 트렌치코트는 W컨셉. 골드 이어링은 고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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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롱 테일러드 셔츠는 대중소. 플리츠 원피스는 듀엘.

tvN 드라마 <또 오해영> 이후 진정한 배우로서 자리매김한 것 같아요. 10년도 더 걸린 것 같아요. 10년이 뭐예요. 15년 걸렸네요.(웃음) 이사돈이라는 첫 이미지가 없어지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배우로서 이미지를 만드는 데 또 5년이 걸린 것 같고요. 이제야 많은 분이 “예전에 혜빈 씨 가수 했던 거 생각 안 나네요” 라고 말씀해주세요. 그럼에도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을 차근차근 이루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기복도 있고 우울해지기도 하면서 연약해지기도 했는데,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시청자 분들에게 사랑받고 또 힘을 내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은 늘 행복할 수만은 없을 것 같아요. 정말 잡초 같은 근성이 있지 않으면 헤쳐 나가기 어려운 직업이에요. 저는 뚝심도 있고 실패를 성장통으로 여기면서 열심히 하는 타입인데도 그만할까, 하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갑자기 확 두려워지는 순간이 많아요.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할 것 같고, 누군가의 앞에 나서는 것도 두렵고요. 그래서 공황장애를 겪나 봐요. 그런 순간들을 얼마나 건강하게 잘 극복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은 뭔가요? 가족, 친구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요. 지금도 수없이 많은 후배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점점 더 갈 곳이 없어지고요. 평생 배운 게 춤이고 노래이고 연기인데, 그걸 또 어디 가서 펼칠 수 있겠어요. 강단 있는 친구들은 다른 직업군으로 가기도 하지만 어떤 친구들은 위축되어 숨어 사는 경우도 있고, 좋지 않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저는 건강한 길을 많이 찾아내고 싶어요. 좋은 길은 후배들에게도 알려주고,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다 함께 보호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비교적 건강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예를 들면요? 운동이든 뭔가를 배우고, 최근엔 여행을 많이 다녀요. 연예인은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렵잖아요. 게다가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서 다른 사람에게 위로받기도 쉽지 않고요. 저는 자연에서 위로를 많이 받아요. 그런 경험을 통해 담대해지고 정신이 건강해지는 걸 느끼죠.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게 되고, 혜안도 생기고요. 전 좀 어려운 여행을 택해요. 오지를 찾아가거나 여정이 어려운 여행이요.

그러고 보니 늘 도전하는 느낌이 드네요. 저도 엄청 두려워요.(웃음) 겁도 많고. 그런데 해보면 별것 아니라는 걸, 막상 가보면 별것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냥 한번 해보는 거죠.

작년엔 <정글의 법칙 in 남극>을 하면서 남극도 다녀왔죠. 살면서 그런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도전했어요. 그전엔 <또 오해영>을 함께 찍었던 배우 서현진 씨랑 한 달간 남미에 다녀왔어요. 우리 둘은 동병상련 같은 게 있거든요. 둘 다 배우 지망생이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아이돌로 데뷔했어요. 그 과정에서 온갖 고난과 고통을 겪고요.(웃음) 그러다 함께 드라마에 캐스팅돼서 드라마도 잘되고 너무 좋았지만 끝은 또 허무하고 또 다시 분발해야 한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아요.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그냥 길을 걸었어요. 그런데도 그 순간순간이 위로가 되더라고요.

데뷔 후 건강하고 예쁜 이미지는 한결같은데요. 비결이 있나요? 간혹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친구들이 있는데요. 그런 친구들은 일이 잘못됐을 때 비로소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게 돼요. 전 그걸 일찍 깨달았어요. 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속도로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위도 둘러보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제 시간도 가져보고요. 그게 제 방법이에요. 결국 시간은 가게 돼 있는데 제 방법이 건강한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꾸준히 걸어서 여기까지 온 거죠. 저는 운동도, 자기관리도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해요.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선에서요.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노력하죠. 어느 정도 노력하면 되게끔 기본을 유지하면서요.

평소에도 긴장감을 가지고 생활한다는 거죠? 진짜 어려운데요. 이젠 익숙해져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상태가 됐어요.(웃음)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나요?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제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개근상 받듯이 꾸준히 노력해서 배우로서 제대로 인정받고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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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니스칼라 원피스는 씨엘제로크로즈. 골드 이어링은 제이미앤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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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오버 핏 재킷은 YCH. 골드 이어링과 링은 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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