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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베리 아르바트 거리에서 만난 레메슈프와 여학생들

2020-06-30 11:48

글·사진 : 이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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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베리에는 볼가강변 말고도 볼거리가 또 한군데 있다. ‘트베리 아르바트’ 라고 지칭하는 거리다. 차가 다니지 않은 도로다. 그렇다고 사람들로 북적대지는 않는다. 이 아르바트 거리에서는 오페라 테너 가수인 세르게이 레메셰프의 흉상과 비운의 러시아 샹송 가수인 미하일 크루그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쥘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거리에서 만난 두 여학생의 이야기가 추억으로 남는다
승천대성당.JPG
승천대성당

 *레닌 광장 근처의 승천교회
트베리의 소비에트(Sovetskaya) 차도에는 레닌 광장이 있다. 러시아의 모든 도시에서는 레닌 동상을 만나게 되고 동상이 있는 곳을 레닌 광장이라고 한다. 레닌 광장 주변에는 18세기의 관공서 건물들이 몰려 있다. 또 오래된 승천교회(The Church of the Ascension)가 있다. 차도에서 보행자 교차로를 가로 질러 모퉁이에 있는 작은 교회다. 자료에 의하면 승천 교회는 1624년에 두 개의 목조주택으로 지어졌다. 이후 몇 번 화재, 침공 등으로 파괴되면 재건하고 방치를 반복하다가 1751년, 이 지역에서 아주 유명했던 지방 건축가인 르보프(Lvov, 1753~1803)에 의해 석조 건물로 재건했다(르보프는 매우 중요한 건축가로 다음 도시인 트로조크에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그 이후에도 화재로 소실되면 다시 복원하기를 반복했고 1805년에는 종탑이 추가되었다. 그후 트베리의 대성당이 되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1903년에는 마지막 주정부 건축가인 나자르린(Nazarin)이 디자인한 교회 종탑이 3층에 첨부되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시대(1935년 이후)에 이르러서는 이콘 등, 유물이 압수되고 성전은 닫히게 된다. 그리고 창고, 화랑, 산업 전시회 등의 공간으로 사용되다가 1993년에야 러시아 정교회로 복귀된다. 1994년부터는 트베리와 여러 지역의 정교회 신전 순례 여행을 주도하는 센터가 되었다.


건축물은 신고전 스타일의 정사각형의 작은 교회. 반원형의 둥근 천장 아래 좁은 경내가 있고 3층 종탑으로 오르게 계단이 있다. 현재 이 성전에는 순교자인 타데우스 대주교(Thaddeus, 1872~1937)의 유물이 있다. 타데우스는 볼셰비키 혁명 때 온갖 박해를 당한 인물로 1937년 12월 31일에 순교당했다. 타데우스는 1928년 트베리에서 많은 영험한 일을 했지만 무덤조차 잊혀졌다. 그러다 트베리의 신도들이 그의 무덤을 겨우 찾아내고 1993년 10월 26일, 타데우스의 유적들을 승천 대성당에 모셔와 현재는 매년 축일에 기념한다. 

아르바트 거리 모습.JPG
아르바트 거리 모습

 *트베리의 아르바트 거리
승천교회를 지나 근처의 트레쉬바츠카야(Three Saints) 보행자 전용 도로를 가로지르면 아르바트(Arbat)라고 불리는 거리를 만난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가 유명해지면서 지방마다 엇비슷한 도로가 생겨났다. 1907년까지 트램이 다녔지만 2007년, 러시아의 뛰어난 오페라 가수(테너)인 세르게이 야코블레비치 레메슈프(Sergei Yakovlevich Lemeshev, 1902~1977)의 기념비가 생기면서 보행자 전용 도로가 되었다.


트레쉬바츠카야 도로 이름은 트레쉬바츠카야 수도원(Tharsvyatskii Monastery, 현재는 어린이 및 청소년 궁전)에서 비롯되었다. 이 도로는 곡물 시장 광장에서 시작해 트레쉬바츠카야 거리에서 끝이 났다. 다양한 소매점, 무역 상점, 창고 및 여관 등이 있는 큰 바자르 거리였다. 그러다 18세기~19세기까지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진다. 넓은 가로수 길도 만들어진다. 가로수 길은 당시에는 미로노시츠키(Mironositskii, 지금은 없어진 교회의 이름) 도로로 불렸다. 그러다 10월 혁명(1917년) 직후부터 라디시체바 도로(Radishcheva Boulevard)로 이름이 바뀐다.

 

알렉산더 라디시체프(Alexander Radishchev, 1749~1802)는 러시아 작가, 철학자이자 혁명가다. 그의 주요 작품 중에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의 여행(1790년 작)"이 있다. 러시아의 농노의 민속 생활을 보여주는 책으로 일부 섹션에는 트베리 지방의 농노의 삶에 대한 실제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연히 트베리와 무관치 않기에 도로 명이 되었다.

레메셰프.JPG
레메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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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메셰프의 동상

 그의 목소리는 비정상적으로 부드러웠고 음색은 얇아서(피아니시모(pianissimo, 최약음)) 듣자마자 금방 사랑에 빠지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오페라 예술 애호가 사이에서 큰 인기였다. 그는 뛰어난 컨서트 가수이자 러시아 전통 민요의 뛰어난 연주자였다. 그의 오페라의 전성기는 1931년~1942년(29세~40세). 1938년(36세)에는 차이콥스키의 5회 컨서트에서 100개의 로맨스를 노래한 첫 번째 아티스트가 되었다.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민요는 전국적인 가수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한쪽의 폐가 없는 오페라 가수
레메셰프는 러시아 애국 전쟁 때 건강을 망치고 만다. 전쟁 피난 중에 그는 매우 심한 감기에 걸려 두 차례의 폐렴을 앓게 된다. 오른쪽 폐의 흉막염에 결핵까지 겹쳤다. 결국 한쪽의 폐를 떼어내고 인공 폐를 달아야 했다. 의사는 노래를 못하게 했지만 그는 스스로 노력해서 이겨냈다. 1942년~1948년(40~46세)까지 폐 하나로 노래를 계속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라크메(Lakme, 레오 들리브가 작곡한 3막의 오페라), 눈 아가씨(The Snow Maiden,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Les pêcheurs de perles,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모짜르트와 살리에르, 세비야 이발사와 리골레토 같은 오페라들을 녹음했다.

 

1947년(45세)에는 베를린 국립 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1951년(49세)에는 레닌그라드(현재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마리(Maly)오페라 극장(현재 Mikhaylovsky Theatre)에서 라 트라비타(La Traviata)를 제작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1953년(41세), 소련 인민 예술가(People's Artist of the USSR)로 선정되었다.


그는 선의의 경쟁자였던 이반 코즐롭스키(Ivan Kozlovsky, 1900~1993)와 함께 1956년(54세)까지 볼쇼이의 최고의 테너의 자리를 지켰다. 1957년~1959년(55세~57세)까지 볼쇼이 극장의 조감독이 되어 마스네의 베르더(Werther) 제작 감독을 맡았다. 그의 임기가 끝날 무렵, 그는 주로 러시아 고전 로맨스 컨서트를 열었다. 그리고 라디오에서 민요 공연을 하거나 모스크바 음악원의 부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8년(66세)에는 "예술의 길(The Way to Art)이라는"책을 출간했다. 그는 표트르 차이코프스키 예브게니 오네긴의 렌스키(Lensky) 역할을 1927년(25세)부터 500번을 맡았다. 세 번의 심장 발작을 겪고 폐가 제거 된 후인, 70번째 생일에 마지막 렌스키 역할을 했다. 불행하게도, 리골레토 공작(Duke in Rigoletto)과 세비야 이발사의 알마비바(Almaviva)와 같은 수많은 공연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녹음본이 남지 않았다.

 

*6번 결혼, 무수한 여성 팬들
레메셰프는 1930년대와 1940년대(20대 후반~30대 후반)의 인기는 대단했다. 레메셰프의 재능, 예술성, 연기 기술 및 눈에 띄는 매력으로 아주 빠르게 대중의 아이돌이 되었다. 그의 모든 공연에는 많은 팬들이 따라다녔다. 팬들은 집 근처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고 밤을 지새웠다. 극장 로비에는 농담으로 부르는 “lemeshistki"와 "kozlovityanki"(Lemeshev의 경쟁자인 Ivan Kozlovsky의 여성 팬)의 여성 팬들의 난투극 장소였다. 그가 영화 "The Musical Story"(1941, 39세)의 주연을 맡아 스탈린 상을 받은 후에는 소련 전역에 이름이 알려졌다. 그의 인기는 드높아졌지만 그와 함께 질시도 함께 따랐다. 그도그럴 것이 그는 6번의 결혼과 수많은 개인적인 사건들로 항상 팬들의 주의를 집중시켰으니 말이다.


그의 결혼 생활 중에 알려진 부인은 네 번째. 유명한 소프라노 이리나 마스렌니코바(Irina Maslennikova)였다. 그 둘 사이에서 딸 마리아를 낳았다. 그러나 그가 정착한 부인은 가수 베라 쿠드랴브세바(Vera Kudryavtseva, 1911~2009)였다. 이 커플은 1977년(75세), 레메셰프가 죽을 때까지 29년 지속했다. 그는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치 묘역(Novodevichy Cemetery)에 묻혔다.

 

*비운의 러시아 샹송 가수 미하일 크루그 동상
또 이 아르바트 거리에서 인기를 끄는 곳은 러시아 샹송 가수 미하일 크루그(Mikhail Krug, 1962~2002)의 동상이다. 트베리 아르바트 거리를 필자가 간 이유도 바로 이 미하일 크루그 동상을 찾기 위함이었다. 트베리 관광 정보에서 보여준 그의 사진은 호기심을 유발할 정도로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가로수 길(라디쉬체바 거리)의 벤치에 그가 앉아 있다. 기타를 양다리 앞에 둔 그의 동상의 외모는 한 눈에 봐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다. 크루그 동상 옆은 사진 포인트.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동상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는다. 현지에서 만난 한 남자 대학생은 그에 대해 ‘감옥’이라는 말을 했다. 그의 이야기는 길어서 다음 편에서 자세하게 소개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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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나와 레샤

 *여학생 두 명을 만난 이야기
그날, 미하일 크루그 동상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잘 못 들어 만난 두 여학생 이야기를 하자. 길을 묻는데 이 여학생들은 나름 유창하게 영어를 잘한다. 그래서 잠시 의미없는 대화를 나눈다. 11학년이라고 하니 아직 대학가기 전이다. 식당을 물어보니 호박스프와 견과류가 들어간 팬 케이크가 아주 맛있다는 ‘오레(Oreh)’라는 레스토랑을 추천한다. 늘 그러하듯, 사진을 찍어주면서 메일 주소를 받고 안녕을 고한다. 그리고 미하일 크루그 동상을 보고 식당 방향(어차피 숙소 방향)으로 걷고 있는데 그녀들이 숨을 헉헉 거리면서 달려오고 있다. 그네들도 식당을 갈 생각이란다.

 

그녀들이 식당까지 안내를 했고 결국 합석하게 된다. 영어를 잘하니 나이와 상관없이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한국이었다면 겨우 딸만한 나이의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겠는가?
이 둘의 만남이 특이하다. 채팅으로 만난 사이로 처음 얼굴을 마주한 사이다. 모스크바에서 공부하는 여학생은 레샤(Lesya)이고 트베리의 여학생은 알리나(Alina)다. 둘다 이과생으로 화학을 전공하고 있다. 둘다 모스크바에 있는 대학 진학이 목적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영어를 잘하고 시골에서 수도인 모스크바의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다. 모스크바에서 공부하는 레샤도 고향은 시골이다. 숙소는 여학생들만 사는 도미토리 룸에서 산단다.

알리나가 보여준 러시아 유명 배우와 친오빠.jpg
우리들은 아주 오랫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대화가 순조로운 것. 재미있는 것은 알리나의 친 오빠가 현재 배우다. 더 놀라운 것은 오빠의 친구가 한국인들도 알만큼 유명한 안드레이 머즐리킨(Andrey Merzlikin)이다. 필자는 러시아 브릿지 전투(Battery Number One, Edinichka, 2015)라는 영화를 봤었고 영화 속에서  ‘상남자, 매력남’으로 등장한 그 배우의 매력에 폭 빠진 적 있었으니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다.

호박죽.JPG

그날 우리들은 팬 케이크와 호박죽을 주문해 먹었다. 음식은 맛이 없지는 않았지만 늦은 점심때 피자 한판을 다 먹고 케이크, 커피까지 마셨더니 큰 감흥은 없는 식당이었지만 여학생들과의 만남이 더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낯선 사람과의 인연만큼 좋은 여행은 없는 듯하다.


*Data
*승천교회:26 Sovetskaya st.
*트베리 아르바트 거리:Tryokhsvyatskaya Street
*미하일 크루그 동상 위치:Radischev Boulevard(가로수길)
*Oreh 레스토랑:Sovetskaya St., 9/�+7 482 264-4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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