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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연숙의 '내겐 너무 그리운 것들']이 남자가 걷는 이유

2019-11-26 17:17

글 : 이연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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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온 이틀 후부터 전국적인 한파가 이 곳까지 왔었다. 비도 온다고 하고 바람도 분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고요한 마을에 바람소리만 괴이하게 들렸다. 오늘은 올레 트레킹 하기는 틀렸다며 영화를 보러 가자고 남편이 말했다.
 
"올레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
 
영화를 보고 나서 동문시장에서 순댓국을 먹으며 내가 물었던 말인데 언제나 그렇듯 그는 대답이 없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잊었다.
 
이틀 차에는 렌트했던 차로 제주도를 완전 일주 한 후 반납했고 다음날에 지난번 마쳤던 18코스에서 19코스를 출발했었다. 걷고 싶은 날에는 걷고 예쁜 카페에서 멍도 때려보고 쫓기듯 바쁘게 둘러보던 오일장에서 현지인처럼 장도 보려던 나와는 달리 애초에 남편은 제주에 살아보기 위해 온 이유가 오직 올레밖에 없었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별 의미 없이 찾아 놓았던 올레 코스 안내정보는 나보다 남편이 신주단지처럼 품고 다녔다.
 
"어릴 때부터 걷는 걸 좋아했거든.”
 
'한 달 간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느닷없는 말에 멀뚱하게 그를 쳐다봤다.
 
"아까 물었잖아. 올레를 왜 하냐고."
"어? 아... "
"좋잖아. 걸으면 볼 수 있는 것도 많고, 근데 군대 가서 그렇게 걸을 줄 몰랐지.”
 
그러고는 남편은 실없이 웃었다. 걷기를 좋아하는 것을 국방부에서 미리 알았을 리도 없지만, 영덕에서 홍천까지 걸었다든가, 걷다가 잠이 들었다든가, 걷다가 하늘이 노래져서 통나무처럼 쓰러졌다든가 등등 소설로 쓸 만큼 차고 넘치는 얘기들 정도면 좋아했더라도 학을 뗄 만할 것 같았다.
 
20코스를 걷는다며 혼자 나갔던 날에는 중간에 식사할 곳이 없어 거의 아사지경에 이렀다고 흠씬 젖은 셔츠를 벗으며 말하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짠해보였다. 내가 보기에 그는 걷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한다고 믿는 것 같다.
 
바람이 잦아들자 남편은 다음날부터 매일 한 코스씩을 걸었다. 하루는 혼자, 하루는 나와 게다가 강아지까지 함께였다. 마트에 갔을 때 그는 묶음 과자와 에너지바, 양갱 등 군것질 거리를 한 보따리 샀다. 어제는 아침에 유부초밥으로 도시락을 준비해서 나갔다. 보온병에 커피를 내려서 담고 물 한 병을 넣으니 가방이 묵직했다.
 
숙소를 한 곳에 정하니 코스가 하나씩 멀어졌다. 코스는 광치기 해변에서 온평포구까지 15킬로미터 정도 거리였다. 버스를 타고 광치기 해변에 내렸다. 가방은 묵직했으나 남편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코스가 거의 끝날 무렵 공원에서 준비했던 도시락을 먹는 남편의 표정이 정말 행복해보였다. 걷는 게 행복한 건지 도시락이 맛있어서 행복한 건지는 묻지 않았다.
 
2코스 종점에서 스템프를 찍고 3코스 시작 스템프를 같이 찍더니 남편이 배낭을 다시 고쳐 맨다. 왜냐고 물었다.
 
"밥도 금방 먹었고 지금 컨디션으로라면 다음 코스 중간지점까지 갔다가 와도 될 것 같아."
 
또 실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내가 혼자서는 강아지를 데리고 버스를 탈 자신이 없어하는 것을 알고 남편은 강아지와 함께 다녀오겠다고 했다.
 
올레 길은 아스팔트 위를 걷는 구간은 거의 없다. 내가 탈 버스가 서는 곳을 만나게 될 줄 알고 차도를 따라 걷다보니 금방 숲길로 이어지는 곳에 올레 리본이 달려있는 것이 보였다. 빈 도시락과 보온병을 담은 배낭을 내가 지고 남편은 강아지와 간식과 물을 담은 강아지 캐리어 백팩을 짊어지고 다시 길을 떠났다.
 
혼자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꽤나 멀고 외롭다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정말 걷기가 행복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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