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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연숙의 '내겐 너무 그리운 것들']아버지의 신발

2019-11-04 09:46

글 : 이연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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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결혼한 딸은 주변에서 엄마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눈이 크고 선이 굵직한 남편을 닮지 않았으니 하는 말 일 수도 있겠지만 딸도 나도 둘이 닮았다는 말이 싫지 않았다. 어떤 날은 우체국 집배원과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을 때 둘이 자매냐는 좀 과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이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새치름한 표정으로 서로 내가 손해라고 했다가 깔깔거리고 웃었다. 사실 시어머니를 비롯해 한 미모 하는 시누이들의 유전자와 무관하지 않아 아이는 어려서부터 늘 예쁘다는 말을 들은 터였으니 닮았다고 하면 나야 손해는커녕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그런 아이에게도 약점은 있었는데 그 것이 볼이 넓고 투박한 발이라고 했다. 나를 닮지 않아 가느다란 손가락과 길쭉하고 단단한 손톱을 가졌고 여리여리한 체구와 계란형 얼굴 등 뭐 하나 흠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아이는 발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굽 높은 신발과의 인연을 끊은 지는 오래다. 남들 신은 모양이 편해 보여 지하철역을 지나다 만 원짜리 로퍼를 사러 상가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분명히 굽도 낮고 편안해 보이는데 내가 신으면 곰발바닥처럼 보여 주인이 권하는 대로 이것저것 신다보니 가게 바닥이 온통 내가 신었던 신발들로 즐비했다. 뒤늦게 주인의 편치 않은 표정을 느끼고는 도망치듯 그 곳을 빠져나오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나 원 참, 이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발이 좁은 거야?’

이 후로 내가 신는 신발은 딱 두 종류가 되었다. 워킹화이거나, 우리 엄마 표현으로 두멍같은 워커가 그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있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복장에 격식을 갖춰야하는 상황이 난감해졌다. 어쩔 수 없이 신발에 발을 끼워 넣고 집을 나서지만 발끝부터 서서히 조여 오던 것이 나중에는 온 몸이 구두 속으로 구겨 들어가는 느낌으로 몸이 비틀렸다. 하여 작년에 딸이 결혼식에 신으라고 사 주었던 예쁜 중간 굽 구두를 신발장에 고이 모셔두고 한 번도 신은 적이 없었다.

엄마 발을 닮았다고 다소 원망 투로 말하는 아이에게 나도 할 말은 있다. 볼이 넓고 두툼한 발은 나 역시 내 부모에게서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원망하는 넋두리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자주 두 분이 천생연분이었음을 은근 어필하고는 했다. 그 중 하나가 손과 발 모양인데 손바닥을 쫙 펴면 신기하게도 손가락이 활처럼 휘는 것이 같았고 손발톱이 짧고 얇은 모양조차 똑같았다.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 같은 사진 속 장면의 집에 살 때 나는 고작 세 살에서 다섯 살 사이였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신기하게도 그 짧은 기간 동안에 거의 다 있다.

아버지가 친구들과 집에서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했던 것 같다. 세 사람 모두 기분 좋게 술에 취한 모습이었다. 방문을 열면 일 미터 쯤 되는 폭의 마루가 옆방과 부엌으로 길게 놓인 집이었다. 친구들을 배웅하러 나온 아버지가 손을 흔들다 비틀거리면서 마루에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이내 다리는 마당에 둔 채 마루위로 비스듬히 엎드려 팔을 베고 누웠다. 아버지의 들린 한 쪽 발에서 슬리퍼가 툭 벗겨져 떨어졌다.
 
그 때 저만치 마당을 나서려던 아저씨가 되돌아와 담배에 불을 붙였던 성냥개비를 아버지의 발바닥에 댔다. 성냥개비의 끝에는 불심이 남아있었는지 아버지 발이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그 순간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저씨였는지 엄마였는지 나를 안아들고 얼렀는데 그게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일렁거리는 눈물 사이로 아버지의 두툼한 발만 보였다.
 
아이하고는 달리 나는 엄마가 아닌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때문에 우리 남매에게 예쁘다는 표현은 모두 엄마를 닮은 아들들 몫이었고 나는 지 애비의 칼 같은 성정까지 닮았다는 말끝에, 사내놈들이나 닮지 기집애가 그런 승질을 어디다 쓰냐는, 우려를 가장한 핀잔을 듣고는 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태어난 것이 어쩐지 내 잘못인 것 같은 생각에 늘 주눅이 들어 살았다. 별일 없이 지난 사춘기 때문인지 갱년기 우울증을 극심하게 겪는 동안에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을 어지럽혔었다.
 
세상에 내 발에 맞는 토퍼가 없어도 상관없다. 어쩌면 얇고 가벼운 플랫슈즈를 신어볼 일은 평생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내 발을 보고 있으면 그 날 툇마루에 누운 아버지의 발이 떠오른다. 내 모습, 성격까지 아버지와 같아서 좋다.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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