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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연숙의 '내겐 너무 그리운 것들']보스든 보호자든

2019-10-16 11:48

글 : 이연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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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입구 횡단보도 앞에 섰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수술 들어간다.”
“벌써? 여덟시라더니? 암튼 나 지금 병원 앞이야 금방 들어가. 잠깐만 기다려요.”
병실, 남편의 침상이 비어있다. 옆 침상 환자가 방금 나갔다고 알려준다. 허둥지둥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는데 간호사실에 앉아있는 환자복 차림의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두 달쯤 전, 치과에 다녀온 남편이 사랑니 발치 수술을 하기 위해 사흘간 입원을 해야 한다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게다가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는 거의 울 것 같았다. 이쯤에서 시어머니의 둘째 아들에 생생한 엄살증언을 다시 한 번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얘 말도 마라, 늬 시아부지가 야단을 치느라 사남매를 세워놓고 회초리를 들고는 아직 때리지도 않았는데 애비는 냅다 골목으로 도망을 쳐서는 이 동네 사람 없냐! 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우는 통에 한 대도 안 맞았지, 그런데 큰놈은 그 자리에 콕 박힌 듯 서서는 그 매를 다 맞았지 뭐냐?”
 
신혼 초 어느 여름, 전날 차가운 맥주에 노가리를 먹고 온 다음날 급성 장염에 걸려 응급실 신세를 진 것 말고는 남편이 특별히 아팠던 기억은 없다. 해마다 건강검진 결과가 나오면 뿌듯한 표정으로 ‘지방간도 없고 위장도 튼튼하다네, 난 술 좀 더 마셔도 될 것 같아.’라고 말하는 남편이 어이없어 할 말을 잊었던 적도 있었다.
 
다부진 체격에 튼실한 하체, 뭣보다 반짝거리는 눈빛은 친정 엄마의 마음에도 흡족했으니 건강만큼은 타고 났다고 자부하던 터였다. 하여 맛있는 음식과 술, 담배와 커피에 남다른 애착관계를 유지한 채 별 탈 없이 사는 것처럼 보였다. 세월 앞에도 장사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입원 수술 전신마취 등 평생 한 번도 못해본 일들을 줄줄이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 당황스러운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삼십년 쯤 살다보니 이 전에는 몰랐던 그의 말 습관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일테면 이런 것 들이다. 회사 직원얘기를 할 때면 ‘내가 데리고 있는 직원이’ 라든가 ‘부하 직원이’라고 말한다. 가족과 관련된 얘기 중에도 자주 ‘좋은 데 좀 데리고 다녀야 할 텐데.’ 라든가 ‘고기 좀 먹여야 할 텐데.’ 혹은 ‘가장이 비싼 것도 못 사줘서...’ 라며 한사코 본인이 보호자이고 나와 아이들은 보호를 받는 상황으로 말하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것이 보호자 본능이기보다는 보스 본능으로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원래 가지고 있던 습관이었는지 나이가 들면서 새로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말이 자주 마음에 걸렸었다.

입원준비 안내지를 보면서 남편 스스로 가방을 꾸려 병원에 가서 수속을 마치고 나니 직원이 명찰 하나를 건네준다. 남편이 받으려고 하자 구태여 내 손에 쥐어주며 병실 출입을 할 때 필요하니 항상 착용해야한다고 했다. 침상을 배정받은 후 남편이 환자복으로 갈아입자 나는 아까 받은 패찰을 목에 걸었다. 이름이 없는 명찰에는 ‘보.호.자’라고 쓰여 있었다.
 
그 순간의 장면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남편은 환자가 되었고 나는 그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호주제는 폐지되었지만 남편이 우리 가족의 보호자라는 것은 남편 자신이나 가족 모두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일찍부터 머리카락이 세기 시작했던 남편이 환자복을 입자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잔뜩 겁을 먹고 있어서인지 얼굴도 초췌해보였고 어쩐지 등도 굽어 보였다. 짠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잘해줘야겠다는 결의가 저절로 생겼다.

수술실에서 나온 남편의 창백한 얼굴 여기저기에 자잘한 핏방울이 튀어있었다. 입을 벌리고 수술을 하느라 코로 호흡기를 꽂았던 터라 코에 고였던 피가 수시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잘해줘야겠다는 결의는 수술 첫날까지는 그런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둘째 날이자 퇴원하는 날부터 이 남자의 숨겨졌던 엄살 본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죽을 사와라, 의사가 주스를 먹으라고 했다, 반드시 오렌지 주스로 사와라, 두유는 텁텁해서 싫다, 머리가 아프다, 골반이 아프다, 하더니 일주일이 지나도록 왜 통증이 안 없어지는지 모르겠다, 다른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 왜 냉동실에 얼음 팩이 없냐, 밤에 한 숨도 못 잤다 등등 끊임없는 불평에 귀가 다 멍멍했다.

‘저기요, 거 쫌 너무한 거 아니요?’라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으나 차마 밖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31년 만에 호젓하게 보내게 되려나 했던 추석은 차라리 종일 녹두전 부치고 송편 빚는 게 편하겠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보호자 노릇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 것이 시작이라는 것을 안다. 이제부터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보호자 패찰을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주고받을 대상이 있으니 다행이다. 보스든 보호자든 너무 많이 아프지는 말고 곁에 오래 남아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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