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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중년 이상문의 Alone Together 3]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2019-08-12 11:28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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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앞을 스치듯 지나다 못 보던 광고에 시선이 멈췄다. 불타는 청춘이신 김광규 아저씨가 손가락 깍지에 턱을 괴고 징그러운 표정으로 묻고 있다.
‘느그 아버지... 머리 어디서 하시노?’
 
영화 <친구>의 고교 담임쌤 대사를 패러디한 코믹 광고다. 영화에서 김광규 선생님은 지지리도 공부 못 하는 ‘놈’들, 좀 껄렁거린다 싶은 ‘새끼’들을 줄줄이 세워놓고 일상화된 체벌과 야속한 폭언을 시전하신다. 장의사 집 아들 장동건에게 시크하게(?) 뱉은 그 말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가 오리지날이다. 영화와 광고 장면이 한꺼번에 오버랩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별 일도 다 있다. 공교롭게도 다음날 아침 신문에서 이 ‘명대사’를 또 만났으니. 3단 기사의 제목은 ‘아버지 뭐 하시나, 채용 때 물으면 과태료’. 당장 이달 17일부터는 회사가 직원을 채용할 때 부모님 직업 등 직무수행과 무관한 개인정보를 물어보면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단다.
 
시행령은 구직자의 키와 몸무게, 출신 지역, 혼인 여부, 가족의 재산까지도 개인정보 요구를 금한다. 2년여 전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공론화됐던 ‘블라인드 채용제’가 떠오른다. 열거한 정보들 외에도 출신 학교와 인물사진 등을 입사서류에서 빼도록 했었다. 당시 새 정부는 공공부문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기로 하고, 330여개 공기관에 이의 시행을 지시했다. 고용의 평등, 기회의 공정을 기하려는 취지다.
 
그맘때 난 이 제도를 놓고 취지는 좋으나 방법론이 허술하다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2년여 시간이 지났다. 공공부문은 물론 일부 기업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을 채택해 시도한다는데, 현장의 반응과 결과는 어땠는지 꽤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취지가 무색하지 않게 잘 정착되면 좋으련만, 업무 성격, 현장 상황에 따라 모순도 가치충돌도 있을 법하다.
 
걱정 반 바람 반으로 잠시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간 업데이트 된 게 별로 없다. 민간부문에서 은행권의 블라인드 채용 사례가 몇 가지 올라와 있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검색하면 ‘블라인드’는 힘을 발휘하지 못 하고 ‘채용’이 우월한 키워드다. 안타깝게도 ‘채용비리’ 기사가 많이 눈에 띈다.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해온 일부 은행들은, 몇 가지 풀어야 할 숙제들이 여전하지만 제도를 계속 이어나갈 생각인 듯하다. 어떤 시중은행은 블라인드 채용 시행 후 이른 바 ‘SKY’대학 출신 입사자가 줄었다고 한다. 학벌보다 열정으로 준비된 중하위권 대학 출신도 고루 채용하니 제도의 취지가 실현되는 것 같아 고무적이라는 반응이다.
 
한편으론 고민도 있단다. 과거엔 실업고, 요즘엔 특성화고라 부르는 고교 졸업생들의 은행 취업이 퍽 줄었기 때문이다. 고졸자 채용을 육성하자는 기조가 블라인드 채용 도입 후 물타기하듯 사라져간다. 고졸, 대졸도 변별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아직 나이 어린 고졸자들의 역량이 그대로 노출돼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블라인드 채용제 때문에 별도의 ‘고졸자 전형’이 점차 줄고, 디지털시대 은행의 업무 다변화로 고졸행원 수요가 감소하는 것도 그 배경이다. 한 유명 시중은행은 2016년 이후 고졸 사원을 단 한 명도 뽑지 않았다고 한다. 블라인드 채용이 능사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고졸이든 대졸이든, ‘SKY’를 나왔든 지방대를 나왔든, 일을 찾아 나선 사회초년생들의 마음은 다 똑같다. 그러나 이들을 잘 가려 뽑아 쓰려는 회사나 기관은 똑같은 마음도, 똑같은 환경도 아니다. 그러니 한편으론 채용방식과 절차의 획일화가 타당한지를 신랄하게 고민해야 할 타이밍 아닐까. 네이버나 다음 같은 대형 온라인업체는 물론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들도 상시채용이나 부문별 채용 등 다양한 채용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들었다. 
 
하지만 부정적 사례와 문제가 좀 있더라도, 블라인드 채용이 학력차별을 일부라도 완화하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다. 혹여 이조차 ‘희망고문’이 될지언정 이 제도의 필요성을 공공과 민간이 함께 공감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크다. 취업준비생에겐 희망적인 소식임은 분명하니까.
 
아버지와 너무 일찍 헤어진 나는,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란 그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학년 초마다 써내는 가정환경조사서에 다 나와 있었을 터였다. 어린 시절과 소년기 한 때는 그 험악하고 사려 없는 질문을 오히려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내 수준의 학벌을 가까스로 만들고 내 운명의 직업을 어렵게 택하기까지, 내겐 '뭘 하신다' 대답할 아버지가 없었으니까. 생전에야 최고 건설회사의 에이스 엔지니어였다지만, 그걸 기억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어렸다.
 
대학 졸업 무렵 언론사 기자시험을 준비할 때였던가. 백부께서 턱없는 말씀을 몇 번 던지셨다.
‘내가 거기 대표이사를 잘 아는데... 막역하지 아주’, ‘큰아버지 동창이 그 신문사 주필인데, 거기 말 좀 넣을까?...’
나의 아버지이자 당신의 동생을 대신해 ‘뒷배’ 역할을 하시려 했던 마음을 왜 모르겠나. 그런데도 그때마다 질색하고 귀를 닫아버리는 조카놈을 그분은 어찌 생각했을까. 세상물정 도통 모르는 순진한 녀석, 빽도 돈도 없으면서 자존심은 쓸데없이 센 놈이라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설마 ‘내 동생이 저렇게 양심적이고 훌륭한 아들을 두고 떠났구나’ 생각하고 감동하셨을 리 있겠나.
 
일할 권리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도 중요해지는 사회다. 초조하고 고단하겠지만, 너무 일하고 싶다고 부정과 비리에 눈돌리지 말자. ‘장님 채용’하니까 다 보여주지도 못 해 답답하고 억울하다고 투덜거리지 말자. 이미 가진 것에 연연하지 말고 그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에 승부를 거는 모습을 보여주자.
 
그때 그곳에 아버지가 없었던 사람이라서, 애초부터 기댈 곳 없던 놈이어서 이러는 거 아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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