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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중년 이상문의 Alone Together 1]밥 잘 안 사주는 못생긴 아저씨

2019-08-12 10:45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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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도시중년. 평생 종잇밥, 잉크밥을 먹고 살다가 몇 해 전부터는 온라인도 기웃거리고 있는 기자겸 에디터. 온라인 소셜미디어의 시대에 우리는 함께이자 혼자다. 혼자인 듯하지만 함께 있기도 하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살아내야 하는, 고독하기도 고독하지 않기도 한 우리의 일상 이야기를 ‘Alone Together'에서 싱겁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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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절정기 때 몸살을 앓던 이들이 있었다. 마누라는 물론 동네 아줌마들, 직장 여인네들도 무척이나 열광했다. 이들의 시선이 그 ‘누나’를 향한 게 아니었단 건 삼척동자도 안다. 예쁜 누나한테 밥 얻어먹던 ‘훈남’ 동생에 설렜던 것 아니겠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향한 남자들의 로망은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지난해 6월 페이스북에 끄적였던 글이 생각난다. 난생 처음 해본 드라마 몰아보기로 ‘나의 아저씨’를 마무리했을 때였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강림하시기 전에 저런 아저씨가 다녀가신 걸 모르고 살았다. 하늘에서 밥 잘 사주는 누나들이 마구 쏟아지기만 기다린 나는 얼마나 후진 아저씨였던가. 찔끔 반성해보는 밤...’
난 이미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기다릴 나이가 아님을 자각한 쓸쓸한 소감이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밥 잘 사주는 아저씨여야 함을 재확인하고 억지로 반성하는 쓰디쓴 다짐이었다. 아무튼 그랬다.
 
생뚱맞게 밥 얘기를 꺼내는 건, 요 며칠 회사 복도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동료들을 마주치는 일이 부쩍 다반사여서다. 예전 같으면 흔히 건네던 ‘밥 먹자’는 말이 언제부턴가 사라졌음을, 오늘 또 한 친구를 지나치며 느끼게 된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란 말은 늘 막연해 날짜를 바로 정해야 직성이 풀리던 나였다. 한데 이제 ‘언제 한 번 먹자‘ 소리조차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있다.
 
왜 그럴까.
시간이 없거나 주머니 사정이 빈약해서? 그럴 수 있다. 흔히들 구실 삼는 모범답안이다. 가만 있자… 혹시, 밥은 사줄 순 있는데 그리 잘생기지 못 해서, 그 모순(?)을 극복하지 못 해서, 밥 살 자신이 없는 건 아닐까? 빨리 잘생겨져야 밥을 살 수 있는 지경이 되는 걸까?…. 꼬리를 무는 우스개 상상은 슬프거나 재미있다.
 
나는, 좀 더 솔직하게 다른 답을 내놓고 싶다. 끼니를 때우는 순수 생계형 행위가 아닌 한, 비즈니스 자리가 아닌 한, 함께 밥상을 받는 사람과의 대화와 소통은 밥과 반찬 이상의 중요한 등장요소다. 편안하고 매끄러운 공감이 필요하다.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들뜨고 기쁘지 않은가. 반찬의 맛을 느끼듯 밥상머리 사람과의 공감도 맛있어야 한다. 맛있는 음식만 침샘을 자극하는 게 아닐 성싶다. 공감 100%의 대화란 우릴 얼마나 침 마르게 하던가.
 
그러니 요지가 드러난다. 어쩌면 나 이제 누군가와 공감에 이르려면 걸러 내거나 설득해야 할 것들이 귀찮아진 것은 아닌지, 뻔히 보이는데 짐짓 보이지 않는다 말하는 ‘벽’과 ‘함정’에 지나친 염증을 느낀 건 아닌지, 그래서 공감의 욕구가 점차 수그러들고 있는 것은 아닐지….
정말 그렇다면, 이러다간 ‘혼밥’ 트렌드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어정쩡하게 이 밥상 저 밥상 끼어들어 사람들 괴롭히는 ‘꼰대’가 되느니 그게 나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아니지 않은가. 잘 생기고 예쁘다는 것이 얼굴 생김새만 말하는 게 아니라면, 소찬이라도 함께 나누려는 마음 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이가 깨지 못 하는 벽과 함정이 눈에 보여도 적당히 눈 감거나 요령껏 피해가는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말처럼 밥은 신의 선물이니까. 좋든 싫든 신 앞에 평등한 사람끼리 나누는 소통이기도 하니까.
 
선물인 한, 따뜻한 진심 하나로만 마주하길 다짐하며, 나는 내일 밥 사줄 사람을 생각한다. 내게 밥 사줄 사람을 고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
한데, 밥 잘 안 사주는 못생긴 아저씨의 불현듯한 이 다짐은 타당할까 부질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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