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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장미 도자기, 아버지의 일기장... 우리의 추억이 묻힌 곳

2019-07-01 10:06

글 : 이연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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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여섯 살 까지가 전부이지만 너무 선명해서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거짓말 말라며, 누구에겐가 들었던 것을 자기 기억으로 착각하는 거라고 확신에 차서 말했지만 그 시간에 있지 않았다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지금은 T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는, 구 일산역사에서 바라볼 때 왼쪽 길 건너편 어디쯤에 동생이 태어났던 집이 있었다. 어쩌면 엄마에게는 그 곳에서의 시간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요즘 들어 문득 든다.

일산 역으로 아버지의 퇴근길 마중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늘, 여섯 살이었던 오빠는 걸리고 나는 아버지가 안고 동생은 엄마에게 업혀있었다. 다니던 직장보다 월급이 다섯 배 쯤 되는 곳으로 이직을 하고 얼마 후 그 날도 퇴근 길에 아버지가 물었다. 제일 갖고 싶은 게 뭐냐고. 오빠는 “크림빵!” 이라고 말했고 나는 “소꼽장” 이라고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말을 못하던 동생은 넘어갔고 엄마에게 물으니 “나는 당신만 있으면 돼요.”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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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서 오빠는 불신에 찬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그게 다 들은 얘기지 기억이 아니라고 말하며 이죽거렸다. 나는 모르면 가만있으라며 반박 못할 기억 하나를 얹었다.햇살 좋은 오후였다. 이제 막 짚고 일어서기를 하게 된 동생이 툇마루 기둥을 붙잡고 서 있었다. 고작 두 살 터울인데다 엄마젖까지 빼앗아간 동생을 질투하기는커녕 누나 노릇을 한다고 엄청 예뻐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마루 아래 댓돌에 앉아 동생을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 순간 기저귀를 차지 않은 동생의 그 곳에서 노란 오줌이 살포시 포물선을 그리며 내 입 속으로 들어왔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나는 울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세상 태평했던 동생의 멀뚱한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라고 말하면 식구들은 더 이상 반론을 펴지 못했다. 

문학소녀의 꿈을 꾼 적도 없는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남편의 직장 발령으로 부산에 살게 되었을 때부터였다. 낯선 도시에서의 어색하고 외로웠던 상황을 일기처럼 쓰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8년쯤 전부터는 소설 습작을 하게 됐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결핍이 많을수록 좋으며 일상의 상황에서도 잘 풀리면 별일 없어 좋은 거고 잘 안 풀리면 소설로 쓰면 되니까 더 좋다고 한다. 대인 관계가 빈곤하다보니 엄마와 가족얘기를 쓰고 나서 더 이상 쓸 얘기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결혼 전까지 살던 집 다락방에서 발견했던 아버지의 일기장이 생각났다. 까만 표지에 장미무늬가 있던 양장표지에 귀퉁이는 낡았지만 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이십 대의 아버지는 필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생각보다 꼼꼼하게 일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곳에는 가난한 집안의 막내로 학비며 생계를 스스로 해결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 과정에서 형제에게 받은 설움, 그로 인한 결심 등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중에도 가장 눈에 들어온 부분은 스물두 살의 아버지가 스물한 살의 엄마와 결혼을 했음에도 아버지의 첫사랑은 따로 있었다는 점이었다. 엄마에게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그 때 쉰 중반이었던 엄마는 샐죽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사람이 있었어, 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뿐이었다. 어려운 형편 때문이 먼저인지 관심이 없었던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으나 나는 그 때 제대로 읽은 소설 한 권 없을 때였다. 

40년 후에 소설을 쓰고 싶게 될 것을 알았다면 식구들 눈치 볼 것 없이 그것을 챙겼어야 했다. 지난 봄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딸아이가 검색해서 찾아간 곳에는 오래된 그릇이며 생활용품을 진열해서 팔고 있었다. 유럽의 오래된 브랜드 찻잔이나 티팟은 어차피 생소한 것이니 그런가보다 하며 찻잔 세트 하나씩을 골랐다. 그런데 진열대 한 쪽에 70년대 쯤 어느 집에나 흔하게 굴러다니던 그릇들이 개당 만원 혹은 이만 원의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다. 심지어 판매 품목은 아니라며 주인이 보관하고 있는 진열장 안에는 중 고등학교 시절 분식집이나 짜장면 집에서 주문받기 전에 놓아주던 갈색의 육각 도자기 컵이 있었다. 그건 더 이상 구할 수 없어서 판매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나 세상에 이런 게 귀해진 세상이 올 줄 누가 알았겠니?” 
지나는 말로 탄식조로 중얼거렸더니 딸이 묻는다. 
“할머니 집에도 그런 거 많지 않았나?”

내친 김에 엄마와 통화 중에 물었다. 엄마가 애지중지하느라 꺼내 쓰지도 못하던 황실장미 세트랑 파란 줄무늬가 있는 큼직한 주스 잔, 다 어디 있냐고.
“모르겠다, 그냥 다 파 묻혔겠지 뭐.”
결혼하기 전에 살았던 집은 3번지라고 불렀다. 내 다리가 굵어진 이유가 집으로 가는 큰 언덕을 두 번이나 올라 다녔던 때문이라고 투덜거리던 그 집 자리에는 지금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라고 했다. 엄마의 장독대, 황실장미 도자기, 아버지의 일기장...우리의 추억이 묻힌 곳에 아파트가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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