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벤트
  • 동영상
  • 카드뉴스
  • 조선뉴스프레스멤버십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 네이버포스트
ISSUE
  1. HOME
  2. ISSUE

그가 다시 담배를 피우는 이유

2019-06-17 09:44

글 : 이연숙 작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결혼식을 몇 주 앞두고 풋풋한 청년이었던 남편은 돌연 금연을 선언했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설명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직장의 사보에서 비 흡연자의 것과 비교해놓은, 새까만 석탄처럼 보이는 흡연자의 폐 사진을 보여주면서 신혼여행가서 뽀뽀를 하려면 그 전에 끊어야겠다며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말했었다. 약속대로 금연을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결심이 언제 어떤 계기로 깨졌는지 모른 채 어느 사이엔가 남편은 다시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별명이 ‘고지식’인 만큼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 남편은 이후로 금연 약속 따위는 하지 않았다. 계기만 확실하게 기억나는 첫 번째와는 달리 남편의 두 번째 금연은 계기와 시작 시점은 기억나지 않는데 깨진 순간은 나 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본문이미지
사진=조선DB.

미국에 일 년 살았던 경험이 있는 지인들의 조언을 토대로 우리도 주말이면 전기밥솥과 쌀, 밑반찬을 가득 채운 아이스박스를 준비해서 아이들 학교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여행길에 오르고는 했다.
그 날은 목요일이 쉬는 날이라 수요일 오후에 출발, 샌프란시스코 거쳐 나파밸리 요세미티까지 돌아온다는 말에 한 주 전에 다녀왔다는 지인이 갸우뚱한다. 그 갸우뚱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신중히 생각했어야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루를 보내고 여유롭게 대학 탐방을 하며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나서 요세미티에 정해놓은 숙소로 바로 가기에는 어쩐지 시간이 아까운 느낌이라 이왕이면 북쪽 코스 한 곳 들어가자는 계획으로 내비게이션을 설정해 놓았다. 
 
여행이란 건 미리미리 계획하고 조사해서 출발해야한다는 남편의 주장과 대략적인 코스 정도 정해놓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라는 나와 아이들 주장이 아직 접점을 찾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뭔가 예정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기대 그리고 계획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뭣보다 최종 목적지가 예약해 놓은 숙소가 아닌, 길 가 풍경 좋은 어디라도 잠시 멈춰 설 수 있다는 매력을 빼놓을 수 없겠다.
 
본문이미지
요세미티밸리.
 
그런데 어째 약간의 차질이 생기는 느낌이다. 애초의 계획은 조금 일찍 도착해서 요세미티에서 노을을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넉넉할 줄 알았던 요세미티까지의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기울어진 해가 서쪽 산허리에 걸리기 시작하면서 급격하게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목적지인 해치해치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그 때라도 숙소로 차를 돌렸어야 했다.
국립공원 폐장시간은 밤 9시까지였으나 해가 진 이후 국립공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펼쳐놓기만 했던 삼각대 접어가지고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요세미티 한 중간을 가로지르는 120번 도로까지 나왔다. 내비가  좌회전 거기서 우회전 하란다. 이미 사방에는 어둠이 짙게 내려 앉았고 자동차 행렬도 뜸한데다 가로등도 없어 좌회전하라는 곳에 길이 있는지 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서행하면서 자세히 보니 산 쪽으로 샛길이 보였다. 평소 내비 말 지겹게 안 듣던 남편이 그날따라 내비가 시키는 대로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갔다.
 
아뿔사!
불과 몇 미터 가지도 않아 포장된 도로는 끊기고 돌이 우툴두툴한 비포장 도로에 올라서 있었다. 설마하면서도 내비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길은 점점 형태가 사라지고 있었다. 얕게 패인 웅덩이를 피해가느라 차가 요동을 치는 가운데 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길로 안내를 했을까? 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아빠가 평소에 너무 내비 말을 안 들어서 그런 거 아닐까?"
"우리가 멍청이라고 욕해서 그런 걸지도 몰라."
"설마... 내비가 복수하는 걸까?"
 
본문이미지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다 숲에서 길을 잃다.

승객 모두 반성과 자책으로 분분한 가운데 내비는 여전히 성질급한 목소리로 라이트턴! 레프트턴! 웬 파서블 메이크어 유턴!을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안내하는 곳은 번번이 이미 막힌 길이거나 숲만 무성했다. 길이 무너진 곳도 있었고 커다란 나무가 길 한가운데 쓰러져 있기도 했으나 비상 전화시설 하나 없었다.
유턴같은 뾰족한 좌회전을 하라는 길에서 길을 잃었다. 앞으로 무성한 나무 숲 그 앞은 어떤 상황인지 뒤는 또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분별할 수 없는 와중에 조금씩 전진 후진을 시도했다. 길이 몹시 패인 모양으로 앞으로 가서 나무에 쿵! 뒤로 물러서며 쿠궁 덜컥! 아마도 뒤쪽으로 깊은 웅덩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공간을 봐준다고 내린 아이도 속수무책이었다. 가속페달 힘 조절 한 번 잘못했다가는 그대로 캄캄한 낭떠러지로 날아갈 게 뻔했다.
아마도 그날 밤 최대의 고비가 아니었을까 싶다. 불과 두어 시간 만에 남편의 얼굴이 해쓱해졌고 조수석에 앉은 큰아이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지도를 보며 이것저것 궁리를 하느라 분주했다.
 
남편이 차에서 내렸다. 아들에게 담배 하나만 달라고 했다. 그 순간 누구도 남편의 금연에 대해 언급할 수 없었다.
네 시간 반 동안 산길을 헤맨 끝에 포장도로를 찾아 내려왔고 공원 반대편에 있는 숙소를 포기하고 길옆에서 발견한 무려 사백불 짜리 러지에 들어가자마자 죽은 것처럼 잠에 빠졌다.
 
요즘 남편에게 아직도 담배를 피우냐고 물으면 남편은 늘 준비한 것처럼 대답한다.
-끊을 거야.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댓글쓰기
글쓴이 :      비밀번호 :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이번호 커버이미지
이번호
서점 이벤트
  • 예스24
  • 교보문고
  • 인터파크
  • 알라딘
  • 이달의 목차
  • 지난호보기
  • 정기구독
서민금융진흥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