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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 친구랑 친하게 지내

2019-06-04 10:30

글 : 이연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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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예정일보다 닷새 일찍 나오느라 같은 달에 있는 오빠 생일보다 이틀 먼저 생일 미역국을 먹게 되었다. 계획했던 날짜에 원하는 결혼식 장소의 빈 시간이 없어 엄마 아빠 결혼한 날보다 하루 이른 날이 결혼기념일이 되었다. 태어나는 날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리 없고 어렵게 찾아낸 결혼식 장소에 더 먼저 예약을 한 사람이 있었을 뿐이지, 엄마 아빠 기념일에 앞선 날짜를 잡으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씩 놀리는 재미가 있다.

친가 외가 통틀어 하나 뿐인 딸이라 뱃속에서 성별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아이는 축복의 대상이었다. 하여 명절 때마다 이집 저집 가게 되면 한 번씩 안아보자고 성화였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엄마와 외할머니 외에는 안기지도 웃어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바늘에 찔린 것처럼 울어대기 일쑤였다.
91년생 우리 둘째아이 이야기다.
 
토요일 저녁 무렵 두 블록 건너 단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십니까?”
“뭐하세요?”
“아빠랑 운동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인데요?”
“오늘 저녁 드시러 오실래요?”
아마 내 표정은 봄날 햇볕에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같았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는 식구들을 무장 해제시키는 신기한 재주가 있다. 남의 말 따위에 꿈쩍도 하지 않는 남편도 딸의 톡 쏘는 말에는 움찔했고 통화 한 번 하기 어려운 아들도 여동생 호출에는 시간 맞춰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그냥 평범한 딸바보 아줌마다.
 
식전에 와인과 바지락 술 찜을 내어놓았다. 페페론치노를 넣어 칼칼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좋았다. 맛있다고 했더니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이가 무심하게 던지는 말에 감동을 받은 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사 가지고 갔던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먹으면서 일주일간 바쁘게 지낸 이야기를 했다. 그 중 하루는 휴가를 내고 동갑내기 친구 둘과 호텔 수영장에서 하루 종일 노느라 팔이 까매졌다고 했다. 친구 중 하나의 부모님이 멤버십이 있어서 그 곳에 갈 거라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호텔 수영장은 어땠었냐고 물었다.

“그 호텔이 행사를 하느라고 수영장을 개장 안한대.”
“그래서 못 갔어?”
“아니, 근처에 있는 더 좋은 호텔로 갔지.”
“비싸지 않아?”
“어머나 세상에, 걔네 부모님이 그 호텔에도 멤버십이 있다지 뭐야?”
“.......”
“얼마나 부자면 그러지? 회원권이 호텔마다 있나봐.”

아이는 다시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아이는, 하긴 부모님이 부자지 그 친구가 부자는 아니지 뭐, 라고 했다.

“장동건이 아기를 낳으면, 자기는 그냥 태어났는데 아빠가 장동건인 거나 똑같은 거지 뭐.”
“비하고 김태희 아기도 그렇겠네. 태어나고 보니 세상에나 엄마가 김태희야. 우와 ”

식구들 모두 와르르 웃었다. 나는 망고맛 아이스크림을 입 안에서 녹이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이번 생은 틀렸어. 그냥, 그 친구랑 친하게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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