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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이인희 이어 떠난 남편 조운해 한솔그룹, 90대 노부부의 사랑

2019-03-26 16:14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조운해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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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한 달 사이 90대 노부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마치 먼저 떠난 배우자가 그리워 서둘러 떠난 듯이. 각각 지난 1월과 3월 작고한 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고 조운해 전 고려병원 이사장의 이야기다.
조운해 전 이사장이 3월 1일 94세 나이로 별세했다. 앞서 1월 30일 이인희 고문이 떠난 지 한 달 만이다.
“‘이리 오세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져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아내가 내 한쪽 팔을 살짝 잡고 이끌어줬다.”

조운해 전 이사장은 아내 이인희 고문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추억했다. 숫기 부족한 20대 청년은 아내 될 사람의 여장부 면모를 한눈에 알아봤다.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항상 아내가 자신을 이끄는 편에 선 사실을 감안하면, 그날 그 순간은 자신의 운명을 암시한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죽기 직전까지 아내는 든든한 짝이었다.

조운해 전 이사장이 3월 1일 94세 나이로 별세했다. 앞서 1월 30일 이인희 고문이 떠난 지 한 달 만이다. 조 전 이사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매형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고모부다.

조 전 이사장은 지병이 없었다. 연로한 탓에 거동이 불편하고 쇠약한 상태가 이어지던 중 지난해 말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전언이다. 한 측근의 말을 빌리면 조 전 이사장과 이 고문은 말년까지도 사이가 돈독했다. 이 고문이 별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 전 이사장이 사망한 것에 대한 일각의 안타까움이 유난히 짙은 이유다.
 

수줍은 첫 만남

조 전 이사장은 대구금융조합연합회장을 지낸 조범석 씨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경북대 의대(옛 대구의전)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원에서 소아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병원 근무를 시작으로 평생 의료인으로 살았다. 이 전 고문을 만난 건 대학교 3학년 시절인 1948년 어느 날이다.

두 사람 만남의 발단은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소개였다. 박 전 국회의장은 조 전 이사장의 경북중학교 1년 선배이자 이건희 회장의 모친 고 박두을 여사의 조카다. 박 여사가 박 전 국회의장에게 맏딸의 신랑감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한 것이 두 사람을 이었다.

조 전 이사장의 자서전 <조운해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박 전 국회의장의 저녁 식사 초대 자리에서 이병철 선대회장을 처음 마주했다. 지인과 단순한 저녁 식사 자리라고 여겼는데, 실은 선 자리였다. 나름 합격점을 받은 모양이다. 양가 어른을 중심으로 혼담이 일사천리로 오갔으니 말이다.

여느 남녀의 만남이 그렇듯, 두 사람의 첫 만남에도 수줍은 떨림이 가득했다. 조 전 이사장은 앞에 놓인 커피를 절반도 마시지 못했다.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끝으로 꿀 먹은 벙어리였다. 그런 그에게 예비 아내가 건넨 위로는 참 따뜻했나 보다. 그는 회고록에 “(아내는) 먼 길을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다고 나를 위로했고 그 말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지금도 기억한다”고 적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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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대 졸업50주년 기념모임에 참석한 부부(왼쪽) 조운해·이인희 가족(오른쪽)

꼬장한 남편, 걸걸한 아내

결혼식은 비밀리에 치러졌다. 당시 이 고문이 재학 중이던 이화여대는 학생이 결혼을 하면 퇴학시켰기 때문이다. 비밀은 없는 법. 결혼 소식이 퍼지고, 이 고문은 졸업을 1년 남긴 채 학교를 그만뒀다.

이 점에 대해 조 전 이사장은 미안함이 큰 것으로 보인다. 회고록을 통해 “내가 일을 그렇게 주선한 건 아니었지만 결혼 당사자로서 대학을 마치지 못한 아내한테 늘 미안했을 뿐 아니라 여러모로 나 역시 아쉽게 생각했다”고 한다.

생전 조 전 이사장은 아내에 대해 “삼성가 출신다운 면모를 여실히 발휘했다. 수완도 있고 사업가적 재능도 탁월했다. 통이 큰 여장부였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그는 “난 꼬장꼬장했고, 아내는 걸걸한 편이었다”면서 “우리는 서로 뒤바뀐 점이 많은 부부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인희 전 고문은 이병철 선대회장이 생전에 가장 아낀 자식으로 꼽힌다. 이 전 고문의 마음 씀씀이와 포용력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부친이 작고한 후에도 맏이로서 가족 간 화합을 위해 적잖이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영 활동에 있어선 누구보다 담대하고 강한 리더십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에서 분리될 때만 해도 제지사업 중심이던 한솔을 오늘날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그룹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고 이병철 회장님께서도 아내를 두고 ‘쟤가 아들이라면 내가 지금 무슨 근심 걱정이겠노’라고 여러 번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 있다”고 회고했다.

그때 그 시절 양가 부모의 점지 아래 당연하게 연이 된 두 사람이지만, 부부는 서로를 아꼈다. 담담히 눌러 쓴 조운해 전 이사장의 회고에 애틋함이 묻어난다.

“우린 너무 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살았다. 20대 초반 그 좋은 시절에 데이트 한 번 못 해보고 결혼식을 올렸으니 하는 말이다. 아내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중매로 만난 사이라곤 하지만 사는 곳이 같았다면 얼마든지 데이트를 즐겼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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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ekwan  ( 2019-03-31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6   반대 : 1
삼성가(이병철 회장)의 장녀로 삼성가의 화합에 애쓰시고,삼성가 장녀 답게 절제된 삶 속에서 산업에 이바지한 점 존경과 함께 높이 평가드리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하나,삼성가의 장남 이맹희씨(제일비료대표,cj대표부친)가 생전에 남겨놓은 부채는 법적으로는 한정상속이 합당하나, 도의적으로는 자식들이 못 갚으면 형제들이라도 모금하여 갚아서야 삼성가 다웠고 존경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이병철 회장님의 장녀로써 또 삼성가의 제일 연장자로써 좀 더 목소리 높여 가르쳐어야 저승에 가서도 아버지 만나시면 칭찬 벋았을 거라 생각합니다.고 이병철 회장님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 제일부자의 장남이 부끄럽게도 빚 약 174억 여원을 갚지 못하고 저승에 온걸 얼마나 통탄 하셨을까요, 또 얼마나 부끄럽게 생각할까요?, 돈은 올때도 있고, 갈때도 잊지만 삼성가의 장남이 빚도 못 갚고 갔었다는 슬픈 사연은 영원히 회자되는 일이고, 저승이 있다면 이 이병철 회장님은 분해서 편히 쉬시지도 못 할 겁니다. 지금이리도 그 부채를 갚고 마음에 짐을 내려 놓도록 계시라도 주셨으면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한번 더 빕니다.
  유인걸  ( 2019-03-31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20   반대 : 1
명복을 빕니다..저는 이사장님보다 10살 년하입니다.선본지 한달만에 약혼, 약혼한지 한달만에 결혼햇습니다. 아내의 얼굴도 잘모르는 상태였습니다..현재 결혼하지 53년됩니다.아들녀석이 야만적인 결혼을 하셨군요 하는 커멘트를 해서 한참 웃었습니다...아직은 내외가 건강이 괜찬은데 둘중에 하나가 먼저 죽울가봐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한달만에 사모님 따라가셨군요! 복 받으셨습니다....두분 천국에서 즐겁게 지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