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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연봉협상 비하인드 이예랑 대표

2019-03-20 10:14

취재 : 장가현 기자  |  사진(제공) : 조지철, 리코스포츠에이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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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순간을 떠올려보자. 디테일은 다르겠지만 느끼는 감정은 비슷할 것이다. 초조함과 긴장이 온몸을 감싸는 느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만큼 익숙하다. 말 한마디에 따라 상황이 유리해지기도, 불리해지기도 하니 긴장되는 건 당연지사. 성공하기도 힘든 협상을 90% 넘게 성공으로 이끈 능력자가 있다. 이예랑 리코스포츠에이전시 대표다.
스포츠 에이전트는 선수를 대신해 구단, 광고주 등과 상업적·법률적 계약을 대신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선수가 구단과 연봉협상에서 유리한 계약을 따낼 수 있도록 돕기도 하고,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선수 에이전트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이 꽤 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에이전트 1.5세대쯤 된다. 스포츠 에이전트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무렵 일을 시작했고, 이제는 야구팬이라면 다 아는 이름이 됐다. 그가 운영하는 리코스포츠에는 야구, 축구, 골프, 쇼트트랙 등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소속돼 있다. 그중 이 대표는 야구를 전담한다. 강정호, 김현수, 박병호, 양의지 등 거물 선수들이 이 대표와 함께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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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의 미국행과 마이너리그 거부권

이예랑 하면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는 이름이 있다. LG트윈스 소속 김현수다. 이 대표는 2015년 김현수의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당시 김현수는 2년간 700만 달러를 받는 좋은 조건으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뛰었다. 김현수 외에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는 많았다. 김현수와 비슷한 시기에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을 맺은 박병호도 이 대표와 함께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김현수의 메이저리그행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그 유명한 ‘마이너리그 거부권’ 때문이다. 마이너리그 거부권은 구단이 선수의 동의가 없으면 임의로 선수를 마이너리그로 강등할 수 없는 조항을 말한다. 말 그대로 파격대우였다.

“김현수 선수는 해외 진출보다 국내에 남고 싶어 했어요. 그때 처음 미국에서 제의를 받고 한국에서 이야기를 진행 중인 상황이었지만 선수는 한국에 남길 원했죠. 그런데 당시 여러 가지 상황을 보아하니 미국으로 진출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미국에 가서 윈터미팅에 참여했다가 계약까지 진행했어요. 이 계약을 위해 제 모든 걸 올인했습니다. 마이너리그 조항도 받아냈죠. 계약 연수, 연봉 다 확정됐는데 그 조항만 결정이 안 된 상황이었어요. 안 될 확률이 더 높았거든요. 될지 말지 긴가민가한 상황에서 계약을 따냈을 때는 정말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기뻤죠.”

이 대표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 처음 스포츠에이전트를 접했다. 무작정 사람들을 찾아가서 스포츠에이전트가 꿈인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방법을 물었다. 명함 한 장 든 ‘코리안 걸’은 무작정 윈터미팅이나 마샬스쿨 스포츠 매니지먼트학과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이런 노력 끝에 미국에서 네크워크를 쌓을 수 있었다. 그게 결과적으로 김현수가 미국으로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됐다.

남자들만 있는 야구계에서 이 대표가 살아남은 방법이 궁금했다. 남자들이 ‘의리’라는 이름으로 똘똘 뭉친 세계를 비집고 들어간 이 대표는 정석대로 준비했다. 선수를 영입하든 구단과 계약을 진행하든 사전에 많은 정보를 모으고 준비를 철저히 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구단과 친밀하게 지내지 않지만 싸우지도 않는다. 선수 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내리고 구단별 성향에 따른 전략을 세우는 것이 협상 준비의 시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이 구단을 운영하다 보니 기업 성향도 보고 예산이 언제 책정되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런 정보를 많이 갖고 있어야 협상에 유리하다. 상대방 성향을 이해하고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는 협상의 본질이 연봉협상에서도 적용된다. 이 대표는 선수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계약시즌이 다가오면 선수와 새벽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곤 한다. 그런 준비 없이 성공적인 계약은 불가능하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리코스포츠의 이번 시즌 FA(Free Agent·자유계약선수)계약은 성공적이다. 양의지는 두산에서 NC로 이적하면서 4년간 125억을 받았다. 게다가 노옵션. 많은 이가 예측했던 올해 FA시장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아무도 이 대표가 옵션을 뺄 거라는 생각을 못 할 만큼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박경수 선수가 3년간 26억원, 모창민 선수가 3년간 20억원, 이재원이 4년간 69억원에 계약을 성사한 것도 좋은 계약으로 회자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에이전트로 활동하는 그에게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물었다.

“미국은 비딩형식의 성향이 강해요. 협상 전략을 세우는 방법이 다양합니다. 다른 팀에서 우리에게 얼마를 주기로 했으니 너희는 더 달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공정하고 전통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잘 못 하죠.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직한 걸 좋아해요. 이 바닥이 굉장히 좁아서 거짓말을 하면 무조건 티가 나거든요. 솔직하게 진행해야 해요. 그런 적도 있어요. A선수의 FA협상을 진행하는데 구단에서 제가 제출한 A선수의 FA 책정액을 보고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이렇게 책정한 기준이 뭐냐고. 데이터에 기반한 기준이 아니라고 했어요. 리더십 같은 걸 포함한 선수가 원하는 금액이었거든요. FA시장이 그래요. 책정 연봉의 적정가가 없어요. 어떻게 연봉을 책정했는지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 때도 솔직하게 말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작은 걸 탐하려다 큰 걸 잃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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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랑 대표와 김현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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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선수(좌)와 김현수 선수(우)와 함께 있는 이예랑 대표

‘대표님’ 아니고 ‘누나’

여자인지라 선수들을 대하는 방법도 남자 에이전트와는 차이가 있다. 선수들을 제어하지 않는다. 에이전트가 선수 생활을 컨트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에이전트는 선수에게 조언을 하고 문제를 의논하는 사람이지 컨트롤하는 사람은 아니다. 선수들이 에이전트를 편하게 대할 수 있도록 한다. 선수들도 남자 선배들을 대할 때보다 이 대표를 더 편하게 대한다고.

“선수들이 경기나 연습을 하다 보면 안 풀릴 때가 있잖아요. 힘들고 피곤할 때 첫 번째로 생각나고 전화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우리 선수들 경기할 때는 시간이 나면 응원을 가요. 제가 정말 열심히 응원하거든요. 소리 지르고 잘하면 환호도 하고요. 어떤 분한테 대표가 격 떨어지게 뭐하는 거냐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어요. 저는 회사를 운영해서 대표인 거지 선수에게는 그냥 에이전트예요. 선수들도 ‘대표’라고 하지 않고 ‘누나’라고 해요. 선수들이 저를 편하게 생각해요. 만나면 얼마나 놀리는데요.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아요. 친근감의 표시니까요. 저보다 훨씬 어린데 기분 나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야구팬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선수의 연애다. 의심의 눈초리를 받은 적은 없을까.

“전혀요.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지금보다 어렸으니까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하나도 없어요. 이제 야구선수 중에 저보다 나이 많은 선수도 없을 거예요. 선수들이 원정경기 때 숙소에 가도 아무도 오해 안 해요. 우규민 선수랑 같이 기차 타고 서울로 오는 길에 사진이 찍힌 적이 있어요. 댓글에 누가 ‘우규민 여자친구냐’고 하니까 다른 댓글이 ‘우규민 여자친구 예쁘다던데?’ 이렇게 달린 적도 있어요. 엄청 웃었죠. 어떤 사람은 남자선수들과 일하다 보면 연애 감정이 생기지 않느냐고 묻기도 해요. 그런데 선수일 뿐이거든요. 멋있는 선수들이지만 남자는 아닌 거죠. 어린 친구들한테는 이모뻘이에요. 그래서인지 이젠 오해의 오자도 꺼내는 사람이 없어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굵직한 협상을 숱하게 치른 이 대표.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계약이 뭐냐고 묻자 “모든 계약이 어려웠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큰 계약이 어렵고 작은 계약은 쉬울 거라 생각하지만 쉬운 계약은 없어요. 다 기억에 남아요. 결국 고객이 만족하는 계약을 해야 하니까요. 모든 계약이 다 어려워요. 그래서 당사자와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어떤 삶을 원하고, 어떤 방식으로 인생을 살고 싶은지 같은 이야기도 자주 하고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선수로 남아야 하는지 조언도 해줘요. 선수와 에이전트는 동반자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생각대로 잘해온 만큼 앞으로도 노력해야죠. 인생의 좋은 동반자가 되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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