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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도전, 임하룡 이 나이에 나도 한다

2019-03-06 09:47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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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내가 하리?” 이 말을 수백 번, 수천 번 외쳤던 그가 다시 이야기한다. “이 나이에 나도 한다!” 어느덧 두 손녀를 둔 할아버지다. 연예 활동 기간만 40여 년. 쉼표가 필요하다고 말할 법도 한데 기미조차 없다.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코미디언, 배우에 이어 화가까지. 여전히 ‘젊은 오빠’ 임하룡 얘기다.
올해로 예순여덟 살이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지만 우리 사회에서 60대 후반은 적지 않은 나이다. 배우 임하룡의 도전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임하룡은 지난 1월 단체 미술 전시회를 통해 자신의 그림 10점을 공개했다. 일종의 화가 데뷔 전이었다. 지난해 연말 계획 중이던 공연이 무산되면서 그 시간을 채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림’이었다.

“놀면 못 견디는 사람이거든요. 갑자기 빈 시간이 생기니 뭘 해야겠더라고요. 골프 치고 당구 치면서 즐길 수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해요. 예전에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일들을 끄집어내서 하는 게 얼마나 신나는데요. 그림 그리기는 어릴 때 꿈이었어요.”
 

이제 연 화가 인생

화가 데뷔를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자 그가 멋쩍어하며 답했다.

“아이고, 오랫동안 그림 하신 분들이 웃겠어요. 뛰어나게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막 시작해서… 작년에 저희 집에 오신 몇 분이 단체 전시회를 한다길래 말 그대로 얼떨결에 참여한 거예요.”

그는 나뭇잎과 꽃받침을 ‘눈’으로 형상화하는가 하면, 달을 흘러내리는 듯 표현했다. 가로수 사이로는 사람 얼굴을 그렸다. 평범한 그림은 아니다. 7살, 12살 손녀들은 달 그림에 “할아버지, 달이 똥 싸!”라고 감상평을 남겼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건 워낙 많은 사람이 잘하니까 저는 좀 비틀어서 그려보자 한 거예요. 생각을 집어넣는 작업이 재밌어요. 한자리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매력인데요. 그림 그리겠다고 서너 시간 앉아 있으면 무아지경이죠.”

병상에 누운 어머니를 떠올리며 완성한 ‘겨울여자’는 전시 작품 중 스스로 꼽는 그림이다. 겨울 어느 날 길을 걷다 문득 어머니가 생각났다고. 머리 쪽에 병이 생긴 어머니를 뇌가 없는 형상의 얼굴로 묘사해 빈 나뭇가지로 얽었다. 따뜻하면서도 어쩐지 허전한 이 작품은 어머니를 향한 그의 마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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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질투’, ‘달의 몰락’, ‘겨울여자’

재주 많은 사람? 변할 줄 아는 사람!

코미디언, 배우, 화가. 재주 많은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데뷔 이후 41년 동안 긴 공백기 없이 걸어왔다. 욕심 많은 사람이겠다. 때로는 내려놓을 줄도 아는 사람이다.

코미디언 임하룡은 1990년대 후반 누구나 인정하는 정상급 스타였다. 그를 대표하는 유행어만도 여러 개. 그야말로 ‘꽃길’을 걸었다. 그러던 그가 영화판으로 발걸음을 옮겨 ‘신인’을 자처했다.

“개그맨은 많아지는데 개그 프로그램은 줄고 줄어 <개그콘서트>만 남았을 때예요. 그 무대에 못 오르면 실업자가 되는 겁니다. 저라고 마냥 놀 수만 있나요? 직장인도 살길 찾아 이직한다는데… 저 역시 자연스럽게 이직한 셈이에요.”

쉰 살의 신인 배우였다. 나이는 그렇다 해도 한 분야에서 최정상이던 사람이 다른 장르로 옮겨 밑바닥에서 시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실제로 초반에는 배역 비중이 작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하겠다고 한 적도 있다.

“나름 잘나갔는데 작은 역할을 하면 후배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어요. 소위 ‘주인공 병’이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겠더라고요. 각자에게 맞는 역할이 있는데 나는 작은 게 맞나 보다.(웃음) 대사 한마디 없는 엑스트라라도 주어지는 게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는 엄연한 배우가 됐다.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이 50개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2005년 인민군 하사 역으로 출연한 <웰컴 투 동막골>은 그의 배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다. 땅끝 마을 해남부터 전주, 평창, 용평 등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반년 넘게 촬영했다. 평창에서 진행한 마지막 장면인 눈밭 촬영은 군대를 두 번 다녀온 느낌마저 들었다고 했다. 고생의 대가는 확실했다. 그해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자했으니 말이다.

“이 분야에서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어요. 마침 그날이 아버지 기일과 겹쳐 차분히 소감을 전했던 것 같아요.”

전라 연기 경험도 잊을 수 없다. 그는 2003년 뮤지컬 <풀 몬티(The Full Monty)>에 무뚝뚝한 ‘흑인 호스’로 분한 바 있다. <풀 몬티>는 실업을 극복하기 위해 스트립쇼에 나서는 영국 노동자 이야기다.

“완전히 벗진 않았어요. 살색 T팬티를 입었거든요. 다시 생각하니 참 민망하네요. 하하. 기회가 된다면 노래를 더 배워서 뮤지컬 무대에 서고 싶어요.”

지난 시간은 가히 도전의 과정이다. 그는 “안 할 것까지 도전하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며 웃어 보였다. 겁을 내면서도 무엇이든 자꾸 하게 된단다. 지난해 봄, 앨범 <나는야 젊은 오빠>를 발매한 것도 노래 실력만 두고 본다면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라고.

“자기 만족용 노래예요. 가수로 성공할 실력이 절대 아니거든요. 그래도 어디 가서 남의 노래 부르는 것보다 내 노래 들려주는 게 좋잖아요.”

혹자는 영화도 하고, 연극도 하는 그에게 직업을 바꾸었느냐고 묻지만 같은 뿌리다. 코미디도 연기도 영화와 연극도 연기이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코미디는 빠르게 바위를 뒤집어 물고기를 잡는 민물낚시라면, 연기는 장시간 기다리며 하는 낚시”라고 했다. 덧붙여 “여행 중 장소를 옮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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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된 ‘젊은 오빠’

시종일관 호쾌했다. 무슨 답을 하든 말보다 호탕한 웃음소리가 먼저였다. 웬걸, 진짜 성격은 내성적이란다.

“초등학생 때까지 원체 숫기 없는 시골 아이였어요.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가끔 학급 번호를 무작위로 불러서 노래를 시키곤 했는데, 어느 날 제 번호가 불렸어요. 부를 게 없어서 생각해낸 게 할머니가 들려주던 ‘열두 고개’였어요. 음정, 박자 다 틀리면서 ‘꼬불~ 꼬불~’ 하는 게 웃겼던 모양이에요. 어쩌다 보니 오락반장이 됐어요. 게임 진행도 하고, 사회도 맡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길로 들어섰던 것 같아요.”

참 아이러니하다. “쑥스럽다”면서도 할 건 다 한다. 인터뷰 당일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천상 연예인이다.

“그게 또 이상한 게 시키면 다 한다니까요.”

대중과 함께한 지 40년이 넘었다. 그사이 ‘젊은 오빠’는 할아버지가 됐다. 스스로 말하길, 자동차로 치면 부품이 하나씩 고장 나고 있단다. 그래서인지 건강관리에 철저하다.

“술은 원래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고, 담배 끊은 지는 17년이 지났어요. 요즘은 많이 걷고요.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건 마음 비우기가 아닐까 싶어요. 고민하되 빨리 털고 일어서려고 하거든요. 인간관계도 그래요. 누구를 미워하다가도 금방 용서하게 돼요.”

그의 말대로 마음 비우기의 효과일까. 마주보고 있는 내내 그의 나이가 의식되지 않았다. 검정 재킷에 찢어진 청바지, 선글라스까지. 제대로 젊은 오빠(?)였다.

넌지시 물었다.

“머리는 염색하신 거예요?”

“못생긴 대신 흰머리가 잘 안 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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