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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전생체험기’ 전생? 코웃음 치다, 펑펑 울다!

2019-01-21 01:37

취재 : 박지현 기자  |  사진(제공) : 조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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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시작할 즈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일제히 치르는 의식이 있다. 바로 뒤를 돌아보는 것. 지난 1년이 어땠는지 훑어본 다음 반면교사로 삼든, 정면교사로 삼든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지난 시간이 앞날의 발판이 되는 것. 가끔 생각이 깊어지면 10년, 20년, 30년…. 아주 태초로 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일생 총평’을 내리곤 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전생까지 짚어볼까?
“우린 분명 대역 죄인이었을 거야, 전생에.”

마감을 이틀 앞둔 어느 날, 한 선배가 말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고생을 할 리가 없어.”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무릎만 탁! 쳤다. 집에 오자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대역 죄인이었을 리가 없어. 고양이 아니었을까?”

역시 내 남편.

“아무래도 내가 묘한 매력이 있긴 하지?”
“아니, 비위 맞추기가 너무 힘들어서.”

더없이 명랑한 표정. 하마터면 맞장구칠 뻔했다. 20년 지기 친구에게 물었다.

“너? 전생에? 글쎄… 부레옥잠이지 않았을까?”

아, 괜히 물었다. 궁금하지도 않은데 설명이 이어졌다.

“왠지 식물이었을 것 같은데… (왜?) 뭔가 뭍에서 산 건 아닌 것 같고… (아니, 왜?) 그렇다고….”

말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아, 거기 ○○○죠? 제 전생을 좀 볼까 해서요….”
 

이곳이 바로 그 용하다는…
 
예약을 하고 찾아간 곳은 서울 반포동에 위치한 한 상담센터. 대로변에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조용하고 아늑하다. 장호 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정말 전생이라는 게 있나요?’ ‘최면에 걸리는 원리는 뭔가요?’ 수많은 궁금증(의심)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잠깐 넣어두기로 했다. 최대한 선입견 없이 절차대로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상담은 하루 한 명만 받는다고 했다. 온전히 한 사람에게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실제로 연말연시가 되면 내담자가 는다고 한다. ‘한 해를 돌아보다 전생까지 간 사람이 많구나.’

우선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한다. NLP(Neuro-Linguistic Programming: 신경언어학 프로그래밍) 검사였다. 일종의 감각유형 검사인데, 외부 정보를 받아들일 때 시각(V), 청각(A), 감성(K), 이성(D) 중  어느 감각이 먼저 반응하느냐를 보는 거다.

검사 질문은 총 10개.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사람과 논쟁을 벌일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 등과 같은 질문이다. 곰곰이 생각하며 체크하는 데 약 10분 소요. 표기한 수치를 그자리에서 분석해 바로 결과가 나왔다.

장 원장은 “쉽게 말해 영화를 봤다 치자. 시각지수(V)가 높은 사람은 장면을 기억하고, 청각(A)은 대사, 감성(K)은 그때의 내 심상을 기억하는데, ‘저게 말이 돼?’라고 따지는 스타일이 바로 이성(D)”이라면서 “이 수치가 높으면 최면이 잘 안 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어쩐담. 다른 건 다 평균인데 ‘이성’ 수치가 높게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체험을 앞둔 직전까지도 반신반의했다. 최면으로 전생을 보는 게 말이 돼? 아니, 그전에 전생이 있긴 해? TV에서 전생체험 중 우는 사람을 보곤 이렇게 말했었다. “아, 설정 티 너무 나네.”
 

내 안의 저항의식을 없애고

검사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최면 의자에 앉았다. 커튼으로 밝기를 조절하고 안대까지 끼자, 다소 날 서 있던 신경이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장 원장의 최면에 걸리기 전 스스로 계속 최면을 걸었다. 반드시 전생을 봐야 하므로(그래야 기사를 쓰니까) 꼭 최면에 걸리라고.

“근데 최면에 걸리면 제가 나중에 기사를 쓸 수 있을까요? 녹음기라도 켜야 하는 거 아녜요?”
“흔히 사람들이 최면이란 걸 무의식 상태, 수면마취처럼 잠든 상태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이런 거죠. 손에 컵을 들고 영화를 보잖아요? 컵의 온도, 질감 다 느껴지죠? 그런데 클라이맥스 땐 잠깐 손에 든 컵을 잊기도 하죠? 그 클라이맥스 때가 최면이라고 보시면 돼요. 몰입 상태. 오히려 정신이 더 집중된 상태인 거죠.”

아하! 준비 끝. 온몸의 근육을 이완시키자, 최면유도문이 들려왔다. 이런 식이다.

“당신은 지금 한 빌딩 꼭대기 전망대에 서 있습니다. (중략) 전망대 앞으로 가서 풍경을 봅니다. 뭐가 보이십니까.”

아, 고비다. 아무것도 안 보였다. 내 육신은 상담센터 의자에 안대 끼고 누워 있는데 뭐가 보이느냐니. 난감했다. 아무래도 몰입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몇 번씩 멈칫하다가 그냥 ‘상상한다’고 생각하고 묻는 말에 답하기로 했다. 장 원장의 낮고 편안한 리드문을 듣고 있자니 실제로 조금씩 이입되기도 했다. 나는 지금 전망대 앞에 있다….

“단풍이 든 나무들이 보입니다.”

오오, 그냥 나무도 아닌 단풍 든 나무라니. 구체적이다. 한번 입을 떼자 의외로 술술 나왔다.

전생으로 빠져드는 과정은 이랬다. 전망대에서 풍경을 보다가 옥상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옥상 층계는 내 나이만큼이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30층에 한 번, 20층에 한 번, 10층에 한 번 10년 단위로 선다. 당시 과거들을 한 번씩 회상한다. 내 기억 속에 있는 그때그때 모습들을 편하게 얘기하면 된다. 그러다 엄마 뱃속까지 가서 그 느낌을 떠올려본다. 따뜻하고 편안하다고 답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엘리베이터 버튼을 직접 누르는 시늉을 한다는 것. 최면에 들면 이 손 모양을 나도 모르게 유지하게 되는데 이를 ‘카탈렙시(Catalepsy)’ 상태라 한다. 어느 순간부터 정말 손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최면에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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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최면에 들기 전, 최면의 원리를 듣고있다.(위)
상담센터 내부. 상담은 하루에 한명만 받는다.(왼)

무명 시인이자 화가

엘리베이터는 지하 1층으로 갔다. 눈앞에 ‘전생으로 가는 문’이 있고 찬찬히 열었다. 환한 대낮이었다.

“발을 내려다보세요. 무엇을 신고 있습니까.”
(여기서부터 머릿속에 영상처럼 떠오르는 이미지를 자연스레 얘기했다. ‘상상’의 느낌이었다)

고무신인가 짚신인가 그랬다. 나이는 대여섯 살. 시기는 1890~1910년 사이. 신나서 흙길을 막 뛰어갔다.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엄마, 아빠, 아주 어린 동생(현실엔 동생이 없음)이 오순도순 밥을 먹고 있었다.

“아빠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아는 사람입니까?”

헉. 현재 남편의 얼굴이었다(!). 큰 오각형 얼굴 모양과 풍채 그리고 단출한 머리카락 개수 등을 보니 남편이 분명했다. 가세를 살펴보니 가난했지만 행복한 모습이었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소녀로 자랐다. 10대 때에는 노자의 <도덕경>도 읽었다. 공부를 곧잘 했지만 출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막 성년이 됐을 땐 소일거리로 돈을 조금 벌었고, 말괄량이 동생의 손을 잡고 장터에 가서 부모님 선물도 샀다. 30~40대. 아주 작은 마당이 있는 구옥에 혼자 살았다. 가족들과는 다른 지역에 살았다. 경상도 어디쯤이었다. 집 안엔 책이 가득했고, 시를 쓰고 그림도 그렸다.

“이름이 좀 알려진 사람입니까?”

철저히 무명이었다. 특히 고양이와 나무 그림을 자주 그렸고, 시의 소재도 그런 거였다.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집 마당을 그린 것. 가느다란 나무가 두어 개 있는 마당에 고양이가 놀러와 뒹굴고 있는 그림이다. 사람을 좋아했지만 사교성이 뛰어난 건 아니었다. 외향적이지도 않았고. 밖에서 사람들을 가끔 만나긴 했는데, 독립운동가 단체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그 단체에 소속돼 있진 않았다. 필요한 경우 태극기를 그려주거나 독립운동가(歌)에 노랫말을 붙여주며 어울렸다. 깊이 개입하진 않았지만 인간적으로 그들을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그 단체에게 크게 실망할 일이 생겼다. 그 후로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게 됐다.
 

우는 사람 보며 웃었는데, 내가 울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았습니까?”

가끔 집에 놀러오는 친구가 있었다. 또래이고 선이 굵은 외모인데,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친구를 통해 세상살이 이야기를 들었고, 책 얘기도 했다. 시와 그림에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고, 유일한 친구였다. 성인이 돼서 알게 된 사이고, 한 10년간 이어온 인연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그 친구가 오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너무 슬펐다. 굳이 마당으로 나가지 않으면, 햇볕을 쬐기 힘든 집 구조였다. 하지만 그 친구가 놀러올 때면 집 안에 온기가 돌았다. 그가 없는 집 안의 한기가 묘한 경로로 전해지면서 결국 흐느꼈다. 희한한 건 그 감정이 섭섭함이나 배신감 같은 게 아니라는 것. 그 친구가 많이 원망스럽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아요. 서로 어디선가…(훌쩍훌쩍) 잘살고 있을 거라는…(흑흑) 믿음이 있어서…(엉엉)”라고 답했으니. 이 대목에선 끼고 있던 안대를 벗고 눈물을 닦아야 했다.

그렇게 평생을 무명 시인이자 화가로 살았다. 67세. 가장 아끼던 그림 속 그 마당을 바라보며 마루에 누워 있다. 대낮이었고, 웬일인지 해가 길게 쬐어 눈이 부셨다. ‘따뜻하다’고 생각하며 잠들 듯 죽었다. 당시엔 편안했지만, 현생의 내가 보기엔 딱해서 또 눈물이 났다.

“그래도…(흑흑) 아픈 곳 없이 편안하게 갔어요…(엉엉엉).”

최면에서 깨어날 찰나, 장 원장이 말했다.

“혼자 외롭게 죽어간 딸을 지켜주려고 아빠가 현생엔 남편이 됐군요.”
“…(엉엉엉엉).”
 

그건 정말 내 전생이었을까?

장 원장은 “정답은 없다”고 했다. 허무하다고? 좀 더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 무의식은 익숙한 것에 끌립니다. 무언가를 좋아해도 익숙한 것, 싫어해도 익숙한 것을 싫어하죠. 분명한 건 최면 상태에서 떠오른 장면과 이미지는 분명 내 의식 속에 크게 자리 잡은 것이고, ‘익숙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게 내 전생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꿈이 현실의 일부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 그러니까 앞서 눈감은 상태에서 본 이미지들은 ‘상상’으로 떠올린 게 맞는데 ‘왜’ ‘하필’ 그 이미지냐라는 덴 이유가 있다는 거다. 무의식 속 가장 익숙한 이미지, 그게 바로 전생일 수 있다는 것. 설명이 이어졌다.

“모든 사물에는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는 ‘마음’이란 게 있습니다. 꽃이나 물에도요. 욕을 먹으면 일찍 시들거나 상하잖아요.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는 덴 ‘미립자’가 작용합니다. 모든 사물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죠. 쪼개고 쪼개면 결국 미립자가 남아요. 뇌파도 미립자로 되어 있고요. 이 미립자는 영하 200도에서도, 진공상태에서도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광자’라고 빛을 발합니다. 불멸의 것이에요. 사람이 죽어 뼛가루가 된다고 해도 미립자는 남아 있고,  ‘나’의 몸은 죽을지라도 ‘나라는 미립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죠. 그럼 이게 어디로 가겠느냐, 이게 전생을 이해하는 출발입니다.”

장 원장은 지난 5년간 상담을 하면서 수많은 내담자를 만났다. 흔히 전생의 업보를 현생에서까지 지는 것을 ‘카르마(karma)’라고 하는데, 실제로 카르마로밖에 설명될 수 없는 사례도 있었다.

“최근 젊은 부부가 같이 왔어요. 세월호 구조 때 만났답니다. 현재 남편은 소방관이지만 당시 UDT였고, 아내는 해군이에요. 전생을 봤더니 둘 다 유럽 사람이었죠. 남편은 건축가였는데, 본인이 지은 건물이 무너져서 수십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평생 죄책감으로 살다 말년에 배가 침몰해 죽었어요. 아내는 최면 당시 “스무 살로 가봅니다” 했더니, “저 이미 죽고 없어요”라고 하더라고요. 몇 년 전으로 다시 가보니 화재로 질식사했어요. 구조대원을 애타게 기다리다 그렇게 죽었습니다. 현생에서 서로에게 이끌린 것이 우연이었을까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처음엔 막연히 전생의 정체가 궁금해서 찾아갔다. 하지만 체험 후엔 전생이 있느냐 없느냐 혹은 그것이 정말 내 전생이었냐는 건 별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건 떠올린 이미지들이 분명 나에게 익숙한 것이고, 그게 미립자로든 어떤 형태로든 분명 내 일부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가장 의미 있는 건 이를 통해 현생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는 것.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남편에게 애틋한 마음이 진하게 들었으니…!
 
 

 
전생체험, 어떤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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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메이트 장호 원장
‘소울메이트(www.soulmate-korea.com)’ 장호 원장은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에다 광고회사 CEO도 겸하고 있다. 상담센터를 운영한 배경이 궁금했다. 장 원장은 “광고를 하려면 소비자 마음을 꿰뚫을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심리학 공부도 하고 더 파고들다 보니 정신분석, 최면까지 오게 됐다”면서 “그러다 보니 광고 또한 결국 이 물건을 갖고 싶게 하도록 최면을 거는 거더라”고 했다. 전혀 다를 것 같던 업종의 접점을 찾았고, 이를 경쟁력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현재 국내에 들여온 최면 중 해외 유도문을 그대로 번역해 어색한 경우가 많다”면서 “이곳에서는 광고하듯, 카피 뽑듯 최면을 건다”고 말했다. 일률적인 상담 방식 속에서 ‘돌연변이’가 돼보자 싶었고, 결국 “여러 군데 다녀보니 다 비슷하더라”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오나. 흥미로 전생만 보러 오는 사람도 있는데, 이곳은 사실 전생을 봐주는 곳이라기보다 강박증, 공황장애, 우울증 등 여러 불안장애 치유 전문이다. 그걸 치유하는 방법 중 하나가 전생인 거다. 이를테면 삶을 살아가다 도저히 답이 안 나올 때가 있다. 무슨 수를 써도 해결이 안 될 때, 예를 들어 비가 올 때마다 왼쪽 눈이 너무 아픈데 병원을 가도, 굿을 해도 안 되는 경우 그럴 때 전생을 들여다보는 거다. 최근 상담자의 사례다. 20대 여성인데, 만나는 남자친구마다 잠자리 거부감이 심하게 든다는 거다. 성적 피해 경험도 전혀 없고 가정도 화목했다. 전생을 봤더니 조선시대 남자였다. 구속받기 싫어하는. 여러 여자를 만나다 한 여자를 책임져야 할 일이 생겼다. 그게 싫어 떠났고 죄책감으로 살았다. 현생의 잠자리에 대한 이유 없는 거부감이 구속받을 수 있다는 느낌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최면에 걸리지 않는 경우도 있나. 5년 동안 딱 한 명 봤다. 어쨌든 무언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었던 분이라 다른 상담 요법으로 해결했다. 아까도 말했듯 최면은 몰입 상태다. 정신적으로 해리 상태이거나 하면 최면이 잘 걸리지 않는다. 결국 정신이 맑을수록 잘 걸린다는 얘기다.

최면 상담 전 유의사항이 있나. 전날 과음하지 않는 게 좋다. 노출 심한 옷도 삼가는 게 좋다. 스스로 신경 쓰이면 집중이 안 되니까. 잡념은 떨치는 게 좋다. 생각을 내려놓고 무의식을 따라간다는 느낌으로 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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