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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길로 영월군의회 의장과 영월의 ‘속살’을 맛보다

2019-01-03 14:38

취재 : 박지현 기자  |  사진(제공) :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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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게 참 많다. 그런데 좀체 자랑을 안 한다. 그를 잘 안다는 혹자는 말한다. “그 친구 진국인데 요령을 부릴 줄 몰라.” 엉뚱한 상상이다. 의인화해봤다. 영월이 만약 사람이라면? 재능 많고 감정도 풍부한데 드러낼 줄은 모르는 성격이 떠올랐다. 때론 포장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자, 씩 웃고 만다. 진가는 변하지 않는다는 여유였다.
청령포로 가는 배를 타기 전, 왕방연시조비 앞에서 윤길로 영월군의회 의장.
희한하게 어딘가 비슷했다. 윤길로 영월군의회 의장은 영월과 닮았다. 우선 꾸밈이 없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그는 영월 토박이다. 나고 자랐다. “영월을 지킨 배경이 뭐냐”고 묻자, “외지에 방 얻을 형편이 안 돼서”란다. 지역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사명감 같은, 비장한 답은 없었다. 대신 있는 그대로를 들려줬다. 밍밍했는데, 묘하게 여운은 길었다.

“3남 1녀 중 맏이인데, 힘들게 산 부모님께 부담을 드릴 수가 없었어요. 외지에 방 얻을 생각을 안 했죠. 결국 능력이 없으니 여기 머문 거지. 허허. 젊었을 땐 벗어나고 싶었어요. 살다 보니 정이 든 거예요. 좋아졌어요. 세월이 흐르니 능력도 생기데요. 그제야 영월을 지켜야겠다 싶더라고요. 이젠 영월을 떠나선 못 살 것 같아요. 살 수가 없지.”

하릴없이 남았다가 결국 영월과 사랑에 빠졌다는 그와 영월을 걷기로 했다.
 

멀고 춥다? 빠르면 두 시간!

멀거니와 춥다. 영월에 대한 선입견이다. 사실 그리 멀지도, 춥지도 않다. 서울 중심에서 빠르면 두 시간 남짓이다. 멀다는 인식은 유배지였기 때문에 생겼다고 한다. 적설량도 강원도 여느 지역보다 적고, 동강은 잘 얼지도 않는다. 영월을 찾은 지난 12월 6일도 겨울치곤 포근했다.

먼저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를 가기로 했다. 내륙에 있지만 마치 섬 같은 곳. 삼면이 물이고 서쪽으로는 험준한 암벽인 ‘육육봉’이 있어 배를 타야 갈 수 있다. 강을 건너기 전 청령포를 마주한 언덕에서 잠깐 발길을 멈췄다.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조를 읊었던 곳이에요. 청령포를 바라보면서요. 그 심정이 얼마나 비통했겠습니까.”

윤 의장은 왕방연시조비 앞에서 청령포와 이를 끼고 도는 서강(西江)을 한참 바라봤다. 수없이 봤을 텐데 또 새로운 듯 음미했다.

배를 타면 청령포까지는 금방이다. 물 위에서 노니는 청둥오리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도착했다. 청령포에 발을 내딛자, 얼기설기 하늘로 뻗은 소나무들이 시선을 당겼다. 무려 700그루가 넘는단다. 수백 년 된 거송부터 바람에 씨가 날려 막 줄기를 뻗은 아기 소나무도 있다. 바닥에는 데크로드가 촘촘히 깔려 있다. 소나무 뿌리를 보호하면서도 누구나 편히 걸을 수 있게 한 배려다.

송림 사이로 몇 걸음 걷자, 피로감에 솟구치던 어깨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어깨뼈가 순하게 내려오자, 자연히 호흡이 깊어졌다. 소나무 향이 폐까지 훑고 나가며 속을 정화시켰다. 눈이 번쩍 뜨였다. 멀리, 물안개를 머금은 소나무들이 그물처럼 얽혀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비현실적인 풍경에 몽롱함마저 들었다. 한참을 말없이 걷기만 했다.

“영월의 겨울은 뭐냐고 물으셨죠? 보통 겨울여행 하면 눈썰매나 스키를 떠올리잖아요. 영월은 이처럼 걷기만 해도 좋은 곳이에요. 어디를 가든 강을 끼고 걸을 수 있거든요. 겨울을 걷다, 멋있지 않습니까. 절경을 보려고 굳이 산행을 하지 않고, 편히 걸으면서도 장관을 경험할 수 있죠.”

영월다운 얘기다. 굳이 유희거리를 만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정취를 보여주는 것. 발길은 어느새 단종어소를 지나 망향탑으로 향했다. 단종이 한양 방향을 보며 돌을 하나씩 주워다 쌓은 탑. 계단을 오르자 서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후의 햇살을 잔뜩 머금은 강은 제대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눈부셨다.

“우리끼리 농담 삼아 그럽니다. 영월을 살리려면 단종을 죽여야 한다고요. 단종의 유배지로만 강하게 인식돼 있어서 하는 소리예요. 그렇다고 청령포를 어찌 드러내지 않을 수 있겠어요. 17살짜리 왕이 이 강을 내려다보며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하나하나 돌멩이를 쌓으며 어떤 심경이었을까요. 슬퍼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너무 슬픈 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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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수백그루의 소나무가 절경이다.

자랑할 곳만 20곳 넘어… 곳곳에 숨은 이야기

생각보다 영월 땅은 넓다. 서울 면적의 2.2배다. 윤 의장이 “반나절 만에 영월을 알기엔 무리”라고 말한 건 그래서다. 단순히 물리적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곳곳에 이야깃거리도 많다. 그의 말마따나 ‘얼추 둘러봤다’ 하려면 적어도 2박 3일은 필요하다.

“상동읍 이끼계곡, 무릉도원면 요선정, 김삿갓면 만경대 숲속길… 어림잡아도 자랑할 곳이 스무 군데가 넘어요. 영월은 구슬이 많은 곳입니다. 꿸 게 너무 많아서 문제죠.”

지금은 인구가 4만 명이지만, 한땐 13만 명까지 간 적도 있다. 당시 영월은 우리나라 성장의 중추 역할을 했다. 1950~60년대 영월 광산에서 채굴된 텅스텐은 국내 수출액의 80% 이상을 차지했고, 국내 최초였던 영월의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산업화 시대 유일한 동력이었다.

청령포를 벗어나 금강정으로 이동하는 길. 차장 밖 풍경을 게으르게 좇으며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도시보다 낮은 건물들이 눈을 편안하게 했다. 이따금씩 우뚝 솟은 건물들도 보였다. 윤 의장이 씁쓸하게 말했다.

“몇 년 전 영월의 슬로건이 ‘희망 영월, 사람 중심 영월’이었던 적이 있어요. 당시 의원이던 저는 ‘망조 영월, 건물 중심 영월’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연간 건물관리비가 얼마인 줄 아느냐고요. 한 예로 영월 내 박물관이 26개나 됩니다. 의회 직원들도 이름을 다 못 외워요. 관광객은 박물관 문을 손으로 열고 들어와서 발로 차고 나갔어요. 영월이 가진 자원이 너무 많은데, 그걸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아니라 건물 올리는 데만 집중한 거예요. 성과를 보여주기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요.”

차로 약 10분. 금강정에 다다랐다. 영월제영에 따르면 이자삼이 영월군수로 있을 당시 금강(동강)의 아름다움을 보고 정자를 짓고, 금강정이라 이름 붙였다. 정자를 둘러싸고 아담한 공원이 조성돼 있는데, 공원 입구엔 영화 <라디오스타> 촬영장인 옛 영월 KBS가 있다. 지금은 박물관 겸 카페다. 입구에서 5분쯤 걸으면 정자가 나온다. 길가 메타세쿼이아가 이국적이다.

“지금도 운치 있지만 봄에 오면 끝내줍니다. 이 길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거든요. 가을엔 단풍도 아주 예쁘고요. 이건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데, 여기 벤치에서 자장면 시켜 먹어도 됩니다. 동강을 보면서 먹는 자장면, 일품이죠.”

윤 의장은 이처럼 ‘꿀팁’을 건네는가 하면, 가끔 퀴즈도 냈다. 궁예가 태봉국의 꿈을 그린 곳이 어딘 줄 아느냐, 우황청심환에 그려진 소나무가 있는 곳이 어딘 줄 아느냐와 같은. 듣자 하니, 답은 모두 ‘영월’이었다.

“뿐만 아닙니다. 영월은 춘향전의 실제 모델이 살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남원은 소설 속 배경이지만, 250년 전 영월 고을에 춘향이와 똑같은 삶을 살았던 인물이 있어요.”

정자로 가는 길 왼편, 구슬퍼 보이는 소녀상을 가리키며 그가 설명을 이어갔다.

“고노옥(기명 경춘)이라는 인물입니다. 그의 일생을 보면, 성춘향과 이도령의 이야기와 똑같습니다. 단 하나, 결말은 달라요. 소설은 해피엔딩이지만, 실화는 비극으로 끝나요. 경춘은 이곳 동강의 90도 낙화암에서 몸을 던졌거든요. 불과 16살 때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요.”

소녀상 바로 앞에 ‘월기경춘순절지처(越妓瓊殉節之處)’라고 새긴 비석이 있다. 이 자리가 경춘이 뛰어내린 지점이다. 영월의 낙화암은 또 다른 이야기도 담고 있다. 경춘보다 315년 먼저 꽃잎처럼 진 사람들이 있었다.

“단종의 궁녀와 관리인, 종인 등 6명이 국명을 어기고 몰래 따라왔어요. 1457년 단종이 승하하자 이들을 비롯해 총 90명이 이곳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이날 천둥과 번개가 일고 강한 바람에 나무가 뽑혀 나갔다는 기록도 전해 내려옵니다. 보통 부여의 낙화암, 남원의 춘향전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못지않은 이야기지요? 어쩌면 더 애절하죠.”

불과 몇 미터를 걷는 사이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졌다. 이쯤 되니 발에 치이는 돌멩이에도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정자가 보였다. 잠깐 쉬어 가기로 했다. 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걸터앉았다. 청령포에서 보이는 서강과는 분위기가 또 달랐다.

“세계 어딜 가도 영월 같은 곳을 못 봤어요. 유럽 유수의 관광지들, 물론 좋죠. 하지만 함께 호흡하는 공간이 아닌 관상용 같았어요. 영월은 제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있는 곳이라 그런지 이렇게 마주보고 있으면 같이 숨 쉬는 기분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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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윤길로 영월군의장이 나고, 자란 영월군 주천면. 밤뒤마을과 미다리마을을 잇는 섶다리가 얼어붙은 평창강을 지나는 풍경. 수채화 같은 풍경에 반해 강 따라 달리던 차를 되돌려 멈춰 서는 사람이 많다.
아래) 영월군 영흥리의 흙담.

영월의 속살, 그의 속 얘기

윤 의장의 고향은 영월군 주천면이다. 술 주(酒), 샘 천(泉)자를 써서 ‘주천’이다. 이름에 얽힌 설화가 재밌다. 양반이 가면 청주가 나오고, 상민이 가면 탁주가 나오는 작은 샘. 어느 날 상민이 양반의 도포를 입고 갔는데도 탁주가 나왔다. 상민은 화가 나서 입구를 틀어막았다. 그 후 물만 나왔다고 한다.

“주천 강변도 정말 예쁩니다. 군 제대 이후까지 천렵해서 강물을 그냥 떠다가 요리해 먹고 그랬어요. ‘망산’에 올라가면 원주, 제천이 한눈에 보이고요, 인근엔 의로운 호랑이 얘기가 담긴 ‘의호총’도 있고요.”

가족들과도 고향의 맛을 아낌없이 나눴다. 취업 준비 중인 아들과 대학생 딸을 데리고 주천 강변에서 캠핑도 많이 했다. 아내와는 주천 드라이브코스에서 데이트했다.

“애들 어릴 때는 주천에 텐트 쳐놓고, 거기서 바로 출근한 적도 있어요. 비가 많이 와서 집기가 다 떠내려가서 주우러 간 적도 있고. 허허. 다 추억이에요.”

주천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자신이 의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단순히 계획이 없었던 게 아니라 관심 자체가 없었다. 중년 남성들이 으레 하는, ‘○○회’와 같은 단체 활동도 전혀 안 했다.

“동네 어려운 일 있을 때 눈치 안 보고 할 말 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그러데요. ‘윤길로가 의원하면 잘하겠네.’ 턱도 없는 얘기하지 마시라, 했는데 웬걸요. 누가 자꾸 약을 올리는 겁니다. ‘하긴 네 주제에 무슨 의원이냐, 지나던 뭐가 웃겠다’면서요. 의원? 그게 뭐기에 이렇게 비웃음을 사야 하나, 싶었어요. 까짓 해보이겠다, 한 거죠.”

2010년 얘기다. 호기롭게 외쳤는데 이를 어째,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했다.

“주위 사람들을 모아놓고 얘기했어요. 이러저러해서 내가 출마를 할 건데, 당장 당선 확률은 0.1%도 안 된다. 하지만 2014년 선거를 목표로 할 거다. 도와달란 얘기하지 않겠다. 적어도 피해는 주지 말라. 혹 나를 돕는다면, 평생 갚겠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웠다. 앞으로 4년 동안, 하루 한 명씩 내 편으로 만들겠다는.

“그렇게 4년 동안 오후 11시 전에 집에 간 적이 없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주민들을 만났거든요. 하우스 가서 토마토 심고, 약도 치고, 농약 줄도 잡아주고, 포도·사과 전지 작업하고요. 제가 농고를 나와서 그런 걸 잘했어요. 슬슬 이런 얘기가 들려옵니다. 보통 선거 때만 반짝 나타나던데, 당신은 한결같다고요.”

그 무렵, 금강공원에 산책 나온 주민 몇몇이 지나갔다. 개를 끌고 나온 한 중년 남성은 의장의 얼굴을 알아보고 안부를 물었다. 굽은 동강 끄트머리엔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윤 의장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 들를 곳이 있다”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영흥리의 작은 동네였다. 금강정에서 차를 타고 3분여 거리. 구옥 대여섯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그는 어디에도 소개하지 않는 곳이지만,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1960~70년대 주민들이 집 앞 비탈에 있는 돌을 가져다 쌓고 그 사이사이를 진흙으로 채운 흙담입니다. 이후 시멘트 담장으로 대부분 바뀌었는데, 이 동네 몇몇 집은 아직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요.”

윤 의장은 담벼락을 쓸어 만지며 “참 예쁘지 않냐”고 물었다. 목소리에 애정이 묻어났다. 덩달아 흙담을 만져봤다. 굳이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손끝에 닿은 건 영월의 속살이었다. 조미료를 안 쳐 말갛지만 계속 생각나는 맛.
 
 


영월 여행 정보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영월!

고백컨대 영월 하면 ‘동강’과 ‘래프팅’밖에 몰랐다. 껍질을 살짝만 들춰 봤는데도 푹 빠져버렸다. 윤길로 의장 말마따나 들를 곳이 너무 많아 꼬박 2박 3일은 있어야겠다. 청령포, 금강정, 주천 강변, 망산, 의호총 외에도 가볼 만한 곳 몇 군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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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형

한반도 지형 강원도 영월 서강(西江) 지역을 대표하는 경관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지형이 한반도 모습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평창강과 주천강이 합류해 서강을 이루는 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평창강 끝머리에 형성돼 있다. 평창강 너머에는 선암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별마로 천문대 시민천문대 최상의 관측 조건인 해발 799.8m 봉래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지름 80㎝ 주망원경과 여러 대의 보조망원경이 설치돼 있어 달이나 행성, 별을 관측할 수 있다. 별마로라는 이름은 별(star)과 마루(정상), 로(한자 고요할 로)의 합성어로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라는 뜻이다.
 

이끼계곡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 60번지에 위치하며, 접근성이 좋아 출사지로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에 이끼들이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것마냥 신비로운 모습을 자아내는데, 마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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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선정

요선정 무릉도원면에 있는 정자다. 앞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고, 강기슭 큰 반석에는 요선암이라 새긴 각자(刻字)가 있다. 통일신라시대 철감국사 도윤과 징효대사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자산 기슭에 흥령선원을 개원하고, 자주 이곳에 와서 포교하던 곳으로 당시 작은 암자가 있던 곳이다.
 
 
영월군의회의장 단골 맛집

사랑방식당 오징어구이, 보리밥 전문점. 오징어볶음과 비슷한데 차원이 다르다. 대충 슥슥 무친 듯한데 감칠맛이 대단하다. 야들한 오징어가 입 안에서 녹는다. 함께 나오는 산나물 밑반찬에도 계속 손이 간다. 삼 대째 운영 중이라고. 예전에 아는 사람만 갔지만 지금은 많이 알려졌다. (영월군 절무리골길 033-374-4655)

물레방아쉼터 매운탕과 한방오리탕, 토종닭, 백숙 등을 낸다. 매운탕에는 동강에서 잡은 메기를 쓴다. 흙냄새도 전혀 안 나고, 메기 크기가 어른 팔뚝만 하다. 폭폭한 살을 파내 밥 위에 올려 먹으면 그야말로 꿀맛. 산나물 밑반찬 또한 일품이다.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033-374-1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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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ntryman  ( 2019-01-04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1   반대 : 0
1960년대 초에 고등학교에 농촌연구반이 있어서 영월군 주천면 XX리에 쌍용 세멘트공장이 생기기전, 매년 3년동안 갔던 기억이 있읍니다.그때에 서울 촌놈이 물레방아, 디딜방아를 보았고 대마를 심어서 삼단을 만들어 베와 노끈을 담배를 수납하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같은 나이 또래가 영양,위생 상태때문에 성장이 늦는 것을 보고 불쌍해 보이기도 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