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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계획이요? 올핸 ‘대충’ 살아요 part1 대충살기 열풍

2019-01-02 10:04

취재 : 박지현 기자  |  글 : 이창희 프리랜서  |  사진(제공) :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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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다. 이맘때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달릴 준비를 한다. 물리적 변화부터 감행해본다. 헤어스타일을 바꾸거나, 세신 서비스를 받거나, 집 구조를 바꾸거나. 그리고 나서 ‘다짐’이라는 걸 한다. 단골 메뉴인 금주, 금연, 다이어트를 비롯해 승진, 합격, 결혼 등 사정은 다양하겠다. 다이어리를 사고, 첫머리에 한 해의 결심을 아로새긴다. 고삐를 바투 잡는다. 새 마음, 새 뜻과 함께 단단히 긴장하면서 길면, 몇 달을 보낸다. 그러다 연말에 가까워지면 ‘올해도 별 소득 없이 지나갔다’며 허무해한다. 다시 이듬해, 또 같은 일을 반복한다. 우리는 모두 안다. 매년 겪는 일이다. 목표치를 달성하기엔 한 해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는 것. 왜? 그냥 살던 대로 살아도 이미 충분히 치열하기 때문이 아닐까? ‘대충살기’가 인기다. 치열하게 살아도 별것 없다는 자조일 수도, 뜨겁게 살아본 자들만 누리는 여유일 수도 있다. 대충 살면서 비로소 나를 찾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힘을 뺐더니 훨씬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더불어 ‘대충살기’ 열풍을 주부들은 어떻게 보는지 살펴봤다. 대다수 주부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대충 살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그렇게 생긴 여유 시간은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다.
“아! 정말 대충 쓰고 싶다! 시험 답안지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를 적어 낸 소싯적 박지현처럼!” 요즘 이런 화법이 인기다. 무슨 인기가 그러냐고? 진짜다. 일명 대충살기 화법이다. 소셜미디어(SNS)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해시태그를 달고 ‘대충살자’ 혹은 ‘대충살기’를 쳐보자. 검색되는 글이 많게는 수만 개에 이른다.

시작은 가수 ‘신화’의 멤버 김동완의 사진이다. 양발에 높이가 다른 흰색 양말을 신고 식탁에 앉아 밥 먹는 사진인데, 이를 두고 누군가가 ‘대충 살자, 양말은 색깔만 같으면 상관없는 김동완처럼’이라는 글을 게재하면서 온라인에서 크게 회자됐다. 지난 11월 15일 <인생술집>에 출연한 김동완은 해당 짤에 대해 “양말이 꼭 한 짝씩 닳아서 믹스해서 잘 신는다”면서 “한국 사람은 대충 살 필요 있다. 나도 대충 사는 건 아니지만 다들 너무 빡세게 산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해야 하는데 계속 긴장만 하니까 문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동완의 사진 이후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대충 살자’는 놀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대충살기 시리즈까지 나왔다. 베토벤 등 유명 작곡가들이 흘리듯이 그린 높은음자리표들을 모아놓고는 ‘대충 살자, 베토벤의 높은음자리표처럼’이라고 하는가 하면, 배우 황정민이 머리에 풍선을 끼고 찍은 사진엔 ‘대충 살자, 숫자 풍선 들기 귀찮아서 머리에 낀 황정민처럼’이라며 공유한다.

그룹 에프엑스(f(x)) 멤버 엠버가 케이크를 칼이 아닌 가위로 자르는 사진에는 ‘대충 살자, 칼이 없으면 가위로 케이크 자르는 엠버처럼’, 북극곰이 눈밭에 엎드려 있는 사진에는 ‘대충 살자, 걷기 싫어 미끄러져 가는 북극곰처럼’이 달리는 등 패러디의 종류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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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SNS)와 서점가 ‘대충살기’ 열풍

이처럼 시리즈까지 만들어지자,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누군가가 ‘대충 살자’는 글자가 쓰인 금속 배지를 만들어 배포하겠다고 한 것. 그런데 대충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을 타깃으로 한 장사는 결과가 뻔했다. 결국 구매자가 적어서 포로젝트는 무산됐다는 후문.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 또한 무산된 이후 “대충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밝혔다.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벌레는 ‘대충’.” 동방신기 멤버 유노윤호는 최근 이 같은 발언을 하면서 ‘열정의 아이콘’이 됐다. 대중은 소셜미디어(SNS)에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사진을 올리고, ‘#나는유노윤호다’라는 해시태그를 달기도 했다. 그런 유노윤호가 지난 8월 공항에서 사진을 찍혔는데, 그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제목을 본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책 제목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였다.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그의 모습은 희한하게도 사람들에게 커다란 웃음을 줬고, 동시에 그 책에 대한 반응도 뜨거워졌다. 실제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지난 4월 출간된 이후 최근까지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렸다.

저자 하완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건 일을 안 하거나 돈을 벌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단은 노는 게 좋아서 노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만, 난 일하고 돈을 벌 것이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그래야만 한다. 단, ‘열심히’의 논리 때문에 내 시간과 열정을 부당하게 착취당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를 필두로 최근 서점가에는 ‘대충 살자’는 담론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충 살자’는 책만 따로 모아놓은 서점도 있다. 그간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자기계발서를 즐겨 찾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힘 빼기의 기술> <신경 끄기의 기술> <살짝 떨어져 사는 연습> <의식하지 않는 기술> <어쨌거나 마이웨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오늘부터 내 인생, 내가 결정합니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삶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 <조금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 걸요>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상합니까?>…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다. 이 책들은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안 아파도 된다는 위로를 건넨다. 왜 아프냐는 거다. 힘 빼고 나답게 살면, 하나도 안 아프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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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터 기성세대까지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독서토론 모임 ‘청세반’을 이끌고 있는 최지영 씨는 이렇게 말한다.

“‘대충살기’ 시리즈에 공감하고, 이 같은 책을 읽는 청년들은 한 번도 대충 살아보지 않은 이들입니다. 더없이 치열하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더욱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책은 저항감만 부를 뿐이죠. 그렇다고 ‘괜찮아, 그땐 다 그런 거야’라는 착한 척하는 꼰대들의 메시지도 왠지 거북한 겁니다. ‘대충’이라는 건 사실 청년들에게 금기시된 부사잖아요. 이것이 대중적으로 활자화되고 회자되니까 반가운 거예요.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위로하려고 한 건 아닌데 위로가 되는 거죠. 읽는 순간만큼은 한 번 웃고, 쉴 수 있는 거죠.”

실제로 자칫 ‘허무주의’처럼 보일 수 있는 이 흐름은 외려 재충전을 위한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윤대현 서울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인정하면, 그때 에너지가 올라갈 수도 있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책을 보면, 일본에서 행복한 일이 없는데 20대의 행복지수가 올라갔다. 이유를 살펴보니 청년들이 수용단계를 거쳐 도인(道人)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비단 청년뿐만 아니다. 기성세대 중에서도 어깨의 힘을 빼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지난 15년간 한 번도 쉬지 않고 한 대기업 홍보팀에 근무한 최은선 씨(가명, 39). 그는 지난 12월 20일자로 회사를 그만두고 전남의 작은 도시로 내려갔다. 쉬지 않고 달려와 30대부터 팀장 직급을 달았던 그는 무려 세 아이의 엄마. 그는 “아파트에 살면서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뛰지 마’였다. 한창 뛰어놀 아이들인데. 결국 흙 밟고 자라게 해줘야겠다 싶어 시댁에 아이들만 내려보내놓고, 매 주말 서울-전남을 왔다 갔다 했다. 몇 년을 그랬는데, 어느 순간 뭘 위해서 이렇게 사나 싶었다”고 했다. 그는 당분간 아이들과 함께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게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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