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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human# 03]배우 강석우가 '아름다운 당신에게'

우리들의 '귀찮은 행복'에 대하여

2016-10-24 01:09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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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강석우의 현 주소는 라디오 클래식 프로그램 진행자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모범적 가장이다. 각각을 다른 말로 치환하면 부드러운 남자 그리고 바른 남자 정도 아닐까. 남녀노소의 부러움과 시샘을 유발하는 정직하고 바른 그 남자 강석우를 만났다.

매일 아침 9시부터 11시, 러시아워를 비켜 간 여유로운 두 시간 동안 그는 짜릿한 연애를 한다. CBS 음악FM(93.9Mhz)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가 준 선물이다. 9월 말로 만 1년째. 연애는 한창 무르익어 그의 풍모는 한층 더 클래식하다. 어려울 듯한 클래식 병기를 들고 있는데도 이 사람 참 편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소리가 들린다. 팬들과 나눈 수많은 이야기에 귀가 순해지고 입이 열린 덕분이다. 9년 가까이 진행했던 MBC <여성시대> 때보다 더 부드럽고 훈훈해진 자신을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 사춘기부터 몸에 익은 음악이 일상을 감싸니 그럴 만하겠다. 이래저래 이 남자, 부드러운 남자일 수밖에 없게 됐다.

연 전에 이슈였던 예능 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에 이어 근래 방송된 <휴먼다큐>가 화제다. 아내와 아들 그리고 딸이 함께 출연해 일상을 소개했다. 착하고 총명하게 자란 딸 다은과 건실한 아빠의 일상으로 부러움을 사더니,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온 가족이 망라된 화목한 일상이 공개됐다. 죄다 미남미녀에다 깔끔한 살림, 화목한 관계, 건전한 일상 모습을 더하니 또 부러움 살 일만 남았다. 자식들이 인정하는 ‘모범가장’. 명예로운 칭호 아닌가. 이래저래 이 남자, 바른 남자일 수밖에 없게 됐다. 
 
인터뷰는 마침 <아름다운 당신에게>가 이달의 프로그램상을 수상한 날, 그의 클래식 플레이 리스트로 꾸민 ‘강석우의 음악편지’ 음반이 나온 날 진행됐다. 모든 것이 잘 짜 맞춰진 행복한 오후, 그를 조금이라도 흔들어보려는 삐딱한 인터뷰가 어설프게 시작됐다.

33년차 라디오 맨, ‘9 to 11’ 4관왕

동시간대 많은 음악프로그램 가운데 <아름다운 당신에게>의 강점이라 한다면? 옛날과 달리 라디오 청취율은 확 줄었다. tv와 영화, 인터넷 등 라디오보다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진 세상 아닌가. 이젠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은 어떤 결단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라디오 하는 분들은 스태프나 진행자나 다 심성이 좋은 분들이다. 그러니 나만 잘한다고 하긴 뭣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따뜻한, 진솔함 같은 게 어필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청취자와 친숙한 방송을 한다. 또 하나 <아빠를 부탁해>나 요즘 나간 <휴먼다큐> 등에서 보인 나와 우리 가족 모습이 상승효과를 줬을 것 같다. 라디오 방송이 청취율 5%대 나온다는 건 폭발적인 반응이라고 본다. 게다가 클래식 프로그램이다. 9시 뉴스에서 다뤄야 할 뉴스 아닌가?(웃음)
(실제로 최근 <아름다운 당신에게> 청취율은 주목할 만하다. 주중 청취율 전국 10위권에 드는 데다 주말에도 7위를 차지하고 있다. 말마따나 “<여성시대>와 1% 이내 차이밖에 안 나는 수준”이라니 매우 고무적이다.)

청취자와의 친근감은 라디오의 기본 속성 아닌가? 사실 그렇다. 그래서 나도 요인이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청취자들 대하는 태도가 1대 1로 대응하듯 해서 아닌가 생각하는 정도다. 어렵게 느껴지는 클래식인데 선곡을 편하게, 해설도 쉽게 한다는 점도 영향 있을 것 같다. 문자 사연이 와도 상투적이지 않은 진심의 리액션을 보여주니까 좋아하신다. 측은지심과 역지사지에 익숙한 내 성격의 영향이다.

<여성시대> 같은 이전의 경험도 주효하겠다. 그렇긴 하지만 그 전의 방송은 일종의 통쾌한 수다였고, 지금은 음악과 이야기를 통한 사람들과의 대화다. 라디오는 연기가 안 된다. 있는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게 되는 거라 각기 다 매력 있다.

왕년의 청춘멜로 스타라 여전히 여성 팬이 많을 것 같다. 성비가 8대 2 또는 9대 1 정도 되는 것 같다. 젊은 시절에 <겨울나그네>로 알려졌다. 개봉이 86년 3월이었다. 그때 내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이 이제 중년이 되어 음악을 통해 나를 만나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을 청춘스타가 바로 가까이서 자기 이름을 불러주고 음악을 선물한다는 것에 큰 감동을 느끼는 것 같다. 나도 젊을 땐 스타의식이 있었을 거다. 지금 이렇게 소탈한 모습에 놀라시는 것 같다.

라디오 방송을 처음 한 건 언제부터였나? 1984년에 KBS 2FM <젊은이의 노래>였다. 통키타 가수들 나오는 공개방송이었다. 이후로 KBS 같은 채널에서 9~11시, SBS에서 9~11시, MBC에서도 9~11시 프로를 맡았다. 지금도 CBS 9~11시 프로그램을 하니.... 9시~11시 4관왕이네. 그러고 보니 첫 방송 말고는 나머지 모두 주부 상대 방송이었다.

라디오 방송 하면서 딱 체질이다 싶었을 때는? 어떤 순간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여성시대> 9년 하고 여기(CBS)로 넘어올 때 나를 따라온 사람들(청취자)이 많았다. 그만큼 공감해준 분들이 많았다는 거니 <여성시대>가 라디오에 완전히 안착한 시기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음악 프로 1년 하다 보니 당시에 내가 어땠는지 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은 <아름다운 당신에게>가 최고이고 제일 잘 맞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도 이전 어떤 방송보다 가장 잘 어울린다고들 말한다. 난 원래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에 만족하는 스타일이다.

방송이 특히 어렵다 느낄 때는? 특별히 어렵다 느끼지도 않고 별로 긴장도 하지 않는다. 다만, 매일 아침 방송국에 도착하면 마음을 다지고 기도를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늘도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자’‘내 말 실수로 상처받은 사람 없기를...’이라고 늘 다짐한다.

혹 실제로 실수를 하거나 상처를 준 일은 없었을까? 매번 조심하니까 사고는 없었다. 문자 참여하는 분 중엔 ‘그 커피 나도 주면 안 돼요?’라고 가볍게 툭 던지는 분도 있고 뭔가 절실히,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을 기다리며 진지하게 준비한다. 오늘도 여자 청취자 한 분이 아침밥 못 먹고 일찍 나간 남편 이야기와 함께 따뜻한 커피 한 잔 전하고 싶다고 보내왔다. 남편에 대한 애절한 마음, 쑥쓰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해 키프트콘을 드렸다. 곧바로 다시 문자가 왔다. 사연을 보내기까지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모른다며 고마워했다. 오늘은 퀴즈가 있는 날이라 문자가 특히 더 많이 온 것 같다.

그는 평소에 스마트폰으로 청취율과 문자참여 현황 데이터를 확인한다. 폰을 내밀어 기자에게 보여준 이날의 문자참여현황판에는 2,325명이 찍혀 있었다. KBS, MBC 등 공중파 방송과 달리 CBS는 주파수 권역대가 부족해 방송수신이 제한적이다. 대신에 레인보우 앱이나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를 통해 전국은 물론 국외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이런 제한적 여건에도 주목할만한 청취율과 문자참여율을 기록한 점을 그는 여러 번 자랑스럽게 언급했다. 문자 보내는 사람이 2천 명 이상이면 청취자는 백만 명 정도 되지 않겠냐고 되묻기도 했다. 싱거운 미소와 함께였지만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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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대로 들어라, 뭔가 꽂힐 때 찾아 들어라

추천 클래식 음반은 직접 기획했나? 지난 4월에 준비 시작했다. 선곡하는데 애를 많이 썼다. 유명곡을 고른다는 기준보다 연주자 위주로 선정했다. 알려진 곡이라도 연주자가 누구냐가 중요하다. 다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으니까. 해설을 쉽게 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곡 해설을 복사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 명예를 걸고 해보자 작심하고 썼다. 자료를 놓고 쓴 게 아니라 음악을 들으며 쓴 것들이다.

연주자 기준으로 깐깐하게 골랐다면, 귀가 굉장히 트여야 가능한 일 같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이건 취향의 문제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게 되는 연주자가 있다. 그의 곡 해석이 맘에 들면 그걸 선택하면 되는 것 아닐까? 내 경우, 70대의 포르투갈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를 아주 좋아한다. 10월에 내한 예정이라는 소리 듣고는 7월부터 방송에서 자꾸 얘기했다. 내 취향을 방송에 고스란히 드러낸 거지. 수록곡 대부분이 내가 좋아하는 연주자의 연주이다.

그래도 클래식에 귀가 뚫리게 하는 팁이 있지 않을까? 각자의 상상력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작곡가와 연주자에 대한 관심과 배경 이해와 상상력이 답이다. 곡의 백 스토리에 대해 알고 듣는 것과 그냥 막연히 듣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작곡가가 이 곡을 왜 썼는지, 그는 어떻게 살았는지, 지인은 누구였고, 누구와 사랑했는지 등등에 관심을 가지면 곡이 더 쉽고 풍부해진다. 연주자도 작곡자를 이해하고 곡 배경을 알아야 한다. 악보만 보고 연주하는 건 맛이 없을 것이다. 손열음이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 2악장을 자주 연주한다. 그것도 아무래도 영화 ‘앨비라 마디건’과 많이 연관되어 있지 않나 짐작된다. 이뤄지지 못한 그 슬픈 사랑 이야기는 엘비라 같은 젊은 여성의 감성으로 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추천 앨범엔 프리디리히 굴다 연주로 넣었다. 손열음 같은 여성 연주자로 할 걸 하는 후회가 뒤늦게 있었다.(웃음)

강석우의 음악 소사를 듣고 싶다. 특히 클래식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였나? 1975년 대학시절에 국립극장 음악회에 처음 가본 기억이 있다. 대학(동국대 연극영화과) 방송국에서 클래식 피디를 했다. 포크송도 좋아했지만 명동에 나가면 주로 클래식 음악감상실에 많이 다녔다. 외국에 나가면 일행들이 관광지 찾아다닐 때 혼자서 LP나 CD 가게 앞에 기웃거리며 싸고 좋은 음반 고르는 게 낙이었다. 중학교 때 기타를 배워서 포크송도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편식하지 않은 편이라서 클래식을 어렵게 생각하지도 않고 특권층의 음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음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라고 본다.

그래도 클래식이 여전히 어렵다고 느낀다면 더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은?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많이 듣는 게 최선이다. 난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클래식 음악 틀어놓는다. 영국 FM 방송도 틀어놓고 하루를 시작한다. <아빠를 부탁해> 촬영할 때 그런 모습을 보고 어떤 분들이 ‘가식적’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걸 왜 그렇게 받아들이는지.... 그런 태도는 문제다. 처음엔 귀담아 듣지 않아도 좋고 무슨 곡인지 알려고 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저냥 틀어놓고 듣다가 어느 날 내 맘에 쏙 들어오는 곡이 있을 때 그 곡 안으로 찾아가보면 된다.

방송 말고 따로 혼자만의 감상시간이 있나? 방송 끝나고 오후에 내 책상에서 듣는다. 나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곡이 있다. 집에 와 다시 찾아 들어본다. 오래 전 음악 하는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생소한 연주자 이야기를 하는데 나만 모르더라. 집에 와 곧장 찾아 보고 나도 같이 좋아하게 됐다. 모르면 답답해하는 기질이 있다. 특히 나만 모르면.(웃음)

가족들의 음악 취향은? 클래식은 나만큼 썩 좋아하진 않는다. 집사람은 음악회에 많이 가봐서 좀 나은 편이고 애들은 관심이 덜한 듯. 아내는 오페라 많이 데리고 다녔고 거의 모든 음악회에 함께 갔다. 미술 전공이지만 집안에 음악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 어느 정도 이해도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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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화목 비결? ‘귀찮은 행복’을 잘 지켜가는 것

방송을 통해 멋진 남편, 모범 가장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핵심 비결은? 인생의 마지막에 나는 어떤 남자로 세상을 살았다 얘기할 것인가를 상상해본다. 큰 사업에 매진하는 일, 친구들과 우정 지키며 열심히 술 먹는 일도 가치 없는 것 아니지만, 난 기본적으로 아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결혼할 때의 결심 때문에. 아내와 함께 결과적으로 행복했다고 정리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역사를 바꾸는 인물로 살긴 이미 글렀고 가족을 참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평을 듣고 싶다(웃음).

그런 건 노력으로 가능한 걸까, 타고나는 기질일까? 젊은 날 쇼프로그램에 처음 나가서 내게 환호성을 지르며 흥분하는 어린 팬들을 보면서 ‘아, 이거 안 되겠구나’ 싶었다. 물론 자기만족일 순 있겠지만 나 하나 바라보고 미친 듯이 들썩이는 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오판하게 하면 안 되겠구나, 그로 인해 내가 오판을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나도 젊은 혈기에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놀아봤지만 결국 날 즐겁게 하는 건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가정에 충실하는 게 훨씬 더 이롭고 후회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라고 친구들과 술 먹고 성인나이트 가볼까 하는 생각을 왜 안 해봤겠나. 하지만 그런 일은 결국 허탈함과 후회를 남기는 일이라는 걸 일찍 알았던 것 같다. 결국, 타고난 것일 수도 노력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종교적 신념과도 관련 있지 않을까? 그렇겠지. 신앙인으로서의 신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배우여서 영화나 드라마 속의 다양한 색깔의 사랑을 많이 접하기도 한다. 그 부분에 대한 호기심이나 상상, 동경 같은 건 전혀 없었을까? 포괄적으로 보면 나도 남성이니까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다. 술이든 여자든 그 외 여러 가지 일탈에 대한 유혹은 언제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탈은 행위의 이전과 이후가 다르니까 수용하기 힘든 거다. 술 마시기 전과 술 마신 후의 행동이 다르다. 후회할 요소들이 많으니까 술집엔 아예 안 가게 된다. 모임에 나가면 지금도 유혹이 있을 수 있지. 그래서 항상 모임엔 부부동반을 고집한다. 가능성을 아예 잘라버리는 거지. 우린 정말 남들이 보면 지겹도록 같이 다닌다.

부부가 지금 하고 있는 이런 류의 대화를 나눌 때도 있나? 대화를 잘 하는 편이다. 언젠가는, 결혼제도가 인간을 너무 힘들게 묶는 건 아닌가를 놓고 아내랑 대화한 적 있다. 더 많은 이를 생각하고 사랑하고 섹스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아내나 남편 한 사람하고만 산다는 건 너무 얽매이는 삶 아닌가, 서로에게 물었다. 아내와 나의 공통된 결론은, 만약 그게 다 허락되고 그렇게 행동한다면 인간의 삶엔 호기심도 없을 것이고 소중히 남겨야 할 가치도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순간의 욕구에 따라 행동하고 나면 결국 피폐함만 남는 거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가족은 얼마나 귀찮은가. 거추장스럽고 힘든 존재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 가장 소중한 행복이 있다. 그래서 가족과의 행복은 ‘귀찮은 행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귀찮지만 그 안에 값진 행복이 있는 관계, 그게 가족이다.

‘행복한 속박’이라고 부르면 될까? 같이 다닌다고, 함께 있다고 다 속박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방송에서 우리가 늘 부부동반으로 다니는 게 공개되니 '아내가 불편할 것 같다'는 댓글도 달리더라. 또 어떤 이는 '그렇게 사는 게 여자로선 행복'이라고 쓰기도 했다. 생각하기 나름인데, 우린 누구도 속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우리집 경제권은 아내가 전부 가지고 있다. 어떤 친구들은 왜 그렇게 사냐고도 하는데 난 그렇게 한다. 집사람이 원하는 것 다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갑부여서가 아니라 남편으로서 아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의미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서로 묶여 있는 듯하면서 자유롭다. 젊어서 아끼고 고생했으니 나이 들어서는 좀더 여유를 갖자는 뜻도 있다.

부부싸움을 거의 안 한다고 들었다. 부부간 갈등이랄 게 없으니 싸울 일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싸움은 아니고 자잘한 갈등이 있을 땐 있는데, 대개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아 예민해질 때, 지치거나 불안할 때 내 행동이 아내를 다치게 하는 경우다. 아내 쪽이 아니고 대개 내 문제다. 내가 예민해진 듯하면 아내가 알아채고 뭐가 안 좋은지 먼저 묻고 챙겨준다. 그러니 싸움이 될 일이 거의 없다. 한 쪽이 예민해질 때 다른 한 쪽이 안 받아주거나 되받아치면 싸움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평소 대화가 잘 되는 것 같다. 원활한 편이다. 그런데 부부의 행복은 노력도 필요하지만, 애초에 잘 만나야 하는 것 같다. 아내는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는 여자이고 나도 아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인 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인생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고 아직 결과야 모르겠지. 누구든 그러다가도 다음 달에 당장 이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서로 이해하고 스스로 컨트롤 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우리집은 솔직히 아내가 남편을 더 이해해주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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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남매 집 외아들, 결혼은 꿈도 안 꿨다

청년기엔 결혼 생각이 아예 없었다고 하던데... 그리 부유한 집도 아니었고 5남매 중 외아들에다 외할머니도 모시는 집이었다. 여자를 사귀어본 적 있지만 결혼 얘기가 나올 순간 바로 끝이었다. 누구든 시집오기 꺼려할 그 조건인데 결혼생각 하는 건 염치없고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연애담도 많진 않겠다. 서너 사람 정도 있었을 텐데 기억나는 사람은 한 사람 정도다. 몇 개월 사귀다 흐지부지 끝났다.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지금 아내가 유일했다. 성격상 이성에 대한 관심이 좀 늦된 편이었다. 잘 생겨서 학생 때도 인기 많았을 거라고들 하는데, 정말 그랬을 수 있으나 정작 나는 남들의 그 호감 자체를 느끼질 못 했다. 그게 뭔지를 몰랐던 것 같다.

결혼 후 아내의 시집살이나 고생은? 그런 부분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행복하게 지냈다. 시댁에서 엄청나게 사랑을 받았다. 특히 어머니가 아내를 굉장히 좋아했다. 시외할머니까지 모신 집이지만 행복하게 지낸 편이다.

어릴 적 집안 이야기, 성장 스토리가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 평범한 회사원인 아버지와 권사님으로 교회활동에 열심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밑으로 여동생 셋과 누나 한 명의 5남매 가정이었다. 어머니가 수요예배에 다니셨는데 난 자꾸 도망가는 아들이었다. 지금은 어머니 영향으로 가정예배 주관하는 가장이 되었지만 그땐 그랬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 육성회비를 못낼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육성회비 체납으로 교무실에 불려 갔는데, 우리 4남매가 다 모이게 됐던 적이 있다. 다들 내성적인 성격이라 자존심도 강했으니 당연히 창피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 그날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무튼 그 시절 부모님이 우리 5남매 학비를 어떻게 다 댔는지는, 지금도 불가사의다.

외아들이라 부모님 기대가 꽤 컸을 텐데.... 우리 부모님은 그런 게 없었다. 이북 출신이라 그런지 굉장히 강한 분들이었고 자식들을 있는 그대로 믿고 놔두는 분들이었다. 나도 자수성가한 셈이라 내 아이들한테 스무살 이후는 알아서들 살라고 늘 말했다. 대학까지 나왔으면 뭘 해도 먹고 사니 알아서 살아라 한다. 우리 부모님이 하신 대로 내 아이 교육도 시킨 것 같다.

그럼 연기자 입문도 그리 어렵지 않았겠다. 연극영화과는 내가 결정해 입학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분위기가 아니라 1학년 때부터 탈출구를 찾았다. 규율이 너무 세고 강압적이었다. 대학 방송국으로 도망갔다. 그나마 그 생활은 맞는 것 같았는데 2학년 때 방송사고로 퇴출당하게 됐다. 결국 과로 컴백했는데 한 선배가 영화진흥공사의 첫 배우공채시험에 응시해보라고 권했다. ‘지원한 애들 보니 너보다 나은 애가 없다’면서 ‘하면 무조건 될 것 같다’고...(웃음). 돈도 주고 주연도 몇 회까지 보장해주는 등 지원혜택도 파격적이었다. 헌데 원서대와 사진값이 너무 비쌌다. 자장면이 500원이던 시절에 사진 촬영과 인화비로 7,500원을 내야 했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 연극 함께 하던 선후배들이 돈을 갹출해 도와주었다. 선배 예상대로 1등으로 합격하고 1978년 배우로 첫발을 내딛었다. 

첫 대회 공모에 1등을 했으니 남들보다 출발이 화려했겠다. 그런데, 그 배우선발대회가 이듬해에 없어져버렸다. 1회만 진행된 대회였던 셈이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금껏 살아왔는데, 작년 어느 때쯤에 문득 머리를 탁 내리치는 느낌에 놀란 적이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대회가 날 배우로 만들어준 대회였구나, 나를 배우로 만드려고 마련된 축복이었던 걸 38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됐다. 배우가 되기로 진로를 정한 다은이한테 그날로 얘기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너를 위한 축복 같은 계기나 기회가 온다. 언제나 자신감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라고.

강우석의 사춘기는 어땠나? 굉장히 심하게 앓았다. 중3 때까지 날 기억하는 사람은 사고뭉치로 기억할 수도 있다. 패싸움에 휩쓸려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어른들과 동생들이 가득한 집이 답답해 자꾸 밖으로 돌았던 것 같다. 나쁜 불량학생은 아니었고 단지 현실을 갑갑하게 느껴 밖에 나와 있는 사춘기 학생이었다. 어느 날 고등학교 중퇴한 동네 형이 해병대 간다며 입대 전 소주를 마신다는데 어쩌다 끌려가 반 잔을 마시게 됐다. 얼굴이 타오르고 속이 거북했다. 그러면 과외를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야 하는 줄 알고 바보같이 수업에 참여했다. 중3짜리가 술 먹고 얼굴 뻘건 채 앉아 있으니 얼마나 가관이었겠나. 나를 너무나 한심하게 바라보던 그날 과외 선생님의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그 분은 술 마신 것만 가지고 날 판단한 것 아니겠나. 내가 왜 그랬는지 사정이야 모르는 것일 테고. 그 오해를 지금이라도 다시 만난다면 풀어주고 싶은 기분이다. 그게 사춘기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다.

학교공부는? 공부엔 흥미 없었다. 60명 중 25등 정도.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중3때부터 기타 치고 노래하는 거 좋아했다.

그래서 아이들 공부엔 더 신경쓰게 되진 않았나? 애들 공부에 별로 관심 안 가졌다. 알아서 하는 거라 생각했다. 고교 때나 대학 때도 애들 성적표 본 적도 없다. 교육은 부모의 본보기가 중요하다. 말이 아니라 생활로 가르치는 것, 그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교육이다. 그리고 아이는 후천적인 것보다 타고나는 게 많다. 그러니 스스로 크는 것. 고민 있을 때도 아빠랑 의논하지 말고 친구랑 의논하라고 얘기 한다. 결정적인 사안으로 힘들 때만 아빠한테 도움 청하라고 얘기해왔다. 요즘 젊은 부모들한테도 말하고 싶은 건, 부모의 어설픈 열의가 오히려 아이를 망친다는 점이다. 부모가 자기 한풀이식으로 아이를 교육시키는 건 위험한 일 같다.

과외 등 사교육은? 초4 때 책읽기와 독후감 교실에서 공부시켰다. 책상에 앉는 습관 기르고 공부에도 취미 붙이게 됐다. 남들 하는 만큼 과외나 학원도 다니긴 했다. 준영이가 과외 안 했다고 알려진 건 고3 때 안 했다는 얘기다. 지난 번 방송 나갈 때쯤 아들은 인터넷 기업에 인턴으로 취직이 됐다. 딸 다은이는 배우 되기로 진로를 잡고 공부하고 있다.

가족카톡방이 있다고 들었다. 오래 됐다. 시시콜콜 대화를 많이 한다. 사진 많이 주고받고 그때그때 느낌을 공유하는 편이다.

아이들이 엄마아빠에게 꼭 존댓말을 하더라. 그건 교육을 시켰다. 애들 어릴 때 아들 친구엄마가 아내에게 ‘준영이는 친구들과 그렇게 격하게 놀아도 쌍소리 한 번 안 한다’고 칭찬했단다. 다은이도 어릴 때 무슨 말 끝에 ‘에이 씨...’라 한 적 있었는데 따끔하게 야단쳤다. 그 이후론 전혀 안 한다. 준영이는 초등 4학년 때 친구집 가서 놀다가 물건을 몰래 가져온 적이 있었다. 엄하게 경고하고 죽도로 엉덩이 세 대를 때렸다. 유일했던 체벌인데 너무 생생히 기억나고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자유롭게 키우되 꼭 필요한 건 엄중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난 우리 어머니가 나를 교육한 대로 아이들을 교육했다.

젊은이들과의 소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요즘은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소통을 많이 강조하더라. 하지만 난 생각이 좀 다르다. 젊은이랑 뭘 소통하려고 하는 건가? 난 아이들에게 말한다. 우린 너희들 세대를 다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다, 너희도 엄마아빠 세대를 억지로 이해하려 애쓰지 말라고 한다. 친구 같은 부모가 되라는 말이 있는데, 난 그 말이 마음에 안 든다. 친구이기 전에 부모 노릇 먼저,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아들과 딸한테 궁극적으로 부모가 친구가 될 수 있겠나?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게 기본인 것 같다. 또, 엄마아빠가 자식 일에 너무 개입하면 아이가 성인 구실을 못하게 된다. 무조건의 소통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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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좋았지만 이젠 부적절, 본보기 되는 연기 하고 싶다

라디오 말고 TV나 영화에 대한 미련은 없나? 또래 배우 중 아직 연기현장에 남아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라디오에서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남아있는 것에 충분히 감사한다. 어떤 일이 또 다가올지 모르나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고 열중하는 스타일이다. 과거에 집착하는 건 전혀 없다. 무엇이든 새 기회가 온다면 물론 한다, 늘 열려있으니까.

연예인이라는 호칭을 싫어한다던데.... 난 배우이지 연예인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흔히들 연예인으로 통칭하니까 그냥 넘어가는데 실은 예능과 연기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 구별할 필요 있을 것 같다. 싸우기 싫어 내버려두는 거지만 마음에는 썩 안 든다. 다음 주 행사가 있는데 소개 프로필에 ‘방송인 강석우’라고 해놔서 그것도 수정해달라고 했다. 배우로 소개하자고.

지금 배우로서 연기 욕심을 낸다면, 잘 해내고 싶은 배역은? 내가 좋아하는 배역은 예전 드라마 <그대 웃어요>에서의 역할이다. 보기와 달리 시트콤에서 유쾌하고 신나는 역할 하는 것 좋아한다. 그런데 이전보다 위축되긴 한 것 같다. 이제는 그런 역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의무감 같은 거랄까...., 세상에 좋은 본보기가 되는 바람직한 상을 연기하는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든다. 스낵드라마, 막장 드라마가 많아진 세태니까 낄 곳이 없다는 생각도 들고... 원래 막장인 거 알고 하는 배우는 없다.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휘말리는 것. 그런 경우는 피하고 싶다.

멜로 작품은 어떤가? 멜로는 배우로서 여한 없이 많이 했다. 이젠 멜로 연기 하면 내 안에 어떤 매너리즘이 있어 매력 없을 것 같다.

나이에 맞게 로맨스그레이는 어떨까? 모든 드라마와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주제는 사랑인 것 같다. 그런데 나이든 사람들의 사랑, 즉 로맨스그레이는 참 어려운 장르다. 보통의 연출과 보통의 연기로는 감동을 주기 쉽진 않을 것이다. 작품도 아주 잘 만나야 하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매일 아침 8시 5분에 집을 나선다. 방송을 하면 기분이 너무 좋고, 그래서 나는 매일 감사한다. 가족과 음악이 늘 곁에 있음에도 감사한다.

인터뷰 장소에 남편을 데려다 주었다는 아내는 시간에 맞춰 다시 차를 대놓고 있었다. ‘행복한 속박’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니 공연히 부러웠다.
‘귀찮은 행복’을 마다하지 않는 가장의 지혜. 그리고 ‘현재’에 집중하고 ‘오늘’에 만족하는 삶. 배우 강석우가 멋지고 바른 남자로 사는 비결 아닐까 점쳐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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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제공 : 서초구 방배동 브란덴부르크(02-599-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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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는....
방배동 카페골목 전성기부터 명성 쌓아온 클래식 카페. 인터뷰 장소 섭외 중 발견한 클래식 음악감상실로 3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왔다. 함문영 대표는 예전보다 활기는 덜하지만 변치 않고 찾아오는 클래식 동호인들을 위해 매일 문을 열고 있다. 집 근처에 뜻밖의 클래식 공간을 알게 된 강석우 씨도 내심 흡족한 표정이었다. 온기가 그리워지는 계절, 따뜻한 커피와 차를 마시며 클래식에 젖고 싶다면 방문해보시길. 추억의 그 '겨울나그네'를 눈 앞에서 만나는 행운을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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