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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Pic#5]가을 국화, 뭉클하게 아름다운 그 꽃

이제 천천히 시들라

2016-10-12 10:35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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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국화.
이리 좋은 꽃을 보고도 40년 전 좋지 않았던 추억(?) 하나가 먼저 떠오른다. 잊을 때도 됐건만.

국딩 3학년 가을. 
학급임원을 했던 모양인데, 양 아무개 담쌤은 환경미화 준비 중 내게 화분과 금붕어 어항을 사오라 하셨다. 홀어머니 가장의 우리집 살림엔 어울리지 않는 요구였음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무리한 또는 부당한 지시였지만 어쩌랴. 저항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집에 와 어렵사리 얘기를 꺼냈다. 국딩활동 3년 간, 책가방과 몸뚱아리 하나만 챙겨 다녔을 뿐 학교에 다른 뭔가를 가져가는 일도, 엄니가 학교 찾아오는 일도 단 한 번 없던 터였다.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여 울 엄니 적잖이 당황하였음을 알아채고는 지레 포기하려는데.... 아.... 이 양반이 왜 그랬는지 꽃가게, 물고기가게에 다녀오마하셨다. 빠듯한 살림에 무리였을 텐데, 게다가 한 번도 안 하던 짓(?)을 하신다니.... 다행이다 싶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은, 당시의 그 쌉싸름한 느낌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다음날 아침, 금붕어 세 마리와 작은 어항 그리고 자그마한 국화 화분 하나가 현관에 놓여 있었다. 어항과 붕어는 내가, 화분은 누나가 들고 등교길에 올랐다. 학교에, 교실에, 뭔가 기여(?)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싶은... 묘한 흥분과 경이감이 날 기쁘게 괴롭혔다. 그날따라 내 어깨가 그리 넓을 수가 없었다. 통통한 볼살에, 짧은 팔다리에, 특히나 조막만한 심장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엄마는 무슨 마음으로 이걸 다 준비해주셨을까,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네.... 성질 사나운 노처녀 담쌤이 날 얼마나 칭찬하실까... 내 금붕어랑 국화꽃 덕에 환경미화 1등 하는 거 아닐까...

그러나... 
찰나의 경이와 행복은 이내 깨지고 말았다. 그녀가 내게 준 것은, 칭찬은커녕 비아냥과 꾸지람, 공개망신 뿐이었다. 아마도 교육대를 졸업했을 양식 있어야 할 그 양 아무개 담쌤은, 애초에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어항은 내 팔 벌린 만큼보다 커야 하는 줄 나는 몰랐다. 유리어항이 진리요 플라스틱 어항은 상상불허임을 전혀 몰랐다. 붕어는 적어도 큰 놈으로 열마리 정도는 돼야 하는 줄 몰랐고, 꽃화분은 장성한 남자어른이 겨우 들 정도 무게여야 함을 역시 몰랐다. 무엇보다.... 이 모든 배달(?)엔 인사치레에 밝은 돈 좀 쓸 줄 아는 엄마가 통과의례적 동행을 해야 한다는 걸 도통 몰랐던 게다.

"어항 사오랬더니 저런 걸 사왔자나 얘가..."
"화분도 저렇게 조그만 걸 달랑 사왔어. 화분이랑 어항이랑 다른 사람이 사와야겠다.... OO아, 엄마한테 내일 좀 준비해오시라고 할래?...."

환경미화의 역군 같은 그 어처구니없는 여자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새로운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교실 중앙 맨 앞자리 그녀의 배꼽 앞에 앉았던 난, 새 작전명령이 마무리 될 때까지 고개를 떨구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로부터 한동안...
난, 교실 한 구석에 겨우 자리잡은, 울 엄니가 어렵게 사준 국화랑 붕어 세 마리가 얼른 시들고 빨리 죽기를 기다렸다. 그 불순한 기도(?) 때문에 공연히 일찍 죄책감이란 걸 배웠을지도 모른다. 분노를 배우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으니까.

가을 소국.
내겐 뭉클하게 아름다운 꽃,
이젠 빨리 시들지 않아도 될.


국화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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