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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human# 02]윤순환 민송아의 인생 담금질 <그때, 나는>

그대, 절망하는 순간 희망하라

2016-07-04 00:33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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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 출신 드라마제작자와 화가겸 배우가 콜라보에세이를 냈다. <그때, 나는>(이불)은 잘 나가던 한 남자의 시련과 극복의 사소한 기록이다. 인생 매 고비를 희망의 발판이라 여기고 도전을 일삼는 한 여자의 내밀한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거칠고 솔직한 그들의 합주는, 지금 실패한 자, 곧 실패할지도 모를 자는 물론 성공한 자, 성공할지도 모를 자 모두를 아우르는 변주곡이다.
드라마 제작사 러브레터 대표 윤순환(좌)과 화가겸 배우 민송아. 합정동 Anthracite(02-322-000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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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환 이야기
 
‘여기 있는 글들은 맹수에 둘러싸인 채 자기 자신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던 한 남자의 일기장입니다. 그 싸움 속에서 상처를 입고 좌절도 맛보았지만 자기 자신을 이겨내고 있는 한 인간의 투쟁기입니다. 오늘도 생활의 전선에서, 꿈의 전장에서, 고독과 갈망의 틈바구니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분들과 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 저자의 말 중에서.

나눈다는 것. 저자는 말 그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길 원했을 뿐이다. 베스트셀러가 될 리 없으니 책 장사로 이문 남길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글에는 빛을 발하는 조탁도 없다. 거칠고 투박한 활자들이 날것으로 돌아다닌다. 유명 정치인도 연예인도 아닌 평범한 그가 세상에 책 한 권을 내는 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무엇을 나누려고 했을까. 한 개인의 시련과 좌절 그리고 투쟁과 극복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책은, 평탄히 잘 나가다 좌절의 수렁에 빠진 그가 다시 살기 위해 어떻게 몸부림쳤는지를 시사한다. 가치, 삽질, 승부, 삶과 죽음, 책임, 욕, 삶의 무게, 벼랑, 결정의 순간… 예순다섯 개의 화두는 보기만 해도 격정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화두마다 꼬리를 달아 스스로 터득한 처방을 예고한다. 내가 졌다고 느낄 때, 나만 아픈 것 같을 때, 사람들이 그걸 몰라줄 때, 삶을 벗어나 죽고 싶을 때…. 그는 ‘그때, 나는’ 얼마나 아팠는지 술회한다. 동시에 힘겹게 찾은 희망의 신호들을 열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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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대로 인생, 처음 만난 암초와 시련
“대학 졸업 후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가 40대에 사업을 시작했어요. 미인대회 관련 뷰티사업을 했고 우연한 기회에 드라마 제작사를 시작했습니다. 꿈과 도전, 열정의 시기였고 결과도 배신하지 않았었죠. 그러다 뜻하지 않은 암초에 걸렸습니다. 더 갈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벼랑에 직면했을 때 내가 단단하지 않음을 알았죠.”
러브레터 대표 윤순환은 2009년 회사 설립 후 2010년부터 <웃어요 엄마><내일이 오면><위대한 선물> 등 드라마를 내놓으며 승승장구했던 신인 제작자였다. 신문사 시절엔 10년여 현장기자 생활에 이어 30대 후반에 경영기획부장을 맡을 정도로 회사의 신임을 받았다. 그 덕에 미인대회를 주관하던 회사의 유관 뷰티업체를 독립운영하는 행운도 얻었다. 사업가로서 경험을 쌓은 뒤 드라마 제작자로 들어선 후에도 한동안은 탄탄대로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비는 야심차게 준비했던 한 드라마에서 비롯됐다. 2013년 제작한 KBS 특별기획 <칼과 꽃>이 제작진과의 갈등으로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니 드라마가 매끄럽지 못했다. 유난히 기대가 많아서였을까.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빛을 못 보자 갈등은 더 심해졌다. 실패로 끝난 결말. 분노하고 좌절했다. 맘대로 주저앉지도 판을 엎지도 못하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열패감에 사로잡혔다. 뭘 하든 잘 나아가리라는 신화는 무참히 깨어지고 세상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울화병이 생겼죠.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실패했는데, 깽판을 칠 수도 없고 속으로 삼키는 수밖에 없었어요. 자폭하자는 생각도 많이 했고… 도저히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어요.”
술을 퍼붓듯 마셨지만 양에 차지 않았다. 그렇다고 풀릴 일도 아니었다. 사춘기 때도 안 하던 삭발까지 해봤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분이 삭히지 않았다. 분노와 원망은 독이 될 뿐이었다.
평정. 스스로 마음의 평정을 찾는 길 밖엔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산책을 나서기 시작했다. 동네 뒷길을 걷다가 1km, 2km씩 늘리다 보니 산책이 트레킹이 되기 시작했다. 길게 걸으니 뭔가 생각이 정리되는 듯했다. 길 위의 명상이 습관처럼 몸에 붙을 무렵, 메모가 늘어남을 알아챘다. 걷고 생각하고 메모하고, 다시 걷고 멈추고 생각을 옮겨 쓰길 꼬박 몇 달. 가슴은 열리고 머리는 채워져갔다. 
 
글이 없었다면, 안개나 급류에 휘말려 죽었을 것
“감정이나 사고의 실체를 심화시켰다고 할까요, 아무튼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고 글로 옮긴 게 저를 살린 거예요. 만약 제게 글쓰기가 없었다면 과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이나 통제할 수 없는 급류에 휩쓸려 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메모가 글이 되기 시작했을 때 주변인들이 글을 보았다. 페이스북에 올린 포스팅도 입소문이 나 지인들 사이 팬이 생기기 시작했다. 책을 내보라는 권유가 늘어났다. 쓸데없는 짓 같다는 자괴감도, 아내와 소수 반대파(?)의 만류도 있었지만 결국 책을 쓰기로 결심한 그. 1년 동안 글을 정리하고는 마침내 콜라보 파트너 민송아와 조우하게 됐다고 한다.
65개 장으로 분리된 책 속의 여러 화두 중 '가치'와 '복싱', '글쓰기'가 가장 많이 곱씹게 되는 부분이다. 사람은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느낄 때 바로 가치가 있는 거라고, 복싱에서 수건은 던지라고 있는 게 아니라 피를 닦으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책을 낸 뒤에도 일부러 뒤져가며 각인시키는 말들이다.
“막상 책을 내고 나니 복잡미묘해요. 뿌듯하고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불안감도 있죠. 별 것 아닌 걸 가지고 엄살을 떤 건 아닌지, 너무 솔직하게 써서 거부감은 없을지, 아내 말마따나 돈은 안 벌고 쓸데없는 짓만 한 건 아닌지…(웃음). 그래도 속으론 자랑스러워요. 생활전선에서 잘 나가다가 크게 한 방 얻어맞고는 이전엔 전혀 알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을 경험했으니 큰 행복이죠. 그래서 제 글이 아픈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좌절이 두렵지 않기에 실패도 두렵지 않다
에세이 출간 전후로 심기일전한 그는 다시 일을 시작하고 있다. 드라마 시장의 채산성이 떨어져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드라마와 영화 각각 두 편씩 진행 중이다. 배우가 ‘기다리는 자’라면 제작자는 ‘준비하는 자’라는 정의를 맘에 새기고 산다 했다.
“제작자의 숙명이 그래요. 그 중 10%가 성공할 때도 있고 40%가 성공할 때도 있죠. 하지만 이제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전 같은 극한좌절은 없을 거예요. 우보처럼 천천히 나아가겠죠.”
‘그때, 나는’ 그러하였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달라져 있다. 그가 원한다면 후속 에세이 제목쯤으로 선사하고 싶다.


 
민송아 이야기

민송아는 화가겸 배우이다. 톱 배우도 아주 유명한 화가도 아니다. 그런데 낯선 듯 낯설지 않다. 첫인사 건네고 대화를 나눠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활동범위가 엄청나게 넓은 게 첫 이유. 홍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화가가 본업이다. 하지만 배우와 MC, 리포터, 아나운서, 동시통역, 패션디자인 등도 본업에 버금가는 부업(?)이다. 종합예술인 또는 만능엔터테이너로 불려야 마땅하나, 스스로는 화가겸 배우로 불리길 원한다. 첫 이유보다 더 인상적인 건 30대 초반이라 보기 힘든 정연한 논리와 신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결기와 명료한 자기주장이 장점이자 매력인 듯 보인다.
“아버지 일 때문에 일곱살 때부터 외국생활을 시작했어요. 한순간에 친구들과 생이별하고 말도 안 통하는 곳에 가니 스트레스가 엄청났죠. Hello조차 몰랐을 때니 왕따였고 언어장애자, 정신지체아 취급을 받을 정도였어요.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게 그림 밖에 없어 그림이 일기장이었고 친구였어요. 전 그림에 대한 의리와 사명감이 있는데,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내서일 거예요.”
중학교 때부터 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화가로 데뷔했다. 취미를 곧 일로 만드는, 사소한 도전도 그냥 흘려버리지 않는 습성은 일찌감치 그녀만의 독특한 자질이 되어갔다. 10가지 가까운 직업을 능히 해내는, 그 어려운 일을 자꾸 해내는 지금의 강단을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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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통역사, 얼짱 리포터, 패션디자이너... 10가지 직업 
고3 때가 돼서야 한국에 들어와 대학을 다니고 사회에 나왔다. 그림을 그리는 사이 틈틈이 연기에 욕심을 내었다. 2005년 SBS 청소년 드라마로 데뷔를 했다. ‘한밤의 TV연예’ ‘연예가중계’에서 리포터로 활동하며 방송에 얼굴을 알렸다. 지금은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기상캐스터 출신 박은지와 함께 ‘3대 얼짱 리포터’로 주목받았다. 능숙한 외국어 실력을 밑천으로 아리랑 TV 아나운서는 물론 ‘거물’들을 수행하며 통번역도 해냈다. 고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오세훈 서울시장의 의전을 거들었다. 통번역대학원 전공자가 아님에도 실력으로 발탁된 것.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하니까 발전이 더딘 게 사실이에요. 어느 한 곳에서 확 뜨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후회하거나 조바심 내진 않아요. 전 사실 화가나 배우나 디자이너나 다 같은 예술이라고 믿어요. 예술이라는 게 결국 마음에 있는 것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활동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거고, 결국 표현방식만 다른 거 아닐까요?. 한 마디로 표현하면 모두 다 ‘작가’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녀는 말한다. 그림이 자신의 정체성이라면 방송이나 연기 등은 그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빛을 좇는다. 그러니 ‘나’와 그림자는 항상 ‘함께’ 한다고. 취미와 일을 모두 진지한 ‘작업’이자 '직업'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은 이런 시선에서 비롯됐다.

드라마 제작자 윤순환과 화가 민송아는 한 영화 시사회에서 처음 만났다. 낸시 랭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된 둘은 나이 차 많은 선후배이지만, 예술을 한다는 차원에서 ‘동업자적’ 친구 관계를 유지해왔다. ‘꼰대들의 감성’ 드라마로 주목받고 있는 노희경 작 ‘디어 마이 프렌즈’엔 민송아의 그림이 걸려 있다. 드라마 속 전시 등 갖가지 콜라보에 익숙한 그녀가 그의 글을 보고 서슴없이 제안을 했다. 에세이에 제 그림을 실으면 어떨까요.
“윤 대표님 글을 보고 처음에 놀랐어요. 미술작업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자신을 솔직히 털어내고 투자하고 새로 빌드업(build up)하는 과정은 미술가들에게 흔한 일이죠. 솔직한 날것들이어서 좋았어요. 살면서 겪는 여러 사건과 그로 인한 고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저도 그림에 그런 걸 녹이긴 하지만 글처럼 직접적이진 않아요. 사실 부러웠어요. 전 그렇게 못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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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는 그때가 희망이 보일 때
기다리는 자와 준비하는 자의 합작은 결국 세상에 나왔다. 둘 간의 시너지는 이루어졌다. 공감은 독자들의 몫이니 둘은 이제 각자 본업에 충실하기로 한다. 기다리는 자는 영화 ‘오뉴월’과 ‘궁합’을 촬영 중이고 새 드라마 ‘여자의 비밀’에 출연 중이다. 준비하는 자는 엄선한 네 편의 작품을 세상에 내기 위해 땀 흘려 뛰고 있다.
둘이 전하는 메시지는, ‘절망할 때 희망하라’는 역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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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송아 미니 갤러리

(위부터 아래로)
- silence_2014. <그때, 나는> 에세이 표지를 장식했다.
- 꿈꾸는 낙타_2016
- 두 발로 선 낙타_2015
- 낙타기린_2013
- 자화상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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