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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배우 이보영에게 위로받다

책 읽어주는 배우 이보영에게 위로받다

2015-07-15 16:22

잘 어울려도, 정말 잘 어울린다. 책 읽는 이보영. 실제로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단다. 급기야 이번엔 책까지 썼다. 그간 읽은 책들에 대한 소회를 묶은 건데, 희한하다. 다 읽고 나니 괜스레 위로가 된다.



예쁘고 인기도 많다. 멋진 신랑도 뒀고, 최근엔 딸까지 얻었다. 이대로라면 가히 ‘행복한 삶’이다. 그런 이보영도 불행한 적이 있다. 평범한 아이였다. 꿈도 없었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부모 아래서 자랐다. 

“특히 아버지가 대단히 엄격했어요. 제가 나이보다 성숙하기를, 어른스럽기를 기대하셨죠. 그래서 고되고 힘겨운 사춘기를 보냈어요.” 

그러다 얼떨결에 배우가 됐다.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상황을 받아들일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채. 변화가 낯설고 어려웠다. 실수만 반복했다. 스케줄을 따라 기계처럼 움직였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불행했다. 

“위로해주던 가족과 친구들이 지쳐가는 게 눈에 보였어요. 그러던 어느 봄날, 차를 타고 여의도를 달리는데 흩날리던 벚나무 꽃잎이 차창으로 들어왔어요. 창밖을 보니 핀지도 몰랐는데, 벌써 지고 있더라고요.”

옆도 뒤도 안 돌아보고 살았나 싶었다. 

 “그 순간 찾아온 삶의 질문을 대면하기로 했어요. 어두운 방 안에서 죽은 듯이 웅크리고 앉아 생각을 거듭했어요. 나는 왜 불행할까? 어떡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그 무렵 <꾸뻬 씨의 행복여행>을 읽었다. 답을 얻었다. 

“수많은 시간 동안 고민하던 문제들이 이 책에 담겨 있더라고요. 이런 구절이 있어요.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간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여긴다.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선택이다….’” 

책읽기는 오랜 취미다. 이보영은 “한가할 때는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한꺼번에 산다”고 했다. 그러다 결국 책까지 냈다. <사랑의 시간들: 이보영의 마이 힐링 북>(위즈덤하우스)이다. 

“3년 전이었어요. 드라마 <적도의 남자>를 끝낸 늦은 봄이었죠. 지금까지 읽은 책에 관한 글을 써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드라마 속에서 책을 읽어주던 ‘한지원’이라는 캐릭터가 저와 어우러졌나 봐요. 책에 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나 싶어요.”(웃음)  

총 23권의 책에 대한 감상과 회고를 담백하게 엮었다. ‘이보영’이라는 사람을 성장시키고, 생각하는 시간을 선사해준 것들이다. 

<꾸뻬 씨의 행복여행>도 그중 하나다. <사랑의 시간들>은 “당신도 나처럼 위로받기를”이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물었다. 무슨 고민이었고, 어떤 책을 통해 어떻게 위로받았는지. 


이별, 그리고 사랑

만고불변의 고민거리. 바로 ‘사랑’이다. 그녀에게도 시린 사랑이 있었다. 

“젊은 날을 관통하는 가장 큰 중심은 언제나 사랑이었어요.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사랑을 하고, 받는 일만큼 나를 살아 있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은 없잖아요.” 

처음 사랑을 경험한 건 20대 때다. 

“첫 만남이 이뤄지고 사랑이 시작되고 한창 달콤한 시절을 보냈죠. 세상에 이토록 열렬한 커플은 우리밖에 없을 거라고 내 사랑을 자랑하면서 남들에게 자꾸만 알리고 싶었죠. 이런 에너지가 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놀라워하며 밤새 통화하고, 그러다 다투고 권태기가 밀려들고 멀어지고…. 화냈다가 또 매달리고. 저 역시 그랬어요.”  

오래전 기억이다. 쓰리고 아팠다. 사랑이 떠나갈 즈음 집어든 책이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곱씹어봤어요. 이 책이 제게 진실을 남겼어요. 사랑이 끝나는 이유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세상까지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 사랑이 끝나면 이런 사랑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지만, 우리가 모르는 시간 속에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그 결과? 지금 진짜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만났다. 남편 지성에 대해서도 특유의 어조로 풀어냈다. “고등학교 시절 저는 사랑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스무 살만 되면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때 사랑에 대한 환상을 더욱 부풀린 건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시 ‘내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였다.

“그런데 어린 시절 꿈꾸던 영화 같은 사랑은 없더라고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쓴 사랑, 불치병에 걸린 사람과의 사랑 이런 거….(웃음) 대신 같은 취미를 가지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을 만났어요. 극적인 러브스토리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편안하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고, 항상 내 편인 사람 말이에요.”   




함께 있어도 외로울 때 

혼자 세상 안에 갇혀 지낼 때도 있었다. 그녀는 “나를 활발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아직도 내 세상 안에 갇혀 웅크릴 때가 있다”고 했다. 

“낯을 많이 가려요. 자주 보는 사람과만 만나고 익숙한 장소에만 가죠. 시사회나 행사장, 시상식도 낯설기만 해요. 그저 제 공간 안에 있을 때가 가장 편안해요. 어색한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지고 괜찮은 척하느라 털털해 보이려고 하는데, 그런 제가 또 어색해서 혼자 민망해져요.” 

드라마 <내 딸 서영이>를 찍으면서는 역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보기로 했다. 자신이 맡은 서영이가 ‘홀로서기’를 선언하며 집을 나갔는데, 현실의 이보영 또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터였다. 나 자신을 찾는 것,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건 어떤 건지. 밝게 자라지 못한 서영이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결혼을 한다. 떳떳하지 못한 약자 입장에서 시작한 결혼이라 동등한 부부로 관계 맺는 게 어려웠다.  

실제로 외로움에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도 왕왕 있다. 그곳은 여기와 다를 거라는 막연한 환상에. 

“저 또한 결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어요. 동화나 영화, 드라마의 해피엔딩은 결혼이잖아요. 직장을 다니다 보면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서 결혼하게 될 거라는 막연한 꿈을 꾸기도 했어요. 내 남편은 부족한 나를 감싸고 보호하며 이끌어주는, 내가 충분히 기댈 수 있는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죠.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요. 왜 홀로 서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왜 누군가에게 기대어야 인생이 완성된다고 믿었는지…”

우리는 배우자를 ‘반쪽’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 않나. 법륜스님은 저서 <스님의 주례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대에게 기대어 외로움을 채우려고 하면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없다고. 그 반쪽을 잃으면 나도 다시 반쪽으로 남기 때문이라고. 그땐 스님의 주례사가 그녀에게 가르침을 줬다. 그녀는 “<스님의 주례사>를 통해 나 자신이 스스로 온전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여자로 산다는 것 

일하는 여성이면 공감할 거다. 여자로서 사회생활 힘들 때가 많다는 걸. 같은 말을 해도 무시당하는 것 같고, 옳지 못하다고 반박하면 ‘드센 여자, 나대는 여자’로 낙인찍힌다. 

“자꾸 ‘여자답기’를 바라잖아요. 정당한 의견을 제시해도 상대방은 “그래 그래, 보영이 참 예쁘네” 하며 어물쩍 넘겨요. 그땐 모욕감마저 들죠. ‘남자 대 여자’의 대화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대화를 원했는데 말이에요.”

사실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 항상 고마웠다. 외가나 친가 양쪽으로 모두 첫딸이자 첫 손녀, 첫 조카였다. 수십 년 만에 태어난 아이였기에 집안에서 1번은 항상 그녀의 차지였다. 딸이라고 차별받지 않았고, 귀하고 예쁜 건 모두 주어졌다. 그런데 사회생활은 달랐다. 

“지쳐갈 때 쯤 <더버빌가의 테스>를 다시 읽었어요. 어릴 때 읽은 책인데, 당시엔 어려워 이해하지 못한 고전이에요. 자기 의도와는 달리 세파에 휩쓸려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여인, 테스가 ‘여자’라서 겪게 되는 고통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데, 읽으면서 펑펑 울고 말았어요.”

테스는 여자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훈육되고 강요당한다. 피해자인데도 스스로 여자의 굴레에 갇혀 더욱 숨죽여 지낸다. 그녀는 “책 속으로 뛰어들어가 테스에게 그 길이 아니라고 막아주고 지켜주고 끌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책을 덮고 난 후, 그녀는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상황을 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소설 속 ‘테스’를 보듯, 자신의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남자여서 힘든 점도 있겠구나, 하고 안쓰럽게 여기는 여유도 생겼죠. 가장이라는 부담감, 남자답기를 바라는 시선들, 남자이기에 가중되는 책임감도 있겠구나 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여자이기 이전에 모든 이에게 열린 사람이고 싶은 생각까지도요.” 


나이 듦에 대하여 

여자인지라, 배우인지라 그렇다. ‘늙었다’는 얘길 들으면 서운한 게 사실이다. 

“제가 피터팬 증후군이 약간 있어요. 아직도 아이처럼 노는 걸 좋아하죠. 지금도 인형을 모으고, 만화책과 놀이동산을 좋아하고요. 가끔 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보는데, ‘나이 들었다’, ‘늙었다’고 하면, 이건 아니지! 싶기도 해요. 하하.” 

그렇다고 나이 듦을 거스르고 싶진 않다. “때때로 노년의 모습을 그려봐요. 철이 덜 든 아이 같아도 열정적으로 유쾌하게 살고 있기를 바라요. 넉넉한 마음을 지닌 귀여운 할머니 있잖아요.”(웃음)

물리적으로 나이가 들어도, 마음이 늙고 싶진 않다는 말 같았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읽고 나서는 이 같은 생각이 더 단단해졌다. 

특히 여자로서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 

“어느 날 문득 엄마를 바라보는데 내 나이 때 엄마의 모습이 생각났어요. 내가 아는 엄마는 그저 가족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었어요. 그때는 엄마도 한창 젊은 나이였는데, 예쁜 옷이 안 입고 싶고, 좋은 곳에 안 가고 싶으셨을까요? 그런데도 항상 아끼고 참던 모습을 떠올리자니 그때 엄마에게 즐거움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게 됐어요. 지금 그 나이가 되고 나니 엄마도 어른인 척 살아내면서 힘드셨겠구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더라고요.”

책을 출간하며 이보영은 걱정도 많이 했다. 우선 글 쓰는 게 부담이었다. 그리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적인 부분이 드러날까 두렵기도 했다. 현재의 생각이 활자로 박혀 영원히 남을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그는 “시간이 흘러 더 자란 미래의 제가 지금의 글들을 읽게 된다면 부끄러워질지도 모르겠다”라면서도 “하지만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제 모습과 생각이기에 소중히 여기겠다”고 덧붙였다. 

배우 배종옥은 이보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끔 수다꽃을 피우는데, 상대방이 부담스럽지 않게 말을 참 잘한다. 책과 오랜 시간을 보내며 그 속에서 성숙했기에 그와의 대화가 늘 편안하고 즐거웠구나 싶다.” 이보영이 풀어낸 책 얘기를 듣고 있자니, 정말 그랬다. 편안하고, 즐거웠다. 

한편 지난 6월 13일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 건강한 딸을 출산한 이보영은 현재 지인의 축하 속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이보영은 “오랜 기다림이었지만 이렇게 건강하게 나와줘 고마운 마음뿐”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지성 또한 “기쁘고 감격스럽다. 우리 가족에게 축복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 행복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딸의 태명은 ‘곽보베’였다. 지성의 성(본명 곽태근)과 이보영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고 마지막에 ’베이비‘를 붙인 것. 지성은 임신 당시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앞서 tvN <삼시세끼> 정선편 5회에서 지성은 “요리를 잘 못하는데 요즘 배우고 있다. 아무래도 아내가 움직이기 힘드니까”라며 이보영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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