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벤트
  • 동영상
  • 카드뉴스
  • 조선뉴스프레스멤버십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ISSUE
  1. HOME
  2. ISSUE

돌아온 ‘힙합 1세대’ 이현도 “15세 연하 여자친구와 결혼 전제 열애 중”

돌아온 ‘힙합 1세대’ 이현도 “15세 연하 여자친구와 결혼 전제 열애 중”

2015-05-08 15:45

벌써 22년 전 일이다. 이현도와 고 김성재가 결성한 그룹 ‘듀스’가 대한민국에 힙합 열풍을 일으킨 지, 딱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홀로 남은 이현도는 어느덧 40대 중반이 되었고, 팬들도 같이 나이를 먹었다. 2년 전, 13년 만에 국내 방송가에 복귀한 그가 참으로 오랜만에 인터뷰에 응했다. 그간의 이야기를 전부 담기엔 지면이 턱없이 모자랐던 점이 못내 아쉽다.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돌아온
‘힙합 개척자’

작년 9월쯤이었을까. 이현도에게 인터뷰하자는 문자를 보냈지만 아무 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나 그가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시 한 번 연락을 취했고 그는 생각보다 쿨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 막간에는 우스갯소리로 “저 요즘 (후배들 홍보하러) 몸 팔고 있어요”라는 뼈 있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어제 밤늦게까지 음악 작업 했다면서요. 네. 이거저거 많이 했어요. 딘딘(이현도가 차린 엔터테인먼트 소속 래퍼), 키썸(신인 래퍼)의 앨범 작업이랑 외부 작업도 하고. 기본적으로 곡 만드는 사람이니까 보이지 않게 하고 있어요.

최근에 엔터테인먼트 대표라는 직함이 생겼어요. 언제 회사를 차린 거죠? 서류상으로 작년 10월에 정식 출범했어요. 본사는 여의도인데 여기(서울 논현동)가 사무실 겸 녹음 작업실이거든요. 여기에 맨날 있어요.

회사 이름이 D.O 엔터테인먼트에요. ‘현도’ 이니셜이죠? 어떤 친구들이 속해 있나요? 문명진, 딘딘, 그리고 소유미라는 친구가 있어요. 소유미는 저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와는 조금 다를 수 있어요. 사실 저는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을 하고 싶은데 (이현도 하면) 이미지가 힙합 하나에만 국한되어 있어서. 저는 오케스트레이션이나 록도 좋아하거든요. 여러 장르의 음악을 겉핥기 수준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요. 그래서 소유미라는 친구를 영입했고, 가장 먼저 앨범이 나올 거예요. 사실 이 인터뷰도 그 친구를 응원해주려는 마음에서, 이 한 몸 바쳐 보자.(웃음) 

그럼 잠시 소유미 씨 소개의 장을 마련해드리죠.(웃음) 스물넷인데, 연습생 생활을 오래 했어요. 아이돌 걸그룹에 있었는데 그렇게 잘 되진 않았고요. 나중에 들은 얘긴데, 아주 열정적이고 끝까지 버틴 연습생 중 하나라는 좋은 평가가 있더라고요.

파트가 랩인가요? 아니요, 보컬이요. 예쁘고 어리고 귀여운 친구인데, 이제 트로트를 하겠대요. 아버님이 ‘빠이빠이야’ 라는 곡을 부른 소명이라는 가수 분이세요. 그 선생님 딸이에요. 그래서 트로트라는 장르에 대해서 거리감도 없고 애정이 있죠. 저는 일렉트로닉에 트로트를 접목시키는 장르파괴?(를 시도해보려고 해요) 하이브리드죠. 그런 식의 시도가 일본에는 많았고요.

나름 힙합 1세대인데, 트로트라는 장르를 접목시키는 데는 특별히 거부감이 없네요? 네. 근데 근본도 모르고 한두 개 갖다 붙인다는 소리는 안 들으려고요.

그전부터 프로듀싱을 많이 했으니까 엔터테인먼트를 차려서 후배를 키워야지, 하는 마음은 진작부터 있었을 것 같아요. 오히려 좀 늦은 게 아닌가 싶은데. 그렇죠. 제가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를 한 12년 이상 미국에서 썩혀서. 디베이스라는 친구들을 하기는(키우기는) 했었는데 제대로 못했던 것 같아요. 제작자라는 개념도 없었고 그 시기에 뭐랄까, 다 아시는 얘기지만 (김)성재 판결도 그렇고 정신적인 상처가 커서. 말하자면 내상을 입은 거죠. 사실 솔로 앨범 활동을 마저 한 것도 성재와의 그걸 마무리를 져야 되는(상황이었어요). 앨범을 몇 장 더 내야 되고 그런 상황들이 있어서 하게 된 건데, 즐거운 기억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미국으로 떠난 건가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였고, 등을 돌리고 싶었던 거죠. LA에도 코리아타운이 있고 한국 사람도 있지만, 바다 건너서 사람들을 피해 있는다는 것 자체가 심적으로 편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막연하게 ‘듀스가 아니면 어때’, ‘음악은 계속 만들면 되지 뭐’ 하면서 연예인이라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12년 동안 (미국에 있으면서) 자연치유가 됐고, 그러다보니 어느 날 또 사람 마음이 바뀌더라고요.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니까요. 12~13년 지나니까 ‘나는 아직도 음악을 하고 싶은데 왜 여기에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자유로운 생활이지만 일적으로는 허송세월 같아서 후다닥 (한국에) 왔어요.




“안 변할 줄 알았는데 나도 변하더라…
어린 세대들에게는 나도 ‘듣보잡’”


동료 가수 김성재가 세상을 떠난 후 이현도에게는 항상 같은 질문이 따라다녔다. 힘든 시기였음에도 (계약상) 세 장의 솔로 앨범을 내야만 했고, 이후 그는 곧장 미국으로 떠났다. 13년이 지나 한국에 돌아온 그가 복귀를 위해 선택한 방송은 다름 아닌 CJ E&M의 <쇼미더머니>. 새내기 래퍼들을 발굴하는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2013년에 <쇼미더머니>로 국내 방송 활동에 복귀했어요. 무려 13년 만이었죠. 어떤 계기로 출연을 결심하게 된 건가요? 원래 방송을 할 생각이 없었어요. (오랜만에 한국에) 오자마자 얼떨떨했고. 사실은 CJ 이미경 부회장님이 되게 멋쟁이에요. 그분이 음악 하는 아티스트들을 되게 Respect(존중, 존경)해주시고 챙겨주세요. 그래서 파티 같은 사적인 자리에 많이 초대받고 만났어요. 그분이 힙합을 되게 좋아하시는데, 언젠가 “현도 씨, 한국에 오셨으면 현도 씨 음악이나 이런 걸 더 보여줘야 되지 않겠어요?” 하고 덕담처럼 하신 말씀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그로부터 1년 반 후에 다시 한국에 들어오니까 (CJ Mnet <쇼미더머니> 측에서 출연) 의뢰가 왔더라고요. 십몇 년 만에 방송에 나가는 게 좀 생뚱맞지만, 하여튼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가보자(해서 나갔어요).

적응하기 힘들지 않았어요? 강산이 변했으니까 방송 시스템이나 이런 것도 많이 변했죠. 사실 <쇼미더머니> 세대들한테는 어떻게 보면 제가 ‘듣보잡(들어보지도 못한 이)’이에요. 그래서 제작진들 입장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 잡아준다고 편집도 막 못되게 하고…. 별로 좋은 것 같진 않아요.(웃음) 그래서 내가 ‘그런 식으로 편집 그만하자’고 했어요. 하여튼 잘 풀려서 기대 이상으로 얻은 게 더 많아요.

힘든 건 없었어요? 오랜만의 출연이니까 심적 부담이 있었을 수도 있고요. 어색하기도 하고, 너무 의도적인 편집으로(힘들었죠). 그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그렇게 되고, 기분 안 나빴는데 그런 제스처 엮으면 기분 나빠한 게 되고. 내가 뱉어놓은 말들이나 감정을 엮어서 다른 그림을 만드니까 그게 싫었죠. 그리고 의상 값이 너무 많이 들어서.

스타일리스트가 의상 협찬해 오잖아요. 성에 안 차서 스타일리스트 안 시키고 제가 사 입었어요. 그때 너무 고가의 제품들을 사다보니까 출연료가 다 의상으로 나간 것 같아.(웃음)

패션에 관심 많죠? 그렇다기보다는 자기표현이니까요. 옷도 잘 입는 게 좋잖아요. 추성훈 선수처럼. 멋있잖아요. 보이는 직업이면 자기가 얼마만큼 꾸몄는지가 중요하잖아요. 당연한 거죠.

아까 “<쇼미더머니> 세대에게는 내가 ‘듣보잡’일 수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어린 후배들이 더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조카팬’들이 많이 생겼어요, 헤헤. “<쇼미더머니>에서 봤던 그 사람, 우리나라 힙합 1세대래”, “‘여름 안에서’가 그 사람 노래야.” 뭐 그런 정도? 1990년대 음악이 회자될 때마다 “아, 그 노래도 이현도가 한 거야? 그 ‘아르헨도’?”

그 말이 아직도 나와요? 아이 뭐, 영원한 거죠. 당뇨병처럼 지니고 사는 거죠.(좌중 웃음)

얼마 전 <라디오스타>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특집에 나왔는데… 아니 그게 ‘자기 세계 있는 남자들의 특집’이라고 그래서 나갔는데 ‘욱 하는 남자 특집’이라고 말 바뀌고.(웃음)

그 동안 너무 안 나왔으니까, 사실 팬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에요. 사실 저는 극단적으로 방송을 거부하는 건 아닌데, 즐기진 않아요. 근데 기왕 나간 거면 불편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막 터는 거죠. 항간에는 SNS를 통해 팬들의 바람도 가끔 들려요. ‘가만히 좀 있지, 왜 나와서 우리들의 어린 시절의 멋진 모습을 스스로 무너뜨리느냐’ 라고 하는데, 내 인생 내가 사는데 뭘. 자기들만 컸나? 나는 마흔이 넘었는데.(웃음) 사람이 여러 가지 의견을 다 만족시킬 순 없잖아요.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서 좀 유해진 면이 있죠? 방송에 다시 출연하고 대중 앞에 선 것도 그런 면이 작용했을 것 같고요. 나이에 따라서(변하는 것 같아요). 진짜로 저는 안 변할 줄 알았는데 변하더라고요. 패러다임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기질은 변하지 않아요. 다혈질이고 열정도 있는데, 그걸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지더라고요. 연륜이라고 하는 걸 이제 조금 느끼고 있어요. 마흔둘 때도 못 느꼈는데 마흔넷이 되면서 느끼고 있어요.

“패러다임이 넓어졌다”는 건 전보다 여유가 생겼다는 말로 이해하면 될까요? 똑같은 상황도 이제는 다른 감정으로 느끼고 활용하게 됐죠. 예를 들어 전에는 싫은 사람은 등 돌리고 안 보고 좋은 사람은 다 퍼주는 것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시각도 달라졌어요. 돌아서더라도 기왕이면 좋게 돌아서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 그래야 제자신이 그만큼 더 편한 것 같아요. 사람들은 그걸 ‘내려놓는다’라고 표현하는데, 내려놓는 게 아니라 그게 더 맞는 길이었는데 어려서는 그걸 보지 못했던 거죠.

그래서 한동안 거절하던 인터뷰에도 응했고요? 작년까지만 해도 다른 여성지나 매체에서 의뢰 오면 다 거절했어요. 사진 찍는 게 일단 싫고. 사적으로 만나면 재밌는 얘기 나눌 수 있는데 아무래도 기사화되는 게(싫었거든요). 그 동안 어떻게 지냈냐 하는 것들, 저한텐 똑같은 얘기니까요. 그래서 전에는 안했는데 이제는 기왕이면 우리 사무실 친구들도 소개하고. ‘오빠랑 꼭 결혼할래!’ 했던 팬들이 이제 벌써 애 셋 낳은 주부들이 됐는데, 그 친구들한테도 지면을 통해서 모습을 비추는 게(좋을 것 같았어요). 어떻게 보면 생각이 유해지고 넓어진 셈이죠.




 “학교 다니고 축구하고”
등 돌리고 살았던 미국에서의 13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현도는 공부하고 운동하고 축구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오로지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는 동안, 평생 남을 줄 알았던 상처들은 아물기 시작했다. 그 역시 전보다 담담하게 세상과 마주할 준비를 마쳤다.

오랜만에 이현도 씨 과거 앨범들을 쭉 다시 들었어요. 3집 ‘Life Time’이 독백으로 이루어진 곡인데 가사가 인상적이더라고요. 속내를 털어놓은 일기장처럼. 그 시기에 힘든 일들이 많았는데 어떻게 견디고 이겨냈는지 궁금해요. 특별히 이겨내려고 노력을 하거나 발악을 하진 않았는데, 그냥 등 돌리고 있었어요. 나 자신의 삶을 사느라 바빴죠. 그때 처음 면허도 땄고요. 매달 집세 내는 거, 장보는 거 다 저 혼자 하면서 거기에 재미를 느꼈어요. 가끔 미국 백화점 같은 데서 한국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면 순간적으로 ‘어? 내가 아는 사람인가?’ 하고 잠깐 동안 멈칫했을 만큼(남들이 알아보는 연예인이라는 걸 잊었을 만큼) 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어요.

그때 가족들도 다 거기에 있었어요? 아뇨, 저만 미국에 있었죠. 그냥 혼자 간 거예요.

13년 동안 한국에는 거의 안 왔고요? 6년에 1번씩 잠깐 한국에 들어왔어요. 2004년에 MAMA(CJ E&M에서 주최하는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듀스 헌정해준다고 해서 2~3달 정도 잠깐 들어왔었고, 그다음 6년 후에 주석(래퍼)이랑 같이 앨범 작업 하려고 들어왔었고요.

그 오랜 기간 미국에서는 주로 뭘 하며 지냈어요? 대학교 다니면서 교내 축구팀에 들어갔어요. 패서디나컬리지(Pasadena City College)를 다녔는데, 학교에 축구부가 있는 거예요. 미국에서는 3부 리그인데, 서울대축구부처럼 일반 학생도 할 수 있더라고요. 2년 내내 축구를 정말 잘 배웠죠.

지금도 주말마다 축구해요? (이현도는 소문난 축구광이다.) 그렇죠. 주중에도 하고요. 1주일에 4번도 뛸 수 있는데 요즘은 바빠서 2번 밖에 못해요.

연예인 축구단도 하죠? 네, 일요일 팀(연예인 축구단)은 제가 부단장으로 있고, 단장은 탁재훈 씨고요.

다시 미국 얘기로 돌아가서, 학교 다니면서 조용히 일상을 살았군요. 뭐, 진짜 일상을 살았어요. 학교 다니고 축구만 해도 시간이 빨리 갔고, 운동도 했고요. 지금은 운동 끊고 술 시작한 지 오래돼서 돼지가 됐는데, 그때만 해도 참 (김)종국이가 인정하는 찹쌀근육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웃음)

미국에서도 프로듀서 생활을 하지 않았나요? 그때 얘기는 잘 없던데요. 성과가 없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좀… 자잘한 일은 많이 했어요. 유명한 뮤지션들과 교류할 기회도 많았는데, 그 신에 실력과 열정 하나만으로 끼기 힘들더라고요. 다 장사예요. 내가 너희 뉴욕 콘서트에 참석해줄테니 얼마를 다오, 이런 식으로요. 복권 당첨되는 거 아니면(돈이나 지원 없이 성공하기가 어려워요). 근데 뭐, 맨땅에 열심히 헤딩해봤죠.  

최근에 <무한도전>에서 8090년대 가수들 특집(‘토요일 토요일은 가요다’)이 히트를 했잖아요. 섭외 전화 많이 오죠? 저는 지나간 일이면 그냥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다시 나와서 그 모습을 재현하는 건, 저한테는 아닌 것 같아요. 물론 그 모습으로 계속 공연하는 게 의미가 있는 팀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쿨, 터보 같은 팀들이요. 근데 듀스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성재가 없으니까 저 혼자서 듀스라는 이름을 갖는다는 자체도 말이 안 되고. 그때 그 순간으로 남기는 게 좋죠.

듀스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그냥, 이렇게 잘 되거나 사람들한테 감동을 주려고 시작한 건 아니고, 성재랑 저랑 표현하고 싶은 거 한 거예요. 지금 돌이켜보면 어설픈 것도 많고 음악적인 빈틈도 있는데, 옛날엔 그게 부끄러웠어요. 지금도 음악적인 면들이 하나하나 다 자랑스러운 건 아닌데, 어쨌든 지금의 결과까지 왔죠. 운도 있었고요. 그 나이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였다고 생각하고, (저는) 복 받은 놈이죠. 독특한 경험이잖아요. 이 나이 때 그런 음악 해서 유명해지고, 지금도 후배들이 선순환으로 ‘형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라고 해주며 저보다 더 잘 된 모습들 보면 기분 좋죠.


15세 연하 여자친구와 결혼 전제 열애
아이 빨리 낳고 싶어


인터뷰 중간에 모 브랜드에서 보낸 리미티드에디션(한정상품) 시계가 택배로 도착했다. 얼굴에 급격히 미소가 번진 이현도가 잠깐 양해를 구하더니 신나게 포장지를 뜯기 시작했다. 선글라스 뒤에 숨겨진 이현도의 아이 같은 모습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SNS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실제로 젊은 친구들과 벽 없이 소통하는, 대단히 젊은 마인드의 소유자다. 그래서일까? 4년째 만나는 여자친구의 나이는 무려 15세 연하. 이현도라면 충분히 가능하다,에 한 표 던진다.

SNS 보니까 부모님도 잘 챙겨드리고, 굉장히 효자던데요? 원래 불효자였는데 이제 잘 챙겨드리려고요.

어떻게 불효자였어요? 1987년도부터 힙합이랑 댄스 한답시고 옆머리 빡빡 깎고 다녔는데 그게 효자였겠어요?(웃음)그때 부모님이 많이 반대하셨어요? 아니요, 반대 하나도 안 하셨어요. 맨날 말썽만 피우니까 어머님이 되게 걱정이 많으셨죠.

둘째죠? 둘째라서 크게 반대를 안 하셨던 건가. 아뇨, 아뇨. 둘 다 완전히 또라이였어요. (위로 한 살 터울의 형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긴데 그땐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았는지.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사회에서 인정해주지 않았던 게 많았어요. 예를 들어 어렸을 때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어요. 제 세대에 나고 자라 지금 훌륭한 요리사, 스타 셰프가 된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꿈이 뭐냐고 묻기에 요리사라고 그랬더니 선생님들이 막 웃는 거예요. 남자가 무슨 요리사냐고. 아니, 세계적인 요리사가 되려면 체력과 체격이 얼마나 요구되는데(남자가 요리사냐니요). 그래서 약간 상처도 받았죠. 프라 모델 미니어처 만드는 것도 하고 싶었는데, 잘해봤자 어린이 장난감 만든다는 얘기만 들었고요. 항상 뭔가 창의적인 걸 만들거나 혼자 작당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만 해도 그걸 받아줄 수 있는(환경이 한국에는 형성되지 않았어요). 그런 걸 할 수 있었던 아이였는데 뭔가 다 막혀 있으니까, 거기에 불만이 많았어요. 근데 아무리 억눌려 있고 경로가 없어도 결국엔 혼자 꼬무락꼬무락하면서 힙합을 파고들기 시작한 거죠. AFKN(주한미군방송) 없었으면 클 날 뻔했죠. 하여튼 불만이 많아서 엉뚱한 데다 화풀이하고 사고치는 바람에 문제아였어요.

부모님이 두 분 다 서울대 나오신 소위 엘리트예요. 그런데 두 아들이 사고치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 크게 터치하진 않으셨나 봐요. 넌 커서 뭐가 되라, 이런 말씀 안 하시고 지금 생각하면 방목? 근데 무관심이 아니라 은근한 애정 같은 게 있었어요. 도와주시지도 않고 내치지도 않고. 근데 제가 사고를 많이 치고 파출소 가고 그러면 그때마다 충격이 크셨던 것 같아요. 얘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하는. 고등학교 때까지 동네에서 유명했어요. 저희 형이랑 저랑 둘 다 꼴통에 미친놈이라고. 근데 다 철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말썽 피던 아들이 가수로 데뷔하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니까 그때는 좋아하시던가요? 사람들이 알아보고 얘기하니까 당연히 좋아하시죠. 아버지께서 꼭 콘서트에 참석하셨어요. 그렇게 열망이 있으신지 몰랐어요.(웃음) 서울대 나오신 우리나라 최초의 국비 유학생인데, 공부만 하시던 분인데, 마음속에 연예인에 대한 열망이 있었나 봐요.(웃음) 어디 골프장이라도 가면 사람들한테 나 이현도 아빠라고 자랑하고, 맨날 사인지 얻어 오시고. 지금도 휴대폰 연결음이 ‘여름 안에서’예요.

형은 결혼했어요? 아니요. 결혼 안 한대요. 형은 온몸에 문신하고 오토바이 타고 다녀요.

하긴 요즘은 꼭 결혼을 해야 된다는 인식도 많이 사라지고 있으니까요. 그렇죠. 근데 결혼은 필요하죠. 아이를 낳을 거면 결혼은 해야죠.

4년 만난 여자친구와 내년쯤 결혼 예정이라면서요. 계획을 잡은 건 아니고, 그날 (<라디오스타> 녹음 중에) 말 나와서 그냥 있는 얘기 다 한 거예요. 아이를 낳고 싶어서요. 결혼을 하거나 임신을 하거나 순서가 앞뒤로 바뀔 수가 있는데, 만약 임신부터 하게 되면 그 다음 혼인신고를 해야죠.(웃음)

요즘 아이랑 아빠랑 나오는 프로그램이 열풍처럼 돼버렸는데, 그거 보면 더 아기 낳고 싶겠어요? 네. (엄)태웅이 방송하는 거 보니까 되게 좋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유행처럼 낳겠다는 건 아니고, 저는 원래 정말 아기를 좋아해요. 저를 아빠로 생각하는 아이를 갖는 건 항상 생각은 해왔어요. 근데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죠.

현실적인 문제라면. 뭐, 담배도 끊어야 하고 작업하는 것도 그렇고요. 근데 (아기 낳으면) 바뀐다고 그러더라고요. 후배들 얘기 들어보면 극단적이에요. ‘형 성격에 못 할 것 같다’, ‘그냥 결혼하지 말고 살면 안 되냐’ 하는 사람들이 있고, ‘분명 형 (삶의) 사이클에는 안 맞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뀔 만한 가치가 있다’, ‘아이를 보면 그전까지 느끼지 못한 무언가를 느낄 거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후자가 맞다고 봐요.

딸이면 좋겠다, 아들이면 좋겠다, 하는 거 있어요? 상관없어요. 예전엔 아들을 낳고 싶었어요. 그래야 축구도 시키고 같이 운동도 할 수 있으니까. 근데 이제는 낳기라도 했으면 아주 그냥 좋겠어요. 빨리 낳아야 할 것 같아요. 애 졸업식 때 산소호흡기 달고 휠체어 타고 나갈 수는 없으니까요.(좌중 웃음)

여자친구분이랑 나이 차가 좀 나요? 네. 열다섯 살 정도.

진짜요? 우와, 능력자네요. 제가 능력자가 아니라 그 친구가 당한 거죠.(웃음)

음악을 좋아하는 여자친구인가요? 네. 제 음악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냥 음악을 자주 들어요. 요즘 (세대의) 감각이 있어서 때로는 제가 ‘너 좋아하는 음악 파일 들어있는 폴더 나 좀 줘봐’ 해서 들어보면, 그 중에 ‘와! 이거 되게 좋다’ 하고 제가 물어보게 되는 게 꼭 있어요. 근데 제 음악은 뭐, 별로 높이 사진 않더라고요.(웃음)

사진 한동원(gom studio)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글쓴이 :      비밀번호 :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