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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원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_‘명성의 늪’에서 ‘명상의 숲’으로

고도원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_‘명성의 늪’에서 ‘명상의 숲’으로

2015-04-30 17:25

고도원. 수목원이나 무릉도원 같은 게 아니다. 사람 이름이다. 주요 일간지 기자 생활을 했고,
고위직 공무원을 지냈다. 잘 나갔었단 얘기다. 지금은? 산속에 있다. 거기서 명상을 한다.
공식 직함은 ‘재단법인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 의문투성이였다. 그의 정체도, 행보도 말이다. 찾아가봤다. 언젠가 우연히 보고 평안을 얻었던 그때 그 편지 한통을 생각하면서.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땅 위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중국의 사상가 루쉰의 <고향> 中에서)

14년 전인 2001년 8월의 첫날 아침, ‘희망이란’이라는 제목의 메일 한통이 배달됐다. “그렇습니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라는 붙임말이 대문호의 글귀에 묵직함을 더했다. 소박하고 진정 어린, 그러나 놓치기 쉬운 메시지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새 편지함을 채웠다. 책에 나온 인상적인 글귀에 짧은 코멘트를 덧댄 단출한 형식이지만 반향은 컸다. 편지가 전하는 꿈·사랑·희망을 기다리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그렇게 15년, 이제 360만명이 아침 밥상보다 먼저 이 편지를 받는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다.


‘고요한 도원’을 꿈꾸는 생활명상가

충청북도 충주 노은면 문성리. 깊은 산골짜기의 옹달샘이 ‘고도원의 아침편지’ 발원지다. 공식명칭은 ‘아침편지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 고도원 이사장이 이곳에 둥지를 튼 건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이후 은둔생활이 이어졌다.

고 이사장은 명망 높은 기자 출신이다. 한국잡지사(史)의 한 획을 그었던 종합교양지 <뿌리깊은 나무>의 기자로 시작해, 중앙일보에서는 정치부 차장까지 지냈다. 1998년부터 5년간은 청와대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을 역임했다.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하는 건 고 이사장이 평생 가졌던 꿈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산속에?

“정치부 기자의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죠. 청와대 연설담당은 더해요. 중압감이 엄청나죠. 매일 초긴장 상태에서 일했어요. 연설문 쓴 지 2년 반 정도 흘렀을 때 결국 일이 터졌죠. 갑자기 몸이 석고상처럼 굳더라고요. ‘아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어요.”

다행히 최악은 면했다. “죽었다 살아났다”는 게 그의 설명. 그런데 희한했다. 겨우 눈을 떴는데 기분이 묘하더란다. “뭐라 설명하기 힘들어요. 그냥 눈물이 나더라고요. 모든 것들이 굉장히 소중해졌죠. 별로 의미 없어 보이는 소소한 일상까지도요. ‘이제부터의 삶은 덤이다’라고 생각하고 나니, 지금까지 놓치고 살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욕심이 없어지고,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기 시작했죠.”




‘1’에서 ‘360만’ 되는 기적

2001년 8월,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이다. 처음에는 소박했다. 노트북 하나 꺼내 놓고, 오로지 스스로를 치유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좋은 말을 쓰면 좋은 기운이 생기잖아요. 허구한 날 딱딱하고 첨예한 정치기사나 연설문을 쓰다가 말랑말랑한 얘기들을 쓰니까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이걸 불특정 다수의 메일로 발송하면 좋은 기분을 세상에 전할 수 있을 것 같았죠.”

보내는 편지가 쌓이는 만큼 답장도 쌓였다. 2년 만에 글을 보는 사람들이 100만명으로 늘었다. 대용량 서버와 편지발송을 전담하는 직원도 생겼다. 대학시절부터 이 편지를 애독했다는 주부 김유신(34·서울 강동구 천호동) 씨는 “어느 날 아침부터인가, 새 편지에 ‘1’이 떠 있으면 기대가 됐었다”며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편지 내용을 함께 보며 하루 종일 수다를 떨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이어 “팍팍한 삶 속에서 소소한 힘과 위로가 됐던 고마운 글들”이라고 덧붙였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여전히 독자들 곁에서 살아 숨 쉰다.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시작했던 편지는 현재 360만명(2014년 기준)의 인생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편지 작업이 점점 ‘큰 일’이 되자, 고 이사장의 행보도 자연스레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마주한 건 비용문제. 첫 2년 간 1억 가까이 들었을 정도로 비용 부담이 커지자, 2004년 ‘재단법인 아침편지 문화재단’을 세우고 일반인의 모금을 받기 시작했다. 심적인 부담도 커졌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몇 만명에게 메일을 쓴다는 게 사실 굉장히 고된 일이에요. 중압감과 스트레스가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경험해 봤잖아요. 그래서 활로를 찾았죠.”

해답은 ‘명상’이었다. 지금은 고 이사장의 직업이 된 그것이다. 명상과 힐링(healing)에 대해서 공부하고, 힐링센터 건립을 계획했다. 주변에선 ‘비아냥거림’이 쏟아졌다. “미쳤다”는 말도, “황당하다”는 말도 들려왔다. 그 미친 발상이 실현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7년 첫 삽을 뜬 ‘아침편지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은 2010년 10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명상마을 이장, 힐링공장 공장장

고 이사장은 수백만 명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 멘토다.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보유한 유명 작가이기도 하다. 강연장에서도, 방송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재단 이사장이란 직함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강조하는 정체성은 ‘명상가’, 그 중에서도 생활 속에서 명상을 실천하는 ‘생활명상가’다. 그 터전이 되는 곳이 지금 거주하고 있는 충주의 ‘아침편지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이다.

“아침편지 시작할 무렵이었어요. 조용히 은둔할 곳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곳으로 왔죠. 전형적인 산촌 분위기가 물씬 나는데다, 충주호도 있어서 ‘쉼’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재 이 센터는 식당이나 숙소 등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기본 인프라에 천혜의 자연환경까지 갖추고 있다. 9천평의 논·밭에서 유기농 약초나 산삼 재배가 이뤄지기도 하고, 산에서는 도토리를 딸 수도 있다. 100명 정도가 상주 직원으로 일하는데, 그중 20가구는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완전히 정착했다. 공간이 지향하는 목적은 하나. 바로 자연적인 ‘치유’다.

“힘든 시대잖아요. ‘힐링열풍’도 그래서 나온 거죠. 관련 산업단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우린 ‘마음산업’이라고 불러요.”
마음산업의 메카답게 오롯이 명상, 치유, 휴식으로 채워져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비채명상’, ‘부부학교’, ‘단식명상’ 등 몸과 마음의 조화를 꾀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으며, 최근에는 ‘녹색뇌 프로젝트’, ‘단식명상’, ‘통증 트라우마 명상’ 등 보다 전문화된 프로그램도 선보이고 있다. 하루짜리부터 최대 한 달간 이뤄지는 코스도 있다. 누적 관광객 100만명을 앞두고 있는 새로운 개념의 관광명소. 여전히 수많은 기업체, 학교, 지자체 등의 연수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1년에 10만명 정도 다녀갑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 요가 가르치는 사람, 그림 그리거나 악기 다루는 사람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고민을 가지고 이곳을 찾죠. 공통점은 하나예요. 모두 쉼이 필요하다는 거죠. 이곳에서 잘 쉬면서 치유를 경험하고 돌아갑니다” 최근에는 ‘깊은산속링컨학교’를 세워 교육으로서의 명상을 소개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대학생까지를 대상으로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수업을 진행하는데, 이미 7천여 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했다.

그가 말하는 명상의 힘은 뭘까?

“여기 와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종을 쳐요. 그럼 잠깐 멈춰야 하죠. 처음엔 키득키득 웃죠. 밥 먹다가 종치고 멈추라면 웃기잖아요. 그런데 이내 조용해져요. 그러곤 뭘 느끼는지 아세요? 음식 본연의 향이죠. 나물 하나하나의 향이 슬금슬금 올라와요. 숲을 걷다가도 징 한 번 치면 딱 멈춰요. 새소리, 풀소리, 바람소리, 옆 사람 숨소리가 들리죠. 한 번도 못 들어본 소리거든요. 어떤 아주머니는 아카시아 이파리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어요. 자기 안의 그런 감정들도 찾아내는 게 명상의 힘이고, 그러면서 회복이 되는 거예요.”

고 이사장은 명상을 가리켜 ‘멈추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침표가 아닌 쉼표다. 다시 일어선다는 걸 전제한 멈춤 말이다. “제가 쓰러져 봤잖아요. 그전에 징조가 있었죠. 그때 쉬어줘야 해요. 안 그러면 저처럼 ‘강제 멈춤’을 당하죠. 자동차도 기름 떨어지기 전에 불 들어오잖아요. 잠깐이라도 스스로 멈추는 것, 그게 명상의 시작이에요.”




잘 살고 싶다고?
징검다리 너머의 꿈을 보라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나요?”

고 이사장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고 이사장은 “잘 살길 바란다는 건, 현재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라며 “경청하다 보면, 왜 그렇게 됐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고 이사장은 이들에게 “딱 한 단계만 넘어서라”고 조언한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장애물에 갇혀 괴로워하는데, 그 장애물 하나만 넘으면 금세 꿈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얘기다. 이는 고 이사장이 경험을 통해 직접 깨달은 교훈이다.

“어릴 땐 그림을 잘 그렸어요. 근데 집이 가난해 좋은 크레파스를 살 수 없었죠. 52색 크레파스를 가진 친구가 부러웠죠. 내 건 12색이 고작이었거든요. 선생님은 ‘넌 구도와 형태는 좋은데 색이 엉망’이라고 했죠. 어린 마음에 큰 상처가 됐어요. 결국 그림을 포기했어요. 그러고서 찾은 게 ‘글’이에요. 색이 필요 없는 거죠. 만약 나에게 52색 크레파스가 있었다면, 대통령 연설문도, 고도원의 아침편지도 없었겠죠. 좌절을 넘으면 이렇게 꿈이 보입니다.”

올해 나이 63세의 고도원 이사장. 하지만 그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멈출 기색이 없다. 올해부턴 더 다양한 창구에서 그의 메시지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이메일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 이외에도 올 하반기부터 육성 편지, 영어 편지, 모바일 편지도 서비스된다. “세상 끝날 때까지 생각하는 걸 귀찮아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그의 바람대로다. <잠깐 멈춤>,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꿈 너머 꿈> 등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작가답게 집필 활동에도 여념이 없다. 지난 달 출간된 <혼이 담긴 시선으로>(꿈꾸는책방)는 지난 10년간 아침편지 독자들과 함께 나눴던 이야기 속에서 깨달은 교훈을 엮은 책이다. 일과 삶의 균형, 부부갈등, 마흔의 위기, 아름답게 나이 드는 법 등 스스로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기 위해 ‘혼이 담긴 시선’, 즉 마음을 담아 정성을 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문득 15년째 쓰고 있는 아침편지의 소재 고갈이 염려됐다.

“많을 땐 하루 1만개 정도의 답장을 받아요. 그 속엔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있죠. 소재가 무궁무진한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편지 쓸 때 지치지 않잖아요. 제가 죽을 때까지 편지를 쓰고 싶은 이유도 그래섭니다.(웃음)”

사진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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