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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주 전 윤증현 장관 딸 열애스토리

10살 연하남과 신혼 단꿈 빠진 윤선주 EF코리아 지사장

2015-04-30 10:08

안팎으로 활짝 폈다. 서른 후반, 비로소 제짝을 만났다. 한 달 전 결혼해 집에선 신혼이다.
밖에선 천직도 찾았다. 네 번 직장을 옮긴 끝에 꼭 맞는 자리에 앉았다. 잘났다, 잘났다는 소릴 들으며 살아왔지만 지금이 가장 좋다. 웃음이 안 떠난다.



짓궂긴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는데, 모두 ‘열 살 차이’에만 집중했다. 우리끼리 얘긴데, 사실 그럴 만도 하다. (전) 장관의 딸이고 학벌도 좋다. 그냥 쉽게 말해 괜찮은 집안의 잘난 딸이다. 그런 그가 혼기가 차 결혼을 하는데 신랑감이 열 살 연하란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이라도 나이차에 집중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여기에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역시 집안이 좋으니 열 살 정도는”이라는 말들을 덧붙여댔다.

속상했다. 예상 못한 반응은 아니었지만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양가에서 점지해뒀다거나, 여자 쪽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거나 하는 호사가들 추측들을 걷어내 보면, 그저 평범한 두 남녀의 만남이 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지난 4월 초, 서초동에 위치한 윤 지사장의 사무실을 찾았다. 3월 21일에 결혼했으니 식을 올린 지 2주째 되던 날이었다. ‘EF코리아’에 대한 얘기로 포문을 열었지만 궁금했던 건 신혼생활. 더 나아가서 어떻게 만났고, 누가 먼저 프러포즈를 했고 뭐 그런 것들. 

한데 다짜고짜 묻기엔 망설여졌다. 워낙 확장 보도된 결혼식에 지쳤을까봐. 실제로 그날 주인공인 ‘윤선주’의 이름보다 아버지인 ‘윤증현’의 이름이 더 많이 오르내렸고, 기사마다 ‘열 살 연하남’이 따라붙었다. ‘윤증현 전 장관의 딸 결혼식에 참석한 OOO’, ‘열 살 연하남과 결혼, 윤증현 전 장관 딸’ 등. 온갖 플래시 세례 후 민감해져 있을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웬걸, 새 신부는 어쩔 수 없나보다. 신혼생활 어떻냐는 물음에 화색을 감추지 못했다. “서로 워낙 바빠서 계속 야근을 하긴 했지만요. 끝내고 밤 11시에 통닭 한 마리 시켜놓고 치맥(치킨과 맥주) 한 잔 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해요. (같이 사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싶어요. 하하.” 

기존 보도된 기사에 대해서 그는 “(연하남과의 결혼이) 기사화되기도 하는구나했다. 우린 그저 한 여자, 남자일 뿐”이라면서 “지금은 신경 안 쓴다. 전혀 콤플렉스가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먼저 빗장을 풀어준 그에게 궁금했던 걸 쏟아냈다. 우선, 어떻게 만났느냐다.


호기심, 사랑의 시작
때는 지난 2013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EF(Education First)는 글로벌 교육기업이다. 윤 지사장은 이곳에서 한국 지사장을 맡고 있다. 교육업체 수장으로서의 사명감도 갖췄다. 이따금씩 들어오는 멘토링 강연에 의욕적인 것도 그래서다.

어느 날 외교부에서 강연 초청이 왔다. 대상은 47기 외시 합격생들. “치열하게 공부해서, 막 외시에 합격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두고 무슨 강연을 해야 할지 사실 막막했어요.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다시 한 번 더 기억하게 해주고 싶어서 꿈꾸는 사람이 멋있고 매력 있다는 기조로 강의를 하게 됐습니다.”

남편은 그날 자리에 앉아있던 수강생 중 한 명이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박사무엘 씨. 후에 들은 얘기지만, 박 씨는 윤 지사장이 강단에 올라서는 순간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그날 강연 주제에 맞게(?) 손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던 것.
“기수별로 반장과 부반장이 있는데, 남편은 부반장이었어요. 부반장의 역할 중 하나가 강연자를 문 밖까지 배웅하는 거였는데 명함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보통 그래요. 대학생들 중에서도 적극적인 친구들은 명함을 받아가고, 실제로 문자도 보내고요.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죠” 그날 박 씨로부터 ‘오늘 특강 참 좋았다. 힐링이 됐다’는 문자가 왔다. 아무렇지 않게 답장을 했다. ‘한분이라도 그렇게 느꼈으면 다행’이라고. 여기까진 평범한 모습이었다.

“그러곤 일이 바빠 전화를 못 보고 있었는데, 그 뒤에 문자가 두 개 연달아 와 있더라고요.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그리고 몇 시간 후에 괜한 걸 물었다고요.” 윤 지사장은 “왜 물어보시는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77년생이다”라고 회신했다.

“그랬더니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는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어허, 요것 봐라…?’”

내심 고민도 됐다.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20대 후반쯤 되는 남자가 영화를 보러 가자는데 어떡할지. 친구들은 아우성이었다. “뭘 고민하느냐. 내가 가서 대신 볼까?”에서부터 “영화 한편 본다고 니 얼굴이 닳기라도 하느냐”는 말까지.

“그래, 까짓것 보자 싶었어요. 그냥 후배(둘은 동문이기도 하다) 삼는 셈 치고요. 99%는 후배 삼을 생각이었고, 1%는 호기심이었어요. 궁금했어요. 어떤 사람인지.” 그렇게 하자는 문자를 보냈다. 답이 왔다. “영화는 다음에 보고 이자카야(居酒屋; 일본식 선술집) 갈까요?”라고. 

‘이 사람 선수인가?’ 싶다가 ‘저희 신사역 8번 출구에서 봐요’라는 문자에 피식했다. 그 문자 하나에 차를 두고, 지하철을 타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고, 처음 만난 남녀가 7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수다를 떨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렇게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연애기간 중 화룡점정은 박 씨의 프러포즈. ‘나에게 윤선주란’을 주제로 윤 지사장의 주변 인물들을 일일이 인터뷰한 영상을 제작해 청혼했다. 그리고 1년 반만에 둘은 결혼했다.




나를 온전하게 하는 사람
서른 후반. 어디 스친 인연 하나 없었겠느냐마는, 이번만은 뭔가 달랐다.
“이런 사람하고 결혼해야지, 하는 게 있었어요.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주는 사람. 주변에서 (저를) 똑부러진다고들 하는데 사실 허술한 구석도 있거든요. 기대고 싶을 때도 있는데 성격 탓에 그걸 억누르면서 살았어요.”

때문에 ‘야’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연애대상에서 제외였다. 연하는 ‘거들떠도’ 안 봤고, 동갑내기에게도 시큰둥했다.

“상대남성들이 왜 나는 안 되느냐고 하면, ‘너는 나랑 동갑이잖아’라고 한 적도 있을 정도였어요. 듬직한 오빠가 좋았거든요.”

그런데 희한했다. 열 살이나 어린 남편은, 처음부터 어딘가 오빠 같았다. 키 큰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윤 지사장을 한참 위에서 내려다볼 만큼의 ‘190cm’가 넘는 키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저를 애 취급해요. 하하. 나란히 서서 제가 무슨 얘기를 하면 저를 위에서 슥 내려다보면서, ‘어유(우쭈쭈), 그랬어?’하는 식이에요.”

윤 지사장에게는 우애가 남달랐던 오빠가 있었지만 몇 해 전 세상을 등졌다. “유독 오빠한테 어리광을 많이 부렸거든요. 그랬던 걸 못 하게 되니까 저한테 있던 ‘어리광 본능’을 오랫동안 눌렀던 거예요. 남편을 만나고서 봉인해놨던 저의 한 부분이 탁하고 해제됐어요. 제 모습을 찾은 거죠. 남편을 만나고 온전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그 때문만은 아니다. 윤 지사장은 워낙 사람을 좋아한다. 취미도 특기도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다. “제 사람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게 두 번째였어요. 결혼한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너처럼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결혼 후엔 어느 정도 인간관계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남편 박 씨는 이것 또한 충족시켜줬다. 윤 지사장의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하고, 심지어 윤 지사장을 빼놓고(?) 만나기도 한다. “누군가를 소개시켜줄 때 중간에서 양쪽을 신경 쓰는 거 되게 불편한 일이잖아요. 남편은 그런 게 없어요. 제 남자 후배들한테 먼저 연락해서 밥 먹자고 할 정도예요. 친구들도 이젠 제 스케줄 보다 남편 스케줄을 먼저 확인하죠.”
쉬었던 종교생활을 다시 한 것도 ‘원래의 윤선주’를 찾는 데 한몫했다. “(남편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교회에 가잔 말을 한 번도 안 하더라고요. 저도 교회에 다녔었어요. 그러다 오빠를 잃고 나서 한동안 (종교에 대한) 회의가 생겼던 터였죠. 물어봤어요. 왜 같이 가자고 안 하냐고. 종교를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러더라고요. 제가 다시 가고 싶어졌다고 하니까, 그럼 같이 나갈 수 있는데 찾아보자고. (신앙을 되찾은 것도) 저를 저일 수 있게 한 것 중 하나예요.”
모든 면에서 온전해졌지만, 단 한 가지 불완전해진 게 있다. 둘의 ‘발음’이다. 대화를 할 때  예삿소리는 된소리로 바꿔 ‘했어’는 ‘했쪄’로, 음절 끝 받침을 연음으로 변형해 ‘남편’을 ‘남펴니’라고 발음한다. 여기서 이중모음 ‘펴’는 ‘표’로 바뀌기도 한다. 이는 윤 지사장이 실제로 쓰는 호칭이기도 하다. “남편은 절 ‘애기’나 ‘자기’로 부르고요, 저는 ‘남표니(남펴니)’라고 불러요. 하하하. 근데 이건 ‘남의 편’같아서요, 요즘엔 ‘내표니’라고 불러요.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난 자기랑 싸울 때도 자기편이라고요. 그래서 내표니가 됐어요. 하하하.”


엄마 돼도 일 게을리 안할 것 
몇 번이나 호탕하게 웃었는지 모르겠다. 새 학기 젊은 선생님에게 첫사랑 얘길 듣는 학생마냥 빠져들어 ‘어머, 웬일이야’도 여러 차례 내뱉었다. 그런데 이내 같은 여자로서 걱정도 됐다. 한 조직의 여성 수장이면서 가정도 꾸려야 하니 여느 때보다 이를 꽉 물어야 할 게 뻔해서다. 뭐, 어련히 각오를 했겠지마는.

내심 걱정하는 투로 ‘향후 계획’과 같은 두루뭉술한 단어를 쓰며 더듬더듬하고 있자니 눈치 빠른 그가 자녀계획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릴 때부터 쌍둥이를 낳고 싶었어요. 말했듯이, 오빠와의 우애가 워낙 좋았는데 남매 간 우애가 좋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잘 없더라고요.(웃음) 근데 쌍둥이는 유대관계가 남다르잖아요. 낳기만 하면 저희 같은 남매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리고 아무래도 나이가 좀 있으니까 앞으로 애를 많이 낳으려면, 지금 더더욱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쌍둥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일도 계속 해야 하니까 연속성 측면에서도 쌍둥이가 좋겠다 싶었죠.”

그런데 돌아온 건 호통. “산부인과에 가서 이 얘길 했더니 30분 동안 선생님께 혼만 났어요. 요새 이렇게 지름길로 가려는 여자들이 많은데, 애초에 애를 하나씩 갖게 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단순히 우애가 좋은 자식을 낳고 싶었던 게, 실은 자신의 커리어만 앞세운 건 아닌가 싶었다. 반성했다. “지금은 많이 내려놓은 상태예요. 자연스럽게 하자. 어쨌든 엄마가 될 거고, 커리어도 가져갈 거니까. 쌍둥이를 주실 거면 주실 거고, 일은 그에 맞춰서 하면 되니까요” 그는 다가올 변화들이 흥미진진하다고 했다.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윤 지사장에게는 아직까지 못 다 이룬 꿈이 있다. 살아있는 동안 딸에게 존경받는 엄마가 되는 것, 그리고 웃으면서 죽는 거다. 딸에게 존경받으려면 우선 아이를 낳으면 되는 거고… 웃으면서 죽으려면? “스스로 비겁하지 않게 사는 거죠. 현실에 안주하느라, 도전을 멀리하고 안정된 삶을 살았다면, 지금의 윤선주는 없었겠죠.”




윤선주는 뭐하는 사람?
“세계 최대 교육기업 EF,
인지도 제고에 주력”

시종일관 화색을 띠다, 일 얘기를 할 때 그는 자못 진지해졌다. EF(Education First)는 스웨덴의 교육기관이다. ‘교육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열다’를 모토로, 전 세계 107개국 500개의 캠퍼스를 뒀다. 1965년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언어교육과 문화교류, 정규학위 이수과정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어학연수 기관의 경우 학원이 아니라 학교와 같은 시설을 갖추고 커리큘럼 또한 어학뿐만 아니라 문화교류에 초점을 둬 반응이 좋다. EF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들이 나름의 자부심을 갖는 이유다.

윤 지사장에게 EF는 다섯 번째 직장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 공중파 방송 인기 예능프로그램 PD, 소셜커머스벤처 쿠팡 창업자, 홍콩 로펌 변호사를 거쳤다. 지난 직장에서도 열정을 가지고 일했지만, 지금은 여느 때보다 천직이라 느낀다. “일을 하면서 재미와 의미를 다 찾기가 녹록하진 않더라고요. 지금은 다 찾았어요. 교육으로 장벽을 허무는 것. EF를 통해 열 명중 한 명이라도 열린 세상을 보고, 열린 사고를 하게 된다면 저한텐 큰 의미예요. 무엇보다 이런 일들이 재미있고요.”

지사장직에 앉은 지 3년째. 그간 수많은 학생들이 거쳐 갔다. 특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 “한 분은 서른 살 직장인이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연수를 다녀왔어요. 스스로 소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분이에요. 3개월 동안 맨체스터를 갔다 왔는데, 성격이 굉장히 밝게 바뀌었더라고요” 또 다른 한 명은 대학생. EF의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보스턴에 다녀온 대학생이다. “다녀와서 꿈이 생겼느냐”는 질문에 그 학생은 “특정 꿈을 갖고 왔다기보다, 이제는 어떤 꿈이든 꿀 수 있게 됐다”고 말했어요. 와, 그 말을 듣는데 온몸에 전율이 쫙 일었습니다. 이렇듯 앞으로의 인생이 유연해져서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제 소명을 다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하는 일이 이렇다보니, “어학연수를 언제 보내는 게 가장 좋을까”라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윤 지사장의 답은 간단하다. “엄마의 강요에 의해 보내지 마라. 아이 스스로 가고 싶어 할 때 보내라”는 것. ‘호기심’은 사랑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영어습득의 첫걸음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스스로 재밌다 느끼고, 호기심이 있을 때 배워야 해요. 초등학교 2~3학년 때 영어 캠프를 보내는 건, 영어를 배워오라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없애고 호기심을 가져오라는 차원이 더 커요. 그게 이후 자신감으로 이어지거든요.” 

EF는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에서 그 인지도가 대단하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그에 못 미치는 게 사실이다. 윤 지사장은 “좋은 며느리, 아내가 되는 것과 더불어 일적으로는 EF코리아의 인지도를 좀 더 높이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진 신승희·윤선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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