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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is going on

허영만 is going on

2015-04-30 09:57

서울 자곡동에 위치한 허영만 화백의 화실을 찾았다.
워낙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그와 어렵사리 약속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다행히도(?) 오는 4월 29일 첫 개인전이 열리는 덕분이다. 전시 이야기로 운을 뗐지만 그보다는 술과 커피(현재 <커피 한잔 할까요?>를 연재 중이다),
몇 년 전부터 몰두하기 시작한 그림일기와 제자인 <미생>의 윤태호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다. 역시 자기 홍보는 쥐약이라는 작가답다. 



“이제 20일도 안 남았는데 준비하는 게 힘드네. 진행 과정에 일일이 다 참여하는 건 아닌데 이런 게(인터뷰) 힘들어, 이런 게.(웃음) 누구 말대로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기를 뺏기는 거야. 안 한다 안 한다 하는데도 자꾸 (홍보 담당자가 인터뷰 스케줄을) 들고 오니까. 제일 멋쩍은 건, 너무 속보이잖아. 전시 하니까 조금이라도 많이 와주십사 얘기하는 거고. 특히 방송국 때맞춰 나가서 얼굴 비추는 거, 염치없죠.”

알록달록한 털모자에 동그란 뿔테 안경을 걸쳐 쓴 허영만 작가가 입을 연다. 밑으로 시선을 돌리니 남색 운동복 바지 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전신 컷은 가능한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앞서 한 매체와 인터뷰를 마친 후라서일까? 다소 피곤한 기색이 엿보이는 그를 이끌고 또 다시 80분의 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시를 한 달 남짓 앞둔 날이다.




<각시탈>부터 <식객>, 그림일기까지
예술의전당 첫 개인전을 앞두고


데뷔 후 만화가로 살아온 지 41년. 내일 모레면 일흔인 작가에게 ‘노작가’라는 호칭은 아직 일러 보인다. 첫 개인전을 가리켜 “회고전은 아니다”라고 못 박는 그에게 이번 전시는 중간 점검 혹은 정리에 다름 아니다.

첫 개인전이 열려요. 진작 가졌을 법도 한데, 다소 늦은 감이 있지 않나요? 개인전을 열자는 얘기는 몇 번 있었어요. 근데 이게 내가 시간을 내서 품을 팔아야지 해결되는 문젠데, 그게 엄두가 안 나더라고. 이번 전시도 재작년 여름께부터 얘기가 나온 거거든요? 글쎄, 글쎄 하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준비 기간이 2년 정도 걸렸어요. 사실 처음에는 (전시 장소가) 예술의전당이 아니었어요. 다른 미술관들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던 중에 예술의전당에서 올해 전시할 걸 모집했는데, 거기에 응모해서 덜컥 된 거예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죠.

최초로 <각시탈>(1974) 초판 원화가 공개된다고 들었어요. 이번에 얻은 가장 큰 수확이 <각시탈> 초판 원화를 찾은 거예요. 없어진 줄 알았는데 그게 제일 밑바닥에 있더라고. 이번 전시회의 모토가 ‘40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여전히 진행될 것이다’예요.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나는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라는 말이 있거든. 지금 (만화를 그린 지) 40년이지만 아직도 연재는 계속되고 있고, 50년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의미가 커요. 회고는 아니에요.

‘그림일기’도 공개된다고 들었어요. 기존의 연재나 단행본 작업, 그 밖의 스케줄로도 벅찰 것 같은데 언제부터 그림일기를 시작하신 거예요? 몇 년 전 소소한 얘기들을 써놓은 고은 선생의 일기가 <바람의 사상>이라는 책으로 나왔어요. 박(정희) 정권 때 중앙정보국에서 미행당하고 그러던 시절의 얘기예요. 그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 이런 걸 하니까 나는 만화로 그리면 되지 않겠나,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그림일기를 보여주며) 이게 스물한 권째예요.

소소한 일상을 그린 건가요? 좀 보여주세요. (책장을 넘기며) 아침에 집에서 나오는데 시계가 없더라고. 어젯밤까지 차고 있던 게 기억이 나는데 없는 거야. 한참 찾았어요. 근데 모자 뒤에 있더라고. 모자를 벗어놓고 그 위에 시계도 놓고 지갑도 놓고 자동차 열쇠도 놔두었는데 열쇠랑 지갑만 챙기고 바로 모자를 쓴 거야.(좌중 웃음) 그러니까 마누라가 한탄을 하더라고.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됐나’. 그런 얘기를 쓴 거예요. (또 몇 장 넘기다가 어느 장에서 멈추더니 그날의 일기를 글자 그대로 읽어준다) ‘한 잔만 해야겠다, 에서 한 잔도 안 해야겠다, 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그랬더니 주위에서 비난하는 거예요. (주변인들을 그린 캐리커처 위의 말풍선을 가리키며) ‘그런 거로 스트레스 받는 것이 더 나빠’, ‘몸에 이상이 없는데 왜?’, ‘그럼 우리랑 놀 일 없지 뭐. 파주 오지 마!’

술 끊으면 힘드실 텐데.(웃음) 근데 1차까지만 마시는 나름의 원칙이 있으시다면서요. 2차, 3차는 거의 안 해요. 밥 먹다가 소주를 시작하잖아요? 그럼 2차 가면 맥주 마셔, 3차 가면 양주 마셔요. 이거는 다음날만 죽을 일이지. 그리고 (1차까지만 마시는 이유는) 힘이 없으니까. 남들은 ‘넌 참 의지가 대단하다. 어떻게 술 마시다 중간에 끊고 일어나느냐’ 그러는데, 내가 힘이 없으니까 일어나는 거예요.

술 때문에 고생한 적도 많으시죠? 소위, 똥물까지 토해낸다는 말이 있어요. 어쩌다 발동이 걸려서 과음하다가 나중에 양주나 와인 마시면 꼭 그래요. 반은 죽는데, 다음날 하루 종일 우웩 우웩 하다가 나중에는 토할 것 없으니까 노랑물만 나오는 거예요. 한창 젊을 때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그랬죠. 요즘은 그런 일 전혀 없어요.

어쨌든 술 끊을 생각은 없으시죠? 끊으면 친구가 없어져. 그리고 적당히 마시면 굉장한 약이여. 정신적인 위로라든지 긴장을 떨어뜨리는 굉장히 좋은 약이지. 그러니까 인류가 태어나고 술이 발명된 뒤로 아직까지 (인간이) 술을 완전히 끊을 수 없는 이유가, 굉장히 어마어마한 끈이 서로 간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우리나라에서는 술이 인맥을 형성하는 데 워낙 중요한 매개잖아요.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지 한참 됐는데, 그 전에 술을 너무 드셨어요. 거의 매일 드셨죠. 아버지, 술을 좀 줄이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랬더니 ‘금주는 이(易)요, 절주는 난(難)이라’ 그러세요. 끊는 건 쉽지만 적당히 마시는 건 어렵다는 거예요. 얼마 전부터 아버지의 말씀이 정말 맞구나 느끼죠.

야구나 복싱, 화투를 소재로 한 만화는 그리셨는데, 이제 술이나 등산을 소재로 한 만화가 나올 쯤 되지 않았나요? 술 얘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건 <식객> ‘청주의 마음’ 편에서였죠. <안개꽃 카페>에서는 술이 본질은 아니지만 술을 끼고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그렸고요. 등산 같은 경우도 <식객>에 여러 번 나왔어요.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건 산악구조대 얘기예요. 도봉산에 가면 산악구조대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아쉽게도 3,000m 이상 되는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만년설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구조대 얘기가 재밌을 것 같아요. 나중에 할지도 몰라. 액션이 들어간 심각한 만화는 아니고 재미만 주는 만화로요.




“태권도 유단자라서
<각시탈> 그렸나?
커피 못 마셔도 커피만화 가능해”

지난 1월 중앙일보에 연재를 시작한 허영만 작가의 신작 <커피 한잔 할까요?>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커피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강고비, 2대 커피집 주인 박석, 박석의 여자친구 김선생과 3류 만화가 미나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타짜>, <식객>, <꼴>로 화투와 전국 맛집, 관상을 중심 화두로 불러일으킨 작가의 신작 이야기를 들었다.

일간지에 <커피 한잔 할까요?>(이하 <커피>)를 연재 중이에요. 왜 지금 이 시점에 커피를 주제로 만화를 그리게 된 건가요? 그 전까지 준비하던 작품 소재가 계절별 전국의 식재료였어요. 근데 그게 여러 가지 이유로 안됐어요. 제작비가 꽤 많이 들어가는데 협조가 잘 안 되더라고. 그러던 중에 우리 아들이 커피가 더 낫지 않냐 하더라고요. 커피는 다 마시니까. 근데 나는 커피를 안 마시거든.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 그래서 나는 커피를 전혀 모르는데, 글 쓰는 이호준이가 커피를 잘 알고, 알고 지내는 커피 전문가들도 많아서 그쪽 힘을 빌려서 지금 이 연재를 하고 있죠.

그래도 명색이 커피만화를 그리는데 커피를 못 마시면 그리기 힘들지 않나요? 그래서 이왕 <커피>를 시작했으니 내가 마셔봐야 할 거 아니요. 오후에 마시면 잠을 못 자니까 오전에 마시되 머그잔 3분의 1정도만 마셨어요. 근데 계속 마셨더니 소화가 안 돼. 꼭 돌멩이가 걸린 것 같아. 소화제를 먹어도 안 되고 물을 마셔도 안 되고. 전문가들한테 물어봤더니 ‘나는 위가 더 좋아졌는데?’ 그래. 근데 어떤 사람은 커피가 위에 굉장히 민감하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3일 딱 끊었더니 다시 위가 편해졌어요.

아무래도 커피 마시는 건 포기하셔야겠네요. 못 마셔요. 가끔 주변에서 어떻게 커피도 모르면서 커피만화를 그리느냐고 하면, ‘야, 내가 태권도 유단자라서 <각시탈>을 그린 줄 아냐?’ 하고 말해요.(좌중 웃음) 야구 감독은 선수보다 더 잘해서 감독이냐고요. 그럼 뭐라고 대꾸를 못해요.(웃음) 근데 중간에 그림을 잘못 그려서 야단맞은 적 있어. 드립 하는 방법이 좀 잘못됐다든지, 작은 잔으로 그려야하는데 큰 잔으로 그렸다든지 하는 것들.

요즘 같은 웹툰 시대에는 네티즌들의 지적이 바로바로 올라오죠. 약도 되고 독도 되죠? 전문인들이 볼 때 ‘이 사람 공부 좀 했구나’, ‘어? 이런 것도 있었네?’ 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던져줘야 되는 시기예요. 더군다나 인터넷에 올리면 1초 후에 바로 두들겨 맞는 거 아니여.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 돼요. 예전에 <각시탈> 그릴 때는 사진 한 장 갖다 놓고 그걸 (과장되게) 튀겨서 그리고 그랬는데, 지금은 단추 하나 잘못 그려도 안돼요. 덕분에 우리도 공부 많이 하게 되죠.

작가들 중에도 탄탄한 취재를 기반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내용은 부실한테 유려한 문장력으로 승부하는 작가가 있잖아요. 작가님은 워낙 탄탄한 취재가 바탕이 된 경우인데, 그런 취재도 상당히 몸이 고된 일 아닌가요? <커피> 같은 경우는 주로 시내로 취재를 다니기 때문에 사실 별로 재미는 없어요. 근데 <식객> 같은 경우는 전국을 다 가잖아. 가는 곳에 사람도 있고 맛있는 음식도 있으니까 여행하는 기분으로 갔다 와요. 그래서 괜찮아. 근데 그보다 힘든 건, 취재지에서 많은 정보를 가져왔는데 그걸 독자들에게 전부 다 전달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대로 주면 독자들 머리에 쥐나요. 독자들이 책장에서 손을 떼지 않을 만큼 적당한 양을 전달하는 게 어렵죠.

<커피> 연재 중에도 그런 고민들이 있겠네요. 스토리 쓰는 이호준 하고 요즘 많이 나누는 이야기 중 하나가 그거예요. 나는 ‘커피 얘기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 전문적인 게 많아지면 재미없다’는 입장이고, 이호준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내용을 굉장히 좋아합니다’라고 말해요. 근데 이 만화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파는 게 아니라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파는 거거든요. 그걸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커피 이야기가 장황하게 나오면 내가 재미없어. 그리는 사람이 재미없는 건 독자들도 재미가 없는 거예요. 만화를 보고 감동을 느껴야지, 커피 자체는 감동이 없어요. 사람 사는 얘기가 감동을 주는 거죠.




“컴퓨터 작업이 대세…
그러나 고통의 흔적 없다”

작년부터 컴퓨터로 작업을 시작한 그에게 매끈한 모니터의 질감은 여전히 어색하다. 종이에 연필이나 펜으로 슥슥 그어 그리던 아날로그 작업 방식은 어느덧 서랍 속 낡은 기억으로 남겨둘 때가 된 것이다. 지우개로는 한참이나 지워야 할 것이 깜빡이는 커서 한 번이면 가능한 시대, 편리함을 얻었지만 고통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초등학생 때 <코주부 삼국지>를 보고 처음 만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어요. 그 때가 1950년대 전후시기인데, <코주부 삼국지>는 다른 만화들과 성격이 좀 다르지 않았나요? 비교적 가볍고 유쾌하다고 할까. 아주 기초적인 만화죠. 김용환 선생이 워낙 그림을 잘 그렸어요. 요즘 생각해도 그렇게 그리는 사람이 없어요. 특히 펜화는 캬~. 얼마나 잘 그리는지, 그 디테일하며, 옛날 사람인데도 소위 테크닉이 있어요. 그리고 그때 그런 이야기를 그린 책이 얼마 없었으니까. 별주부전이나 흥부와 놀부, 춘향전 같은 것들만 있었던 때니까 굉장히 재밌죠.

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만화 그리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묻자 주저 없이 1970년대를 꼽으셨던데요. 어떤 점이 그렇게 힘드셨어요? 내가 1974년도에 데뷔했는데, 그 전에 문하생 시절 때가 훨씬 수입이 좋았어요. 신라호텔에 취직한 내 친구보다도 2배 더 많았으니까. 근데 1970년대 초반 사우디, 중동 붐이 일었을 때 친구들은 월급이 20~30%씩 팍팍 올라가는데 우리는 원고료가 제자리에 있더라고. 그 시절 그 나이 때(30대 초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잖아요. 동호대교 건너면 오른쪽에 개나리 잔뜩 피는 곳이 있고 그 위에 정자 있는 큰 돌상이 있어요. 1966년도에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혼자 거길 갔어요. 지금도 그게 처절하게 생생하게 생각나요. 화실은 문을 닫고 나 혼자 남았죠.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나는 만화로 먹고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들을 굉장히 고민했어요. 지금도 우리 애들과 그 근처를 지나가면 그 얘기를 꼭 해요.

그때가 30대 초반이었죠? 1970년대에 결혼해서 애도 생겼는데 원고료는 안 오르고 난감한 거야. 그런 상황이 계속되니까 만화를 그리던 친구들이 전부 애니메이션으로 옮겨갔어요. 재능을 가진 많은 친구들이 대부분 그쪽으로 넘어갔죠. 나도 도저히 안 되겠어서 오전에는 만화 그리고 오후에만 출근하는 조건으로 애니메이션을 1년 동안 한 적이 있어요. 근데 참 견디기 힘들었던 게, 되게 엉성한 그림을 앞에다 두고 더 잘 그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거랑 똑같이 그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전부 다른 사람이 그려도 그림이 연결이 되니까요. 더럽게 못 그린 그림을 똑같이 못 그려야 된다는 게 고통스러웠어요.

그래서 결국 애니메이션에서는 손을 떼신 거군요. 1980년인가 그래요. 대본소에서 <캔디 캔디>라는 일본만화를 불법 복제해서 팔았는데, 주인공 학생 둘이서 프렌치키스도 아니고 그냥 뽀뽀하는 장면이 나와. 그 책을 사려고 학생들이 문방구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거야. 그때부터 다른 대본소에서도 일본 만화를 찍기 시작했어요. 그때 붐이 일었죠. <각시탈>도 재출간되고 그랬으니까요. 그러면서 애니메이션을 그만뒀죠.

그 후로는 돈벌이도 좋아지고요? 출판사에서 돈 이만큼 가져와서 책상에 툭 던지고 갔어요. 말하자면 <캔디 캔디> 덕분에 궁핍에서 벗어났죠. 한참 뒤에 <드래곤볼>로 또 한 번 만화계에 붐이 일었고요. 일본 만화가 우리나라에 기여한 바가 좀 있어요. 그전에 몇 년 고생했던 것 빼면, 돈 때문에 고생한 적은 별로 없죠.

요즘은 웹툰 시대라 만화를 그리는 작업도 대부분 디지털화되어 있는데, 이런 대세에 적응하는 편이세요? 나는 작년부터 컴퓨터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전까지 종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유가, 자기한테 맞는 필기도구가 있고 자기에게 맞는 종이의 질이 있어요. 지금까지 그런 걸로 만화를 그려왔는데, (아이패드에 선 긋는 동작을 하며) 모니터 위에다 그리려니 찍찍 미끄러지는 거죠. 손의 속도를 따라오지도 못하고요. 거기에 대한 불만이 굉장히 커요. 근데 작업하기엔 굉장히 편하니까 지금 그렇게 하고는 있지. 맨날 육필로 글을 쓰는 소설가에게 컴퓨터로 하면 수정하기도 편한데 왜 육필로 하느냐고 물었더니 ‘컴퓨터에는 고통의 흔적이 없다’라는 거예요. 지난번에 ‘저장할까요?’ 라고 뜨기에 실수로 ‘아니요’를 눌렀더니 다 날아가 버렸어. 그렇게 컴퓨터가 허망해요. 그래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있는 게 (그림일기를 가리키며) 이거야.

미루다, 미루다 작년부터 컴퓨터 작업을 시작하게 된 데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대세니까. 더 이상 늦추면 안 되니까. 나 혼자 영감 티내면 안 되니까.



1 각시탈(1974) 허영만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대표작.
어딘가 모자라고 어수룩해보이는 주인공이 알고 보면 뛰어난 태껸 실력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응징하는 ‘각시탈’이라는 내용이다. 한국형 히어로물이기도 한 <각시탈>은 현재는 절판되어 표지조차 구경하기 힘들다.

2 날아라 슈퍼보드(1990)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끈 <날아라 슈퍼보드>의 원작도 허영만의 만화 <미스터 손>이다. 중국 고전 <서유기>에 기본을 두고 있지만 면면의 디테일은 다르다.

3 타짜(1999) 2006년 개봉한 영화 <타짜>의 원작 또한 허영만의 1999년작 <타짜>다. 도박의 세계를 그린 성인만화로 오늘도 한탕을 꿈꾸는 도박꾼들의 세계를 그린다.

4 식객(2002) 우리나라 팔도강산의 음식과 식재료들, 숨겨진 맛집을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풀어낸 만화. 감칠맛 나는 요리 이야기에 감동적인 스토리를 엮어 연령과 성별을 초월한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았다.


문하생이었던
<미생> 윤태호 작가
“20억 아닌 200억 벌어야 해”

지난해 최고의 히트작으로 손꼽히는 드라마 <미생>은 비정규직 세대의 애환을 그린 작품으로 히트작을 넘어 사회적 이슈로까지 번졌다. 바로 이 <미생>의 원작자가 허영만의 문하생 출신 윤태호 작가다. 허영만은 그 시절 윤태호를 ‘발군이었다’는 한 마디로 압축해 표현했다. 

워낙 ‘메모광’으로 유명하시죠. 여전히 메모 자주 하세요? 메모해요. 메모를 어디다 해놨는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언젠간 보게 될 테니까.

따로 모아두기도 하나요? 메모도 모으죠. 그전에 <식객> 그릴 때 스토리가 생각이 안 나서 중간에 꽉 막혔던 적이 있어요. 그럴 때는 메모를 꺼내 봐요. 요만한 종이도 있고 큰 종이도 있는데, 대부분 요만한 것들이죠. 그 보따리를 꺼내서 한 장씩 읽다보면 거기에 다 답이 있어. 이게 곧 내가 지금까지 생각한 것들의 총체니까. 내 머리를 펼쳐서 보는 셈이야. 작업하면서 답답하고 안 풀릴 때마다 한번씩 꺼내 봐요.

후배 만화가들 혹은 지금의 만화계에 대해 안타까운 점,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웹툰은 전반적인 구조상 대작을 하긴 어려워요. 아주 장편이나 그림이 디테일한 만화를 하기가 어려운 게, 그런 시스템을 갖출 만큼 원고료를 주질 않거든요. 그러니까 간단한 그림만 자꾸 발달하는 거야. 혼자 하는 것보다 문하생들을 두고 같이 그려야 스케일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고료가 적으면 그게 불가능하잖아요. 그래도 윤태호 같은 작가는 자기 그림을 가져가는데….

참, 그러고 보니 윤태호 작가(<미생>, <이끼>)가 한때 문하생이었잖아요. 윤태호도 굉장히 (성공하기까지) 힘들었어요. 그놈이 분당에 살아서 가끔 만나 술 한잔 하는데,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고 물었더니 대학 강사까지 나가면서 돈을 벌어 문하생들 돈을 줬다고 해요. 굉장히 어렵게 산 거예요. 그래도 이번에 <미생>이 히트 친 덕분에 빚 좀 갚고 사무실 조금 넓은 데로 옮긴 거죠.

문하생 시절부터 싹이 보였나요? 발군이었지. 워낙에 새파랗고 힘 있는 싹은 보여요. 근데 비슷비슷한 싹은 다 고만고만하니까 잘 안 보이지. 걔는 보였죠. 아까 말하다 말았는데, 웹툰 때문에 (만화의) 저변은 넓어졌지만 사실 지금보다 더 넓어져야 해요. 윤태호가 <미생>을 2백만 부 팔아 20억을 벌었는데, 20억이면 빚 갚고 마누라한테 폼 한번 잡고 화실 옮길 수 있겠지. 근데 내가 하는 얘기는 20억이 아니고 200억을 벌어야 한다는 얘기야. <미생>은 최근에 일어난 빅히트잖아요. 20억이 뭐야, 20억이. 200억은 벌어야 다른 사람들이 ‘200억이나 벌었어? 그럼 나도 해야지’ 할 수 있는 모델이 생기는 거 아니냐는 거예요. 최고치와의 갭이 훨씬 더 커져야 돼요. 그래야 밑에서 열심히 하겠다고 일어나는 놈들이 생긴다니까.

‘애산(山)가’시죠. 어떤 이유로 산이 좋으세요? (허영만은 2001년 히말라야 K2 등반을 시작으로 이듬해 오세아니아 최고봉인 칼스텐즈, 유럽의 엘부르즈, 2004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을 등반했다.) 산은 좋지만 사람 많은 데는 싫어요. 산은 좀 호젓한 맛에 가는 건데. 그래서 도봉산, 청계산 이런 데 잘 안 가요. 가급적 사람 없는 데로 가고 야영을 주로 해요. 야영이 최고야. 요즘은 산에서 불을 못 피우니까 (불을 피우려면) 캠핑장에 가야 하는데, 우리는 가면 침낭 커버만 치고 자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뭐랄까, 상대적 빈곤이 느껴지더라고. 워낙 거대한 텐트들이 많으니까. 근데 그거 바보짓이야. 하루 종일 텐트 치느라 시간 보내고 산책 조금 하다가 맨날 돼지고기 구워먹고. 그게 뭐야.

몇 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캠핑카 하나 장만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는 게 꿈”이라고 하셨는데, 여전히 유효하세요? 근데 서울에서 일하면서 캠핑까지 겸하는 건 참 어려워요. 금요일부터 2박 3일 간다 치더라도 근교 가는 정도지, 멀리 가면 왔다 갔다 하느라 시간 다 버려서 정작 거기 있는 건 하루밖에 안 된다고. 그래서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갔다가 다시 와야 될 의무가 없는 캠핑카 생활을 할 생각이야. 갔다가 5일, 1달, 2달도 있을 수 있고 필요하면 잠깐 집에 들르고 그렇게.

가능할까요? 안 가능할 게 뭐 있어.

일을 내려놓으셔야 될 텐데요. 그래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일을 손에서 놓았을 때’. 그래도 (그림일기를 가리키며) 이건 여전히 할 거요. 좋게 얘기하면 좋은 취미고 나쁘게 얘기하면 워커홀릭이야.

그림일기 쓰는 게 일이 되어버렸네요. 되게 재밌어. 사람들이 이거 보면 되게 즐거워 해. 가끔 부부 싸움하는 내용도 나와. 그러니까 다 보여줄 수 없는 거고.(좌중 웃음)

참, 좌우명이 자주 바뀌신다면서요. 요즘 좌우명은 어떤 건가요? ‘1달에 1주일, 1년에 1달’, 1달에 1주일 풀로 놀고 1년에 1달 풀로 놀자. 그렇게 한 적은 거의 없지만.(웃음) 

사진 방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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