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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에서는 무슨 일이?

소설 <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작가

2015-04-14 13:57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옆에는 그 못지않은 교육 열기로 뜨거운 잠실동이 있다.
소설 <잠실동 사람들>은 잠실동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한 욕망의 꾸러미를 풀어놓는다.
자녀의 사교육에 목매는 부모들의 욕심, 그 끝에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이라는 잣대가 있다.



아이 교육을 생각해 잠실로 들어왔다. 잠실에 입성해서는 현실에 완전히 눈을 떴다. 서울로 대학을 왔어야 했구나! 유치원 교사가 아니라 의사나 판검사가 됐어야 했구나! 자신 안에 내재한 거대한 상승 욕구를 채우기에 유치원 교사는 모자라도 턱없이 모자란 직업이었다. 잠실에 이사 온 지 1년째 되던 날, 수정은 다니던 유치원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지환과 지나 교육에 올인했다. 비록 나는 주류에 끼어들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은 주류로 살게 하리라. 주류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선 주류가 되게 하리라. 한 번뿐인 인생, 아이들이 세상의 부와 권력을 실컷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잠실동 사람들> 중


왜 잠실이어야만 했나

정아은 작가의 신간 <잠실동 사람들>은 잠실동 초고층 대단지를 무대로 한다. 한때 낡고 오랜 저층 아파트 단지였으나 재건축 이후 초고층 건물이 올라서면서 큰 폭으로 집값이 상승한 이 지역은 대표적인 강남 부촌 중 하나다. 대치동에 ‘입성’하지 못한 이들 중 상당수가 차선책으로 이곳에 들어온다. 강남 8학군이면서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유명 학원가가 즐비하고, 대단지가 형성되어 있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근방에서 해결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치동 못지않게) 헉 소리 나는 집값은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자녀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희생쯤은 기본이다. 7년 가까이 잠실동 대단지 아파트에 살며 두 아이를 키워온 정아은 작가가 철저히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에서 잠실동 내부를 들여다봤다.

“제가 이 책을 쓴 건 잠실동 엄마들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대단지(에 사는) 엄마들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문화·역사적인 이유를 드러내고 싶어서였어요. 옛날부터 교육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엄마들 치맛바람이 너무 세다’, ‘엄마들이 우리나라 교육을 다 망쳐놨다’라는 말을 정말 싫어했거든요. 엄마들은 교묘한 시스템의 가장 표면에서 말초적으로 단추를 누르는 사람에 불과해요. 근데 그걸 마치 우리나라 엄마들이 특별히 나쁜 양 이야기하죠. 왜 우리 엄마들이 그렇게 됐는가, 그 근원에 대해서 토로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어요.”

책 제목은 ‘잠실동 사람들’이지만 작가는 “‘잠실동’이 아닌 ‘대단지 아파트’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강조한다. 대치동이 아닌 잠실동을 배경으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다.

“대치동은 성격이 굉장히 뚜렷한 동네예요. 한 가지 성격(사교육의 메카, 교육특구)만 부각된 곳이죠. 근데 잠실은 여러 가지 면이 혼합되어 있어요. 과거와 현재가 혼합되어 있고, 강남이지만 또 강남 같지 않은  곳이기도 하죠. 그런 양면적인 면이 많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잠실은 기실 재건축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의 5층짜리 아파트는 무려 5천 세대가 넘는 30층짜리 초고층 대단지 아파트로 변모했다. 소위 ‘있는 사람들’은 재건축 이후 더 부자가 됐고, 입주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기존의 주민들은 타지로 밀려났다. 이후 잠실은 완전히 다른 동네가 됐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서울에서 고층 아파트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 잠실이에요. 단지에 들어서면 숨이 턱 하고 막히죠. 근데 사람들은 이런 고층 아파트에 사는 것을 너무 당연시하고 심지어 고급스럽게 여겨요. 지금 저층이나 중층 아파트로 이루어진 지역, 예를 들면 분당이나 대치동도 재건축을 하면 청사진이 30층, 심지어 50층이 넘는다고 해요. 다시 말해 잠실은 서울, 넓게는 대한민국의 미래인 거죠. 그게 제가 잠실을 (배경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고요.”




사교육과 학벌 사회… 엄마들만 ‘죄인’일까?

정아은 작가의 전작 <모던 하트>는 헤드헌터이자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긴 싱글 여성 김미연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느 평론가가 ‘헤드헌터인 미연에게 도시는 학벌로 번식하고 스펙으로 증식하는 인간들의 냉혹한 정글과 같다’라고 평했듯, 이 소설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벌중심주의를 파고든다. <모던 하트>는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2013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두 번째 소설 <잠실동 사람들>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모던 하트>는 모든 게 다 정해진 이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주인공 헤드헌터가 평가하고 찾아가는 인물들도 이미 다 스펙이 정해져 있는 사람들이고요. 그걸 쓰다 보니 ‘이런 스펙들은 어떻게 해서 정해지는 걸까?’ 궁금해졌어요. <계층이동의 사다리> 같은 책들을 보면서 계층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됐고, 그러다 보니 거기에는 ‘교육’이 얽혀 있더라고요. 그즈음 초등학교 선생을 하고 있는 친구가 책에 쓴 사건(<잠실동 사람들>에는 잠실동 대단지 아파트 주민이자 같은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들 몇몇이 모여 등교 거부를 선언한다. 이 일로 해당 반 담임선생이 자살 시도를 하고 병원에 입원한다)과 유사한 일을 겪었어요. 그래서 이걸 소설화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잠실동 사람들>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잠실동에 살 형편이 안 되지만 마지막 대출금까지 쥐어짜내 들어온 ‘지환엄마’, 변호사 남편에 친정의 재력까지 부족함이 없지만 변변찮은 아들의 성적이 못 미더운 ‘해성엄마’, 가진 건 돈밖에 없는 안하무인 ‘태민엄마’, 의사로의 탄탄대로를 포기하고 일과 육아 사이에서 방황하는 ‘경환엄마’, 이 밖에 잠실동 대단지를 드나드는 학습지교사부터 원어민 영어강사, 파견 도우미까지 이들의 신분 상승 욕구는 빈부를 막론하고 천태만상이다. 재미있는 것은, 누구 하나 선악으로 구분할 수 없이 똑같이 선하고 똑같이 악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여기에 나온 인물들은 체험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제 안에 있는 욕망을 하나하나 이미지화하고 극대화해서 만든 것이기도 해요. 잠실에 살면서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본 적이 많아요. 어떤 때는 해성엄마처럼 미친 듯이 공부를 시킬 때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경훈엄마처럼 뛰어놀게 놔두기도 해요. 제가 봐도 이상한 사람처럼 우왕좌왕하죠. 근데 가만 살펴보니까 주변의 많은 엄마들이 다 그렇더라고요. 어느 누구도 ‘나는 애를 미친 듯이 (공부)시키기만 할 거야’라는 사람도 없고, ‘나는 애를 실컷 뛰어놀게만 할 거야’라고 하는 사람도 없어요.”

정아은 작가는 엄마들이 자녀교육에 마냥 올인할 수도, 손을 놓을 수도 없는 이유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 끝에는 ‘입시’라는 철벽이 있어요. 아이 인생의 많은 조건을 판가름하게 될 입시 말이죠. 물론 이런 패러다임(‘학벌이 좋아야 성공한다’)도 많이 깨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눈에 보이는 패러다임은 이것밖에 없잖아요. 입시라는 철벽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결국 일부 엄마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 상식 밖의 치맛바람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잠실의 대단지라는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결혼을 안 했거나 아이가 없는 분들은 이 책을 읽고 대부분 ‘설마 이렇게까지?’라고 반응해요. 반면 초등학생 이상의 자녀를 둔 엄마들은 ‘현실과 똑같다’라는 반응을 보이죠. 제가 볼 때는 특히 대단지 아파트에서 이런 일들이 더 심하게 일어나는 것 같아요. 단지가 클수록 군중심리가 강해지거든요. 너도나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잠실뿐만 아니라 그런 신축 대단지에 가면 제가 소설화했던 인물들을 굉장히 흔하게 볼 수 있죠.”

그런 일부 몰상식한 엄마들의 희생양은 주로 교사다. 교사의 권위가 바닥까지 추락한 요즘, 공교육에서 바람직한 사제 관계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잠실동 사람들>에도 그런 엄마들의 등쌀에 자존감은 물론 삶의 의지까지 잃어버린 교사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교사가 좋은 직업이라는 건 옛말이고, 제가 볼 때 지금의 교사는 너무 괴로울 것 같아요. 교권은 땅에 떨어졌는데 교육 이데올로기는 그대로란 말이에요? 일류대 진학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패러다임은 그대로인데 시대는 바뀌었고 아이들도 바뀌었어요. 교사는 변하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컨트롤해야 하지만 옛날처럼 때리면 안 되죠. 아이들은 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없고요. 너무너무 힘들 것 같아요.”

헤드헌터에서 주부로, 주부에서 작가로 등단에 성공한 정아은 작가는 두 권의 세태소설로 대한민국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작가의 말’에서 “오랫동안 빈부 차의 화두를 놓지 못할 것 같다”고 언급한 그에게 차기작도 세태소설을 기대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두 가지를 놓고 고민 중인데, 하나는 분단에 관한 소설이에요. <모던 하트> 때도 그랬고 <잠실동 사람들>도 그렇고 어떤 문제든 결국 맨 끝에는 분단이 있더라고요. 분단이 낳은 경직성, 북한을 의식해야 되기 때문에 나아가지 못하는 벽이 모든 사회문제의 끝에 있어요. 그래서 분단을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고요. 또 하나는 제가 사회 비판적인 소설을 두 편 썼잖아요. 그래서 이번엔 달달한 연애소설을 써볼까 해요.”(웃음)


사진 신승희 장소협찬 카페 스프링(02-725-9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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