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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OLD & NEW

같은 이름, 다른 여정

2015-04-02 15:37

바야흐로 수학여행 시즌이다. “우리 땐 말이야” 하며 들려줄 얘깃거리를 준비해봤다.
“엄마, 그것도 몰라?”라는 소릴 피하기 위한 최근 수학여행 트렌드는 덤이다.



수학여행은 설렘이었다. 적어도 7080세대에겐 그랬다. 변변히 즐길 것 없던 시절, 여행이 ‘특권’으로 여겨지던 그때 부모·교사의 비호 아래 공식적으로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바로 수학여행이었다. 사정이 어려운 아이를 하나라도 더 데려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선생님의 모습에선 숱한 ‘호랑이의 재발견’이 이뤄지기도 했다.

한 해 교우관계도 그때 판가름 났다. 학기 초 서먹했던 친구들은 교실이 아닌 설악산에서, 불국사에서, 혹은 (포항제철)용광로에서 서로를 감쌌던 얼음을 녹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짝과 무리는 웬만하면 와해되지 않았다. 괴짜와 ‘범생이’, ‘일진’ 등 캐릭터도 그때 비로소 명확해졌다. 버스 맨 뒷자리에서 휴게소도 거르며 자던 친구들은, 교실에서도 1년 내내 그리할 확률이 높았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어느덧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갖게 된 우리네 수학여행. 속내를 들여다보면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남아 있는 건 명칭과 취지 정도다. 여행이 쉬워진 시대, ‘패스트(Fast)’문화에 익숙한 학생들은 더 이상 수학여행을 통해 추억을 수확하지 않는다. ‘그땐 그랬던’ 80년대의 수학여행,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확 바뀐 수학여행 풍속도를 들여다보자. 수학여행 떠나는 자녀에게 덕담이라도 한마디 건네고 싶다면 말이다.


80년대 vs 2015년, 수학여행 배낭 속엔?

80~90년대 ‘유행 좀 탄다’는 청소년들의 필수품은 단연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였다. 일본 소니(Sony)사의 ‘워크맨’으로 대표되는 이 기기는 2000년대 초반까지 청소년들의 ‘잇 아이템’ 1위를 고수했다. 장시간 이동이 잦은 수학여행에서 그 위력은 배가됐다. 구창모·박혜성부터 ‘런던 보이즈(London Boys)’까지…. 나한테만 속삭이듯 들려주는 이어폰만 있으면 석굴암도, 일출봉도 ‘로라장’(롤러장)이 되곤 했다.

‘휴대용 TV’는 트렌드세터이자, 얼리어댑터에게만 허락된 아이템이었다. 지금 보면 우악스러운 모양새에다 배터리 지속시간도 터무니없이 짧아 ‘휴대용’이란 말을 무색케 할 정도였지만, 어쨌든 남들 ‘남산’ 볼 때 혼자 ‘남진’ 볼 수 있다는 우월감은 모두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네모반듯한 보드게임을 들고 오는 녀석은 풍류깨나 아는 친구다. 특히 1982년 ‘씨앗’사에서 출시한 ‘블루마블(Blue Marble)’ 게임은 국내에서 공전의 히트를 거뒀는데, 수학여행 심야의 시간 도둑 역할 역시 톡톡히 했다.

뭐니 뭐니 해도 수학여행을 대표하는 아이템의 ‘끝판왕’은 ‘일회용 카메라’다. 사진기 장만하기가 녹록지 않던 시절,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최선책이었다. 플래시와 유리를 담은 플라스틱 뼈대, 종이로 된 케이스와 필름이 구성품의 전부였지만, 관광지에선 불티나게 팔려 나가며 학생들의 추억 쌓기를 도왔다. 당시 관광지에 진을 치고 있던 소위 ‘카메라 아저씨’들에겐 가장 얄미운 아이템이었을 수도.

카세트 플레이어, 휴대용 TV, 보드게임, 일회용 카메라… 갖가지 아이템들이 수학여행 짐 가방을 채웠으나, 사실 요즘엔 ‘스마트폰’ 하나면 끝이다.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CD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로 진화된 휴대용 음악 감상 디바이스는 ‘PowerAMP’ 등 음원 재생 애플리케이션으로, 휴대용 TV는 스마트폰에 탑재된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기능이면 손쉽게 해결된다.

(현재 국내 제조사의 스마트폰 제품 대부분은 DMB를 이용할 수 있다.) 게임이나, 카메라 관련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특히 사진 관련 앱의 경우, 손 떨림 방지, 연속 촬영 등 사진 촬영의 편의성을 강화시킨 데다, 결과물에 대한 수정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누구나 전문가 뺨치는 촬영을 할 수 있다.


수학여행 단골명소도 유행을 탄다!

80년대의 수학여행 하면 떠오르는 곳.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기차가 여지없이 도착하는 곳은 늘 경주였다. 수학여행의 다른 이름은 ‘경주여행’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 “생태나 역사같이 교육적 효과를 함의해야 한다”는 명분과 수백 명이 함께 기거할 수 있는 숙박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실리적인 요소를 감안한 결과다. 이 때문에 수학여행 철에 불국사 인근에선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어우러지는 풍경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김영경 씨(48세)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때까지 수학여행을 3번 연속 경주로 갔었다”며 “마지막 갔을 때는 친구들에게 천마총, 첨성대, 석굴암 등을 직접 가이드해줬을 정도로 친숙한 관광지”라고 회상했다.

설악산도 중년의 향수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라는 노랫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신혼여행·수학여행의 ‘2단 콤보’ 덕분에 추억의 색이 더 짙다. 산·바다·계곡 등 워낙 많은 관광요소를 품고 있는 데다, 강릉 오죽헌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도 많아 선택의 폭이 넓다. 충남 아산에 위치한 아산만 방조제도 80년대 수학여행의 메카였다. 삽교천과 현충사를 거쳐, 온양온천을 찍는 코스가 마치 박제처럼 굳건했던 곳이다.(최근에는 그 명망이 2010년 완공한 새만금 방조제로 이어지고 있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제주도가 새로운 수학여행의 ‘잇 플레이스’로 각광받기 시작했으며, 2000년 들어서는 일본, 동남아 등 가까운 해외로 떠나는 통 큰 투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의 수학여행지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전국 어디를 가도 숙박관광 인프라 품질이 받쳐주는 데다, 학생·학부모의 니즈도 그만큼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경상남도교육청이 발표한 ‘2013년 도내 고등학교별 수학여행’ 통계를 보면, 고등학생 수학여행 비용이 지역·학교 간 최대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1인당 1백25만원을 내고 싱가포르를 방문한 학교가 있는가 하면, 10만원대 수학여행을 다녀온 학교도 있는 등 천차만별인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오세요”에서 “따라 하세요”로, 체험관광 진화

지난해 9월, 변추석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경기관광고등학교 학생들의 여행길에 따라 나섰다. 학생 수 1백 명에 16명의 ‘안전 지킴이’가 함께했다.(교사, 안전요원 포함) 낙동강 하구 에코센터를 찾아 생태체험을 했고, 경남 통영의 ‘이순신공원’에선 인문학 체험시간을 가졌다. 최근 바뀌고 있는 수학여행의 트렌드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80년대 수학여행은 주로 관광·유람형으로 진행됐다. 수학여행 행사를 한꺼번에 치르는 게 학사일정에 훨씬 유리했고, 그러다 보니 워낙 많은 인원이 움직여야 했다. 자연히 교사들에겐 이들을 잘 통솔해 무사히 일정을 마치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사였다. 체험교육을 진행할 여건도 역량도 부족했던 것.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사는 김미옥 씨(51세)는 “수학여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이들이 2열 종대로 길게 늘어선 줄”이라며 “앞에 아이 머리와 옆에 있는 관광지를 번갈아 보며 걸어 다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창의적 체험활동 성격을 가미한 대안형 수학여행이 각광받고 있다. 교육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라의 삼국통일은 스스로 계획하고 행동했던 화랑들의 역할이 컸다”며 “실천하는 순간 진짜 힘이 생기고, 이는 체험학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자유학기제를 확산하고, 창의적 체험활동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과 학교 안팎의 안전 이슈로 소규모 여행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상황도 이러한 경향을 부채질했다. 덕분에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곳도 있다. 체험을 콘셉트로 한 박물관과 테마파크 같은 곳들이다. 서울시 중구 인사동에 위치한 공간예술 체험형 테마파크 ‘박물관은 살아 있다’는 최근 신개념 수학여행 활동을 찾는 중고등학교로부터 체험 의뢰가 이어지고 있으며, 소리체험박물관(인천 강화), 청소년우주체험센터(전남 고흥) 등도 일선 학교들의 좋은 반응을 얻으며 수학여행의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있다. 강원도에서 활동하는 관광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설악산이나 강릉 경포대같이 관광 목적지에 오는 수학여행단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정선이나 태백, 영월 등 테마와 체험 거리가 있는 여행지를 코스별로 도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땐 그랬지’ 수학여행 추억하기 이벤트도 있어

수학여행 풍경이 송두리째 바뀌다 보니, 여기저기서 수학여행에 관한 추억을 되살리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오는 4월 12일, 전남 보성군 득량역(경전선)에선 ‘70년대 추억의 수학여행 코스프레 축제’가 열린다. 중장년층이 옛 교복을 입고 자녀들과 함께 여행하며 세대를 공감할 수 있는 이색 축제다. 보성군은 이번 축제를 위해 14가지 추억 조형물과 롤러장 등 ‘추억 돋는’ 소품도 마련했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 중동에서 사는 박옥녀 씨(52세)는 지난해 중학교 동창들과 37년 전 함께 수학여행을 떠났던 불국사를 다시 방문했다.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을 떠올리다 추억으로만 간직하기엔 너무 아쉬웠다”는 이유에서다. 그때 그 장소를 떠올리는 ‘아바’,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등을 함께 들으며 “당시의 감성을 완벽히 되돌리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수학여행은 어르신들 추억담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세대 공감 인성교육 ‘메모로’는 60세 이상 어르신들의 ‘지나간 삶의 기억’을 동영상으로 기록하고, 온라인(
www.memoro.org)을 통해 이를 세계의 모든 이들과 공유하는 활동이다. 학교 교육 차원에서 이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 송곡여고의 학생들은 지난 9일 인근 노인정을 찾아 동네 할머니들의 생생한 수학여행 경험담을 온라인에 공유하기도 했다.


- 1990년대,여고생들이 수학여행으로 온 설악산국립공원입구에 도착하고 있다.


- 90년대, 풍류좀 즐길 줄 아는 아이들의 수학여행 필수품. 워크맨.


세월호 참사로 ‘뜨거운 감자’ 된
수학여행 안전 문제


최근 수학여행에 관한 최대 화두는 역시 ‘안전’이다.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인식이 향후 수학여행의 풍경을 크게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 4월 온 나라를 충격 속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 고등학교 수학여행 도중에 발생한 이 비극으로 인해 일선 학교들은 예정돼 있던 수학여행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는 등 수학여행의 미래를 미궁 속으로 빠뜨렸다. 교육계에서 수학여행 무용론과 현장학습의 필요성 등 찬반양론이 극심하게 대립하던 가운데, 지난해 7월 교육부가 ‘수학여행 및 수련활동에 대한 안전관리 지침’을 발표하며, 초중고의 수학여행 활동에 방향을 제시했다. “100명 미만 소규모 테마 수학여행을 원칙으로 하되 5학급 또는 150명 이상 수학여행을 실시할 경우 50명당 1인의 안전교육을 이수한 안전요원을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 지침 내용의 골자였다. 하지만 아직 일선 학교까지는 제대로 스며들지 못했다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교사들의 행정업무와 예산 등을 고려하면, 안전요원 배치에 관한 지침은 다소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은 초등학교 30개교의 수학여행 일정에 119 대원을 파견하는 ‘수학여행 119 대원 동행 프로그램’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운영할 방침이다. 수학여행 119 대원 동행프로그램은 크게 ▲ 수학여행 인솔교사 및 학생 사전 안전교육 ▲ 수학여행 숙소 안전점검 ▲ 탑승버스 경찰 합동 안전점검 ▲ 숙소 현장 확인 및 화재 대피 교육 ▲ 관계기관 비상연락망 운영 ▲ 긴급구조 및 응급처치 등 6대 지원이 이뤄지는데, 지난해 말 3개월의 시범 운영을 통해서는 응급처치 1백23건, 약품 제공 81건, 환자 이송 및 병원 진료 20건 등 총 2백87건의 안전조치가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다. 권순경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장은 “설문조사 결과 학생·학부모·교직원의 만족도가 높고 안전의식 함양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올해는 지난해 수학여행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를 분석해 반영하는 등 더욱 안전한 수학여행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조선일보DB,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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