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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 뮈샤 대표_예쁜 게 좋아

c-cast+ 윤영미가 만난 여성혁신가 11

2015-03-26 15:35

미스코리아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진(眞)’. 매년 한 명 탄생하는 미스코리아 진은 가히 국내 최고의 미녀라 할 만하다. 미녀의 탄생을 알리는 징표가 있으니, 바로 왕관이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아름다움의 방점인 셈. 그렇다면 이 왕관을 만드는 자, 누구일까. “예쁜 게 좋다”고 말하는 50대 워킹맘이 그 주인공이다. 



스타들이 사랑하는 주얼리
 

사실 ‘50대 워킹맘’이라고만 칭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미 그 위치가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서다. 우선 청담동 금싸라기 땅에 7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매입한 것만 봐도 그렇다. 역대(4년간) 미스코리아 진이 그가 만든 왕관을 썼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스타들이 모두 그의 주얼리를 즐겨 찾는다는 점 또한 그 벽을 높인다.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네요. 
항상 긴 머리였어요. 딱 한 번 짧게 쳐봤는데 안 어울리더라고요. 사실 긴 머리는 여자만의 뭐랄까, 특권(?) 같은 거잖아요. 물론 남자들도 하긴 하지만…. 남들은 나이 들어서 어쩌고 할지 몰라도 제 스타일은 제가 만드는 거잖아요. 시간은 시간대로 흐르는 거고, 저는 저대로 가는 거죠. 

의상도 굉장히 화려해요. 
어두운 색 옷은 거의 안 입어요. 촬영할 땐 이런 색(핫핑크)이 잘 나오더라고요. 하하. 

몸매가 받쳐줘서 그런지 소화를 잘하시네요. 
운동을 따로 시간 내서 하진 않아요. 틈틈이 스트레칭을 하죠. 집에 전신거울이 있거든요. 샤워하고 나서 속옷만 입고 스트레칭을 해요. 이 동작(팔을 위로 쭉 뻗고 허리를 비트는 동작을 직접 선보임)을 한 5백 번 정도 해요. 땀이 아주 뻘뻘 나요. 복근까지 생겼어요. 그리고 평소에도 몸을 긴장시키는 편이에요. 걸을 때 허리를 꼿꼿이 펴고요, 일을 할 때도 거의 앉아 있지 않아요. 오죽하면 목욕탕에서 때밀이 아주머니가 힘 좀 빼라고 한다니까요. 하하. 

액세서리를 실제로도 즐겨 하시나 봐요. 
그럼요. 패션의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더 나아가서 나를 표현해주는 도구라고 해야 할까요. 좀 더 많은 분들이 주얼리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간 수많은 연예인이 다녀갔죠? 
이민호, 영웅재중, 장근석, 조인성, 김태희, 고현정, 한예슬…. 당대 최고의 셀럽들이죠. 

김정주 주얼리와 특히 궁합이 맞았던 셀럽이 있다면요? 
구입을 한 분도 계시고, 협찬을 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가장 잘 어울렸던 분은 송혜교 씨인 것 같아요. 우리 주얼리를 애용하는 셀럽 중 한 분인데요, 워낙 소화를 잘해요. (송혜교 씨가 하니까) 더 매혹적으로 보이고, 한층 돋보이더라고요. 

일반 고객들은 어떤 분들이 주로 찾나요? 
반 이상이 신랑·신부 고객이에요. 50~60% 차지해요. 예물 고객이 대부분이고, 그다음엔 일반 액세서리 브랜드(라뮈샤) 고객이죠.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이 예물을 고른다고 하면 어떤 조언을 하시나요? 
사실 예물이 형식이던 시대는 갔어요. 트렌드가 많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은 데일리로 활용할 수 있는 주얼리를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보여주기 위해서 하기보다는요. 물론 아직까지 형식적인 예물을 찾는 고객도 있어요. 한 10% 정도. 실용성 또한 염두에 두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한글 주얼리도 인기였죠. 
한글 자음이 새겨진 목걸이였는데요, 한류스타가 이를 착용해 전 세계로 전파를 탔습니다. 그 밖에도 훈민정음과 선덕여왕을 모티브로 한 2009년 미스코리아 왕관은 ‘디자인 대통령’ 상의 영예도 안았어요. 



의외로 촌사람
 
최근에는 해외에서까지 러브콜이 쇄도한다. 한류스타들이 착용하는 주얼리로 입소문이 나면서다. 홍콩 최대 쇼핑몰인 빅토리아 파크 갤러리아에 라뮈샤 매장 1호점을 오픈한 데 이어 홍콩 라뮈샤 침사추이 하버시티몰, IT백화점에 오픈했다. 라뮈샤는 뮈샤의 세컨드 브랜드. 홍콩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일본, 중국 등에까지 영역을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이쯤 되면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태어날 때부터 진주목걸이를 차고 나왔을 것 같은 김 대표에겐 의외의 면도 있었다. 

강원도 출신이라고 들었어요. 
춘천 촌년이죠. 거기서 나고 자랐어요. 농부의 딸이죠. 부모님이 농사를 지었거든요. 

당시 보석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나요? 
춘천여고, 강원대를 나왔어요. 대학에서 환경학을 전공했는데, 전공 교수님이 보석감정사 자격증을 따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시더라고요. 워낙 제가 액세서리도 좋아하고, 꾸미는 걸 좋아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보석감정사시험(GIA)을 한번 봐라, 하시더라고요. 

교수님 말씀에 큰 영향력이 있었네요. 
원래는 대학원을 가려고 했는데, 이거다 싶었어요. 그길로 졸업하고 호주 유학길에 오른 거예요. 

선견지명이 있었나 봐요. 
춘천이 시골이잖아요. 그런데 여섯 살 때부터 엄마한테 그랬대요. 하와이 보내달라고. 아마 TV 보고 그랬겠죠. 그때부터 멋있는 여성으로 살고 싶다고 했던 거예요. 전문직 여성에 대한 갈구 같은 게 있었나 봐요. 전문직 여성이라고 해봐야 그땐 선생님 정도를 떠올릴 때였는데, 선생님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못 할 것 같았어요. 아무래도 옷차림이나 이런 게 (당시만 해도) 보수적이었으니까요. 저는 어쨌든 지금 제 직업을 가진 게 굉장히 행복해요. 사업은 힘들어요. 아주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 다른 사람의 직업을 부러워한 적이 없어요. 

유학 시절에는 빌딩 청소도 했다고 들었는데요?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까, 아르바이트를 했죠. 본다이비치에 있는 케이크 숍에서도 일하고 빌딩 청소도 하고요. 코피를 쏟아가면서.(웃음) 

신세 한탄 같은 것도 했나요? 
잘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좀 남들이 보기에 유별날 정도로 긍정적이에요. 이 과정을 거쳐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남편분은 언제 만나신 거예요? 
대학교 캠퍼스 커플이었어요. 유학도 같이 갔죠. 결혼 후에요. 유학 시기를 맞추려고 결혼 날짜를 잡았죠. 남편도 춘천 사람이에요. 광물학과를 졸업했고요. 지금은 다이아몬드 수입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보석연구소도 운영하고 있고요. 저한텐 더없는 동업자이기도 하죠. 

금슬은 어떤가요? 
부부가 다 그렇죠. 고난도 있고 고비도 있고 그런데, 강원도 시골에서 만나 순수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잖아요, 서로. 그게 힘이 됐던 것 같아요. 힘들 때마다. 지금도 부부 사이에서 계산 같은 건 안 해요. 남편이 힘들면 제가 하고요. 물질적인 면에서도 그렇고요. 자금적인 부분을 꼭 남자가 하라는 법은 없잖아요. 

이혼 위기도 있었나요? 
(남편이) 헤어지자고 한 적도 있죠. 제가 워커홀릭처럼 일하니까요. 자정 넘어서 퇴근해 아침 7시에 출근하고 그러니까. 남편이 어느 날 그러더라고요. 나랑 저녁에 TV 보면서 된장찌개 먹는 게 소원이라고. 그때는 사업 확장 시기라 한창 바빴거든요. 고비는 다 있죠. 여성이 일을 하면 특히 이런 일이 많은 것 같아요. 그만큼 자아가 강하다는 거니까. 위기를 안고 가는 거예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서로 위하는 길밖에 없죠. 계산하지 않고. 그리고 자식. 내가 포기하면 우리 아들, 딸도 포기하는 걸 배우겠구나, 극복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잘 지내요.



열정이 키운 또 다른 보물

부부 사이의 위기뿐만이 아니었다. 사업 초기에도 곡절이 많았다. 지금이야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됐지만 한때는 두 평 남짓한 가게를 운영하는 영세사업자였던 적도 있다. 유학에서 돌아와 한 귀금속업체에 국내 보석감정사 1호로 취직했지만, 순탄치는 않았다. 사업을 시작한 남편이 사기를 당한 것. 회복 기간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는 말도 못 할 노력이 있었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자정이 다 돼 귀가하며, 지난 20년간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다. 그러면서 전문성도 공고히 했다. 지난해 말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보석의 원석을 직접 고르기 위해 광산을 찾은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함께 운영하는 연구소는 업계 최초 우수제조기술연구센터로 지정돼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시작은 종로 귀금속 가게였죠?
 두 평 남짓한 귀금속 숍이었어요. 유학에서 돌아온 뒤였죠. 남편은 다이아몬드 수입을 시작했는데, 잘나가다가 사기를 당했어요. 물건을 납품하고 대금을 못 받은 거죠. 당시 부도 규모가 20억~30억원 정도였어요.

재기가 힘들 정도로 큰 규모였네요. 
그때 애들이 일곱 살, 네 살이었는데, 엄마로서 못 할 게 뭐 있나요. 어렵게 종잣돈 3천만원을 구해서 종묘 귀금속백화점 제일 뒷자리에 점포를 얻었어요. 사실 그전에도 가내수공업 형태로 보석을 디자인하고 판매했거든요. 그 노하우를 가지고 무작정 뛰어든 거죠. 

그때도 단골이 많았나 봐요. 
물량은 많이 없었는데 직접 디자인해서 제작한 제품들이라 반응이 좋았어요. 자연히 새로운 제품들을 자주 선보일 수 있었고요. IMF 위기 때 오픈한 건데, 제 매장 앞에만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어요. 

비결이 뭘까요? 
스스로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열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도 마음속엔 항상 ‘10년 뒤엔 청담동에 100억짜리 빌딩을 사야지’라는 목표가 있었어요. 실제로 2004년 그 꿈을 이뤘고요.(웃음) 그뿐인가요. 항상 ‘까르띠에’를 경쟁업체로 생각하며 달렸어요. 매장에선 10분 이상 앉아 있었던 기억이 없어요. 그때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요. 

아이들은 이제 다 컸죠? 따님이 최근에 미스강원 진이 됐다고요? 
본선까지는 못 갔고요, 강원 진이 됐죠. 일각에선 제가 미스코리아 심사위원도 역임하고, 왕관 제작도 하고 그러니까 좋지 않은 얘기들도 나오더라고요. 엄마 입김이 작용했다느니. 근데 전혀 아니에요. 지금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데, 모델 쪽으로 나갈 건 아니거든요. 디자인을 하면서 종종 광고모델을 하고 있긴 하지만요. 패션디자인 전공하면서 백하고 주얼리 디자인까지 다 배워서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되죠. 

아드님도 있죠? 
NYU(뉴욕대학교) 다니고 있어요. 경영학 전공하고 있고요. 둘 다 중학교 때 유학을 갔는데 둘이 모두 2년 만에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했어요. 저는 사실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자기네들이 다 알아서 했죠. 숍이 커지면서 사는 게 바쁘니까. 딸이 한 날 그러더라고요. 1년 조기 졸업을 하면 6천만~7천만원은 아낄 수 있다고. 생각이 깊어요. 저보다 나은 것 같아요. 하하. 

둘 다 유학을 보내셨네요. 학비가 장난 아닐 텐데. 
연간 한 3억원 들었던 것 같아요. 혼자 학비를 지원하다가 이번에 남편에게 말했어요. 가을, 겨울 학기 시작할 때였나. 그때 보석 내수도 안 좋아지고 해서. 애들 마지막 학비는 당신이 내달라고. 그랬더니 남편이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지 몰랐다고, 힘들었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항상 웃고 다니니까요. 제가 누구한테 힘들다는 얘기를 원체 안 하는 편이거든요. 

자녀들한테도 도움이 많이 되겠어요.
애들한테 수익이 얼마 났다는 것까지 다 얘기해요. 아들은 경영학 측면에서, 딸은 디자인 측면에서 서로 공유하는 게 많죠. 

가족 기업으로 거듭나는 건가요? 
(웃음)글쎄요. 이제는 아이들과 사업 얘기를 할 정도가 되긴 했어요. 그렇다고 아이들을 갑자기 회사로 데려와 경영에 참여시킬 순 없고요,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배우게 해야죠.

말씀하시는 걸 보면 아직까지 ‘소녀 감성’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딸이 저를 보면 철없다고 말해요. 오히려 애가 더 성숙해요. 근데 사실 나이 먹는 것과는 상관없잖아요. 뮈샤나 라뮈샤의 주 고객은 20~30대예요. 그래서 항상 20대에 멈춰서 생각하려고 해요. 때문에 어딜 가나 20대 계층을 눈여겨보죠. 그래서 밖에 나가면 오해도 많이 받아요. (젊은 사람들을) 너무 자세히 쳐다보니까.(웃음) 소녀 감성 없이는 디자인이 퇴보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트렌드를 만들기 힘들어지죠. 한 번도 스스로 늙었다고, 늙고 있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뮈샤가 사랑받는 것도 어쩌면 그래서일까요? 
아무래도 흐름에 뒤처지면 안 되니까요. 이런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디자인적으로 차별화시킨 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5프롱(발물림이 5개) 다이아몬드 라인을 최초로 만든 거라든지, 목걸이를 레이어드 스타일로 연출한다든지. 그러면서도 디자인은 심플하니까 질리지 않았던 것 같고요. 파인 주얼리(뮈샤)와 아트 주얼리(라뮈샤)까지 두 가지 브랜드가 있으니까 선택의 폭도 있고요. 여기에 연구소, 공방, 쇼룸을 모두 한 건물에 둬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 또한 강점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너가 디자이너다 보니까 주문에서 제작까지의 과정이 굉장히 빠른 거죠. 

최근에는 상품 영역을 확대하고 있죠? 
주얼리뿐만 아니라 백과 화장품 라인까지 선보이고 있어요. 토털 뷰티 브랜드로 거듭나려는 계획이에요. 화장품은 이르면 올 상반기에 개봉 박두 예정입니다. 물론 중심은 주얼리에요. 어쨌든 한국을 대표하는 주얼리 브랜드잖아요. 세계에 한국의 미를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이 있어요. 그 첨병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사진 강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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